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은 하늘이었다. 비가 온 이후의 하늘처럼 적적하고 먹구름이 잔뜩 껴 있는 우울한 하늘.
하늘에 머물러 있던 화면은 잠시 후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적적한 색채만큼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는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오오, 잘생겼다!!!”
“워어!!!”
“역시 우리 어메스 공식 미남!”
“공식 미남은 나 아니었던가.”
서도화가 화면을 채우자마자 멤버들이 난리가 났다.
서도화는 민망함에 저도 모르게 목덜미를 쓸면서도 뮤직비디오에 집중했다.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표정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쓸 수는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 완성본에선 어색함이 크게 티 나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속 서도화는 무너져가는 건물을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로 카메라가 천천히 다가가더니 마침내 화면 가득 얼굴이 들어찼다.
“어우…….”
부담스러움에 서도화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그러다 바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검고 붉은 의상을 입고 대형을 맞춰 선 어메스와 댄서들. 곧바로 곡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질주감이 상당한 노래다. 그만큼 안무의 강도도 빠르고 강렬한데 시작하자마자 센터에 선 서도화와 자리를 바꾼 주상현이 이 곡의 쾌속적인 안무를 한껏 느낌을 실어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교복차림의 주상현이 무너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교차되어 보여졌다.
질주와 거침없음. 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뮤직비디오의 초반부터 완벽히 잡았다고 말해도 손색없었다.
“와 분위기 봐.”
“좋다. 초반부.”
멤버들의 몸이 절로 들썩이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는 안무와 어메스의 스토리를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되었다.
안무, 노래, 영상미 등 어느 것 하나 임팩트 없는 게 없었는데 그 사이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중간 중간 보이는 멤버들의 스토리였다.
케이가 붙잡혀가고 서도화가 안 된다고 빌고, 한야가 이를 외면하면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저들을 바라보고.
“케이 형은 왜 붙잡힌 걸까요! 하하…….”
말없이 뮤직비디오에만 집중하고 있는 멤버들에게 주상현이 슬쩍 멘트를 던져보았지만 크게 반응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만큼 뮤직비디오 속 스토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절절하고 몰입도가 넘쳤다.
목소리 하나 들어가 있지 않음에도 너무나 슬프고 애잔해서, 겪어본 적 없는 그날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아니 쟤네들은 평소엔 조용하라고 해도 떠들면서!’
왜 말을 안 한대?
결국 멤버 중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이병수가 손을 휘저어 그들에게 뭐라도 말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를 본 한야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화랑 케이 이거 촬영할 때 감정적으로 많이 어려웠겠다.”
“맞아. 감정 잡기 어려웠어. 웃음 참느라.”
“파핫! 그럴 줄 알았다.”
“실제로 저때 나는 가까이서 두 사람 연기하는 걸 봤잖아.”
한야가 말했다.
“도화 입꼬리가 수시로 올라가더라.”
“아니 진짜로 웃겼다니까. 형은 안 웃겼어? 케이 저때 연기에 몰입해가지고.”
서도화가 유치장에 갇혀 연기하던 케이를 흉내 냈다.
“날 여기서 꺼내 달라! 나는 잘못이 없다! 누가 감히 나를 가두는가! 이랬다고.”
“헐 진짜? 너무 재밌었겠다. 아! 나도 거기 있어야 했는데.”
“뭐야 김케이 너 진짜로 연기했냐?”
“나는 김케이가 아니다. 김아덴. 나는 픽케이로스톤이라는 아주 멋진 이름이 있어.”
“부르기 어려우니까 대충 김케이로 해.”
“…….”
케이가 아덴을 흘겨보았다. 서도화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었다.
“그때 저는 케이도 웃겼지만 한야 형도 웃겼던 게 김케이가 저런 말을 하는데-”
“김케이 아니라니까!”
“정말 단호하게 안 돼. 안 돼 이러는 거야. 날 여기서 꺼내 달라! 안 돼. 잘못이 없다! 안 돼. 그게 너무 웃겼어. 정말 두 사람이랑 연기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그럴 만하지. 나도 케이 형이랑 같이 일하다 보면 되게 표정 유지하기 힘들다니까?”
보통 불안해하거나 웃겨 죽거나 둘 중 하나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도화는 주상현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뮤직비디오에 집중했다.
뮤직비디오엔 어느새 케이를 내보내달라 비는 서도화의 장면이 지나가고 케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케이는 서도화와 한야의 모습을 창살 안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오.”
