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36화 (236/270)

제236화

케이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래, 최근 들어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이 날이 갈수록 변하고 있다고 느끼곤 있었다.

인간만 보면 찢어 죽이고 싶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아니 아무렇지 않음을 넘어 이따금 걱정이 되고 감정에 동화까지 될 정도였다.

그들이 기쁠 때 함께 기쁘고 슬플 때 함께 슬프며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함께 분노하는 것.

그저 일상적으로 인간들을 보느라 적응이 되었다는 것으론 변명이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인간의 감정이 생겼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언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날이 되면 언제든 정리할 수 있는 감정이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데려오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마족을 보며 확실히 알았다.

설령 돌아가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싶었다.

“서도화가 말하는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만이다. 그 뒤로는 용사, 네가 날 찢어 죽이든 목매달아 죽이든 마음대로 해.”

서도화는 어차피 말문이 막힌 김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비장하게 말하는 케이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진심이구나.’

케이 저놈이 정말로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살아가기로 결심했구나.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 케이가 그룹에서 탈주할 위험은 덜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어째 상당히 어색해진 분위기. 서도화가 슬슬 살벌했던 분위기를 풀고자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케이를 노려보는 아덴에게 손을 뻗었을 때.

“그럼 너는 어떤가? 아덴.”

“뭐?”

케이가 아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훗날 너의 동료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게 되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두고 떠날 텐가?”

그의 물음에 아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잃을 게 없는 케이는 몰라도 아덴에겐 서도화의 앞에서 대답하기 무척 난감한 질문이 틀림없었다.

서도화가 얼른 아덴의 앞을 막고 케이에게 투덜거렸다.

“야, 너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그러자 아덴이 서도화를 쭉 옆으로 밀어내곤 태연하게 대답했다.

“있을 건데? 서도화 너는 왜 그러냐? 나 여기 있을 거라고 했잖아. 나도 계약 기간 끝나기 전엔 안 가.”

아 맞다. 그렇게 말했었지.

아덴이 케이를 향해 비소를 흘렸다.

“그리고 난 너랑 다르게 유능한 동료들이 많아서. 그 녀석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오는 방법만 찾을 리 없거든.”

하이넬이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서도화가 있는 곳에 넘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혹시나 돌아가지 못할까 다급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하이넬 일행과 연락이 닿은 뒤론 불안함 따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도 포기 못하거든.’

평생을 살았던 그곳에 비하면 짧은 기간 지냈던 곳이지만 원래부터 정이 많은 그였기에 어쩌면 케이보다 소중한 사람이 더 많이 늘었다.

이곳은 그 세계에 비해 위험한 일도 별로 없고 아덴이 활약할 기회는 더더욱 없긴 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도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기에 모두와 다시 만나지 못할 선택은 하지 않으리라.

“그래그래.”

서도화가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두 사람을 토닥였다.

“고맙다 두 사람 다. 그 이제 슬슬 나갈까?”

슬슬 바깥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치곤 케이를 거칠게 끌고 온데다가 한참 동안 안 나가고 있으니 아마 한야가 문 앞에서 근엄하게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의심이 풀리지 않은 듯했지만 서도화가 강제로 그를 방 밖으로 밀어내며 애써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러곤 뒤따라나오는 케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일단 난 너 믿어.”

안 믿어서 어쩌겠나 하는 생각도 있고. 적어도 방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보여준 케이의 표정은 진심으로 보였으니까.

“무슨 얘기 나누고 왔어?”

역시나 한야가 곧바로 다가와 서도화를 붙잡았다. 서도화는 능숙하게 별것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냥 안에서 잠깐 말다툼이 있었어. 별건 아니고.”

“뭐 때문에 싸웠는데? 아까 뮤직비디오 찍으면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이 아니야. 종종 저렇게 싸워. 싸웠다가 하루 지나면 풀리고 그래.”

“흠, 믿어도 돼?”

의심스레 아덴과 케이를 쳐다보는 한야에게 서도화는 믿으라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진짜 별거 아니니까.”

