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갑작스레 이게 무슨 일이람. 서도화가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멤버들이 있을 가게 밖으로 향했다.
하이넬 일행과 연락이 닿게 된 이후 간간이 연락하긴 하지만 이렇게 급한 신호를 보내며 연락을 준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숨어 있던 마족이 날뛰기라도 하는가? 배신을 당한 건가?
별별 생각을 다하며 골목 안쪽에 보이는 케이를 향해 다가가던 서도화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당연히 둘이서 통신석을 붙들고 있을 줄 알았건만 골목 안에 있는 건 케이뿐. 어디에도 아덴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왜 혼자 있어?”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케이가 뒤에서 들려오는 서도화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돌아보았다.
서도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넋이 잔뜩 빠져있는 얼굴이었다.
“왜 그러고 있어. 아덴은 어디 갔냐니까? 이 자식이 통신 연결해두라니까 하여튼 지 멋대로-”
“아니다.”
서도화가 입을 다물었다. 케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었어?”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챈 서도화가 묻자 케이가 말없이 땅에 떨어진 통신석을 바라보았다.
서도화 또한 뒤늦게 통신석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바닥에…….”
“아덴은 그곳에 끌려 들어갔다.”
통신석을 주우려던 손이 움찔했다. 서도화는 허리를 숙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케이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까와는 달리 몹시 서늘해져 있었다.
“뭐라고 했냐?”
“그 마석에 끌려 들어갔다고 했다.”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
서도화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어 멍하니 통신석을 바라보았다. 이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였건만 줍는다는 생각도 못 한 채 한참이나 생각에 빠져있었다.
케이는 그런 서도화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익숙한 표정, 하지만 무척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계의 바보 같은 서도화가 아닌 아덴의 동료 음유시인인 서도화의 모습이었다.
서도화는 정말 한참이나 그 자세 그대로 생각에 잠겨있다 잠시 후 천천히 통신석을 주워들었다.
“……일리있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엔 납득되지 않았다. 급기야 케이가 급습이라도 한 건 아닐까 의심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게 기분 좋게 밥 먹으러 나와서 1년간 단 한 번도 없던 사건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서도화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오로지 통신을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돌이지만 엄연히 마석이다.
다르게 말하면 저쪽 세계의 동료들과 이곳의 아덴 그리고 서도화를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아덴과 서도화는 생각조차 못 한 방법이지만 하이넬이라면 이 통신석을 좌표로 두고 아덴을 텔레포트 시키는 것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통신석으로 쓰이는 마석의 용도를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아마 아덴은 안전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확신할 순 없지만 우리 동료가 이걸 이용해 아덴을 원래 세계로 데려간 것같아.”
“…원래 세계.”
케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복잡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도화는 알 수 없었다.
케이 또한 잠시간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말했다.
“그럼 네가 곤란해진 것이 아니냐.”
케이의 물음에 서도화가 꽉 주먹을 쥐었다.
‘적어도 5년은 걸린다더니 이렇게 빨리.’
그렇다. 아마 아덴은 무사히 돌아갔을 것이다. 하이넬의 실력이라면 당장 시도해도 무척 안전하다고 생각해 텔레포트를 시도했을 테지.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건 곁에 케이가 있으니 텔레포트 계획을 알고 수를 쓸까 봐 경계하지 않은 걸 테고.
어쨌든 하이넬의 입장에선 아덴과 혹시나 곁에 있을 서도화만 데려가면 될 테니까.
하지만 그 말인즉슨 아덴은 이제 이 세계에 없다는 말이 된다.
어메스의 멤버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와 큰일 났네.”
머릿속 생각이 꼬이고 꼬여간다. 이내 너무나 복잡해져서 어떤 생각도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완전히 패닉이 와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통신석만 보고 있는 서도화를 보며 케이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정말 큰일이 맞군.”
다른 게 문제가 아니다. 아덴, 그 재수 없는 용사 따위 오히려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면 케이의 입장에선 좋은 것이다.
케이가 이미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겠다고 결심한 이상 보기 싫은 얼굴은 이세계로 치워버리는 편이 마음 편할 테니까.
하지만 이건 케이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마저도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질락 말락 한다.
이젠 케이 또한 자연스레 다른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주상현, 한야, 유제이의 직원들, 어메스를 믿고 응원해주는 케이클랍스들까지.
서도화를 보라. 저 처참히 무너진 표정을 보라. 아덴이 사라졌음을 알게 될 사람들은 전부 저런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케이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자신이 마왕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인간에게서 매일같이 보던 비참한 얼굴이 이젠 전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진 않았으나.
이미 케이에게선 말이 튀어 나가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이냐.”
“모르겠어. 나도 몰라. 방법은 있을지도 모르지 하이넬이라면…….”
5년은 걸릴 차원 텔레포트를 단 일 년 만에 해낸 하이넬이라면 아덴을 다시 이곳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돌려보내고 말고가 아니라 아덴의 마음이었다.
‘그 녀석은.’
그는 과연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을까?
아덴과 케이, 그리고 서도화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서도화는 그 세계에 살면서도 이곳으로 돌아오고자 했고 케이는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증오해 개박살 내고자 했다.
하지만 아덴은? 아덴의 모든 것은 바로 그곳에 있다.
동료, 명예, 재물, 고향과 집.
서도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몰수당한 채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 아덴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까?
절대.
“음유시인.”
서도화의 속마음을 읽은 케이가 한숨을 푹 쉬곤 어색하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아덴이 이 세계를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군.”
“버리는 게 아니고, 그냥 돌아간 거잖아. 내가 이 세계로 왔듯이.”
“그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방법은 있다.”
서도화가 고개를 들어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는 큰 결심을 한 듯 진지한 눈으로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동료를 잃는 슬픔,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을 잊도록 해줄 수 있다. 난 인간의 정신을 개조할 수 있으니까.”
움찔, 서도화의 어깨가 떨렸다. 안다. 이제는 케이도 서도화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아덴이 정말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면 차라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덴을 지우는 게 맞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망설이고 있을 터이다.
이곳에 분명 아덴은 있었다. 그가 있던 자리를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그런 사람은 없었고 어메스는 원래부터 넷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수많은 추억들을 묻어둔 채 말이다.
물론 케이가 생각하기엔 기억을 지우는 게 당연한 것이다. 원래 아덴은 이곳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 존재를 이곳에 적응시키는 과정에도 케이의 세뇌 마법이 사용되었으니까.
서도화 또한 알고는 있을 테지만 찰나의 추억과 미련이 결정하길 꺼리고 있는 것일 터.
“음유시인. 시간은 많지 않다. 당장 오늘, 사람들은 아덴의 존재에 대해 묻기 시작할 거야. 거짓말을 하며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휴일을 받은 3일 남짓이겠지.”
만약 아덴을 알고 있는 모두의 기억을 지우게 된다면 케이는 티끌 같은 마나를 모조리 긁어 쓰곤 더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겠지.
‘아니, 어쩌면 마나를 전부 써도 모두의 기억을 지우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어메스는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 버렸으니까.
케이의 말에 서도화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우웅-웅-
“어?”
그 쓰임새를 다한 듯 빛을 잃었던 통신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헐 씨, 아덴인가?”
서도화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통신석을 연결하는 순간.
띠링!
[아니 왜……. 왜 그래요 진짜 나한테.]
“…서도화?”
울분이 느껴지는 시스템의 텍스트와 케이의 놀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오며 순식간에 육체가 통신구로 빨려 들어갔다.
“……어?”
그리고 눈을 떠보니.
“……아이 썅.”
서도화의 입에서 드물게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풍경의 천장.
다시 와버린 것이다. 그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