“케이 형 꽤 연기에 소질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저때 창살 치면서 말한 거 보면 연기는 못 하는데 저 부분은 정말 좋다.”
멤버들이 일제히 뮤직비디오 속 케이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고마움과 복잡함, 씁쓸함과 고독함, 그리고 느낄 수 있는 최악의 비참함과 처량함.
그 갖가지 감정이 케이의 표정에 들어있다.
너무나 감정을 잘 표현해서 멤버 전원이 놀라 잠시 멘트를 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나마 이병수가 얼른 한 마디씩 하라고 신호를 주며 북돋은 분위기가 케이의 수준급 표정연기에 단숨에 다시 사그라들었다.
다시 전환되어 보이는 안무 장면. 이번엔 아덴이 앞으로 나서 멤버들과 댄서들을 이끌었다.
밀리언 아이돌부터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듯 아덴은 주상현, 서도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중심에 서서 군무를 이끌어나갔다.
역시 아덴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용사다.
아이돌로서 춤을 추고 표정을 꾸미는 와중에도 그만의 패기, 압도감이 느껴졌다.
서도화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아덴을 토닥거렸다.
“우리 아덴 이제 다 컸네. 너무 잘한다. 프로 같아.”
아덴이 인상을 구기며 서도화의 손이 올라간 어깨를 튕겼다.
“얘는 또 왜 이래? 우리 프로 맞아.”
두 사람을 힐끔 보던 한야가 툭 말했다.
“저게 아마 우리 한 네 번째 안무 촬영이었을 거야.”
“맞아. 우리 뮤비 감독님 말로는 아유 완벽하다고 막 그러면서 촬영 엄청 반복했었어.”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후반부 표정이 더 좋았다고 다들.”
서도화가 스스로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픽 웃었다.
가뜩이나 강강강강강으로 이어지는 곡조에 한 번만 완곡해도 힘들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안무를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어서 하니 사람이 절로 절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끝나라 제발.
이런 심정으로 이 악물고 안무에 임하니 감독은 오히려 좋아하더라.
저 당시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다섯 번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완성된 작품으로 보니 감독이 왜 후반 촬영을 마음에 들어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확실히 절박한 연기 씬 다음에 나오는 장면인 만큼 안무 씬 또한 절박함이 묻어나오는 게 훨씬 몰입하기 좋았던 것이다.
그 이후 서도화와 한야가 옥상 위에서 다시 만나 케이를 찾고자 힘을 합치는 장면, 아덴과 서도화가 도주 중 만나 기지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 장면 등 10분짜리 뮤직비디오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뮤직비디오의 끝에 다다랐을 때.
색채가 짙었던 뮤직비디오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이내 검은 화면으로 물들었다.
이어지던 곡 또한 갑작스레 전원을 꺼버리듯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끼이익- 탕.
검은 화면은 누군가가 문을 열며 자연스레 걷어졌다.
그리고 문 사이 케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과거의 모습을 제외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였다.
케이는 카메라를 마주본 위치에서 문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누군가를 발견한 듯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 누구야? 누구랑 만난 거야!”
“진짜 누구지? 우린 진짜 몰라.”
멤버들이 웅성이며 케이를 붙들고 흔들어댔다.
케이는 촬영하는 내내 개인 촬영을 하고 있었던지라 그가 무슨 내용의 촬영을 했는지 잘 몰랐다.
그러자 케이는 그저 픽 아무것도 모르는 멤버들을 놀리듯 입꼬리만 올린 채로 말했다.
“비밀이다.”
“참나.”
“응~ 됐어! 어차피 곧 있으면 또 우리 고요분들이!”
주상현이 키보드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명석하게 해석해주실걸?”
“자자, 거기까지 하고 다들 집중.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한야의 말에 멤버들이 다시 뮤직비디오에 집중했다.
케이가 어두운 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 화면을 향해 점차 가까워졌다.
조금씩, 한 발짝씩 가까워질 때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불빛은 조금씩 가려지고 케이는 그림자 진 어둠 속에서 모습이 점차 가려져 안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희미하고 흐릿하게 케이의 눈동자가 빛났다.
붉은 것 같기도 분홍색 같기도 한 색으로 아주 잘 봐야 보일 정도로 옅게 빛을 보였다.
뮤직비디오에 숨겨둔 세계관에 대한 떡밥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곧 완전히 어두워지며 검은 화면에 흰 글씨로 [Tear]가 새겨지며 뮤직비디오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