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50화 (250/270)

제250화

지이이잉-

첫 번째 게임이 끝났음을 알리는 부저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비로소 어둑했던 현장이 밝아졌다.

“크어어어…….”

좀비 또한 조명이 켜지자마자 햇빛에 타들어가는 제스처를 취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

“와 진짜.”

“……허어.”

도망치느라 여기저기 뿔뿔히 흩어져 있던 출연진들은 멍하니 쓰러진 좀비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도망치고 넘어지고 싸웠는지 기껏 세팅해두었던 머리가 죄다 산발이 되어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혼란만 가득한 현장엔 한참이나 제작진의 키득거림만 들려왔다.

언제까지 침묵이 이어지나 보자는 듯 제작진도 진행자 효수도 입을 다문 채 즐겁게 지켜보기만 하는 상황.

먼저 입을 뗀 건 아덴이었다.

“괜찮으세요?”

“하아.”

그제야 출연진들이 안도 어린 숨을 내뱉었다.

“어쩐지 스타일리스트가 오늘은 그냥 사복 입고 하라더라고.”

“와 그럼 스태프들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도 미리 말을 안 해줬다 이거지? 나 이런 거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 으이구으이구!”

출연진들이 각자의 스태프들에게 다가가 따지기 시작했다.

상당히 맹렬한 기세로 항의하고 있는데 스태프들이고 제작진들이고 어메스를 제외하면 다들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인 터라 그저 껄껄 웃으며 즐기고 있었다.

“자자, 거기까지 하시고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후배들이 지켜보고 있잖아.”

효수가 어메스를 가리키며 출연진들을 다그쳤다. 출연진들은 끝까지 투덜거리며 겨우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여러분들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효수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어댔다.

“와 저거 자기 일 아니라고.”

효수와 무척 친한 것으로 알려진 이가 효수에게 태클을 걸어댔다. 효수는 그러든 말든 능청스럽게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버튼의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좀비에게서 도망 다니는 모습 아주 잘 봤습니다.”

“피디님? 다음에는 이 게임 효수 씨도 포함해서 게임하죠.”

“형, 형 진짜 농담이 아니라요. 개무섭다니까요?”

아이돌에게서 튀어나온 비속어에 제작진들이 더 크게 웃어댔다. 방송물을 먹을 대로 먹은 아이돌의 입에서 비속어가 나오는 건 언제나 유쾌하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장면이다.

“와 진짜 나 심장 튀어나올 뻔했어.”

“눈앞에서 사람들 계속 잡혀가는데 진짜 하…….”

“그러니까요. 보니까 버튼은 우리 막내들이 다 누르더라고요.”

효수가 다시 한번 어메스를 가리켰다. 출연진 전원의 시선이 서도화와 아덴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뿌듯하게 씨익 웃었다.

“아유, 진짜 대단했어요. 지켜보는 동안 나도 그렇고 제작진들도 그렇고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아주.”

효수가 쌍엄지를 추켜들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서도화와 아덴이 고개를 꾸벅여보였다.

“왜? 왜? 뭔 일이 있었는데?”

“어메스가 설마 버튼 다 누른 거야?”

“나 버튼에 불 들어온 줄도 몰랐어.”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진짜 대단했어요. 페어플레이도 잘하고 피하기도 엄청 잘 피하더라고. 도화 씨가 버튼에 불 들어오자마자 이 난장판 속에 1초도 안 돼서 불 들어온 거 찾아 가리키면 아덴 씨가 도화 씨가 가리킨 버튼을 텀블링해서 밟아 끄는데 크으……. 진짜 너무 멋있더라. 나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어.”

효수의 장난 아닌 주접에 뿌듯해했던 서도화의 얼굴이 조금씩 부담스러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덴이야 추켜올리면 올릴수록 기고만장해져서 광대가 함께 치솟아 오르는 용사지만 서도화는 아니다.

‘자칫하면 재수 없게 들리는데…….’

연예계 내놓으라 하는 선배 아이돌들과의 방송. 효수는 친한 아이돌들을 놀리겠다고 더더욱 과하게 칭찬해대는 것이지만 서도화의 입장에선 선배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선배가 칭찬해주고 있는데 ‘거 이쯤하고 그만하시죠’ 하며 끊을 수도 없다.

슬슬 눈치가 보여 그만해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때, 정말 감사하게도 제작진 쪽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아무튼 크흠, 실제로 어땠는지는 방송으로 확인하도록 하시고요. 이제 슬슬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야겠죠? 두 번째 게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아오 깜짝이야!”

