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마왕 케이.
상당히 못미더운 아이돌로서의 행보로 웬만해선 그에게 일을 맡기지 않지만 의외로 케이는 시킨 일이라면 최선을 다한다.
‘그래, 마왕도 그냥 되는 게 아니지.’
서도화가 헛웃음을 쳤다.
마왕이든 용사든 무슨 일이든 과하게 열심히 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좀비 흉내라도.
“커어어어…….”
“푸하핫! 케이 씨!”
“하학! 아니! 안 돼애! 어메스가 웃기는 것마저 잘하면 우리가 곤란하다고!”
선배 출연진들이 깔깔 웃으며 케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좀비 분장을 한 건 케이뿐만이 아니고, 심지어 분장의 정도도 그가 제일 약했다. 하지만 눈을 부릅뜬 채 목과 몸을 꺾어가며 열연하는 모습이 여간 웃긴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나름 괴물 흉내를 내겠답시고 내는 걸걸한 목소리는 또 어떠한가.
분장을 해도 잘생긴 놈이, 지금까진 크게 멘트도 예능적인 활약도 없던 멤버가 저러니 더 웃길 수밖에.
“케이 씨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어메스 이거 괜찮아요? 우리야 그렇다 치고 이 친구들은 아직 이미지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
출연진들의 물음에 서도화와 아덴이 동시에 대답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저 친구는 원래 저러니까 괜찮아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두 사람의 행동에 출연진들이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
서도화도 그냥 웃기로 했다. 어메스 최고의 비주얼 담당이 좀비 분장을 해서 우스워지면 어쩌나 좀 걱정했지만 분장으로는 케이의 미모를 가릴 수 없었다.
그 외에 좀비 흉내를 내며 웃기는 거야 예능 열심히 한다 정도로 비춰질 수 있으니 상관없고.
‘생각보다 방송 잘하네?’
케이, 아덴 두 사람과 함께 방송을 하는 날엔 서도화는 결코 촬영을 즐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비밀을 아는 사람으로서 혹시라도 어떤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하며 촬영을 해야만 했고 그렇기 때문에 스케줄을 끝낸 후 숙소로 돌아오면 늘 기진맥진해 있었다.
겨우 꿈을 이루어 카메라 앞에 섰지만 즐길 수 없다니, 일일이 설레지 못하고 걱정부터 해야만 한다니 솔직히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자신이 두 사람을 두고 그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두니 정말로 아덴과 케이는 생각보다 제 할 일을 착실히 알아서 해나갔다.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겨우 웃을 수가 있었다.
이젠 꽤나 믿고 방송을 해도 되겠다고 서도화는 좀비 흉내를 내는 케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 이제 좀비 바이러스에 당해 좀비화가 된 멤버들까지 전원 모였으니 정말로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해야겠죠?”
서도화가 효수의 옆에 있는 판넬로 시선을 옮겼다.
두 번째 게임 - 노래는 세상을 구해
딱 봐도 노래방 게임이다. 어떤 컨셉의 게임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틀림없이 서도화가 나설 만한 게임이었다.
“두 번째 게임은요. 제목만 봐도 딱 아시겠죠? 노래를 잘 부르면 되는 게임입니다.”
효수가 게임의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각 그룹에서 한 명씩 나와 노래를 불러 95점이 넘으면 성공, 넘지 못하면 실패.
실패한 사람은 좀비들에게 끌려가 좀비 분장을 하게 되며 실패한 인원이 과반수를 넘기면 보호막의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해 무작위로 또 한 사람이 좀비에게 끌려간다.
“과연 이곳에 출연한 아이돌들은 제 외모와 이미지를 무사히 챙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저기 좀비가 된 멤버들처럼 결국 좀비가 되고 말 것인가! 팀 별로 한 분씩 노래를 부를 사람을 뽑아주세요.”
효수의 말에 출연진들이 각자 노래를 부를 팀원을 고르기 위해 속닥이기 시작했다.
“도화, 이번엔 당연히 네가 나갈 거지?”
“그러려고 했는데 음…….”
서도화가 생각에 잠겼다. 노래방 기계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줬던가?
아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큰 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그에 대한 증거로 서도화는 지금까지 노래방에서 특출나게 좋은 점수를 받아본 적이 손에 꼽혔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이제 노래 게임 하면 서도화가 나간다는 당연한 규칙도 슬슬 질릴 때가 되었고 뭣보다 여기서 노래를 잘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켜 봐야 오히려 업된 분위기만 더 죽지 않을까?
