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53화 (253/270)

제253화

끄어어어-

좀비들의 소리와 출연진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여러분 이쪽이에요!”

그와 함께 효수가 전속력으로 달려 스튜디오의 문을 열어주었고 출연진들이 전력을 다해 문으로 뛰기 시작했다.

서도화가 달려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아덴의 어깨를 툭 쳤다.

“아덴, 알지?”

“응.”

“나 간다.”

아덴이 고개 끄덕이는 걸 확인한 서도화가 다른 출연진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와 동시에 아덴은 획 몸을 돌려 세트장 내의 좀비들을 살폈다. 그러곤 케이를 찾아 어깨에 들쳐멨다.

“으어어!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거 놔!”

“와 좀비가 말도 하네?”

“……크어어!!!”

케이가 한껏 발버둥 쳤지만 아덴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케이는 아덴의 어깨 위에서 종이 인형처럼 흔들거리며 이동되어야만 했다.

“너는 도화가 백신 가져올 때까지 나랑 도망 다니는 거야.”

“놓으라니까! 나에겐 지시사항이 있다!”

케이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좀비 분장을 하는 동안 작가에게 몇 번이나 당부받은 게 있었다.

3라운드가 시작되면 최소 두 명 이상의 출연진들을 붙잡아 좀비로 만들어 달라는 지시였다.

강제되진 않았지만 꼭 이루고 싶었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잡혀 좀비가 된 사람으로서 이번 촬영에 활약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각오해라 아덴. 틈 봐서 도망칠 테니.”

“어디 한번 해보시지. 오히려 좋지.”

분량도 뽑을 수 있고. 아덴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의 좀비들이 출연자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지만 아덴을 잡기 위해 모여든 좀비들도 이곳에 꽤 있었다.

케이를 붙잡은 채 저들을 피하는 것도 꽤 일이 될 터이다.

* * *

“자, 여러분 이곳은 스튜디오의 안쪽에 위치한 모니터방입니다.”

새하얀 방으로 들어온 효수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모니터와 연결된 이어폰 한쪽을 귀에 꼽았다.

그의 앞에는 세 대의 모니터. 모니터 내에서도 여러 개로 화면이 나뉘어 각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는 이곳에서 현장을 중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계석에 앉은 효수는 무척 들떠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친한 동료 그룹 멤버들의 모습을 자신은 그저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 이것보다 신날 수 없다.

“긴급 편성된 아이돌 특집 프로그램치곤 상당한 스케일로 진행되는 중인데요. 어디 한번 볼까요? 멤버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효수가 모니터를 크게 훑곤 픽 웃었다.

“아아, 역시 다들 도망 다니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저희가 스튜디오 안뿐만 아니라 바깥에도 좀비들을 배치해뒀거든요.”

일명 예능돌로 모아둔 이 현장의 멤버들은 신기하리만치 겁쟁이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그 덕에 좀비들을 피해 도망친 멤버들은 밖에도 한가득인 좀비 떼에 소리치고 도망 다니고 숨고, 가끔 효수에게 불평불만도 털어놓았다.

“무서워서 백신을 찾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요. 아! 그래도 몇몇 백신을 찾는 멤버들이 보이긴 합니다. 재현 씨랑 또 우리 막내 어메스의 도화 씨! 와 특히 도화 씨의 기세가 상당하네요. 이야!”

효수가 서도화가 보이는 화면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도화는 달려드는 좀비 떼를 가볍게 피하며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보고 있었다.

“1, 2라운드 게임할 때도 느꼈지만 어메스 진짜 대단하네요. 그룹 중에 유일하게 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어요. 겁도 없고.”

아덴은 케이를 도망치지 못하게 들쳐멘 채 좀비들을 피하고 있고 서도화는 백신을 찾는다.

“환상적인 페어플레이. 대단합니다. 거기다 좀비가 되어 상대적으로 확약상이 적었던 케이 씨는 저렇게 몸을 던져 웃겨주기까지 하니!”

효수가 케이를 가리켰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종이, 줄에 걸린 빨래를 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저렇게 힘없이 흔들릴 수 있을까.

비주얼 멤버인 줄 알았더니 아까부터 하는 행동을 보아 예능의 기운이 상당한 멤버였다.

“오늘 어메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과연 이대로 최종 승리까지 가져갈 수 있을 것인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예능 잘하는 멤버들 사이 충실히 게임을 너무 잘해 제대로 분량을 뽑아주는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들이었다.

* * *

“또 꽝이네…….”

서도화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하며 꽝이라고 적힌 카드를 접어 제 주머니에 넣었다.

이걸로 벌써 다섯 번째. 어떻게 잡는 것마다 꽝만 걸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분명 백신M은 많다고 했었는데…….”

