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퍼엉! 펑!
골목길 끝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일었다.
폭탄과 같은 장치는 계속해서 터지고 모래 먼지를 퍼트리길 반복했다. 잠시 후 감독이 조용히 신호를 보내자 뒤편에 세워두었던 건물이 폭발하듯 무너져내렸다.
콰과과광!
진짜 건물이 아님에도 무게가 상당한지라 바닥에 진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를 보며 서도화는 입술을 축였다.
‘진짜 같아.’
감독은 세계멸망과 파괴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은 저쪽 세계에서 봤던 것과 별반 차이 없을 정도로 리얼했으니까.
서도화가 아덴에게로 시선을 넘겼다.
아덴도 같은 생각인지 반대편 건물 사이에 몸을 숨긴 채로 귀를 꽉 막고 멍하니 폭발을 지켜보고 있었다.
꽤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아덴 씨 도화 씨, 지금 달려 나가자!”
감독의 외침에 아덴이 놀라 벌어졌던 입을 꾹 다물고 몸을 일으켰다. 서도화 또한 아덴과 타이밍을 맞추어 일어나 달렸다.
그러곤 길의 양쪽에 세워진 쇠붙이 뒤로 숨자 같은 속도로 달려온 아덴과 눈이 딱 마주쳤다.
서도화와 아덴은 이곳에서 사람을 만날 줄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로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컷!”
감독이 컷을 외치자마자 두 사람은 자세를 풀었고 아덴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아까 폭발이 일어났던 곳으로 달려가 건물 이곳저곳을 살폈다.
비하인드 카메라를 든 스태프가 기다렸다는 듯 세트장으로 들어왔고 서도화 또한 카메라와 함께 아덴의 곁으로 가며 카메라 들으라는 듯 말했다.
“신기한가 보네.”
“야 이거 진짜 같아. 너무 신기하다. 이걸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아니나 다를까 아덴이 말랑한 벽돌 모양의 건물 조각을 주워든 채 큰 소리로 말했다.
서도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덴과 마찬가지로 건물 조각을 주워들었다.
“그러니까. 너무 리얼해서 놀랐잖아. 너 폭발 소리에 안 놀랐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리가 컸어서 서도화는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아덴부터 걱정했었다.
그는 폭발 소리에 트라우마가 있으니까.
겉보기엔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아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각오한 것보단 작은 소리였어.”
아마 촬영에 문제 없도록 들었던 폭발 소리 중 가장 큰 소리를 예상하고 있었나 보다.
“그럼 다행이고. 스태프 분들 세트장 정리하시도록 나가자.”
서도화는 아덴을 데리고 세트장 바깥으로 나왔다. 하도 장치들이 신기해서 좀더 구경하고 싶지만 5분 뒤 바로 다음 촬영이 시작될 거고 그전까지 스태프들은 모래바람을 잠재워야만 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세트장에서 내려온 두 사람에게로 다가와 서둘러 헤어를 수정해주었다.
“아덴 씨, 촬영 준비하는 동안 의상이나 촬영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서도화를 찍던 카메라가 그의 질문과 함께 아덴에게로 향했다.
아덴은 능숙하게 그의 질문을 받아 대답했다.
“저는 멋있는 군인 역할이고요. 임무를 수행하다 위급한 상황에 도화를 처음 만나게 돼요.”
“오, 만났죠. 그리고요?”
“그런데 딱 보니까 학생인 거죠.”
아덴이 서도화를 가리켰다. 서도화는 지금 교복 차림이었다.
“평소라면 경계를 했을 거예요. 세상이 멸망하니까 쉽게 누군가를 믿을 수 없는 그런 세계가 되었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도화는 학생이니까. 믿고 말고 일단 데리고 함께 도망가는 그런 장면입니다.”
“오, 좋은 장면이네요.”
서도화가 감탄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역시 아덴. 최근 들어 아덴은 정말 말하는 게 능숙해졌다.
정말 혼자 방송에 내보내도 손색없을 정도로 멘트가 깔끔했다.
서도화는 아덴을 기특해하며 말을 덧붙였다.
“저는 이제 갑자기 반대쪽에서 군인이 나타나니까 놀라서 경계하는데 무턱대고 붙잡혀 데려가지는 역할이에요.”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서도화와 아덴이 촬영에 대한 설명을 마친 차에 다음 장면을 위한 촬영 준비가 끝났다.
아덴과 서도화는 카메라에 손을 흔들며 다시 세트장으로 향했다.
같은 장소에서 아까 전의 장면과 이어지는 장면을 촬영하는 터라 촬영 환경에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아까보다 카메라와의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카메라는 사람을 만날 리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난 서도화와 아덴의 표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하였고, 다음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내는 미묘한 감정을 화면에 담았다.
