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세 사람은 백신을 찾기 위해 방송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여전히 좀비들이 돌아다녔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지만 솔직히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좀비가 달려들면 도망치고 그것도 힘들면 힘으로 밀어내고. 이런 방식은 이미 저쪽 세계에서 수백 번은 했던 일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겠지.
“도화 아직이냐?”
“빨리 해라. 별로 위험하진 않지만 이러다 다른 팀이 먼저 찾겠다.”
“좀만 기다려. 거의 다 찾았어.”
“그래.”
“알았다.”
“…….”
“…….”
아덴과 케이가 망을 보는 동안 손을 빠르게 놀리며 백신을 찾던 서도화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래도 되나?’
철저하게 임무 수행에 집중하는 상황. 임무와 관련한 이야기 이외엔 일절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 상황.
아니 물론 굉장히 손발이 잘 맞아 이대로 이 복도의 끝방까지 간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만약 이게 실전이라면, 그러니까 실제로 괴물들이 공격을 해오고 그 와중에 판을 뒤집을 무언가를 찾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조용히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근데 지금은 실전이 아니잖아.’
그런데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이들 셋의 행동은 마치 카메라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좀비들이 여기저기 움직이고 있으니 조용히 찾아야 하는 건 맞지. 하지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더구나 이 세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사이었다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카메라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다 못해 어색함까지 느껴진다면 좀 그렇지 않나?
“크흠.”
서도화가 빠릿빠릿하게 백신을 찾던 손을 천천히 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셋이 있으니까 되게 옛날 생각난다.”
그의 말에 아덴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예전에도 종종 이렇게 다니지 않았나? 셋이서.”
“그러니까. 이런 상황 꽤 있었던 것 같아.”
두 사람의 말에 케이가 또르르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는군.”
서도화가 없는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지어내 꺼낸 말이 아니었다.
케이가 한동안 인간으로 둔갑한 채 동료로서 함께 다니는 동안 셋이서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일행들 중에서도 주요 전력이었던 아덴과 케이, 그리고 두 사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서도화 셋이서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 하곤 했다.
서도화가 단서를 찾아 시스템을 이용하여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동안 전투에 일가견 있는 두 사람이 그를 지켜내었다.
케이가 배신만 하지 않았더라면 제법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나날이었다.
배신 이후로는 일부러라도 그때의 일을 언급하지 않던 두 사람이지만 다시 세 사람이 모여 그날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데 굳이 꺼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근데 확실히 그때보다 나이를 먹긴 했나봐. 그때는 틈만 나면 떠들어댔잖아 우리.”
서도화의 말에 아덴이 낄낄거리며 케이를 가리켰다.
“그때는 얘랑 사이 좋았어.”
누가 봐도 친구에게 할 법한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말 속에 뼈가 있음을 케이는 알고 있다.
케이는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나도 그때는 꽤 즐거웠지.”
과연 죄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지만 말이다.
케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고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하찮은 인간들. 그러나 한때나마 케이는 그들 사이에 있었고 마음이 요동친 적도 있었다.
그들에게 케이는 동료였고 동료로서 완전한 신임을 받을 때, 있는 힘껏 떠들고 싸우고 놀 때, 그들에게 구해지고 그들을 구할 때 핵에 눌려 찌그러진 마음 한구석이 기어코 새어 나와 바늘처럼 쿡쿡 쑤셔댄 적 있었으니까.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감정을 버리고 마왕이 된 케이가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것이고 인간에게 복수할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인간이 된 지금은 어떠한가.
“아덴,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난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즐거워.”
“셋이 오랜만에 같이 다녀서?”
서도화의 눈치 없는 소리에 케이가 얼버무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케이의 대답에 아덴이 획 고개를 돌려 서도화에게 외쳤다.
“야 아직이냐? 언제까지 찾을 거야. 아직 찾아볼 곳 많아.”
“아 잠만. 거의 다 했어.”