서도화의 소심한 투덜거림에 VJ가 저도 모르게 피식했다. 서도화의 말대로 백신M은 여기저기 꽤 많이 숨겨져있다. 그러나 꽝은 그보다 더 많다. 정말 얄미울 정도로 많이 숨겨놓긴 했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고 침착하게 카드를 잘 찾으면서 죄다 꽝만 고르는 건 어지간히 운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촬영 중이라고 저 입에서 한숨이 안나오는게 용할 노릇이다.

“학! 하악! 햑!”

획!

“푸훕!”

기어코 VJ의 웃음이 터졌다. 체념하고 투덜거리고 꿋꿋히 찾는 도중에도 참 일관적이게 좀비는 잘 피한다.

좀비가 가득한 이 공간에서 여기저기 비명이 들려오는데 서도화 혼자만 너무나 평온했다.

단 한 번의 위기가 없었다.

무슨 전쟁터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이 정도 위협은 미세먼지보다 무섭지 않다는 듯 피해대니, 아니 그냥 좀비라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슥 피하고 말아버리니 그게 되려 어이없이 웃겼다.

서도화는 VJ의 웃음소리도 익숙해졌는지 책상 아래와 서랍을 마저 뒤지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없나 봐요. 저 건너편에도 문 하나 있지 않았나?”

서도화가 카메라에 대고 말하다 문득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좀비를 획 바라보았다.

“장소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좀비한테 숨겨져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좀비가 많은데 없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더니 아까부터 집요하게 공격해오던 좀비의 팔을 꽉 잡곤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피로 가득한 의상, 그 바지 주머니에 빳빳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서도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것 봐. 없는 게 이상하지!”

좀비를 잡는 건 어떻게 해도 거부감이 들만한 일일 터인데 서도화는 활짝 웃으며 거침없이 바지 주머니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다른 곳에 비해 좀비의 주머니라는 거부감이 들고 상당히 난이도 있는 곳에 있던 카드니 이건 분명히!

[미니 백신M-한 사람의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찾았다!”

서도화가 들뜬 얼굴로 카메라에 미니 백신 카드를 보여주곤 전투의지를 잃은 좀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VJ의 웃음이 또 터졌다. 지금까지 숨 쉬듯 피하며 좀비를 기만했으면서 예의는 또 바르다.

하는 짓이 묘하게 웃겨서 계속 조용히 지켜보고 싶지만 그래도 진행상 할 일은 해야겠지.

“도화 씨.”

VJ가 서둘러 서도화를 불러세웠다.

“네?”

“카드를 열어 확인해주세요.”

“열어요?”

서도화가 뒤늦게 카드를 확인해보았다. 꽝이 적혀있던 카드와는 달리 반으로 접혀있는 카드였다.

카드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서도화가 멈칫하더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VJ가 또 피식 웃었다. 연달아 꽝이 나왔을 때보다 막막한 얼굴이었다.

* * *

아덴이 힘으로 케이를 제외한 좀비들을 죄다 스튜디오 바깥으로 밀어낸 터라 둘과 VJ만 남은 세트장.

아덴과 케이는 드물게 나란히 앉아 멍하니 스튜디오 문을 바라보았다.

좀비들이 득실거릴 땐 성가셔 죽을 것 같더니 막상 없자 심심해 죽을 것 같다.

뭐라도 할까 싶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보기엔 서도화와의 연계가 어긋날까 그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염없이 서도화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케이가 중간중간 틈을 봐서 도망치려 드는 덕분에 그럭저럭 재밌는 모습은 보일 수 있었다는 것 정도.

“…….”

소란스러운 바깥과는 달리 평화로운 세트장 안, 조용히 문만 바라보고 있을 때 케이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덴, 솔직하게 말해달라.”

“뭘.”

“나 말인데, 방송에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케이의 물음에 아덴이 케이를 쳐다보았다.

케이는 여전히 좀비 분장을 한 채 도망치려다 잡히길 반복하는 바람에 지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아덴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 제대로 웃겼어.”

“…….”

웃기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케이는 대꾸없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사에게선 절대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같았다.

체념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도망칠 타이밍을 잡고 있을 때, 벌컥 스튜디오의 문이 열리며 서도화가 들어섰다.

“야! 왜 이제 와!”

아덴이 밝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케이를 끌고 서도화에게 다가갔다.

“백신은? 찾았냐?”

“…….”

왜인지 꽤나 결연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서도화는 아덴의 물음에 삽시간에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아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못 찾았어? 같이 찾아?”

“아니 그게 아니고.”

우물쭈물하던 서도화가 한참을 망설이다 일렁이는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뭐?”

갑작스러운 말. 그러나 그 순간 케이의 머릿속으로 서도화의 속마음이 빠르게 파고들었다.

‘케이, 협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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