제222화
“자, 다음은 저기, 우리 아덴과 도화 씨.”
“아니 누우가 우리야? 우리 애들한테 친한 척하지 마시죠.”
“참나. 지는!”
서도화와 아덴의 순서. 고정출연진들의 유치한 대화가 연신 이어졌다.
다른 때 같으면 게임이 시작함과 동시에 게스트들은 기도 못 펴고 병풍 노릇을 한다고 하던데.
경쟁의식이 강하기도 하고, 크게 코멘트를 해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오자 꽤나 훈훈하게 멘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조심해야 해요. 경계해야 해. 아까 두 사람 연습하는 거 봤어요?”
“장난 아니던데.”
“아니 무슨 아이돌이 아니라 무술인들이 왔어? 했다니까.”
“윤학 선생님 거의 아빠 미소 지으시면서 두 사람한테만 가시더라?”
아까의 연습을 보고 두 사람의 순서가 틀림없이 멋지게 편집되어 나올 것을 염두에 둔 멘트들이었다.
서도화는 그들의 멘트에 쑥스럽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덴의 맞은편에 섰다.
“준비되셨나요?”
송학 pd의 물음에 서도화가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 준비됐어?”
“응 준비됐어.”
서도화와 아덴이 서로 자세를 잡았다.
“뭐야, 얘네 왜 이렇게 다정해?”
“우리도 저런 훈훈함을 좀 지니고 있어야하는 거 아니가?”
“형님, 훈훈함은 한 3년 전에 저어 히말라야 구석에 버리고 왔습니다.”
“그 많은 산 중에 웬 히말라야고. 우리가 갔던 산 중에 제일 힘든 산이라고?”
“아뇨. 다신 볼 수 없는 거라고요.”
“아.”
출연진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만담을 펼치고 있을 때 서도화와 아덴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았다.
“……어우.”
긴장돼.
아덴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으며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마치 예전 아덴에게서 개인훈련을 받을 때가 생각나 몸서리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덴은 지금 보이는 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도화의 사지를 두들겨팼었다.
그냥 전투 중 제 몸 건사하게만 만들어달라고 했었는데 그냥 전투원 만들 기세로 훈련 시켰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로 긴장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장면을 재연하다 실수해서 한 대라도 얻어맞을까 봐.
한 사람은 열심히 외운 검무 비스무리한 안무를 틀릴까봐.
“두 사람 엄청 진지한데?”
“그럼 시작할까?”
“네!”
서도화가 파이팅 넘치게 말했고 곧바로 장면 재연이 시작되었다.
“어… 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시작하자마자 쉴새없이 떠들어대던 출연진들의 입이 꾹 닫혔다.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라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사 뿐.
그럴 수밖에 없다.
“쟤네 등에 줄 달린 거 아니지?”
“그림이네. 그림이야……. 이야….”
때깔 좋게 입혀놓은 도포가 휘날렸다. 도포, 머리끈, 머리카락 할 것 없이 모든 것들이 동작에 따라 아름답게 흩날렸다.
화려하면서도 박력 있는 동작, 정말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기만 해도 쾌감이 느껴지는 동작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하나하나가 멋이고 비주얼이다.
“쟤는 무슨 재연을 춤추듯이 하냐. 멋있네.”
“그러니까. 짜증 날 정도로 멋지네.”
서도화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서도화는 멋으로 둘둘 둘러진 영화 속 장면을 완벽하게 따라 했다.
물론 동작만 되는대로 따라한 것뿐이지만 그렇게만 해도 검술을 선보일 때 필요한 힘과 박진감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동작에서 힘이 어디서 나오냐고?
타앙!
상대방으로부터 나온다.
맞부딪힌 검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에 서도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씨, 손목!’
서도화가 실수한 게 아니고 아덴이 실수했다. 서도화가 울컥, 아픈 만큼 아덴을 흘기자 아덴이 움찔하며 손에 조금 힘을 풀곤 텀블링 해 서도화의 뒤에 섰다.
그러곤 그의 목에 검을 겨누며 재연이 마무리 되었다.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와아! 멋지다!”
아덴은 자세를 풀자마자 냉큼 서도화의 손목을 살폈다.
“안 부러졌냐? 미안.”
“실수도 실수인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힘을 담으셨는지?”
“오랜만이라 좀 신났지.”
“이야, 끝까지 서로를 챙겨주는 우애. 아주 보기 좋습니다.”
서도화의 툴툴거림은 이순협의 멘트로 마무리되었다.
“뭔가 두 사람 되게 합이 좋네? 같이 무대에 서고 해서 그런가?”
서도화 또한 때를 놓치지 않고 얼른 이야깃거리를 꺼내놓았다.
“그런 것도 있는데 아덴이랑은 오래 전부터 친해가지고.”