서도화의 노랫소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소리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웃기자고 만든 코너에 누가 될 것이다.
서도화가 아덴의 등을 밀었다.
“네가 나갈래?”
“내가? 아냐. 노래는 네가 불러야지.”
“아냐 목소리는 네가 더 커.”
“어?”
여기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야.
두 번째 게임이지만 주자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여기서 한 사람이 탈락해 버리면 다음 라운드에 어메스는 한 사람만 남아 게임을 치르게 되니까.
“나 탈락하면?”
“너 탈락하면? 네가 설마 탈락하겠냐. 어메스 노래 불러. 홍보도 하고 좋네. 크게 불러.”
“응! 알았어!”
아덴이 파이팅! 양 손을 불끈 쥐어보이더니 순순히 앞으로 나섰다.
여하간 동료 말은 의구심이 들어도 일단 들어주고 본다.
“어어? 어메스는 도화 씨 안나오고 아덴 씨가 나와요? 되게 의외의 선택!”
“도화가 목소리는 제가 더 크대요.”
“오오 그게 과연 승리를 위한 걸까요 아니면 좀비 분장을 피하기 위한 도화 씨의 계략일까요!”
반의 반쯤은 좀비 분장을 피하고 싶었다는 말도 맞다.
어차피 서도화는 자신의 노래방 점수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럼 괜히 나갔다가 분위기만 처지게 하고 좀비가 되는 것보단 목소리라도 큰 아덴을 보내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서도화는 그저 말없이 웃었지만 아덴이 그럴 리가 없다며 효수에게 서도화 대신 변명해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팀의 출전 멤버도 결정되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도화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다른 출연진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나는 곡, 웃긴 곡들을 골라서 불렀고 예능돌들만 모여있는 현장 답게 승부고 뭐고 자연스레 서도화와 아덴을 포함한 다른 출연진들이 합세해 뒤에서 춤을 추며 흥을 돋우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서도화는 선배가 부르는 트로트에 춤을 추며 아덴을 내보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가창력은 부족할지라도 분위기는 서도화보다 훨씬 잘 띄울 것이다.
만약 서도화가 노래를 불렀다면 분명 부르는 순간 일부가 움직임을 멈추고 멍하니 노래 감상을 시작할 것이고 다른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 자체가 분위기 띄우는 신나는 곡을 잘 살릴 목소리가 아니다.
한편 아덴은 서도화와 춤을 추면서도 선배들이 부르는 노래에 집중했다.
‘흐음…….’
부르는 곡이 하나같이 본인들의 곡이 아니다. 선곡은 그저 흥을 띄우기 위한 도구.
서도화는 어메스의 곡을 부르라고 말했지만 아마 그건 어메스의 곡이 적격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노래를 잘 모르는 자신을 배려한 선곡이었을 것이다.
만약 서도화가 직접 출전했다면 어메스의 곡이 아닌 다른 곡을 골랐을 테지.
어메스의 곡은 거칠고 비장하고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공격적인 곡이다.
그걸 부르면 점수야 잘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방송적인 재미는 없겠는데?’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 보곤 씨익 웃었다.
서도화가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네.
굳이 배려 안 해줘도 잘할 수 있는데.
아덴은 그리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앞선 선배들의 차례가 모두 끝이 나고 마지막으로 아덴의 순서가 되었다.
“우리 막내 어메스. 과연 어메스의 선곡은 무엇일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냥 어메스의 곡입니다.
서도화가 잔잔히 미소를 띄웠다. 선배 아이돌들의 비난을 조금 감수하고서라도 점수를 택한 결과다.
조금 비난을 받아도 세 번째 게임을 혼자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럼 아덴 씨, 무슨 곡을 부르실지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저는요. 청갑산 선배님의 삼천리 애가! 부르겠습니다.”
“네?”
“뭐?”
앞은 효수의 것이고 뒤의 물음은 서도화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선곡에 다른 출연진은 물론이고 서도화 또한 벙찐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뭐라고?
청갑 뭐? 삼천리 뭐?
‘그게 뭔데?’
어메스 곡 부르는 거 아니었어?
효수 또한 처음 들어보는 노래인지 제작진을 쳐다보았고 제작진 또한 급히 휴대폰을 들어 노래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막내 작가가 스케치북을 들어 올리자 효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78년도에 나온 노래인데? 이걸 어떻게 알아?”
그러게 정말 어떻게 아는 걸까? 이세계에서 온 아덴이.
서도화 또한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아덴이 씨익 웃었다.
“한야 형이 즐겨듣는 곡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