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이번 티어의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이 모이는 과정과 그들이 힘을 합쳐 빌런에 대항하는 스토리.
지금은 멤버들 각자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촬영 중이다.
“지금 무슨 장면을 촬영하고 있나요?”
서도화는 비하인드 카메라를 든 매니저 이병수의 물음에 입고 있는 교복을 손으로 쓸었다.
“지금은 제 친구 케이를 구하러 왔습니다. 저기 보이시죠?”
카메라가 서도화가 가리킨 곳을 찍었다.
경찰서의 광경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세트장이었다. 그 안에 경찰복을 입은 한야와 교복을 입은 케이가 쇠창살 하나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번 뮤직비디오에서 케이가 한야 경찰관님한테 잡혀갔거든요.”
서도화가 픽 웃었다. 케이가 갇혀있는 곳은 유치장처럼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아무리 세트장이라도 심리적으로 기분이 나쁜지 우울해진 채 투덜거리는 케이의 모습이 무척 웃겼다.
어차피 저쪽 세계에서 살아남았어도 처형당할 때까지 지하 감옥에 갇혀있었을 놈이 고작 세트장에 갇혔다고 저렇게 우울해할 일인가.
“이제 그 잡혀간 현장에 저도 같이 있었으니까.”
지난 뮤직비디오 때 서도화와 케이는 친구로 함께 노래방에 갔다가 서도화가 보는 앞에서 케이가 한야에게 잡혀간다.
“케이가 잘못한 건 아니고 케이의 아버지가 잘못해서 조사 차원에서 끌려갔었는데 뭔가 일이 커져 가지고 케이가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잘못이 떠넘겨졌다던가 누명을 썼다던가 뭐 그렇게 된 것이라 이 사건은 이후 케이의 흑화에 큰 영향을 준다.
“이제 저는 친구니까 이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서도화가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제발 한 번만 우리 케이 용서해주세요! 하면서 빌러 왔어요.”
이로 인해 어둠으로 가득해진 케이의 마음속에 서도화는 유일한 빛처럼 하나의 가능성을 남기게 된다.
“제가 한 번, 우리 케이가 무사히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빌어보겠습니다.”
지금은 서도화가 등장하기 전 케이와 한야의 대화 씬을 촬영하는 중이다.
한야는 케이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그를 믿지 않는 어른의 역할로 이후 케이가 흑화한 뒤 그를 감싸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케이를 다시 잡아들이는데 온 힘을 쏟게 된다.
“날! 여기서! 꺼내달라!”
“안돼.”
“나는 잘못이 없다!”
“안 돼.”
탕! 타앙!
“누가 감히! 나를 가두는가!”
서도화는 케이와 한야의 연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는 연기는 하면 안 되겠다.”
어차피 말하는 건 노래에 감춰진다고 아무 대사나 말하며 분노하라 말해뒀더니 보는 사람마저 오그라드는 신파극을 찍고 있다.
케이가 저런 웃긴 연기를 하는데 한야는 용케도 웃지 않고 대화를 맞춰주었다.
서도화는 입을 꾹 물어 웃음을 참으며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도화 씨, 준비해주세요.”
“넵.”
다가와 조용히 말하는 제작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도화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요.”
서도화는 세트장 가까이에서 대기하며 촬영 현장을 구경했다. 케이는 이제 쇠창살을 부술 듯이 흔들며 분노하고 있었다.
‘몰입했네.’
지하 감옥에 들어간 자신의 모습을 빗대어보기라도 한 걸까.
나는 들어가서 어떤 얼굴로 연기를 하면 좋을까. 케이가 저 정도로 분노의 연기를 펼치고 있으니 그에 맞춰 격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지도.
서도화가 나름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을 때 제작진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이곤 세트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아이고.”
서도화의 목소리에 한참 싸움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야와 케이가 시선을 돌렸다.
서도화가 울상이 되어선 한야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고! 경찰관님!”
풉, 스태프들 사이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케이 살려주세요! 케이는 잘못이 없, 살려주세요!”
“……안 돼.”
“케이 풀어주세요!”
“맞다! 나를 풀어달라!”
“풀어주세요 제발!”
“컷컷!”
점점 감정이 격앙되는 상황을 깔깔 웃으며 지켜보던 감독이 결국 중단을 외쳤다.