“아 형!”

“하하, 놀라긴. 일단 보호막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보호막은 무슨!”

수많은 출연진들의 태클에도 효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갑작스레 환한 조명을 받아 쓰러진 좀비들을 다시 보호막 밖으로 보내야겠죠. 짠!”

효수가 제 앞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좀비들이 움찔하더니 흐느적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아악!! 예고 좀 하고 뭘 하라니까!!!”

출연진들이 기겁하며 빠르게 멀리 도망갔다. 그러나 좀비들은 도망친 이들이 민망하리만치 출연진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비틀비틀 선 밖으로 벗어날 뿐이었다.

‘온종일 연기하시네. 힘들겠다.’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사이 서도화는 그저 이렇게 생각하며 평온하게 좀비들이 자리잡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진행자님.”

출연진들이 도로 자리를 잡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던 순경이 손을 들고 효수를 바라보았다.

“네, 말씀하세요.”

“아까 잡혀간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이대로 탈락해서 퇴근한 거예요?”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아주 좋은 질문이었다.

효수는 수상쩍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

“아까 잡혀간 분들은…… 커흑……. 안타깝게도 좀비에 물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야 말았습니다.”

“전혀 안 슬퍼 보이는데 우는 척은.”

“그래서! 지금쯤 준비가 되었을 텐데요.”

준비? 뭔 준비.

또다시 키득거리기 시작하는 제작진들의 웃음소리에 서도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 준비했단 말인가.

‘설마 좀비 분장?’

픽.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아이돌인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던 서도화는 문득 드는 불안감에 퍼뜩 몸을 떨더니 눈을 부릅뜨고 아까 케이가 잡혀들어갔던 문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아니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어쩌면 정말로 벌어질지도……?

평범히 대세 아이돌들을 모아 게임하는 방송이라면 이런 걱정 안 한다.

그러나 이 방송의 출연진들을 보라.

다들 예능에서 한가락하는 예능돌들이다. 다들 개그맨 못지않게 분량을 생각하며 웃기고 싶어 드립과 아이디어를 짜내고 예능에서 한 건 하기 위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만 모아두었다.

또한 제작진들은 어떤가?

아이돌들을 모아두고 뜬금없이 좀비들을 등장시켜 버리는, 결방을 때우기 위한 급조 프로그램에 무려 수십의 연기자들과 특수분장비를 투입해버리는 미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아이돌한테 좀비 분장… 충분히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서도화의 안색이 더없이 창백해졌다.

‘아, 안 돼! 우리 비주얼 담당이……!’

그 순간.

“어! 준비가 끝났다고 하네요. 자, 들어와주시죠!”

“……뭐야? 불안하게.”

주변이 다시 어두워지고 붉은 조명이 쏟아졌다.

그리고 곧 세트장의 문이 열리고, 옅은 안개와 함께 여러 명의 좀비가 비틀비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덴을 포함한 출연진들이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으어어…….”

“나는… 크어… 좀비…….”

“하하학! 하핫! 저게 뭐야!”

좀비들에게 잡혀들어갔던 출연진들이 좀비 분장을 한 채 좀비 흉내를 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반면 그들과는 다르게 어메스의 비주얼 담당에게 좀비 분장을 시킨다며 당혹스러워 하던 서도화의 표정이 애매모호해지기 시작했다.

“…….”

어라?

마침내 붉은 조명이 꺼지고 현장이 밝아졌다.

그제서야 완전히 드러나는 그들의 얼굴.

서도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는 왜…….’

저 분장을 하고도 잘생겼지?

아직 예능돌이라는 느낌도 없고,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는 신인 아이돌이기에 확실히 다른 출연진들과 비교해서 수위 낮은 분장을 하기는 했다.

해봐야 허옇게 뜬 얼굴에 눈 한쪽을 검게 칠하고 입에 피 좀 묻힌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좀비 분장이건만…….

‘아니 상당히 잘생겼네.’

놀랍게도 케이는 저런 분장을 하고도 잘생길 수 있는 비주얼이었다.

뿌듯… 한가? 안도해야 하나?

어쨌든 황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다른 출연진처럼 비틀비틀 좀비 흉내를 내며 걸어 나오던 케이가 서도화와 눈이 마주치고, 그다음으로 폭소하다 못해 바닥을 구르는 아덴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좀비는 좀비. 오늘 하루종일 죽기 직전의 인간처럼 비틀거리며 바보 같은 연기를 해야 한다니.

그리고 그걸 저 두 놈에게 보여야 한다니.

이건 100년간의 놀림거리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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