“어 그래? 실친? 그런 거야?”
“네, 소꿉친구였어요.”
“우와, 소꿉친구끼리 같은 그룹이 된 거야?”
“같이 오디션 봐서?”
오, 다행히 이건 받아줄 만한 이야기인 모양이다.
서도화가 한층 긴장이 풀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따로 캐스팅됐는데.”
“헤엑! 따로 캐스팅하고 보니 같은 그룹에 친구가 있었던 거야?”
“네.”
“엄청난 인연인데?”
“맞아요. 그래서, 옛날에 운동도 같이 하고 해서 합이 잘맞아요.”
그렇지? 서도화가 아덴을 쳐다보자 아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둘이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랬겠다. 너무 잘생겨서.”
“아이…….”
서도화가 민망해하며 고개를 내젓는 걸 마지막으로 송학 pd가 게임을 마무리지었다.
“자, 그럼 모든 팀의 재연을 다 보았는데요. 과연 1라운드 승자는 누가될지. 심사위원분들 결정하셨으면 가지고 계신 팻말을 들어주세요.”
결과야 말해봐야 뭣하겠는가.
“오오! 그래, 오늘은 어쩔 수 없지.”
“이번 건 좀 대단하긴 했다.”
대부분의 표가 아덴과 서도화에게로 돌아갔다.
개중 가장 완벽하게 재연했을뿐더러 정작 재연할 영상엔 와이어를 달고 했을 공중점프를 진짜로 시도한 것, 멋을 살리며 있는 재롱 없는 재롱 다 떨어댄 게 점수 반영에 큰 비율을 차지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 정도로 열심히 재연한 출연진은 없었기에 고정출연진들도 그들이 승자가 될 만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 시간 뒤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자, 2라운드. 바로 말씀해주시죠. 뭐 하면 됩니까?”
이순협의 물음에 송학 pd가 말했다.
“네, 다음 라운드는 바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라! 텐 따우전드 아이돌!”
“…….”
“…뭐라고?”
어메스가 출연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밀리언 아이돌을 모방해 만든 코너다.
방송 전 이미 2라운드에 대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출연진들 사이 홀로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아, 드디어.’
드디어 걱정없이 분량을 차지하게 된 서도화다.
이번 라운드는 제작진들이 서도화를 섭외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한 만큼 중간만 해도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다.
“자, 이번 라운드. 딱히 설명 안해도 대충 무슨 내용의 게임인지 아시겠죠? 앞에 노래방 기계가 있고 이를 이용해 제작진이 감명받을 만한 최고의 무대를 만들면 됩니다.”
“에이에이 이건 아니지!”
“이러면 한 사람이 너무 압도적으로 유리한 거 아니에요?”
모든 출연자들의 시선이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아이돌 업계에 대해 소식이 어두워도 기본적으로 이 업계에서, 아니, 하다못해 너튜브라도 이따금 뒤적거리는 사람들 중 서도화가 노래 잘 부르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예슬 작가 저거저거 어메스 팬이라더니 도화 씨 이기라고 일부러 이 코너 넣은 거 아니야?”
“……어어? 부정을 안 하네?”
고정출연진들의 반발이 길게 이어지자 마지못해 송학 pd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 제가 여러분들 노래실력을 모르는 게 아닌데 설마 실력으로 점수를 매기겠습니까?”
“그럼 뭔데?”
“여기서는 실력이 아닌 제작진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팀이 이기는 겁니다.”
“아아.”
그런 거였구나.
불평하던 출연진 사이에 그제야 안도감이 맴돈다. 한번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던 서도화의 입꼬리는 조금 떨렸다.
어? 실력으로 승부하는 거 아니야?
그럼 난 왜 섭외된 거지?
“노래방 점수와는 상관없어요. 엄청 웃긴 무대를 해주셔도 되고 무척 감동적인 무대를 해주셔도 돼요. 어쨌든 제작진이 가장 즐겁게 혹은 감명 깊게 본 무대가 이기는 겁니다.”
“그런 거면 또 괜찮지.”
출연진들이 만족한 듯 다시 줄지어 섰다. 송학pd가 말했다.
“자, 그럼 다시 팀을 짜볼 텐데요. 이번에도 역시 팀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제일 우선으로 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3명, 4명으로 나누도록 할게요.”
송학 pd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출연자들의 고개는 서도화에게로 돌아갔다.
“……네?”
“도화 씨, 도화 씨는 누구랑 팀 할거야?”
“아덴 씨랑 한번 했으니까 우리랑도 팀 해야지.”
서도화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스레 웃었다.
아무리 노래 실력은 안 본다는 대결이지만 어쨌든 노래 대결이니 노래 잘 부르기로 소문난 인재를 팀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