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59화 (259/270)

제259화

막상 나오긴 나왔으나…….

얼굴이 알려진 신인 아이돌들이 놀러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ㅇㅇ 대신 너무 멀리 가지 마. 사람 많은 곳도 되도록이면 피하고. 어디 갈지 정하면 문자 해라]

서도화는 이병수의 답장을 보곤 씨익 웃었다.

“허락 떨어졌다. 너무 멀리만 나가지 말래.”

데스티니와 같은 큰 기획사의 아이돌일 경우 신인 티 벗을 때까진 휴일 일정도 단속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제이의 경우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김유진이 전적으로 멤버들을 믿기도 하고, 지하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멤버들이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주는 편이었다.

“너희 뭐 하고 싶어?”

“뭐 하고 싶냐고?”

아덴과 케이가 저도 모르게 서로를 바라보다 인상을 팍 찌푸리곤 획 고개를 돌렸다.

“아 눈 마주쳤어!”

“왜 돌아봤냔 말이다! 빌어먹을!”

“뭐래? 같은 멤버끼리 눈마주칠 수도 있지.”

서도화가 말하자 두 사람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서도화는 익숙하게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곤 다시 물었다.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그냥 밥만 먹고 올까?”

“모르지 나야.”

“어?”

퉁명스레 말하는 아덴의 표정에 서도화가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하고 싶은 걸 물어보는데 왜 모른다는 대답이 나와?

하지만 이건 아덴과 케이에겐 당연한 대답이었다.

“이 세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떻게 말하라고?”

“……그건 그렇지. 케이는? 하고 싶은 거 없어?”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는 세계정복을 하고 싶다.”

“어… 알겠어. 고마워.”

하등 도움 안 되네.

서도화는 혀를 쯧 차며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사실 저놈들 말이 맞긴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 서도화도 없이 툭 떨어져선 쌈박질이나 하다 유제이 대표에게 주워진 게 저들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던가.

그 이후엔 연습실과 숙소만 오가며 적응하기 바빴을 거고 그다음엔 데뷔를 해서 행동 하나하나에 제약이 있었다.

저쪽 세계에서는 누구보다 자유롭던 두 사람이지만 이곳에선 1년 넘는 시간 동안 연예계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있었던 거나 다름없다.

연습하거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아니면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무척 심한 처사였다.

‘쟤네가 뭘 좋아하려나.’

서도화가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숙소 근처에 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물론 케이나 아덴이라면 다른 것보다 저쪽 세계를 연상케 할 수 있는, 하지만 그곳보다 청명한 이 세계의 산이나 바다를 좋아하겠지만 지금 그곳들을 들리기엔 무리가 있다.

뭣보다 그건 이 세계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아덴이 그쪽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마왕이 사라진 그곳도 틀림없이 이곳처럼 푸릇한 숲을 볼 수 있을 테니.

‘이걸 놓치고 있었네.’

촬영을 하면서 이곳저곳 서도화조차 가보지 않았던 곳을 많이 다니다보니 아덴과 케이가 어떤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꽤나 답답했을 것인데.

‘일단 밥부터 먹이고 생각하자.’

마침 숙소 근처에 평이 좋은 맛집이 있었다. 손님이 많을 만한 집이지만 지금은 식사 시간이 지났으니 갈 만할 것이다.

“가자. 준비해. 밥 먹으러 갈 거야.”

서도화의 말에 아덴과 케이가 또 저도 모르게 시선을 교환하곤 말없이 일어나 그를 따랐다.

* * *

“이게 뭐냐.”

아덴이 싫은지 좋은지 모를 표정으로 눈앞의 음식을 쳐다보았다.

지글지글 한눈에 보기에도 육즙이 가득해 보이는 스테이크가 불이 없음에도 스스로 끓어대고 있었다.

서도화가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테이크잖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뭘.”

“처음 보는데?”

“…….”

아 그랬나?

서도화는 문득 저쪽 세계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저쪽 세계라고 스테이크가 없는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귀족들의 주식이라고 할 만큼 귀족들은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

서도화 또한 가끔 귀족들에게 초대받아 말도 안 되는 육질의 고기를 대접받아본 적도 있었고.

다만.

“…아 그렇구나. 그렇네 너는.”

귀족들에게 초대를 받았을 때 스테이크를 먹어본 건 서도화와 하이넬 뿐이었다.

