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35화 (235/270)

제235화

서도화와 아덴은 둘 다 말이 없었다. 케이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설득? 마족을?”

“그래. 괜한 짓 하지 말고 일단 케이클랍스로 돌아가라 설득했다.”

“……진짜로?”

케이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도화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덴은 여전히 의심을 띤 채 매섭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득?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아덴이 비소를 띠며 말했다.

“도화, 너 지금 저 말을 믿어? 믿을 새끼 말을 믿어야지. 마왕이 마족을 만나서 아무 짓도 안 하고 돌아가라 설득했다고? 그게 말이 되겠냐고.”

비아냥이 잔뜩 섞인 목소리에 서도화가 말없이 케이를 쳐다보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 못 믿지.’

곧 컴백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서 웬만하면 케이의 편을 들어주고 잘 챙기던 서도화도 이번만큼은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우리가 저 새끼 입방정에 한두 번 당해보냐?”

아덴의 말처럼 서도화와 동료들은 케이에게 너무 많이 속았다.

어메스의 케이는 그저 웃기고 허접한 멤버일 뿐이지만 마왕 케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메스의 케이가 아닌 마왕 케이라면 세 사람은 이 방안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었다.

마왕은 피도 눈물도 없이 우리들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는 잔혹한 놈이니까.

특히 마족과 그가 엮여있을 때는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서도화는 케이를 보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케이가 진실로 이곳의 생활과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어메스에 소속감을 느꼈으며 멤버들을 함께할 존재로 인식하였다. 그렇기에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마왕이 여러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 되었고 심장이 생긴 게 아닐까 추측하였다.

하지만 그건 마왕의 전부인 핵이 돌아와도 똑같을까?

마족이 찾아와 원래의 세계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설득해도 어메스에 소속감을 느끼며 자그맣게 생겨난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을까?

서도화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마왕은 너무나 연기에 능숙한 자다.

가시처럼 박히는 아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일히 눈동자가 떨리는 것도, 어쩔 줄 모르고 꼼지락거리는 손가락도 모두 연기일지 모른다.

쉽게 믿을 수가-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우아악!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케이의 고함에 아덴과서도화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어, 어어?”

“물었잖아! 너희들이 물었잖아! 그럼 들어야 할 것 아니냐! 감히 날 추궁해? 감히?”

어? 저건 연기가 아닌 거 같은데……?

끝까지 비아냥거리던 아덴의 입이 꾹 닫히자 그제야 케이는 ‘흥’ 콧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곤 말했다.

“아덴.”

“어?”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않나? 인간이 된 나를 마족이 마왕으로 추대할 리 없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덴이 대답하지 않자 케이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마족은 인간들과는 달라. 인간은 강하지 않은 상대에게도 존경심을 가질 수 있다. 연약한 상대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정을 붙여 함께하고자 할 수도 있지.”

“이야, 마왕치곤 꽤 잘 아네. 인간 따위 싫다면서 언제 그렇게 분석을-”

“아덴 입 안 닫아?”

서도화의 호통에 아덴의 입이 도로 꾹 닫혔다.

케이는 아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족은 아니다. 그들은 감정이랄 게 없어.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 하등한 종족에 대한 혐오. 그뿐이다.”

그렇기에 마왕은 마족을 다스릴 수 있었다.

힘을 길러 그들에게 넘보지 못할 공포를 맛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복종을 맹세했다.

마족의 왕, 마왕이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왕이 아닌 가장 강한 자라는 의미였다.

“그런 놈들이 핵을 되찾기는커녕 심장이 생겨버린 나 따위를 모셔가 다시 마왕으로 추대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확실히 지금의 케이는 마족에게 뭣도 아닌 존재일 터.

이제야 겨우 들을 마음이 생겼는지 아덴이 노려보던 눈을 풀고 계속 말하라는 듯 턱짓했다.

“그래서 설득하였다. 나는 이곳에 큰 뜻이 있으니 돌아가라고. 그들이 나에게 핵이 없음을 눈치채기 전에 말이다.”

마족이 아직 케이를 마왕으로 여기고 있을 때 서둘러 돌려보내야만 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 지금의 케이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이 뭐가 있을까.

케이는 말하는 도중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케이를 입술을 잘근거리다 말했다.

“마족은 위험하다. 그들은 무엇이든 지배하고 싶어하지.”

