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이지 않냐?”
아덴의 말에 서도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상 위에 팀별로 앉아있는 아이돌 그룹들.
흡사 예전 밀리언 아이돌 촬영 때를 연상케 했다.
다만 밀리언 아이돌 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땐 경쟁자들 뿐이라 철저히 팀별로 꽁꽁 뭉쳐져 있었고 지금은 선배들끼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정도.
“우리만 겉도는 것까지 딱 그때 같은데.”
“쉿. 조용히. 여기 선배님들뿐이니까.”
서도화가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아덴에게 주의를 주었다. 워낙 편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라 이 정도 말이 뭔 상관이 있겠나 싶으면서도 듣는 귀가 많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자 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우리만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전부 즐겁게 떠들고 놀잖아.”
“저분들은 다 아는 사이니까 그런 거고. 그냥 선배님들 계시는 곳에선 웬만하면 눈에 띄는 행동 안 하는 게 좋아. 촬영 중에는 안 말림.”
오늘은 얘네들이 뭔 말을 해도 내버려 두는 거다. 수습은 진행자들이 해주겠지.
‘예의만 차리면 그냥 내버려 두자.’
서도화가 다시 한번 결심을 되새겼다. 그때 옆 그룹과 화기애애하게 대화 중이던 선배 그룹 멤버 두 사람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들에게 다가왔다.
“어유~ 어메스.”
어메스 멤버들이 잽싸게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에이 뭐 그리 딱딱하게. 인사는 아까 했잖아요.”
“하하…….”
서도화가 머쓱하게 웃었다.
다가온 선배는 그룹 페이지의 리더 순경과 멤버 재현. 공중파, 너튜브 할 것 없이 종횡무진하는 예능 멤버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또한 아이돌계에 모르는 일이 없고 안 친한 사람이 없는 소문난 마당발로도 유명하다.
방송에서 하도 자주 봐서 내적 친분이 쌓인 건지 저들이 성격 좋다고 소문난 사람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선배가 그들이라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
살가운 선배들의 행동에 긴장이 풀린 서도화와는 달리 갑작스레 다가온 낯선 이들에 아덴과 케이는 되려 굳은 듯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랑은 대화 좀 해봤어요?”
“에이 안 해봤지! 아까 보니까 여기서 조용히 본인들끼리 속닥속닥 재밌게 대화하더만!”
“아니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밌게 했어요?”
“어… 아니요. 그냥 조용히 있자고. 선배님들 많으시니까.”
서도화의 말에 순경과 재현은 짜 맞춘 듯이 옅은 탄식을 냈다.
“선배들뿐이라서 좀 긴장될 만도 하겠다. 하기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죄다 시끄러운 사람들이라서-”
“뒤진다. 시끄럽긴 누가 시끄럽다고?”
“헐 어메스! 나 얘네 처음 봐. 순경이 아는 사이야? 소개 좀 해주지!”
“뭔 소리야. 나도 여기서 애들 처음 봐. 저리 가. 애가 어쩔 줄 몰라 하잖아!”
순경과 재현은 마치 자석처럼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돌들을 끌어당겼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멤버들은 모두 어메스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졸지에 그들이 있는 곳이 가장 시끄러워졌다.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능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는 그룹 내 대표 예능 멤버들이었다.
어찌나 떠들썩한지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만으로 절로 기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덴과 케이가 슬그머니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익숙하고 편한 사람 앞에선 그리도 입을 잘 터는 두 사람은 의외로 낯가림이 무척 심했다.
한 번에 몰려드는 사람들과 쌈박질이나 해봤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겠는가?
절로 입은 닫히고 그나마 의지할만한 서도화만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서도화는 활짝 웃었다.
“저도 선배님 정말 팬이었어요. 꼭 만났으면 좋겠다 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니까 얼마나 기쁜지.”
서도화 또한 낯가림은 뒤의 두 사람 못지않지만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다수의 사람을 상대하는데 몹시 익숙하다는 것이다.
또한 아부를 떠는 것마저 무척 능숙하다.
이게 다 아덴이 벌인 일을 수습하느라 생긴 처세술이었다.
“이야, 도화 씨 뭔가 상상했던 이미지랑 달라. 되게 낯가림 심하고 말수 적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맞아. 생각보다 알랑거리는 게.”
“어메스 다들 몇 살이에요?”
“몇 살이면 어때? 어차피 우리보단 동생들이지 뭐.”
