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61화 (261/270)

제261화

익숙한 풍경, 익숙한 향.

그야말로 눈앞이 컴컴해졌다.

‘미치겠네.’

돌아왔다고? 진짜?

서도화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꽤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 서도화가 처음으로 이 세계에 발을 디뎠던 날, 그는 극심한 공포와 의문을 느끼는 와중에도 생각했었다.

‘데뷔는?’ 하고.

물론 지금은 공포와 의문 따위 없다. 이곳은 새로운 세계가 아닌 서도화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고 이제 와서 어떻게 다른 세계로 넘어올 수 있냐는 바보 같은 의문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콘서트는? 마왕은? 어메스 활동은?’

“와… 돌았네. X발.”

웬만하면 입에 욕을 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억울함과 분노를 어떻게 풀란 말인가!

“시스템.”

서도화는 이를 갈며 시스템을 불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놈의 시스템은 한 번에 튀어나오질 않았다.

“……하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 서도화가 참다못해 빽 소리를 지르려 할 때.

“일어났어?”

방문이 열리고 역시나 익숙한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기가 가득했던 서도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이 막막한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을 만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이넬.”

“흐음~. 도화 맞아?”

“무슨 소리야?”

하이넬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흥미롭다는 듯 서도화의 주변을 돌며 그를 관찰했다.

“뭐하는 거야?”

“도화, 너 좀 어려진 거같다?”

“뭔, 아. 그렇지.”

서도화가 제 옷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보니 그때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도플갱어의 몸 속에 들어가 활동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진짜 서도화의 몸으로 차원이동이 되었던 터라 하이넬이 보기엔 약 5년 정도 어리게 보일 것이다.

“하아.”

서도화는 한숨을 내쉬곤 창밖을 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환경은 확실히 마왕이 있던 예전에 비해 무척 좋아졌다.

바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독기도 사라졌고 언뜻언뜻 푸릇한 풀과 나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들리는…….

“아악! 이, 이, 미친놈이! 돌아오자마자 동료를 갈아 마시네!”

“동료? 여기 동료가 어디있어? 내 눈엔 나 없는 동안 내 재산에 손댄 도둑 새끼 하나만 보이는데?”

“잘못했다니까! 한탕만 하고 바로 채워 넣으려아아악!!!!”

“아 좀 그만 좀 해! 미친놈들아!”

“내버려 둬. 재밌는데 왜? 근데 쟤가 따로 모아둔 돈이 있대? 어디? 왜 그걸 말루스만 알아?”

“아서라.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말루스처럼 처맞고 싶어서 그래?”

“아니 뭐. 하하하하흐흐흐!”

여전히 바보 같은 동료들의 소리.

서도화의 표정이 퉁명해졌다.

시끄러운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때보다 훨씬 활기가 도는 걸 보아 먹고 살 만한가 보다.

그리고 그들 동료들의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퍼억! 콰앙!!!

굉음과.

“이런 쌍놈 새끼야! 그동안 내 돈으로 얼마나 해 처먹었냐? 금고가 비었잖아! 그게 뭔 돈인 줄 알아? 집 수리비라고 개새끼야!”

“그, 그런 거였어?”

“넌 오늘 뒈졌다. 내가 미쳤지. 어디서 들일 동료가 없어서 저런 쥐새끼를!”

“미, 미아아아악악!!!!!”

아덴의 목소리… 와 말루스의 비명 소리.

이야 아덴, 역시 너 여기 있었구나.

서도화가 체념한 얼굴로 웃었다. 아마도 이곳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적응하고 동료랍시고 붙어있는 도둑놈 새끼를 족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도화는 저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곤 하이넬에게 물었다.

“하이넬 네가 손쓴 거야?”

“너희 이곳으로 돌아온 거? 당연하지. 시스템인지 뭔지 하는 재수없는 놈이 알려준 좌표가 꽤나 도움됐어.”

“……근데 왜 나까지.”

서도화가 마른세수를 했다. 아덴이야 그렇다 치고 서도화는 이미 몇 번 하이넬과 연락을 하며 상황을 설명했었다.

서도화는 저쪽 세계 사람이며 모든 임무를 마치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것뿐이라는 말까지 모조리 설명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하이넬은 서도화까지 이 세계로 도로 불러들인 걸까.

“혹시 내가 안 오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아니, 그런 건 없었어. 아, 물론 황제가 널 다시 보고 싶어 하긴 하지만 그런 걸로 불러들이진 않지.”

