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28화 (228/270)

제228화

‘와 저거 진짜…….’

아덴은 저 먼 곳에서 들리는 소란을 보며 어처구니없이 웃었다.

‘저게 어딜 봐서 성스러운 음유시인?’

누가봐도 비열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짓을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얼굴로 하고 있는데.

“아아니! 도화 씨 그러는 게 어디있어!”

“와 저건 선 넘었지!”

“피디님 저거 저래도 돼요?”

분에 찬 출연진들의 말에 송학 pd는 무척 해맑은 미소를 활짝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 게임은 반칙 허용입니다~”

“아악!”

답답함에 소리치는 동료들의 외침에 이순협 또한 잠시 멈춰선 껄껄 웃으며 저들을 구경했다.

“도화 씨 되게 의외네?”

그의 말에 아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는 익숙해요.”

원래부터 당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하던 서도화였다.

“아악! 형 때문이잖아!”

“맞아! 형이 시작하자마자 도화 씨 떨어트리는 바람에 애가 흑화했잖아!”

“와 도화 씨 봐봐. 표정이 악마야 악마.”

그들의 말에 아덴과 이순협의 시선이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게 웃음이 터졌다.

서도화는 출연진들의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낄낄 웃으며 장치 하나의 발판을 죄다 뽑아버렸다.

“생긴 건 세상에서 제일 순하게 생겨서는!”

“성격은 또 안 그래요. 쟤 은근 승부에 진심이에요.”

저 비리비리한 몸으로 마족 뒤통수 한번 때려 보겠다고 아덴의 훈련을 기어코 따라온 놈 아니던가.

어디 한번 건너와 보라지.

이세계에서 배운 거라곤 비겁해지는 방법뿐이라서.

서도화는 출연진들을 보며 속으로 낄낄거리며 야비하게 씨익 웃어 주고는 자신이 넘어갈 발판 하나만 남겨 놓곤 일어났다.

총 여덟 개의 돌아가는 발판 중 남은 건 하나. 다 끝나고 나서야 무리수를 뒀나 주변을 살피니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출연진들은 씩씩댔지만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오히려 제작진들의 표정이 활짝 폈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하하.”

서도화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곤 사뿐히 발판을 밟고 다음 스테이지에 올라섰다.

“도화 씨! 아이 진짜!”

“야! 한 명씩 줄 서! 발판 하나밖에 없어서 한 명씩 밟고 가야 해.”

“형님 뒤로 가십쇼. 형님 때문에 도화가 흑화한 거잖아요!”

“야 그걸 그렇게 말하면 난 억울하지!”

“아 조용하고 뒤로 가쇼!”

출연진들이 서로 발판을 밟겠다고 투닥거리는 사이 서도화는 서둘러 장애물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우습게도 사람들이 가장 큰 난관으로 생각할 장애물 장치들은 서도화에겐 전혀 어렵지 않았다.

“어?”

마치 평지를 달리듯 한걸음에 두 개의 스테이지를 넘어간 서도화를 보며 남의 집 싸움 구경하듯 낄낄거리던 이순현과 아덴이 당황하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 자신을 방해할 사람이 없어진 서도화가 맹렬한 기세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지만 서도화는 곧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해온 자신의 몸이 아닌 아덴. 위기에서 생사를 걸고 달려본 적 없을 이순협.

그들이 서도화의 뜀박질을 이길 순 없었다.

‘어? 이거 잘하면 내가 일등 할 수도 있겠는데?’

“와, 저 비겁한!”

서도화는 그냥 뛰기만 한 게 아니었다. 골 지점을 향해 달리는 동안 손에 닿는 장애물이란 장애물의 발판은 죄다 뽑으면서 달리고 있었다.

딱히 그러지 않아도 이미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데.

그런 철저함이 사람을 더욱 얄미운 악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덴과 이순협을 따라잡았을 때.

“에잇!”

이순협이 한 번에 모두를 정리하겠다는 듯 아덴과 서도화에게로 몸을 날렸다.

“응?”

그리곤 가뿐하게 몸을 피한 두 사람의 사이로 쭉 미끄러져 아래로 추락했다.

“…….”

서도화와 아덴이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한 발짝 물러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오! 어메스끼리 붙었다!”

이미 승부를 포기한 출연진들이 시작 지점에 나란히 앉아 마지막까지 남은 두 사람을 중계하고 있었다.

나름 긴장되는 분위기.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몸싸움이 시작할 것 같은 기운이 맴돌았다.

“너랑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난다 그치?”

아덴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너 그날 나한테.”

발릴 뻔했잖아.

서도화는 차마 방송이라 하지 않은 뒷말을 알 것만 같았다.

서도화는 긴장한 표정으로 아덴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야.”

“어?”

“가위바위보 하자.”

어허 어디서 나를 해하려고.