아덴은 케이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사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료였지만 늘 알 수 없는 벽이 있던 그때의 케이. 숨기는 게 분명히 있어 보였고 하이넬이나 서도화 또한 동료라도 경계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앙상해졌고 힘도 더럽게 없고 그냥 시끄럽고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솔직히 말해서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적어도 이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일 년이 넘도록 경계를 풀지 않던 아덴에게는 꽤 큰 변화였다.
“여긴 확실히 없어. 확실해. 딴 데로 가자.”
살짝 어색해질 뻔한 공기가 서도화의 말로 단번에 바뀌었다. 아덴과 케이가 동시에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고 세 사람은 서둘러 다음 방으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아덴이 씨익 웃으며 케이에게 말했다.
“야 근데 도화랑 케이 역할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근육량이나 체력이나 서도화가 더 많은데 차라리 케이를 우리 둘이서 지키는 게 빠르지 않아?”
그의 말에 케이가 저도 모르게 다리를 들어 아덴의 엉덩이를 찼다.
“악!”
아덴은 소리치면서도 케이에게 별다른 시비 없이 그냥 킥킥거리며 웃었다.
케이나 아덴이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두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이후 세 사람은 빠르게 방송국을 돌며 백신을 찾아냈다.
좀비가 한가득인 이곳에서 좀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백신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서도화는 불과 30분도 안 되어 카드를 찾아내었고, 기다렸다는 듯 한 번에 달려드는 좀비 떼를 돌파하듯 달려 최종 목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쿠당탕!
“……어우 깜짝이야. 얘들아 놀랐잖아.”
효수가 제 가슴을 부여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최종 목적지는 바로 효수가 있는 모니터룸. 효수가 들고 있는 상자에 백신카드를 넣어야 성공이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선배님, 백신카드 찾아 왔습니다!”
“선배님!”
“상자를!”
“와 애들이 아직 젊어서 그런가 상당히 열정적이네.”
효수는 순순히 그들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다른 선배 그룹들이 먼저 카드를 가지고 왔다면 상자를 빌미로 이것저것 시키며 장난을 칠 생각이었지만 거의 부딪히듯 달려 들어온 새파란 후배들의 기세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우승이라고 적힌 상자를 보자 어메스가 활짝 웃으며 효수에게 바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어 그래.”
서도화가 카드를 상자에 집어넣었고 그와 동시에 효수가 세상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승리는 어메스! 축하드립니다!”
제작진이 케이에게 한우 세트를 안겨주는 것으로 마지막 게임이 종료되었다.
얼마 뒤 세트장으로 망연자실한 선배 그룹들이 모두 모였고 패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촬영 또한 마무리되었다.
* * *
한참 앨범 활동이 진행되는 어느 날의 유제이 회의실.
“봤어요? 애들 또 실트에 올랐던데?”
김유진의 말에 이병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제일 먼저 발견했을걸요? 아이 요즘 뭐 우리 애들 뭐만 하면 올라가서 새삼 놀랍지도 않아요.”
이병수의 거들먹거림에 김유진이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누가 들을까 겁날 정도의 자화자찬이지만 거짓은 아니다.
2집 앨범 성적은 데뷔 앨범을 훨씬 웃돌았고 컨셉 덕에 해외 쪽 k-pop 팬 공략은 완전히 성공하여 k-pop 좀 안다 하는 사람 중 어메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거기다 예능만 들어갔다 하면 좋은 타율을 보여주고 있으니 대중 인지도 또한 타 보이그룹과 비교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 정도면 플랜대로 진행해도 되겠는데요?”
그녀의 말에 직원들 또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직원들이랑 구체적인 계획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컨셉 회의는 멤버들이랑 같이 하죠. 애들이 아이디어가 좋아.”
“네!”
김유진이 힘차게 말했다.
“한번 해봅시다! 이 정도 지표면 처음이라도 크게 가도 될 것 같아요.”
김유진의 목소리에 열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메스가 데뷔할 때 정한 큰 목표 하나를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
소형 기획사 아이돌로서는 태산과 같던 목표. 첫 콘서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