“아니 내가 재밌어서 일단 보기는 했는데, 도화가 풀어달라고 비는 동안 케이 너는 뭔가 깊은 감명을 받은 것처럼 놀라야지.”
“아.”
케이가 뒤늦게 자신의 감정이 과잉되었다는 걸 눈치채곤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놀란 거야, 도화를 보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도화가 너 돕겠다고 경찰서까지 와줘서 감회가 새롭고 마음이 이상한 거야. 혼란스럽고.”
“어…….”
케이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그게 무슨 감정인데?
그건 고마움인가 놀람인가. 그 정도로 복잡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어야 연기를-
‘아.’
케이가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절대로 자신을 지켜줄 리 없는 인간이 그래도 한 멤버라고 부르며 보호하고 챙겨주기도 한 인간들이 주변에 많았다.
이들이 처음 자신을 동료라고 부르며 챙겨줄 때 무슨 기분이었던가.
그때를 생각하면 감독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과장이란 과장은 다 하며 들어오는 서도화를 보면 집중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럼 다시 할게요.”
서도화가 머쓱하게 자세를 바로하곤 뒷걸음질치며 카메라 밖으로 나갔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꺼내달라고!”
쾅쾅! 케이가 다시 쇠창살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한야는 연민과 단호함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보다 고개를 저었다.
“오.”
감독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한야가 연기력이 좋았다.
특히 말보다 표정으로 하는 표현력이 너무나 좋았다.
“괜찮네.”
그 순간 다시 서도화가 세트장 안으로 달려 들어오며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우리 케이 풀어주세요. 얘는 잘못이 없잖아요! 왜 가두는데요!”
서도화 또한 아까보단 훨씬 연기력이 좋아졌다. 케이의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연기를 보며 도졌던 웃음기가 이번 촬영엔 완전히 사라졌다.
감독의 시선이 케이에게로 향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한야도 서도화도 아닌 케이다.
“오.”
감독이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제 케이는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눈으로 서도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얘가 왜 여기 있는지, 형용할 수 없는 창피함과 놀람,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마음을 울리는 복잡한 감정.
이미 한번 겪어봤던 감정을 재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컷! 잘하네!”
아주 만족스러운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여러분 저는 또다시 옥상으로 왔습니다.”
서도화가 비하인드캠을 보며 말했다.
“저는 은근히 옥상에서 촬영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지난 뮤직비디오 촬영 때도 다른 멤버들 다 뛰어다니는 동안 옥상에서 감정을 잡고 있었고, 솔로곡 영상을 촬영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이번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세트장이 생기나 했는데 또 옥상으로 올라왔다.
이번 촬영은 경찰서에 갔다온 때로부터 몇 년이나 시간이 지난 시점.
뮤직비디오 속 서도화는 경찰서에 다녀온 이후 케이와 인연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세상은 멸망해가기 시작하고 슬픈 표정으로 무너지는 건물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도화야, 이번에는 네가 카메라 들고 있는 거야?”
한야가 경찰복 차림으로 서도화에게 다가왔다.
“형 촬영은 어땠어?”
서도화가 카메라를 조정해 한야에게 들이댔다.
한야는 케이와 추가적인 촬영을 끝낸 후 이곳으로 온 참이다.
한야가 흐뭇하게 말했다.
“케이가 연기 잘하더라. 억양이나 말투나 그런 거만 고치면 연기해도 되겠다고 감독님께서 칭찬하셨어. 너는 잘하고 있었어?”
“나는 형 올 때까지 밥 먹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뭐.”
서도화의 다음 촬영은 한야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촬영이라 지금까지 무한 대기 상태였다.
사실 멤버들이 열심히 촬영하는 동안 서도화는 스태프들과 식사를 하고 오기까지 했다.
서도화는 머쓱함에 서둘러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무슨 촬영이죠?”
“아, 이번에는-”
역시 한야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당황하지 않고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우리 도화를 포섭하는 장면이죠. 세상이 멸망해가도 저는 경찰로서 범죄자가 된 케이를 잡아야 하는데 그냥 수갑으로 잡기엔 스케일이 너무 커졌죠.”
“맞아요. 이제 더는 무력 없이 누군가를 잡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게 되었죠.”
“그래서 도화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거예요. 도화는 케이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서도화와 한야가 임시 동맹을 맺는 것이 이번 촬영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