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잠깐만 도화야.”
음악방송이 끝나고 대기실을 정리하는 사이 한야가 서도화를 불러세웠다.
“어?”
서도화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며 그를 보자 한야가 드물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오늘 무대에서 실수라도 있었나?
아닌데? 없었는데?
멤버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다녀도 언제나 하하 웃으며 넘기는 한야가 아니던가.
그런 한야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다면 절대 보통 일은 아닐 터.
서도화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한야가 힐끔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케이한테 한 소리 했어?”
“어? 한 소리?”
이건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 거지? 서도화가 또르르 눈동자를 굴리다 대답했다.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긴 하던데.”
“진지하게 뭐라고 한 적은 없고?”
“난 언제나 진지하게 말은 하지. 걔가 진지하게 안 들어서 문제지. 왜?”
그러자 슬쩍 주상현도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케이 형 오늘 유독 열정적이지 않아? 되게 열심히 하던데. 리허설부터 생방까지.”
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야의 의견이 자신과 같다는 걸 알자 주상현이 조금 더 확신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도화 형이 컴백 앞두고 케이 형한테 제대로 하라고 한 소리 했나? 했지.”
“아니면 따로 연습을 시켰거나. 연습으로 열정이 생기지는 않지만 어쨌든.”
“아아, 그런 거였구나.”
서도화가 나름 진지하게 물어보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하긴 두 사람은 서도화가 케이를 다그쳤다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케이는 멤버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을 만큼, 김유진 대표에게 쓴소리까지 들을 만큼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도화와 아덴이야 그게 갑작스레 등장한 마족때문에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서 그랬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다른 멤버들은 크게 무기력하고 열정없이 지내다 갑자가 사람이 달라져선 예전보다 배는 열심히 하니 놀랄 수밖에.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진짜? 그런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저건 우리가 알던 케이 형이 아닌데.”
“정신 차렸나 보지.”
서도화가 케이를 슬쩍 보았다. 두 사람에게 말을 듣고 보니 케이의 얼굴에 묘하게 혈색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멤버들이 케이의 변화를 느낄 정도면…….
‘쟤 진짜로 어메스에 적응하고 열심히 하려는 생각인가?’
서도화가 케이를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 그의 등을 둔탁한 손이 툭 쳤다.
“도화 뭐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빨리 가방 챙겨서 내려가.”
이병수가 시간을 확인하곤 아래를 가리켰다.
“예? 아직 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서도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야 가방만 챙기면 되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스태프들의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다 함께 내려가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할 텐데?
서도화의 물음에 이병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따로 가는데 무슨.”
“따로?”
이병수는 서도화의 되물음에 대답하지 않곤 그의 뒤를 살피며 소리쳤다.
“케이! 아덴! 가자! 도화야 얼른 가방 가져와. 내려가자.”
서도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제 뒤의 케이와 아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함께 있던 한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잊어버렸어? 중요한 스케줄을 잊으면 어떡해. 오늘 셋이서 특별 편성 예능 촬영하러 가잖아.”
“……아.”
서도화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주상현이 키득거리며 서도화의 얼굴을 가리켰다.
“또 이 표정! 와 다시 봐도 웃기네! 아니 형은 그날 그렇게 소란을 피워놓고도 까먹었어요?”
“그냥 까먹은 거야 아니면 까먹고 싶었던 거야?”
이병수가 피식 웃으며 얼른 내려오라 손짓하곤 케이와 아덴을 데리고 내려갔다.
아 맞다…….
오늘은 어메스의 컴백 날.
그러나 컴백을 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달 간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오늘 서도화는 컴백 무대를 마치자마자 예능 촬영 일정이 잡혀있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아덴, 케이 어메스의 이단아들과 함께.
아니, 그다지 예능을 잘하는 멤버도 아니건만 왜 예능 촬영만 하면 자신이 포함되는 지 모를 일이다.
‘왜 하필 제가 출연해요? 왜 하필 쟤네들이에요?’
물론 출연시켜주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단아 둘과 함께는 좀 너무하지 않나?
혹여나 사고 치진 않을까 눈치 보며 아슬아슬하게 촬영에 임할 것이 너무나 눈에 보이는데.
차라리 주먹 하나로 놈들을 정복한 한야가 나가는 편이 사고 안 치고 참 좋을 텐데.