원래 세계를 정복하는 건 케이클랍스가 아덴 일행에게 무너지며 실패했다.

아마 아덴의 동료들이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이상 더는 지상에 손댈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 세계.’

케이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평화롭고 사람들은 위험을 모른다.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잔뜩 있는 이 세계.

“실제로 다시 만난 놈들은 이 세계를 탐내고 있었지.”

그래서 더더욱 자신에게 힘이 없음을 들키기 전에 돌려보내야만 했다.

핵이 없다는 걸 티 내지 않겠답시고 그나마 있는 작은 마나를 죄다 끌어모아 기선제압에 사용하다 보니 늘 기력이 없어 날이 갈수록 조용해졌던 것이었다.

인간들 사이 섞여 살다가 오랜만에 마족들을 보니 얼마나 위엄이 넘치던지.

“목숨을 걸고 이 마왕이! 세계를 파괴해도 모자랄 이 몸이 세상을 지키겠답시고 고생했거늘 뭐? 의심?”

마족들과 만나는 내내 얼마나 심장 떨리는데!

아, 저건 연기가 아니다. 연기면 저렇게까지 억울한 표정이 리얼할 수 없지.

서도화는 한숨 한번 쉬곤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았고 아덴은 끝까지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말 안 했지? 말했다면 추궁당할 일도 없었잖아? 난 아직 의심 안 풀어. 마족과 만난 걸 비밀로 했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안 들거든.”

아덴의 말에 케이가 뭐 저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어이없는 웃음을 내며 말했다.

“말하면? 네 원래 몸도 아닌 몸으로 검도 없이 마족을 죽이겠답시고 달려갈 것 아닌가?”

“…….”

아덴이 입을 꾹 다물자 서도화가 아덴의 어깨를 툭툭치며 케이를 가리켰다.

“야야 케이 말이 맞네 맞아. 너 마족만 보면 눈 돌아가잖아. 기억 안 나? 나 보자마자 이제 됐다고 케이 저 귀한 얼굴을 샤프로 긁었던 거.”

“…….”

“옛날 네 몸이었으면 몰라도 지금은 천철검도 없고 내력도 없는 상태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무턱대고 달려들었을 거 아니냐?”

“……도화야.”

맞는 말이긴 한데 너 누구 편이냐?

아덴이 노려봤지만 서도화는 이를 깔끔히 무시하곤 케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마족들은?”

“아… 마족들을 말하는 거라면 돌아갔다. 꽤 의심스러워하긴 했지만 다행히 하급 마족이라 내 상태에 대해 모르는 듯하더군.”

“괜찮겠어?”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괜찮겠냐는 말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있는지 알고 있다.

마족들이 얌전히 돌아가 버렸고 심지어 다신 오지 말라고 말했으니 반란이 있지 않은 이상 이 세계로 넘어올 시도는 하지 않을 터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 세계로 넘어와 케이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케이는 이제 영원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저쪽 세계에서 어떻게든 아덴이 돌아올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하이넬 일행이 굳이 마왕까지 함께 데려가진 않을 테니까.

즉 이제 케이는 빼도 박도 못하게 이 세계의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괜찮겠냐고. 너 사람 싫어했잖아?”

이건 어메스나 그를 지지해주는 팬들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사람을 증오했다. 사람에게 버림받고 사람에게 학대당하고 사람에게 배신당하던 그는 결국 사람이 아닌 마족이 되기를 택했다.

오롯이 인간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그랬던 그는 정말로 이것으로 괜찮은 걸까?

서도화는 괜찮다. 어메스 멤버 케이와 부스럼 없이 함께 활동할 수 있고 기껏 정붙였던 저쪽 세계에 다시 재앙 덩어리를 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케이는? 사실 그가 안 괜찮아도 이 세계에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을 테지만 그냥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까부터 열심히 으르렁대고 있던 아덴도 이건 궁금한지 연신 케이를 힐끔댔다.

‘이걸로 괜찮냐고?’

질문을 받은 후 한참이나 우울한 얼굴로 바닥만 쳐다보던 케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 생각 정리를 끝냈다는 듯 의외로 태연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괜찮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오히려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그때야말로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태어나 처음 받았던 거대한 온기.

이를 잊지 못해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족이 이 세계로 넘어왔다는 말을 들은 후 한참이나 흔들리고 흔들리다 겨우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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