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27화 (227/270)

제227화

어라?

서도화가 의문스러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4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높이에 가득 설치된 장애물.

그 아래엔 조각 스티로폼과 매트를 깔아 놓았으니 떨어져도 다치진 않겠지만 높이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이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설치된 장애물도 몇 가지를 제외하곤 밧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물체이니 더욱 긴장될 만도 한데…….

‘왜 안 무섭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이제부터 일렬로 나란히 선 저 출연진들과 이 장애물을 밟고 하늘을 날다시피 건너야 함에도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이 게임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호혈전 고정 멤버들조차 새로운 장치들이 더욱 난이도가 높아졌다며 긴장하고 있는데 저들보다 실력이 떨어질 게 뻔한 서도화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지?’

오히려 익숙함에 세트장에 올라서기 전보다 긴장이 안 된다.

서도화가 멍하니 건너편을 쳐다보고 있자 아덴이 픽 웃었다.

“거봐. 별거 아닌 거 맞지?”

“……아.”

그제야 서도화는 그가 질 리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아덴의 말이 이해되었다.

서도화가 바로 직전까지 살았던 세계의 삶.

생각해보면 이딴 세트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험한 곳만 다니던 생활이었다.

절벽과 절벽 사이를 별다른 장비 없이 넘어가기는 뭐 당연한 거고, 맨손으로 얼음벽을 오르다 추락해 겨우 동료들에게 건져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건 실전이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고, 아래에서 기다리는 건 푹신한 스티로폼이나 매트가 아니었다.

온갖 괴물들이 도사린 강물이나 바다, 뜨거운 마그마나, 독성 진흙도 있었다. 가장 멀쩡한 게 맨땅이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건 그런 거다.

게임이나 영화 같은 그런 낭만적이고 멋있는 즐거움 따위 없이 매분 매초가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찢어버리는 마족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아덴에게 극한의 훈련을 받았는데 이런 장난 같은 세트장이 무서울 리가.

만만해 보이면 만만해 보였지.

상당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덴과 동료들 사이에선 최약체였던 서도화지만 이곳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덴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널 누가 훈련시켰다고?”

“…….”

이 자식이…….

살아남을 정도로만 훈련 시켜달라 했더니 서도화마저 똑같은 괴물을 만들어 놨다.

‘어쩐지 다른 사람이 나도 똑같은 눈빛으로 보더라.’

서도화는 씁쓸한 미소를 짓곤 다시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뭐 어쨌든.

그때의 훈련이 평소엔 그다지 도움이 안 될진 몰라도 지금은 무지막지하게 도움이 된다.

이번 라운드에서 아덴 뿐만 아니라 서도화도 활약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니까.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네!”

송학 pd의 물음에 서도화가 힘차게 대답했다.

이번 게임은 간단하다. 출연자 모두가 단거리 달리기 하듯 다 함께 목적지까지 뛰기만 하면 되는 경기.

하지만 보통의 장애물 달리기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반칙이 완전 허용이라는 점이다.

상대가 좁은 다리에 올라갔을 때 밧줄을 타고 발로 차 떨어트리거나 다른 사람과 합세해서 우승 후보를 물고 늘어지든 상관없다.

그렇게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은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경기에 참여해 복수를 하거나 다시 골 지점으로 향하다 당하거나 한다.

그런 진흙탕 싸움이 이 경기의 재미이자 묘미다.

참고로 강호혈전의 고정 출연자들은 반칙의 달인으로 이 진흙탕 싸움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 2 라운드에서 그럭저럭 활약하던 게스트들도 이 라운드만큼은 기도 못펴고 갈 정도.

그러나 사실 아덴과 서도화도 만만치 않은 진흙탕 싸움의 대가들이었다. 아덴은 마족과 마왕을 족치기 위해, 서도화는 살기 위해 동료들이 학을 뗄 정도로 비겁하게 물고 늘어지는 걸 잘하던 터라 그렇게 쉽게 지진 않을 터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송학 pd의 말에 서도화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서도화가 냅다 날아갔다.

“……어?”

서도화는 날아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나 왜 떨어지고 있지?

서도화의 위로 아덴을 포함한 출연자들이 우르르 장애물들을 밟아 넘어서고 있었다.

서도화는 스티로폼에 푹 휩싸이고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아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날 밀었구나.

시작부터 반칙이구나.

오른쪽 팔뚝이 아픈 걸 보아 서도화의 오른쪽에 있던 단오가 밀었을 거다.

“하하…….”

“도화 씨 괜찮으세요?”

서도화가 천천히 스티로폼을 헤치고 나오자 제작진들이 실실 웃으며 그를 꺼내 주었다.