서도화가 주먹을 내밀었다. 이기고는 싶다. 하지만 아덴과 정면으로 붙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순순히 포기하고 내려가기도 싫다.

그러니 평화롭게 가위바위보가 좋지 않을까?

제작진, 출연진들이 또 키득거렸다.

물론 서도화의 가위바위보 제안은 승부에 있어서는 찬물을 뿌린 게 됐음이 틀림없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간 초식동물이 육식 동물 앞에 꼬리 내린 듯한 그림은 꽤나 웃겼다.

“에이 설마. 우리 동료인데. 목숨을 나눈 동료인데. 너도 나 걷어차면 마음 아플 거 아냐.”

“…….”

“난 많이 마음 아플 것 같아. 만약 네가 나고 내가 너였으면 난 못해.”

“…….”

아덴은 서도화가 내민 주먹을 바라보다 조용히 주먹을 내밀었다.

서도화가 화색이 되며 입을 여는 순간.

“가위바위-”

투욱-

“어?”

어 이게 아닌데?

서도화가 주먹을 허공에 뻗은 채 추락했다. 떨어지는 서도화를 보며 아덴이 픽 웃었다.

“이게 어디서 사기를 쳐?”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니구만 여기서 동료 타령은.

아덴은 배신감 가득한 서도화의 얼굴을 보며 쯧 혀를 차곤 가뿐히 도착 지점에 발을 디뎠다.

“네! 3라운드 우승자는 아덴 씨. 아덴 씨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오!”

“이야, 5년 간 게스트 우승자는 처음 아니에요?”

“그니까!”

출연진들이 아덴의 우승을 두고 말하는 사이 송 학pd가 외쳤다.

“이로써 모든 경기를 마칩니다. 최종 우승자는 아덴 씨. 축하드립니다!”

아덴은 세트장 아래로 내려가 스티로폼 조각들 사이 멍하니 앉아 있는 서도화에게 손을 뻗었다.

“여어, 동료. 덕분에 쉽게 이겼다.”

정정당당히 몸싸움만 했어도 서도화가 이렇게 쉽게 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덴은 고개를 저으며 제 손을 잡은 서도화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강호혈전의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 *  *

그로부터 몇주 뒤 서도화와 아덴이 출연한 강호혈전의 예고편과 함께 두 개의 선공개 영상이 공개되었다.

하나는 2라운드 아덴 팀의 노래 대결 영상, 또 하나는 3라운드 스티로폼 가루가 잔뜩 묻은 서도화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장치의 발판을 죄다 뽑아 버리는 영상이었다.

두 개의 선공개 영상은 당연히 크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국민 방송 타이틀을 단 프로그램에 웬만해선 게스트가 기가죽어 분량을 가져가기 힘들다는 강호혈전에서 선공개 영상을 차지한 게스트.

거기다 공개된 영상이라는 게 하나같이 임팩트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도대체 어떤 게스트가 게임 한번 이기겠다고 세트 장치의 발판을 뽑아 버리겠는가.

그것도 세트장을 함부로 건드려도 되나 안 되나 조차 파악하지 못할, 선배들 눈치 보느라 바쁠 신인 아이돌이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가 있는 터라 어메스가 난장 피우는 거야 유튜브 좀 파고들었다, 아이돌 좀 안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러려니 하지만 설마 그 난장을 강호혈전에서조차 존재감 짙게 드러낼 것이라곤 그들의 팬인 고요도 유제이의 직원들도 예상치 못했다.

아니 사실 아덴이야 어떻게든 캐릭터를 나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노래 외 예능적인 부분은 전혀 기대 안 하던 서도화가 저런 활약을 보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도대체 발판을 뽑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도화는 얌전하고 착한 애 아니었어요? 저런 면도 있는 지 몰랐네~”

“아유 실장님, 평소에 아덴이랑 도화가 케이 어떻게 놀리는 지 알면 그런 말도 못 해요. 사실 제일 천사 같은 아이는 케이일지도요?”

“에이 그건 아니에요.”

“다, 단호하시네요.”

매니저 이병수를 포함한 직원들이 어제 공개된 선공개 영상을 두고 한바탕 주접을 떨어댔다.

유제이의 대표 김유진은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말했다.

“자자, 알겠어요. 큰맘 먹고 보낸 애들이 활약하고 와서 기분 좋은 건 알겠고. 병수 씨, 대중들 반응은 어때요?”

“아, 저희가 예상하는 것과 별반 다른 게 없습니다. 다행히 어메스 중에서도 대중 인지도가 큰 애들이 나가서 더욱 관심이 컸고요. 뭐 간혹 안 좋은 반응이 있긴 했는데 그거야 뭐, 무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오 좋네요. 고요들은 당연히 더 좋아했을 거고.”

“그럼요.”

“자,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김유진이 탕! 서류를 책상에 내리쳤다.

“이제 슬슬 다음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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