하마터면 힘없는 케이가 아덴에게 두들겨 맞을 뻔했지만 별거 아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이야 아주 흔한 일상이니까.

“……그래?”

한야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심스러운지 아덴과 케이를 추궁하러 떠났고 그틈에 주상현이 냉큼 다가왔다.

“저 형들은 싸우면 어떤 걸로 싸워?”

“싸우는 게 다 똑같지.”

“게임 때문에 싸운…건 아닐 거고. 바쁘니까. 진짜로 뭐 때문에 싸운 거야?”

“뭐… 평소랑 똑같아. 아덴이랑 내가 케이를 좀 오해했어. 그래서 말로 풀었던 것 뿐이야.”

“으음, 그래…….”

주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마땅하게 추궁당하는 중인 아덴과 케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미간에 주름은 잔뜩 져선.”

서도화가 주상현의 찌푸린 미간을 꾹 눌러 폈다. 그러자 주상현이 입술을 쭉 내밀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그룹 내에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어?”

“또 나만 몰라 나만. 형들끼리만 싸우고.”

“……어?”

얘 또 시작이네?

초반엔 공통된 화젯거리 찾겠다고 안 하던 게임까지 찾아서 하더니 요즘엔 형들을 너무 좋아해 하다 하다 말다툼까지 안 끼워준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마저도 팬들이 알면 무척 귀여워할 테지.

서도화는 픽 웃곤 주상현에게 말했다.

“케이가 너 되게 아끼더라.”

서도화의 말에 주상현이 눈꼬리를 접으며 헤벌레하게 웃었다.

“알아. 케이 형 나 좀 좋아해.”

두 사람의 대화에 추궁당하던 케이가 힐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근데 왜? 왜 케이 형이 나를 아낀다는 말이 나와?”

“그냥.”

서도화가 주상현의 머리에 터억 손을 올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가 네 덕분에 멤버들한테 정을 붙였대.”

“진짜?”

“응.”

주상현이 감격한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케이가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알수있지 않은가?

만약 케이가 이 세계에서 온기를 느꼈다면 그 첫 번째는 주상현일 것이다.

처음으로 정을 붙인 것도 주상현이니 결과적으로 케이가 이곳에 머물겠다고 결심한 건 주상현의 공이 매우 컸다.

“저 형도 참. 그런 말을 나한테 직접해주면 얼마나 좋아?”

주상현은 아주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케이에게 달려갔다.

서도화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인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괜찮다. 나는. 서도화가 말하는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만이다. 그 뒤로는 용사, 네가 날 찢어 죽이든 목매달아 죽이든 마음대로 해.

-있을 건데? 나 여기 있을 거라고 했잖아. 나도 계약기간 끝나기 전엔 안 가.

확신에 찬 말.

아마 이 화젯거리가 대화의 주제로 올라오기까지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은 원래의 세계만큼 이 세계 또한 소중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새삼 이 오합지졸들이 많이 돈독해졌구나 느끼는 밤이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어메스는 컨디션 조절과 연습에 매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연습과 공연 준비, 그리고 차후 스케줄을 위해 예행과 회의까지.

너무나 정신없이 흘러가는 나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컴백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컴백까지 열흘 앞둔 어느 날.

“이야 다들 수트 차림이 아주!”

이병수가 한손으론 엄지를 추켜들며 다른 한손으론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멤버들을 마구 찍어댔다.

주상현이 카메라 앞에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가며 말했다.

“멤버 전부 키가 커가지고. 다들 정장 되게 잘 어울리죠? 특히 한야 형이랑 아덴 형.”

주상현이 두 사람을 가리켰다.

딱 맞게 떨어지는 수트핏. 멋스럽게 올린 머리와 안경.

워낙에 체격이 좋은 두 사람이다 보니 정장 차림이 더할 나위 없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도화 형이랑 케이 형은 어디갔지? 두 사람도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둘은 슬림핏이라 제 취향은-”

주상현이 멤버들의 모습에 대해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컴백날 업로드될 ‘제1회 난장판 뉴스’ 촬영날.

뉴스 세트장에서 멤버 모두가 앵커와 같은 모습으로 어메스의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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