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푸흡.”
“저도 개인적으로…….”
갑작스레 들려온 서도화의 웃음소리에 아덴이 말을 멈추고 의심스레 그를 흘겼다.
“너 뭐 하냐?”
“아니야. 계속 말씀하세요.”
서도화가 대답하며 줌인 버튼을 마저 눌렀다. 끝까지 당겨진 화면엔 아덴의 입술과 콧구멍만 겨우 들어차 있었다.
“장난치는 거 아니지? 나 조금 있다 확인한다.”
“장난? 무슨 장난.”
“…아니면 됐고. 저도 개인적으로 고요분들의 반응이 너무나 기대되는-”
결국 아덴이 다시 말을 멈추고 서도화에게 껄렁하게 손짓했다.
“너 카메라 들고 이리 와 봐. 웃는 걸 봐선 장난치고 있어.”
서도화가 잽싸게 화면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억울하다는 얼굴로 아덴에게 다가갔다.
“나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설명 잘 하길래 흐뭇해서 보고 있었는데 왜 또 그러지?”
아덴은 멀쩡한 캠 화면을 보고서도 영 의심스럽다는 듯 서도화를 흘겼다.
서도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 딱히 없다. 그냥 아덴에게 장난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나. 아무튼 고요들 반응이 기대된다고요.”
“그래 맞아. 이번 노래 너무 좋아서 얼른 보여주고 싶지.”
한야가 아덴의 말에 동감하며 서도화에게서 카메라를 넘겨받았다.
그러곤 서도화를 화면에 담으며 물었다.
“도화는 어때? 이번 타이틀곡 티어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아, 이번 곡의 매력은 역시 질주감이 아닐까요? 약간 락 분위기도 있고-”
서도화의 눈빛이 게슴츠레해졌다. 그가 말하는 동안 멤버들이 한야가 든 캠 화면을 보고 키득거리는 걸 봐선 한야도 비슷한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기대해주세요.”
서도화가 서둘러 말을 마치고 획 돌아섰을 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제작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 * *
데뷔곡 크레센도는 아크로바틱한 안무를 섞은 공격적인 안무와 확실한 컨셉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k-pop팬들에게도 큰 화제가 되었었다.
아니,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반응이 더 좋았다.
그러다보니 유제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은 어메스의 컨셉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이번에도 같은 결의 안무를 가져왔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독특하며 더욱 격하며 따라 하기 힘든 난이도의 안무로.
‘덕분에 아덴, 케이가 죽어나갔지.’
밀리언 아이돌 덕분에 안무 빨리 외우기에 익숙해진 케이와 아덴이 이번엔 오랜만에 우나나의 지적과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물론 케이와 아덴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이 데뷔 때보다 빡센 연습을 하며 안무를 익혀야만 했다.
과장 빼고 말해서 눈물 쏙 뺄 정도로 연습했다.
그 덕분에 뮤직비디오를 찍는 오늘, 멤버들의 표정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도 연습한 게 있어서 그런가? 오늘은 뭔가 한방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게. 안무 하나는 완벽해 이제.”
서도화가 주상현의 말에 공감하며 케이를 쳐다보았다.
예전 춤 출 때만 되면 다 죽은 얼굴로 서 있던 케이는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씩씩하고 자신만만하게 제자리에 서있었다.
절대 틀릴 리 없다는 표정이다.
“아 맞다. 케이 형 요즘 조용해진 거 물어봤는데.”
서도화와 함께 흐뭇하게 케이를 지켜보던 주상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요즘 고향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챙긴다고 정신이 없대.”
몸을 풀며 주상현의 말을 듣던 서도화가 움찔하며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상현을 쳐다보았다.
“고향 친구?”
“응. 그렇다던데?”
제길. 결국 마족들과 만나버렸나?
“그렇구나. 어쩐지 조용하더라.”
서도화가 짜증을 누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은 촬영 중이니 숙소로 돌아가면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마족과 몰래 접선하고 있다는 건 의도가 무엇이든 의심스러우니까.
“그럼 음악 들어갑니다!”
감독의 외침에 주상현이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서도화를 제외한 모두가 자세를 낮췄다.
마름모 모양의 대형. 서도화는 사선으로 선 채 삐딱하게 위로 올라간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곡이 시작되었다.
재즈풍이었던 크레센도와는 달리 웅장한 신디사이저로 시작하는 전주.
흑백의 세트장 전체를 담던 카메라가 서서히 내려오며 서도화를 담았다.
