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54화 (254/270)

제254화

협조? 무슨 협조.

케이가 갑자기 뭔 소리냐는 듯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사랑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뭘 협소하라는 건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케이와는 달리 아덴은 단번에 서도화가 무언가 사정이 있음을 눈치채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지. 갑자기 뭔 일인데?”

“별 건 아니고. 그냥.”

“뭐지?”

아덴이 낄낄 웃으며 서도화와 함께 있던 카메라맨을 바라보았다.

“얘 뭐 해야 해요? 명분 없이 사랑한다 말할 애가 아닌데. 너 뭐 걸렸어? 갑자기 왜 그래?”

“그냥 가타부타 말하지 말고 한 마디만 해줘. 너희는 나 어떻게 생각하냐?”

“믿음직스럽다 생각하지. 최근 들어 나보다 더.”

“또?”

“또? 뭐, 노래 잘 부르고 의리는…없… 나?”

눈치 빠르게도 어떻게든 원하는 말을 해주려 하는 아덴을 보며 서도화의 눈빛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실 아덴은 이렇게 열심히 도와줄 줄 알았다.

계속 유도하다 보면 낯간지러운 말도 스스럼없이 해주겠지.

오그라드는 말은 아덴의 특기니까.

서도화는 아까 전 좀비가 된 케이를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백신M을 찾았다.

하지만 이것을 사용하려면 백신 카드 안쪽에 적힌 미션을 수행해야만 했다.

미션 자체는 단순했다.

[멤버들에게 ‘사랑한다’는 소리 듣기]

하지만 그 어떤 미션보다 난이도 있는 미션이었다.

‘차라리 다른 그룹과 싸워 모조리 탈락시키라는 미션이 쉽지…….’

애초에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관계가 아니었다. 가족도 아니고 붙었다 하면 일단 주먹다짐부터 하고 보는 관계.

케이만 그런 게 아니고 아덴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계에… 그래 백번 양보해서 아덴이야 서도화가 원하는 바를 알고 그럭저럭 협력적으로 잘 따라주는 성격이니 괜찮다 치고 케이는?

‘쟤한테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으라고?’

진심? 에이 안 돼. 못해.

아 좀비라 안 해도 되나?

솔직히 아덴한테도 별로 듣고 싶진 않았다.

아덴이야 쥐어짜듯 괴로워도 꾸역꾸역 내뱉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듣기가 싫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해야지. 해야 이길 수 있다는데. 제작진들이 하라고 하는데.

서도화가 애써 웃으며 아덴을 보았다.

“아니 내가 사랑한다고.”

“알겠다니까? 안다고. 뭐라고 해야해? 고마워?”

“사랑한다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도 뭔가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눈치도 빠른 애가 오늘 따라 왜 이래?

‘하긴 살면서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볼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어?’

서도화는 제발 눈치채 달라는 듯 아덴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아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얘는 뭘 바라고 저러는 것인가? 뭐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 대놓고 말해주면 좀 좋아?

그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차분히 서도화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서도화는 이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사랑한다며 듣기만 해도 전신에 소름 돋을 말을 내뱉었다.

그러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답은!

“야, 사랑한다니까? 왜 대답을 안 해. 할 말이 없어?”

어느새 말하기도 지쳤는지 점점 심드렁해지는 말에 아덴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어, 미안하다. 그냥 넌 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일 뿐-”

“응 틀렸고, 사랑한다. 너는?”

“……나는 네 마음을 받아줄 수가-”

“땡, 사랑한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나의 소중한 동-”

“아니! 야! 왜 이래? 너 원래 눈치 엄청 빠르잖아. 사랑한…….”

서도화와 아덴의 무한 퀴즈 게임이 시작되었다.

한편 케이는 좀비 흉내도 멈춘 채 두 사람의 촌극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이것들 지금 뭘 하는 거지?’

사랑한다고 하라는 거잖아. 바보 같은 용사여. 그런 간단한 심계조차 파악하지 못하면 어쩌란 말인가.

케이는 아까부터 서도화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등 뒤로 보낸 손엔 자신을 좀비에서 다시 인간으로 바꿔줄 백신카드가 있고, 사용하려면 아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아덴은?

케이가 아덴의 생각을 읽어보았다. 머릿속엔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다.

그리 빠릿하게 사람의 심리를 알아차리던 용사는 의외로 애정이나 마음을 나누는 것에 대한 눈치는 없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지켜보는 케이마저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케이가 인상을 찌푸린 채 서도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날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저리 애를 쓰는데.’