위험한 현장에서 사람을 만난다면 기본적으로 무장을 했거나 위험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뮤직비디오 스토리 속 서도화가 아덴을 보기엔 딱 봐도 군인, 총과 검 등 무기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마주쳤을 때 잠깐의 시선을 나누는 동안 경계와 함께 어떻게 도망가야 하나 고민했을 터였다.
서도화는 자신이 생각한 감정대로 아덴을 바라보았다.
이에 돌아온 아덴의 표정은 어라? 뭔가 익숙한 표정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만난 학생.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에 무력하고 약한 존재를 마주하면 저걸 버리고 갈지 챙겨 갈지 상당히 고민하게 된다.
아덴은 실제로 있었던 경험을 살려 실감나는 표정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마침 그 당시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이 제 눈앞에 있어서 몰입하기 더 쉬웠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뒤에서 한번 더 폭발 소리가 났다.
아덴이 작게 움찔했지만 그는 자신이 놀랐다는 걸 감추려는 듯 서도화의 팔을 잡고 잽싸게 일어나 그를 데리고 카메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컷!”
감독은 이번에도 한번에 만족한듯 호쾌하게 컷을 외쳤다.
“아유 아주 화면이 훤하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게요!”
“촬영 장소 이동하겠습니다!”
* * *
다음 촬영 장소는 아덴의 기지. 인더스트리얼 풍의 세트 속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집이었다.
“형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거기 촬영 스케일 크다 해서 한참 대기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아덴과 서도화뿐만 아니고 첫 뮤직비디오에서부터 아덴과 함께 활동하던 주상현도 함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 세계에서 그런 위험한 장소에 학생 혼자 있으면 당연히 보호자가 없다고 생각할 터.
스토리 상 서도화의 보호자는 한야가 있긴 하지만 이를 모르는 아덴은 일단 그를 자신의 기지로 데리고 온다.
그곳에서 이미 아덴과 인연이 있었던 주상현과도 만나게 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통성명을 한다는 내용이 이곳에서 촬영할 내용이다.
아직 촬영이 시작되기 전. 서도화는 세트장 속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꾹 눌렀다.
‘몇 시지.’
시간은 모르지만 어쨌든 새벽이다. 밤이라고 부를 시간은 지난 듯하다.
촬영 진행이 순조로운 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멤버들은 물론이고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까지 두 눈이 퀭해지고 있었다.
사람이 졸리다 보면 술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와 형 한야 형 흉내 잘 낸다. 나는 도화 형 흉내 잘해. 아! 아덴! 케이한테 시비 걸지 말라고!”
“오, 잘하네.”
“제일 잘하는 건 케이 형 흉내다? 이런 하찮은 것들! 진즉에 내 말을 들었으면! 내가 널 걱정할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하하학! 그건 진짜 닮았다. 아 여러분 이게 상현이가 케이를 놀리는 것 같지만 진짜 이래요. 걱정해놓고 걱정을 부정해요. 하여튼 이상해 걔는.”
아덴과 주상현이 카메라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해대며 졸려 죽겠음을 어필하고 있었다.
“이렇게 촬영하고 있으니까 곧 컴백이라는 게 실감 나.”
“촬영 때문에 실감이 나는 거야? 아니면 피곤함 때문에 실감이 나는 거야?”
“둘 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밤새우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아침이 언제인가요?”
“아침이 아침이지 무슨 말이야?”
“아니 고요분들 중에는 밤이 아침인 분이 계실 수도 있잖아.”
두 사람의 아무 말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도화는 두 사람을 말릴 생각이 없다. 아니 말리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졸려 죽겠네.’
서도화가 침대를 꾹꾹 눌러보다 슬쩍 기댔다.
잠깐 눈이라도 감고 있으면 좀 나으려나. 가만히 눈을 감자 그대로 잠이 들 것 같았다.
잠에 빠질 듯 안 빠질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 순간 아주 가까이에서 주상현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봐. 도화 형도 피곤했다니까. 앉은 채로 잠들었어요.”
“신기하지 않냐? 어떻게 이렇게 얌전하게 자지?”
서도화의 눈이 퍼뜩 떠졌다.
“어, 일어났다.”
“도화, 잘 잤어?”
안 잔 줄 알았는데 잠깐 졸았나. 서도화가 눈에 부릅 힘을 주며 기지개를 폈다.
“나 잔 줄도 몰랐어.”
“너 십 분은 잤을 걸?”
그렇게나? 서도화가 당황하자 두 사람이 낄낄거리며 들이밀었던 카메라를 치웠다.
그때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서도화가 침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