전혀 안타까운 눈빛이 아닌 걸 보아 떨어지는 폼이 상당히 웃겼던 모양이었다.

서도화가 픽 웃으며 그들의 도움을 받아 스티로폼 속에서 빠져나왔다.

아 그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그래.

“아아악! 진짜 너무하네!”

서도화가 일어나 나오는 그 잠깐 사이 출연자들이 우후죽순 떨어져나왔다.

아무래도 덩치가 큰 이순협에게는 아무도 당할 수 없었는지 모두가 한 번씩 떨어지는데 그 와중에도 아덴은 용케 이순협을 피해 잘 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 일어나셨으니 다시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도화는 서둘러 세트장 위로 올라가며 제 꼴을 보았다.

한번 떨어졌을 뿐인데 스티로폼 가루 등으로 옷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누가 보면 한참이나 구르고 왔을 거라고 볼 법한 불쌍한 몰골.

아마 방송으로 보면 고요들이 꽤나 좋아할 꼴이다.

‘이긴다. 반드시.’

서도화는 심기일전하며 빠르게 장애물에 올라탔다.

지금까지 절벽에서 되게 많이 떨어져 봤고, 안전 장비 없이 떨어져 살아난 횟수로 친다면 기네스에 들고도 남았을 자신이다. 그럼에도,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떨어지니 기분이 무척 드럽다.

그러다 보니 동료이자 같은 멤버인 자신이 떨어졌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멀리 가 있는 아덴이 참 얄밉지 않을 수 없다.

‘이긴다.’

그때 서도화의 곁으로 또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어우 도화 씨, 여기 가만히 있으면 이렇게 돼!”

“네?”

“하하하!”

이번에도 역시 단오였다. 단오는 게스트고 아이돌이고 나발이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힘을 강하게 주어 서도화를 밀어내려 했다.

아주 자비가 없었다.

서도화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깐 방심했습니다. 선배님!”

그러곤 획 몸을 틀어 단오의 손을 미끄러트렸다.

“어어!”

단오가 실었던 힘만큼 앞으로 무너지자 그 틈을 이용해 곧바로 체중을 실어 몸으로 밀어내 버렸다.

-넌 기본적으로 손아귀의 힘도 팔의 힘도 약해. 어떻게 보면 직업을 잘 선택했지. 그 얄쌍한 팔로 검을 쥐었다간 마족 한번 칼질해보려다 네 팔이 부러졌을 테니까.

-너 지금 놀리냐?

-진실을 말했는데 놀리기는 무슨. 그러니까 만약 마족이 널 공격한다? 최대한 도망가고 반격 가능할 정도로 비리비리하다 싶으면 손과 팔이 아닌 몸통으로 밀어내. 체중을 한껏 실어서. 물론 지금이라면 온몸의 뼈가 박살 나겠지만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그 정도로도 네 몸 하나는 방어할 수 있어.

“으아아! 도, 도화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이게 진짜 되네?”

그땐 내력이고 힘이고 아무것도 없는 서도화가 감당하기엔 훈련이 너무 고되었다. 게다가 고된 훈련을 마치고도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비리비리한 마족을 만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냥 일반 인간에겐 이게 진짜 통하는 것이다. 이순협 다음으로 단단한 근육질인 단오를 간단히 밀쳐낼 수 있다니.

‘진짜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는데?’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그러곤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장애물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산을 탔던 터라 보기만 만만하게 보이는 게 아니고 실제로도 할 만했다.

장애물보다 방해되는 게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달라붙어 떨어트리려 애쓰는 출연진들이었다. 여기서 서도화는 그냥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다가올 엄두도 못 내게 전부 떨어트리면 되지.’

저 멀리 이순협과 아덴은 그냥 우승을 바라보는 다른 세계 사람들의 다툼이고 서도화의 다툼이야말로 진정한 진흙탕 싸움이다.

아~ 비겁하면 서도화지.

지금부터 자신의 앞으로 오는 인간들은 죄다 없애버리는 거다.

서도화가 폴짝 뛰어 장애물 위에 섰다.

어느새 그는 중간 지점에 도착해 둥글게 돌아가는 폼 위였다.

“흐음…….”

서도화는 회전초밥 돌아가듯 돌아가는 장치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자세를 낮췄다.

어떤 반칙이든 허용된다는 게 사람들을 밀어 떨어트리는 것만 허용된다는 말은 아니지?

“하하!”

상큼하게 웃은 그는 장치에 대충 걸터앉아 방금까지 제가 앉아있던 폼을 포함해 이 장치의 발판들을 죄다 뜯어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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