물론 저 카드도 케이가 좀비화된 것도 모두 가짜고 분장일 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쨌든 서도화가 입에 안 맞는 말까지 유도해가며 저렇게 애쓰는 건 케이와 함께 탈출하기 위해서가 맞다.

“…….”

좀비지만, 어쨌든 한 팀인 거다. 서도화를 돕는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으이고 이 답답한!”

케이가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서도화와 아덴이 멀뚱히 케이를 쳐다보았다.

순간 말문이 막힌 케이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이내 우악스레 말했다.

“어이 음유시인.”

“……그, 그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케이는 서도화의 말대답도 무시한 채 고개를 까딱였다.

“나에게 그 질문을 해봐라.”

“뭐?”

서도화가 입을 떡 벌린 채 케이를 쳐다보았다.

케이는 좀비 분장을 한 채 너의 생각 따위 다 안다는 미소를 지으며 서도화를 보며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너한테 하라고? 사랑한다는 말을?

‘왜? 너는 좀비라 대답해봐야 소용도 없는데.’

더구나 좀비가 아니라도 마왕이 쉽사리 음유시인에게 정답을 말해줄 군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라는데 해야지 어쩌겠는가? 카메라 앞에서 질색팔색하며 거절하기도 뭣하고.

“그… 케이. 어…….”

그런데 솔직히 아덴에게와는 달리 입이 잘 안 떨어지긴 한다.

내가 하다 하다 마왕 새끼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다 해보네.

서도화는 단전에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거부감을 참고 말했다.

“케이. 사랑한다.”

“훗!”

그러자 케이가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 마음 잘 알겠구나. 나도 사랑한다!”

“허?”

아덴이 헤까닥 눈이 돌아가며 케이를 쳐다보았다. 이게 지금 뭐랬냐? 사랑? 허? 사라앙? 저 주둥이에서 절대 나올 리 없는 단어가 나오네?

그때.

“오오어우와아!!!! 케이!!!”

아덴보다 더 거친 기세로 서도화가 기쁨에 찬 소리를 질렀다.

“뭐야?”

아덴이 깜짝 놀라며 서도화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서도화가 케이에게 이렇게 화사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있던가?

서도화는 너무나 기뻐하며 케이에게 매달렸다.

“이, 이, 이!”

케이가 오히려 당황하며 서도화에게서 벗어나려 할 정도였다.

서도화가 시원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덴을 상대하며 느꼈던 답답함이 케이의 대답으로 완전히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서도화는 크게 웃으며 케이를 토닥여주고 아덴에게 눈짓했다.

‘들었지? 얼른 대답해라.’

꽤나 노골적인 눈빛에 아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아 같은 멤버로서 친구로서 널 참 사랑한다. 너는?”

아덴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야 아덴은 그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았다. 그걸 자신보다 케이가 먼저 깨달았다는 게 참으로 한심했지만.

“당연히 나도 사랑하지. 하하…….”

서도화가 씨익 웃으며 돌아 카메라맨을 쳐다보았다. 됐냐는 물음의 의미였다. 카메라맨이 서도화와 마주 웃으며 말했다.

“네, 됐습니다. 케이 씨는 백신M을 사용해 다시 인간이 되셨습니다.”

“됐다! 가자 이제.”

서도화는 카메라맨의 오케이 사인을 보자마자 신난 얼굴로 멤버를 잡아 스튜디오 밖으로 이끌었다.

“어?”

아덴이 당황하며 서도화의 뒤를 따랐다. 당연히 자신을 데리고 나갈 줄 알았던 서도화가 자신이 아닌 케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일종의 답답함 해소용 화풀이였다.

덕에 케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서도화에게서 떨어졌다.

“이제부터 메인 백신 찾아야 해. 그걸 찾아와야 우리 탈출할 수 있어.”

“어쩔래? 나눠져서 찾을래 아님 같이 찾을래?”

“케이 생각은 어때?”

“어? 내 생각?”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가 움찔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발언권을 늘려주는 게 당연하니까.

케이가 서도화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건방진 표정으로 웃으며 스튜디오 바깥을 크게 둘러보다 말했다.

“좀비가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함께 다니는 게 좋아. 한 사람이 백신을 찾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이 지켜줄 수 있으니까. 얼른 가지!”

그러곤 본인이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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