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57화 (257/270)

제257화

회의실의 분위기는 용사 아덴을 포함해 수많은 무인들이 있던 곳에서도 기죽지 않던 서도화가 가히 눈치를 볼 만했다.

평소와는 달리 전혀 웃지 않고 이들을 맞아들인 대표 김유진, 그 곁에서 어쩐지 매우 해쓱한 얼굴로 어메스를 쳐다보는 직원들.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타 회사의 관계자들까지.

뭔데? 이게 무슨 상황인데? 우리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는 분위기였다.

‘케이가 잡혀갔을 때 웃은 거 들켰나?’

지난 아이돌 특집 예능 촬영 때를 말하는 것이다. 아덴과 서도화는 케이가 좀비들에게 붙잡혀 가던 때 그를 지키기는커녕 그냥 넋 놓고 웃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배신을 당했다는 듯 끌려가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제3자, 그러니까 어메스의 이미지를 지켜줘야 하는 유제이에게는 꽤 답답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도화나 아덴에게나 별꼴인 케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어메스의 명실상부 비주얼 담당 케이가 아니던가.

곱고 예쁜 비주얼을 좋은 카메라에 담아내기는커녕 초반부터 잡혀선 좀비 분장을 하고 있었다니 그들의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수도 있다.

‘……근데 그거 아직 안 들키지 않았나?’

아무리 어메스에 대한 애정이 큰 김유진이지만 어메스가 출연한 모든 방송을 챙겨볼 만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니.

거기다 그런 걸 가지고 혼날 거였다면 이렇게 분위기 잡는 게 아니고 촬영 당시 이병수가 눈치를 줬을 것이다.

“왜 그래? 어서 앉아.”

엄숙한 분위기에 어메스가 드물게 눈치를 보고 있자 김유진이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말했다.

그제야 멤버들은 주섬주섬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서도화는 자리에 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웬 카메라가 있어?’

아까 전엔 눈치 보느라 몰랐지만 이제 보니 회의실 곳곳에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회의실 구석 천장, 하다못해 회의 테이블에까지 카메라가 있다.

‘진짜 뭐지?’

뭘 하길래 카메라까지 여기저기 달아두고.

하지만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김유진을 바라보는 서도화의 표정엔 어느새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여기서 나올 말이 결코 안 좋은 말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혼내거나 기대보다 성과가 좋지 않았다거나 하는 건 다큐멘터리라도 찍지 않는 이상 카메라에 담길 일 없기 때문이다.

‘……어?’

혹시 다큐 찍나?

다행히 김유진은 서도화의 생각이 꼬리를 물기 전 입을 열었다.

“그럼 어메스가 왔으니 다시 회의를 재개하도록 할게요.”

“네!”

“일단 어메스에게 먼저 알려야 할 게 있는데.”

어메스가 긴장한 얼굴로 김유진을 쳐다보았다. 김유진은 그제야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관계자들과 심각하게 일을 논의하던 중이라 굳어진 표정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다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나쁜 일 아니니까 그냥 들으면 돼.”

“무슨 일이신지…….”

한야의 물음에 다른 직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김유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번 2집 활동을 끝내고 6개월 뒤, 어메스의 첫 번째 콘서트를 열 예정이야.”

“……예?”

“콘서트요?”

“저희 콘서트요?”

놀라 눈이 동그래진 서도화와 주상현이 번갈아 가며 되물어댔다.

김유진의 입에서 어메스의 콘서트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서도화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진짜? 우리 콘서트?

그 작던 어메스가, 난장판에 사고만 치던 어메스가, 입지도 돈도 인기도 없어 밀리언 아이돌도 겨우겨우 들어갔던 어메스가 콘서트? 그것도 단독 콘서트?

서도화와 주상현이 입이 떡 벌어진 채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아쉽게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놀란 건 두 사람이 전부였다. 한야는 이미 예상한 듯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을 뿐이고 아덴과 케이는 콘서트가 무엇인지 그 뜻부터 알려줘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서도화와 주상현이 덜덜 떨리는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더니 급기야 팡 눈물을 터트리곤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흐윽…형 우리가…….”

“이, 이게 되는구나…….”

죽을 때도 아니건만 주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천방지축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구나. 불과 2집 앨범 만에 커다란 공간을 홀로 채울 정도로 컸구나.

