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화
팀전으로 이루어졌던 지난 라운드들과는 달리 마지막 라운드 [달려라 강호여]는 개인전으로 치뤄진다.
가장 주어지는 점수가 크기도 하고, 여러 라운드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마지막 라운드 승자가 우승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터라 출연진들의 눈빛도 전과는 달라졌다.
“너네 알제? 우리 오늘 너무 부진한 거 아니가? 어메스한테 보여줘야지. 우리가 왜 강호인지!”
“그럼요! 다른 라운드야 뭐, 그거죠. 양보한 거죠. 후배들을 위해.”
출연진들의 기선제압에 서도화가 허허 웃었다.
양보한 것치곤 되게 살벌하게 경쟁하지 않았던가?
매 라운드 이길 때마다 다른 팀들의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게임이 끝난 이후의 휴식 시간마다 잔뜩 긴장해서 있어야만 했다.
저들은 괜히 강호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기 이전에 그냥 승부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팀원이 괜히 발목 잡지 않고 온전히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마지막 라운드에 모든 걸 쏟아부을 것이다.
더구나 게스트가 와도 틀림없이 활약하던 고정출연자들이 이번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이돌 출연진에게 매 라운드마다 지지 않았는가. 아마도 겉으론 웃어도 속으론 더욱 칼을 갈고 있을 터.
서도화는 고개를 돌려 제 옆의 아덴을 쳐다보았다.
‘쟤는 일단 문제없고.’
저렇게 멍하니,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놈이 아마 오늘 완벽히 우승할 거다.
지금까지 매주 이 경기를 했던 고정출연자들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덴은 규격 외인 사람이니까.
사람…. 사람…인가? 아무튼.
문제는 서도화 자신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같은 그룹의 멤버인 아덴은 우승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의 순위는 바닥이면 창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서도화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어디에서 체력, 전투력으로 이긴 적이 있던가.
이세계에선 거의 짐짝 취급 당했었고 여기서도 뭐, 별반 다를 것 없다.
어메스 안에서도 서도화의 체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덴은 물론이고 헬스 지박령 한야, 주상현도 춤 출 때 힘이 부족하다며 꾸준히 운동하고 있고.
서도화는 빠르게 제 주제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꼴찌만 면하자!’
에이 설마 꼴찌를 하겠어?
물론 이곳 출연진들은 5년이나 이 게임을 하며 고수의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렇다고 출연진 전부가 잘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들 중 최약체인 막내 지철옹 정도는 이 악물고 덤비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달리기는 빠르니까.’
이세계에서 영웅의 동료로 산 지 5년.
다른 건 몰라도 도망 하나는 빠르다. 어차피 코너 이름은 거창해도 장애물의 수준이 높은 장애물 달리기일 뿐이다.
저들이 노련한 테크닉으로 승부를 본다면 이쪽은 속도로 승부를 보자!
“고민 끝났냐?”
“어?”
서도화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아덴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를 흘겨보고 있었다.
“생각 다 했으면 이제 좀 내리지? 다 왔거든.”
“……벌써?”
“아오! 비켜!”
아덴이 짜증을 내며 서도화 앞으로 손을 뻗어 차 문을 열고 폴짝 밖으로 뛰어내렸다.
서도화가 3라운드에 대해 걱정하는 사이 어느새 차가 촬영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서도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차에서 내리자 아덴이 거칠게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야, 너는 아까부터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러냐? 잘 하드만. 분량 걱정 하지 말라고 피디님이 말했잖아.”
“이제 분량 걱정은 안 하지.”
그래, 이제 분량 걱정은 없다. 2라운드에서 그렇게 활약했는데 분량 걱정을 왜 하겠는가.
다만 분량과는 별개로 촬영을 하고 게임을 하면 어떻게든 활약하고 싶은게 사람 심리 아니던가.
“아덴, 너는 꼭 우승해라. 난 꼴찌 면하는 데 최선을 다할 테니.”
“엉?”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네가 왜 꼴찌를 해?”
“내가 강호혈전 몇 번 봤는데 선배님들 그냥 도착 지점까지 한 큐에 가시더라. 한 번도 안 넘어지고. 못 이기지. 그러니까 나는 속도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덴이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 절대 안질 걸? 못해도 중간은 가.”
“내가? 설마.”
그러나 아덴은 당사자인 서도화보다 더욱 확신하며 호언장담했다.
“지고 싶어도 못지지. 너 누가 훈련시켰냐?”
너지.
서도화가 아덴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아덴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절대 안 져. 내가 적어도 네가 달리다 뒤지지는 않도록 만들어놨거든.”
