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44화 (244/270)

제244화

“으흠흠~”

케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쉬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주상현을 흘겼다.

저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참견하고 간섭해대며 알랑거리곤 했다.

어메스의 두 번째 싱글 티어의 첫 음악방송 스케줄.

어메스야 늘상 무대에 올라 라이브하는 것이 일이니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케이와 아덴을 제외한 멤버들은 처음으로 곡을 선보이는 오늘을 무척 특별하고 설레는 날이라고 여겼다.

‘네가 새로 만든 마법 기술을 아덴한테 선보이는 첫날이야. 그러면 특별해 안 특별해?’

물론 도통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에게 서도화가 친절히 설명해줬으므로 대충 왜 저렇게 신나고 긴장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상현은 너무 과장해서 행동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비단 오늘 있을 무대에 설레하는 건 주상현뿐만이 아니다. 유제이의 직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야도 크게 티 내진 않지만 평소보다 굳은 얼굴로 안무를 연습해보고 있었다.

또한 서도화는 유유자적하기 그지없는 아덴에게 있는 대로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있었고.

“덴아, 덴아. 아이고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 아직도 립을 못 맞추면 어쩌자는 건데?”

“야 연습은 라이브로 했잖아. 라이브만 잘하면 되지. 무대에서 어쨌든 부르긴 부르잖아.”

“뭔 소리야 어제 연습했잖아. 중간중간 부르긴 해도 싱크 제대로 안 맞추면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욕먹어.”

저들이 투닥이는 것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서도화 쪽의 잔소리가 훨씬 심했다.

그만큼 평소 침착한 서도화 또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케이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경박한 인간들이 제 멤버였다.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군.’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던 케이가 서도화와 때마침 눈이 마주쳤다. 케이는 서둘러 귀에 이어폰을 꼽고 티어를 재생했다.

한때 진심으로 거슬려 죽여버리려 온갖 애를 썼던 음유시인이건만 이젠 귀찮은 동료일 뿐이다.

아덴에게는 충분히 잔소리를 했을 테니 그다음은 케이에게 한껏 퍼부을 셈일 터.

귀찮지 않으려면 하고 있었다는 티를 내주는 게 편했다.

귓구멍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도화의 시선을 외면한 지 꽤 되었건만 여전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서도화에게 케이가 서둘러 외쳤다.

“나는 가사를 외우고 있다! 그러니 내버려-”

“……뭐라고? 오늘이 컴백 날인데 가사를 아직도 외워? 네가 제정신이냐? 어?”

“…….”

저놈 원래 저런 인간 아니었지 않던가?

생긴 건 비슷하다만, 아니, 이곳에선 딱히 험한 일이 없었던 만큼 훨씬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긴 해도 예전엔 좀 더 분위기에 무게가 있었다.

단순히 적이었기 때문에 그리 느꼈던 걸까?

아니, 아니다. 그때의 음유시인 서도화는 지금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독하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꿰고 있던 지략가. 수많은 사람과 마족이 죽어 나가던 중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던 침착함과 협박과 위기의 상황에서도 되레 흥분한 아덴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마왕과 마족에게 대항했던 인간이었다.

오죽하면 케이와 마족들이 아덴보다 서도화를 더 거슬려 했을까.

아군으로 포섭하려 그리도 애썼던 인물인데 막상 같은 팀이 되고 나니 영…….

그때 서도화가 획 케이의 이어폰을 빼며 심각하게 물었다.

“야 케이, 진짜로 솔직하게 말해줘야 해. 너 정말 가사 다 외우고 추가로 복습 중인 거 맞지? 첫 방인데 가사 씹으면 정말 혼나. 정말이야.”

“……서도화 지금 나를 못 믿는다는 것이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못 믿는 게 맞네. 표정에서 너무나 드러나는 그의 생각에 케이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다 외웠다. 복습을 한다고 해도 그러나? 하지 말까?”

“하던 거 계속해. 착하네.”

서도화가 케이의 귀에 도로 이어폰을 꼽아 주었다.

……같은 편이 되니 영 귀찮은 존재다.

그리고 꽤나 강압적이다. 아덴은 무척 익숙하게 이를 받아주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서도화는 같은 편에게 항상 이런 태도로 임했던 모양이었다.

케이가 또르르 눈동자를 굴리다 픽 웃었다.

그렇다는 말은 서도화가 이젠 하다못해 자신마저도 제 동료로 인정했다는 말과 같겠지.

간지럽지만 어메스의 일원으로서 인정될만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이니 인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음유시인뿐만 아니라 용사 또한 같은 팀이 되자 이미지가 꽤나 바뀌었-

“형!”