데뷔 전부터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큰 압박감을 가지고 있던 주상현과 가수로서의 성공에 5년간 목숨을 갈아 넣고 또 일 년간 천방지축들을 데리고 고생했던 서도화의 감격은 누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이를 지켜보던 케이가 아덴의 팔꿈치를 툭 쳤다.

“아덴.”

“뭐냐.”

“넌 콘서트라는 것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알겠냐? 좀 있다 물어봐야지.”

그러자 케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런데 왜 기분 나쁘게 히죽히죽 웃고 있는 거야?”

아덴이 부둥켜안은 채 정말로 울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도화, 상현이가 웃으니까 아무튼 좋은 일일 거 아니야?”

주상현이야 워낙 감성적인 멤버니 그렇다 쳐도 서도화가 저렇게까지 격하게 감격하며 좋아하는 일은 정말로 너무나 드물다.

“…….”

이 단순한 작자 같으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동료가 기뻐하니 기뻐한다고? 그게 본인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르는데?

“참 나. 너는 알다가도 모르겠구…….”

“와아아아!!!”

“하하하하 이 녀석들! 그렇게 좋니? 흐흐……. 흡……. 우리 애들이 드디어…….”

“대, 대표님 왜 울고 그러세요…괜히 저까지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잖아요…….”

“이 조그만 회사에서 고생 많았다 얘들아! 어흑!”

“내, 내가 저 바보들을 데리고오…… 여기까지… 해냈어… 목숨 걸 만해… 그만한 행복이야…… 엉엉…….”

……어라? 왜 눈물이?

케이가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손으로 훔쳤다. 이를 본 아덴이 죽도록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미친! 너는 왜 우냐! 아학학! 너 나보고는 왜 처웃냐고…….”

“아덴.”

퍼억.

가만히 듣고 있던 한야가 해맑게 웃다 정색하며 아덴의 배를 툭 건드렸다.

“카메라 있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거친 표현 쓰면 안 된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덴이 서둘러 말을 정정하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케이는 아덴의 웃음을 지적하지도 못한 채 흐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댔다.

“케이 너도 기쁘구나?”

“그래 케이가 고생이 진짜 많았지. 연습 정말 많이 했잖아.”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나 왜 울지?

감격 따위 했을 리가 없다. 콘서트의 의미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감격할 수 있단 말인가.

케이는 자신이 얼마나 멤버들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지 몰랐다. 이를 본 아덴이 케이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참나, 이렇게 감성적이어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

이 자식이?

남들이 봤을 때야 아덴이 케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케이에게 감성적이다 따위의 말은 놀리는 것이었다.

아덴은 이제 틈만 나면 놀리는 데 도가 튼 모양이다.

김유진은 들뜬 채 좋아하는 멤버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말했다.

“이거 말해주려고 모이라고 한 거야. 구체적인 건 2집 활동이 끝나고, 아, 내일이지? 내일모레 다시 모여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고. 어메스는 내일 막방 잘하고.”

“네!”

“그리고 여기저기 달린 카메라 보이지?”

서도화의 시선이 다시 카메라로 향했다.

“콘서트까지 따라올 카메라야. 감사하게도 팝넷에서 어메스의 첫 콘서트를 특집 다큐멘터리로 촬영해준다고 하네?”

“헐 진짜요? 우승자 특권 그런 건가?”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팝넷은 밀리언 아이돌 우승자에게 아낌없는 글로벌 투자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 이번 첫 콘서트는 홍보부터 그 규모까지 밀리언 아이돌 우승자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지원받을 예정이다.

한 마디로 소형 기획사 아이돌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스케일의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던 멤버들이 진정하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기대, 그리고 그 스스로의 기대에 무거울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잘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있는 힘껏 열심히 하는 것.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좋은 기회만 들어올 때 최선을 다해서 붙잡는 거야. 열심히 하고, 일단 지금은 막방 준비 잘하고.”

“네!”

어메스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요즘 너무 좋은 일만 생기는 거 아닌가? 아 나 너무 불안해~”

“상현이 이제 빈말도 할 줄 아네? 하나도 안 불안해 보이고 잘만 웃는데?”

“흐흐.”

한야와 주상현이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고 그 뒤에선 서도화가 아덴과 케이에게 콘서트가 무엇인지, 이게 왜 대단한 것인지를 일장연설하고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첫 콘서트 확정 소식. 그저 즐겁고 또 즐겁기만 했다.

콘서트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을 데리고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될지 예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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