왜냐고?

아덴은 뼈까지 반골 기질이 스며있어 귀족 하면 치를 떠는 녀석이고 다른 놈들도 귀족과 함께하는 자리를 싫어했다.

아덴과는 달리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이 바보가 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거기다 귀족들이 내어주는 음식으론 성에 차지 않는 양을 먹는, 질보다 양을 택하는 놈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눈치 빠른 귀족들은 이들에게 무언가를 대접할 때 제 저택이 아닌 근처 마을의 술집에 이들을 데려다 놓고 먹고 마시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곤 해도 스테이크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다행히도 아덴은 서도화가 묻기 전에 스스로 말을 덧붙였다.

“뭔데 콩알만 한 고기 나부랭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꾸며 두냐.”

“쉿! 쉿쉿! 제발!”

여기도 사람 있다고! 아무리 한적할 때 왔더라도 사람이 있는데 말투가 그게 뭐야.

서도화가 기겁하며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지만 아덴은 심드렁하게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긴 해. 누구 코에 붙이나 싶긴 한 양이지만.”

“하나 더 시켜줄게…….”

서도화는 마지못해 다시 메뉴판을 들었다. 저런 아덴의 취향을 알아서 맛도 맛이지만 양도 많은 곳으로 골라온 것인데 이것도 적단다.

“훗!”

그때 케이가 픽 웃으며 얄미운 눈으로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 넌 역시 무식하기에 미식을 모르는구나.”

“뭐? 밥 먹다 뭔 소리야.”

“이건 말이다. 이 육질과 식감, 풍미를 충분히 음미하며-”

“마기나 처먹고 살았던 주제에 음미 좋아하시네. 마기에도 맛이 있나봐요?”

“……저건 왜 말을 해도! 하, 진짜!”

열불 터지는 듯 가슴을 팡팡 쳐대는 케이를 보며 서도화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야, 마왕 시절에 쟤 주둥아리부터 처리 안 하고 뭐 했냐? 네가 마왕으로 한 게 뭐야.”

“조용해라. 하려는 족족 달려들어 막은 게 누군데!”

“맨날 그 입을 찢어버린다더니.”

“으으… 분노가 차오른다…으으…….”

서도화는 부들거리는 케이와 그의 말에 일일이 반박하며 스테이크를 흡입하는 아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케이와는 물론이고 사실 아덴과도 단둘이 식사한 적이 없다.

가끔 밤에 따로 빠져나와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긴 했지만 그건 유독 마음이 힘든 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그럴 땐 그저 조용히 서로 술을 따라주고 마시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랬던 아덴에 케이까지 모여서 새삼스레 같이 밥을 먹겠다고 좁은 테이블에 앉아있게 되었으니 굉장히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메스의 분위기 메이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상현이었고 언제나 어색하지 않은 식사 자리가 된 건 주상현 덕분이었으니.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잘 이어졌다.

물론 그중 8할은 싸우기 위해 입을 여는 것이긴 하지만.

서도화가 살짝 고개를 젖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예전과는 달리 싸우더라도 선을 넘지는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 마주 보는 눈에 살기가 없다.

제법 동료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마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서히 정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서도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을 때였다.

우웅- 웅-

갑작스러운 진동 소리에 서도화가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벌써?’

아직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된 터라 회사에서 연락이 올 리가 없는데.

그러나 진동이 온 곳은 휴대폰이 아니었다.

“야, 그거 말고 저거.”

아덴이 포크로 서도화의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

“……헐.”

서도화가 굳을 얼굴로 황급히 가방을 잡아챘다. 가방 안에서 고고히 빛을 내며 떨리는 둥근 물건.

하이넬과 연결된 통신석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뭔데 그래?”

“하, 하이넬. 통신석.”

그 즉시 아덴이 벌떡 일어나 서도화와 케이의 입 안에 고기를 욱여넣곤 나머지 전부를 제 입에 털어 넣었다.

“나가자. 나가서 받아. 여기서 켜면 안 돼.”

아덴의 말에 서도화와 케이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서도화가 아덴에게 통신석을 건네주었다.

“끊길 수도 있으니까 적당한 곳에 숨어서 네가 받아. 난 계산하고 올테니까.”

“어.”

케이와 아덴이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가게 바깥에서 주홍색의 빛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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