짙은 스모키 화장과 날카로운 눈빛, 온통 검은 의상이 평소 순한 이미지의 그를 매우 매서운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수많은 댄서들의 가운데에 선 서도화는 제 파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안무를 시작했다.
서도화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듯 움직이는 댄서들과 서도화의 표현력이 압권인 시작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멤버들 또한 서도화의 손짓에 따라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흑백의 세트장 안에 검은 복장의 댄서들이 멤버들의 파트에 따라 무더기로 움직이며 모양을 만들어내고 춤을 추는 것이 정면에서 보면 하나의 예술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오.’
이를 지켜보는 감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무 연습 영상으로 이미 봤던 안무인데도 제대로 갖춰 입은 모습으로 실제로 보니 와 닿는 게 다르다.
“흐음.”
만족스레 보던 감독이 고민스레 제 수염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김 팀장, 이거 정면 버전 편집해서 유제이로 넘겨 봐. 생각보다 보기가 좋네.”
어메스가 유독 댄서 활용을 잘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지난 크레센도 때도 뮤직비디오를 맡으며 어떻게 이렇게 잘할까 연신 감탄했었건만, 잠깐 사이 거기서 더 발전했을 줄이야.
곡도, 안무도, 멤버들의 표현력과 강약 조절도 지난번보다 훨씬 발전되었다.
한편 서도화는 제 파트를 마치고 뒤로 물러나며 상당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발소리, 특훈의 효과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멤버들의 안무 소화력.
촬영하는 장본인 스스로 느끼기에도 완벽하다 느낄 정도면 정말 괜찮게 하고 있는 거다.
다만 서도화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지난 타이틀곡에 비해 아크로바틱이 덜 들어갔다는 건데 눈에 확 들어오는 아크로바틱 대신 아덴과 케이의 춤과 표현력을 드러내는 파트가 많아졌다.
아크로바틱도 너무 자주 쓰면 이미지 소비가 너무 심해진다는 의견으로 줄여 아덴과 케이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특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그새 두 사람의 실력이 늘어서 오히려 아크로바틱이 아닌 아이돌로서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이후 멤버들은 몇 번 더 반복촬영을 이어갔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안무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서도화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앉아있는 케이를 끌고 방으로 향했다.
“왜, 왜 이러느냐! 난 지금 피곤하다!”
서도화에게 붙잡히자마자 발작을 하며 소란을 떠는 케이를 보고 아덴이 조용히 두 사람을 따랐다.
“놔라!”
방으로 끌려 들어온 케이가 서도화의 팔을 내팽개쳤다. 서도화는 그를 순순히 놓아주곤 팔짱을 낀 채 흘겼다.
“왜 그러느냐 갑자기!”
“너 우리한테 숨기는 거 없어?”
“숨기는 거?”
서도화의 말에 아덴이 케이보다 먼저 반응했다. 아덴이 매섭게 케이를 노려보았다.
최근 좀 조용하다했더니 또 무슨 꼼수를 부리고 있었던 것인가?
“…….”
케이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숨기고 있는 건 맞았다.
아마 오해를 풀겠답시고 말을 꺼내면 이들은 믿지 않을 테지.
서도화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케이가 말하지 않자 서도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고향 친구가 누구냐?”
“……상현이가 말했나?”
“어, 너 조용한 게 걱정된다고 물어보겠다고 했거든.”
“고향 친구?”
아덴이 눈을 부릅뜬 채 케이의 멱살을 잡았다.
“너 마족이랑 접촉했냐?”
“……내가 사정이 있다고 말하면 믿을 거냐?”
“믿겠냐?”
“믿을게.”
아덴과 케이의 시선이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케이는 놀라움에, 아덴은 뭔 개 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채근하는 눈빛이었다.
서도화는 아덴의 눈빛을 모른 척 하며 케이에게 말했다.
“일단 말해 봐. 중요한 일이니까 듣기는 들어야지. 무슨 이유든 네가 마족을 만났다는 건 우리한텐 큰일이거든.”
막말로 뭔 짓을 할지 모르는 조합이다.
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며 나선다고 해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해도 이상할 것 없는 게 마왕 패거리가 아니던가.
아덴처럼 냅다 화부터 내면 반발심에 오히려 입을 다물 수도 있다.
케이 또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니 일단 들어보고 이후 처사를 결정해도 늦지 않을 터.
“허!”
아덴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도 케이에게서 떨어졌다.
“한번 말해 봐. 마족 왜 만났냐?”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는 한참이나 복잡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설득하려 했다. 그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