한 명만 마크해 챙기며 방송하는 것도 힘들 건만 아덴에 이어 케이까지?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진심으로 말한 그에게 김유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넌 대체 불가야. 둘을 돌보라고 출연시키는 게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어메스에서 그나마 개인 인지도, 화제성 좋은 게 상현이랑 도화잖아.’
그래서 보통 방송국 측에서도 어메스 멤버들 섭외할 때 서도화나 주상현은 콕 찝어 출연 제안이 온다.
그리고 케이와 아덴은 뚜렷하게 개성 있는 성격으로 유제이가 밀고 있는 예능 멤버다.
그래서 케이와 아덴을 출연시키고는 싶은데… 주상현이 케이와 아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힘없는 막내가 두 사람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러니 서도화의 출연히 확정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들 삽시간에 창백해진 서도화의 걱정을 이해하는 듯 어깨를 두드려왔다.
“형 힘내.”
“잘하고 와. 맛있는 거 사놓을게.”
“도화야, 초콜릿이라도 줄까? 당떨어질 때 먹으면 좋아.”
서도화는 한야와 주상현, 하다못해 스타일리스트에게까지 위로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나마 아덴은 그럭저럭 말도 잘 듣고 잘 적응해서 예능 때도 꽤 잘했다.
하지만 케이는?
케이는 말 한 마디마다 임팩트가 너무 큰지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지.”
굳이 그걸 자신이 감당할 필요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유제이는 케이의 특별한 말투와 가치관, 높은 자존감을 예능적 매력으로 삼은 모양이고 아덴은 요즘 눈치껏 잘하는데 굳이 돌본다 생각하고 고생할 필요는 없다.
‘한번 내버려 둬 볼까…….’
언제까지고 뭐 하나 출연할 때마다 걱정하며 수습하는 것보다 한번 대놓고 방치했을 때 얼마나 감당이 안 되는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크게 촬영에 방해될 정도가 아니라면…….
순식간에 서도화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 * *
아이돌 오락쇼!
분기마다 한 번씩 방영되는 특별 방송으로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한 스튜디오 안에 모여 각종 오락을 하며 교류하고 승부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안녕하십니까!”
어메스 멤버들의 깍듯한 인사에 미리 세트장 안에 들어가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이들에게로 꽂혔다.
오랫동안 예능계 아이돌 터줏대감으로 활약했던 베테랑 아이돌 한 팀, 이들보다 데뷔는 늦지만 충분히 경력이 쌓인 그룹 두 팀, 그리고 어메스를 포함한 신인 그룹 두 팀.
“안녕하십니까.”
서도화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아덴, 케이와 함께 세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새하얀 계단처럼 짜인 단상. 이미 선배 아이돌들이 단상 위 각자의 자리에 서서 친밀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메스 멤버들 또한 가장 구석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단상에 선 아덴이 자신의 앞 한계단 아래 서 있는 서도화를 보았다.
서도화가 드물게 긴장하고 있었다.
촬영을 앞두고 있기 때문보단 현장에 가득 찬 베테랑 선배들 때문에 긴장한 것이리라.
“야 너 또 분량 걱정하는 거지?”
아덴의 속삭임에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기대도 안 하거든.”
“그런데 뭘 그렇게 긴장을 해?”
“긴장이 아니고 설레는 거야.”
“뭔 소리야.”
케이에게 시비 걸듯 툭하니 말하는 아덴의 물음에 서도화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고 정면을 보았다.
어차피 대답해도 이해 못 할 것이다. 아덴과 케이가 ‘존경심’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건 연습생 생활을 정석적으로 한 서도화나 느낄 수 있을 감정이다.
이 현장에 있는 아이돌 다섯 팀 중에 무려 세 팀은 서도화가 데스티니 캐스팅 계기가 된 체육대회 장기자랑에서 사용했던 곡을 부른 팀이며 연습생이 된 이후에도 매일 그들의 팬보다도 많이 무대를 보고 또 보며 외우고 익히던 이들이다.
음악방송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서도화에게는 목표였던 사람들이 한 곳에 대거 모여 있으니 긴장보단 설렜다.
‘긴장은 무슨, 좋기만 하구만.’
아덴과 케이를 굳이 돌보려 하지 말고 하고픈 대로 내버려 두자고 생각하고 나니 설렘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