“그럼?”

하이넬이 세상 근심걱정 없는 얼굴로 화사하게 웃었다.

“보고 싶어서~”

“뭐?”

“보고 싶어서 불러들였다고. 뭐 연락이야 가끔 하긴 했지만 기억 안 나? 여기서 우리 어떻게 헤어졌는지.”

순간 하이넬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서도화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무려 5년이나 함께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 서도화는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일언반구 없이 그저 잘 있으라는 시답잖은 인사나 건넸으니 동료들 입장에선 무척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도화의 입장에선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동료들이 알게되면 ‘어차피 너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열심히 하지 않는다.’라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끝까지 비밀로 했던 거다. 그리고 서도화가 그리 돌아가게 되면 아덴이 어련히 알아서 동료들에게 설명해줄 것으로도 생각했다.

설마 아덴도 함께 그 세계로 갈 줄은 몰랐으니 그리 비정한 이별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런고로 그 일에 대해선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니……?

서도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돌아갈 방법은… 있겠지?”

물론 일반 텔레포트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과 술식을 소모해야 함은 안다. 사실 편도행 텔레포트나마 겨우겨우 열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마 하이넬이 그렇게 대책 없이 서도화까지 불러들였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론 하이넬이 뒤끝도 심하고 한번 화가 나면 절대 잊지 않는 데다가 빠꾸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동료가 진짜로 곤란할 만한 일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하! 글쎄~! 돌아갈 수 있을까? 하하핫!”

‘……믿어도 되나?’

만약 하이넬이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면 서도화는 동료와의 반가운 재회는커녕 이 시간부로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시스템을 부르짖으며 멱살을 흔들어재껴야 했다.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지는 서도화를 본 하이넬이 깔깔 웃었다.

“쫄기는. 농담이야. 차원 텔레포트 방법은 이제 확실히 알았어. 그러니까 널 돌려보내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어. 물론 시간은 좀 걸려.”

아덴만 차원이동 시키는 것도 무척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하이넬과 동료들의 마나는 물론이고 마석 또한 상당수를 써야만 했다.

거기다 차원이동 술식이 어찌나 복잡한지 하이넬은 텔레포트 문양 앞에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술식만 달달 외우고 있어야만 했다.

그 짓을 아덴과 서도화 둘이나 했으니 아마 한동안은 간단한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서도화가 혀를 찼다.

“그러길래 나는 뭐 하러 끌고 와? 아덴만 했으면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았을 거 아니야.”

“아,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도화 네가 마지막에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사라지던 걸 생각하니 빡돌더라고.”

“…….”

하이넬 여전히 언사가 거치네.

“한번 살다가는 인생 가끔은 마음이 시키는 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 하다못해 한번 걷어차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불러들였지.”

“……미안.”

“그러니까 일어났으면 얼른 밖으로 나가볼래?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침대 차지하고 누워서 염병 떨지 말고.”

“…….”

하이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칼날처럼 날아와 꽂혔다. 아무래도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돌아가 버린 게 어지간히 열받았었던 모양이다.

서도화는 얌전히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동료들과 아덴, 그리고 그에게 맞고 있던 말루스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오랜만이다? 이 나쁜 놈아.”

“네가 감히 그따구로 정도 없이 인사하고 그냥 가?”

“너 때문에 우리는 어? 승리의 축배도 못 들고 걱정만 했다고!”

“저 배신자 새끼. 드디어 나왔구나!”

아. 아무래도 서도화를 걷어차고자 이를 갈고 있던 건 하이넬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도화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조금씩 뒤로 빠졌다. 슬슬 도망치려는 각을 잡는 서도화를 보며 동료들이 사악한 얼굴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 자식들아! 어떻게 약한 나한테 여럿이서 달려들수가 있어? 하다못해 하프라도 들고 있게 해주던가.”

“싫어! 너 하프 들면 무적이잖아!”

“보나 마나 네놈 새끼들은 정화도 안 통한다면서 하프로 머리나 찍어버리겠지!”

“도, 도화!”

다행히도 서서히 조여오는 동료들을 보며 불안에 떨던 서도화를 늘 그를 들쳐메고 다녀주던 동료 둔투프가 끄집어내 구출해주었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아덴은 서도화를 위협하던 동료들을 싸그리 걷어차 날려버리곤 서도화에게 다가왔다.

“도화, 할 말 있으니까 잠깐 나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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