그때 주상현이 다가와 케이의 곁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오늘도 카메라가 잡혀있었다.

케이가 푹 숨을 내쉬었다. 서도화보다 더 귀찮지만 그래도 인간 중에 가장 정이 가는 녀석이다.

“자, 카메라에 대고 고요, 아니 케이클랍스 분들한테 오늘의 의상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죠.”

“오늘의 의상?”

케이가 제 옷과 멤버들의 옷을 살폈다.

옷이 그냥 옷이지. 뭐 대단한 마법 술식을 넣은 방어구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생각하던 케이는 문득 카메라 너머에서 빤히 지켜보는 서도화 그리고 한야를 알아채곤 입술을 축였다.

제대로 하나 안 하나 염탐하는 것이니!

아이돌 경력 횟수로 1년.

이제 이 정도 질문쯤은 아이돌답게 대답할 수 있다. 당당히 보여주리라. 나의 멋들어진 대답을! 입이 떡 벌어지도록 완벽히 대답해주리!

케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의 의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블랙에 티어의 메인 컬러인 레드로 포인트를 준 특별한 의상이지요.”

“네, 이 의상 저희 뮤직비디오에도 나왔잖아요.”

“맞습니다. 새하얀 배경 앞에서 의상을 입고 춤을 췄죠.”

“형은 이 의상 중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 어디예요? 저는 이 가죽이 뭔가 광이 난다고 해야 하나? 딱 붙기도 하고 선을 따라 광이 나거든요. 그래서 유독 몸 선이 잘 나타나요. 춤 잘 춰 보여서 좋아요. 형은요?”

“어어? 나는-”

……생각보다 편한데? 대화가 잘 이어진다.

혼자서 얼마나 장황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의상에 관해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던 게 무색하도록 주상현이 말을 잘 받아주고 도움을 준다.

케이의 귀 끝이 조금 붉어졌다.

‘이, 이런 게 바로 팀!’

최근 케이는 팀, 동료에 꽤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인간으로서 어메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어메스의 동료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해주는 배려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훨씬 깊이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이것도 점점 인간이 되어 그들 속에 적응하는 과정 중 하나이리라.

한참 인터뷰를 진행하는 두 사람을 아덴이 불만스레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메스! 무대 뒤로 들어가실게요!”

한참이나 장난처럼 대화처럼 진행되던 인터뷰는 음방 제작진이 대기실에 들어오며 마무리되었다.

멤버들은 일제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무대 뒤로 향했다.

멤버들을 따라 이동하는 케이의 곁으로 아덴이 따라붙었다.

“어쭈? 되게 기뻐 보이더라?”

케이가 심드렁하게 눈짓하곤 앞을 보았다. 보통 아덴이 먼저 케이에게 말을 붙이는 경우는 너무도 드문데 인터뷰하는 케이의 모습이 꽤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딱히 기쁜 건 아니었다. 기쁠 일인가? 그저 케이클랍스들을 위해 인터뷰를 한 것뿐인데.”

“어우 언제까지 케이클랍스라고 부를 거냐? 난 그 단어 들을 때마다 거북하던데. 그거 욕이잖-”

“욕이 아니라 내 영지 이름이다. 이걸 욕으로 쓰는 놈들은 너희 인간밖에 없었어.”

“인간만 쓴 거 아닌데? 다른 종족도 쓰던데?”

“뭐? 진짜?”

“어.”

“…….”

그건 몰랐는데. 잠시 시무룩해졌던 케이는 이내 자신이 또 아덴의 시비에 말려들었음을 깨닫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케이클랍스는 케이클랍스다. 욕으로 쓰일 만큼 큰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이번에는 아덴이 인상을 찌푸리고 케이가 픽 웃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걷던 케이는 불쑥 그에게 말했다.

“그거 아는가? 아덴.”

“뭐.”

“난 인간으로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그러다보니 인간에 대해 달리 보이더구나. 너도 마찬가지다.”

그건 또 뭔 개소리이신지.

아덴이 헛웃음을 내자 케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같은 팀으로서, 동료로서 보니 너도 제법 괜찮은 인간으로 보이더구나.”

“아악!”

아덴이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서도화에게로 도망쳤다. 케이가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분위기와 무게가 바뀐 건 서도화 뿐이 아닌 모양이다.

자신 또한 예민함은 줄고 능글맞음과 장난기가 늘었으니.

그러나 단지 장난만을 위한 말은 아니었다.

동료로서 아덴을 향한 원한과 경멸이 사라지고 있음은 자명하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젠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어메스로서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케이는 앞서가는 멤버들을 빤히 바라보다 조금 더 걸음을 빨리해 그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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