“가자, 얘들아.”
이병수가 두 사람에게 촬영장으로 들어가자 손짓하곤 앞장섰다.
서도화는 이병수를 따르며 말했다.
“생사를 다투는 사지에서랑 같냐?”
“다를 건 뭐야. 사지에서 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거니까.”
“아무튼 열심히 할 거야. 꼴찌는 싫으니까.”
“안 한다니까 그러네?”
“어유 그냥 좀 넘어가!”
“싫은데? 이 형님은 말이다. 내가 훈련시킨 녀석이 약해빠진 소리 하는 걸-”
“조용히 좀 해! 사람들 들어.”
“아이고 얘들아! 또 싸우냐! 케이가 없으니까 이젠 너희 둘이 싸워? 조용히 하고 들어가!”
“네.”
“넵, 죄송합니다.”
이병수의 언성에 두 사람이 고분고분 말을 멈추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
서도화는 건물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넓고 높은 공간을 꽉꽉 채워 세팅된 장애물 달리기 세트장.
한눈에 봐도 스케일이 무척 컸다.
한 구간엔 물이 담긴 수영장 위 밧줄 하나. 어느 곳은 딱 봐도 밟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높게 솟은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기도 하고, 커다란 원통이 돌아가는 구간도 있다.
하나같이 높고 커서 이걸 사람이 넘어갈 수 있다고 만들어놨나 싶은데 놀라 굳은 서도화와는 달리 아덴은 간단한 감상평 한 마디만 내놓곤 걸음을 옮겼다.
“우리 무대 세트같다.”
“아, 그렇긴 하네.”
이런 커다란 세트장을 보고 왜 감흥이 없나 했더니. 생각해 보면 이것과 비슷하게 세웠던 세트장을 어메스는 처음부터 보고 컸다.
밀리언 아이돌 경연 때 대표 김유진이 사비까지 털고 빚까지 져서 아크로바틱과 컨셉을 잘 살릴 수 있는 대형 세트장을 마련해주지 않았던가.
아덴은 이곳에 와서 보았던 첫 무대 세트가 그런 커다란 장치들이었으니 기준이 그것으로 잡혀버린 모양이다.
아무도 감탄사에 동조해주지 않으니 서도화도 금방 감흥을 떨치고 세트장 가까이로 향했다.
오히려 감탄사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이야! 오늘따라 더 큰 것 같노.”
이순협과 출연진들이 들어오며 평소보다 배는 커진 세트장에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송학 pd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어메스도 무대에서 날아다니는 걸로 유명해서요. 오늘은 좀 크게 준비해도 될 것 같아서 한번 해봤죠.”
“괜찮네. 오늘도 뭐 우리 철옹이는 꼴찌 하는 거 아니가! 세트장 바뀌가.”
“아니 형님, 오늘은 아닐 수도 있죠. 게스트가 있는데!”
“하하, 다들 도착하셨으면 얼른 세트장으로 들어가 주세요. 살짝 시간이 오버돼서 얼른 시작해야 합니다.”
송학의 말에 출연진들이 잡담을 멈추고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송학이 말했다.
“여러분 3라운드 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다들 뒤를 한번 돌아봐 주시겠어요?”
그의 말에 출연진들이 뒤돌아 세트장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려댔다.
“이야!”
“엄청 커졌는데?”
“이거 뭐야? 송학아 인기있는 애들 온다고 너무 힘준 거 아니가!”
“도화 씨, 아덴 씨 어때요? 이렇게 큰 세트장 처음 보죠?”
조철성의 물음에 서도화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신기해요.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근데 진짜로 커지긴 했어. 저번 주엔 이것보단 작았는데.”
“그래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마! 세트장 바뀌었다고 뭐가 달라지나! 우리는 우리 실력대로 하면 되는 거다!”
“근데 이건 너무 크고 높아져서 좀 무섭긴 한데요. 형님.”
“하하,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한 장치는 확실히 마련해두었으니 걱정 마시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경기를 시작해볼까요? 모두 세트장 위로 올라가 주세요.”
“네!”
출연자 모두가 세트장 뒤로 마련된 계단을 올랐다.
“이야…너무 크다. 크기는 너무 커.”
자신만만이었던 이순협 또한 실제로 올라와서 보니 갑작스레 커진 세트장이 적응되지 않는 듯 절벽처럼 꾸며진 아래를 내려다보며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그러나 제작진은 출연진들이 높이를 가늠하거나 세트장 장애물을 파악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제작진들은 출연진분들 안전 장비 확인해주시고요. 준비되시면 출발 지점에 일렬로 서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