“그건 그래. 어메스에 서른 넘은 멤버는 없을 거 아니야.”
“스물 넘은 애들도 없을 수도 있어.”
“헐. 너무 어리다. 요즘엔 왜 이렇게 빨리 데뷔를 시키냐.”
“뭔 소리야 네가 더 빨리 데뷔해놓곤.”
대화 중인 두 사람은 못해도 5년 이상은 데뷔 연차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촬영 외에는 그냥 야, 너 하고 지내는 모양이다.
그들은 서도화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에 대해 한참이나 물어보다 나머지 두 멤버를 가리켰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왜 한 마디도 안 해? 우리가 너무 저돌적이었나? 아, 도화 씨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아 물론이죠. 선배님. 저는 편하게 대해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말 편하게 할게 도화야. 아덴 씨랑 케이 씨도 동갑으로 아는데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서도화가 아덴과 케이를 획 돌아보자 아덴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해주세요. 선배님.”
“이야, 애들이 생각보다 순하다. 그치? 재현아.”
“그니까. 우리 되게 걱정했잖아.”
“걱정이요?”
순경과 재현이 본인들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는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별 게 아니고 엄청 뭔가 강할 줄 알았어.”
어메스의 이미지가 워낙 거칠고 날이 서 있다 보니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말 걸기가 껄끄러운, 어메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신인 아이돌이라고 선배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인사는커녕 앞에서 말을 걸어도 대놓고 무시하거나 담배나 피우러 가는 아이돌, 심지어 선배나 스태프에게 욕설까지 하는 아이돌이 너무나 많다.
특히 어메스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전부터 큰 인기를 얻은 경우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았다.
어메스가 스튜디오로 들어온 직후 상당히 표정이 굳어있기도 했고 사실 밀리언 아이돌에서도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져 있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으니 솔직히 말해 선배 입장에서도 좀 쫄아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함부로 말도 못 거는 후배 대신 선배가 먼저 말도 걸고 적응 잘 하도록 도와줘야지.
특히 순경의 경우 모르는 게 없는 마당발 이미지라 더더욱 어메스와 말을 터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해보니 말 그대로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었다.
서도화는 원래도 그럭저럭 말을 걸면 싹싹하게 굴 만한 멤버라고 예상했고 아덴과 케이는 입을 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예의 바르다 생각되었다.
선배들 왔다고 얼른 몸부터 일으키는 거 하며.
어메스의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돌 선배들의 표정이 조금 온화해졌음을 알아챈 서도화가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예능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어, 걱정 마. 진행자 분들이 구석구석 잘 챙겨줄 테니까.”
“우리도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챙겨줄게.”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 뭐야? 왜 다들 어메스한테 몰려가 있어?”
특별 방송의 진행자 효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들어오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후배 괴롭히고 있었던 거 아니지? 잘 좀 챙겨줘라. 너희랑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가 빨리겠냐?”
“아이 선배님, 그걸 기가 빨린다고 말씀을 하세요?”
진행자인 효수 역시도 아이돌 출신으로 이곳에 모인 전원이 아이돌로 이루어진 특별 방송이다.
효수의 등장으로 어메스에게 몰려있던 인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밀리언 아이돌 뺨치는 장대한 오프닝 bgm.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드라마틱하게 출연진들을 담으며 내려왔고 출연진들은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후 카메라가 완전히 뒤로 빠지며 진행자 효수가 멘트를 시작했다.
“특별기획 제3회 아이돌 미니 페스티벌! 아~ 벌써 3회나 돌아왔어요.”
아이돌 미니 페스티벌은 방송사의 사정으로 편성표가 비게 되었을 때 종종 방영되는 비정기 프로그램으로 섭외가 급하게 이루어지는 대신 출연에 응한 아이돌들을 분량을 확실히 챙겨주며 게임도 하고 홍보도 하는 윈윈의 방송이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급하게 섭외를 하는데 매번 응해주시는지, 이제 너무 익숙해서 막 반갑지도 않아.”
“아 그래도 좀 반가워해 주세요! 감독님 저희는 언제든지 섭외 환영입니다. 저희 노는 멤버 많아요.”
“저희도 활동 끝나서 쉬는 멤버 10명이나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효수는 3회차가 진행될 동안 빠지지 않고 출연한 아이돌 멤버들을 질린다는 듯이 바라보다 맨 끝에 서 있는 어메스를 보며 화색이 되었다.
“드디어 이 능구렁이들 속에 뉴페이스가 나왔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