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62화 (262/270)

제262화

서도화는 아덴을 따라 걸으며 그를 힐끔거렸다.

원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은 무척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덴 또한 어메스로서의 활동을 모두 내팽개친 채 갑작스레 돌아오게 된 것이 무척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진짜 큰일 났네.”

“그니까. 곧 있으면 콘서트 연습 시작인데 이래가지곤.”

“그것도 그건데 더 큰 문제는 마왕 혼자 거기다 두고 왔다는 거지. 그 새끼가 사람들한테 이걸 뭐라고 설명하겠냐.”

아덴이 짜증스레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그러면서도 두 눈으론 변화한 자신의 세상의 전경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서도화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아덴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조금씩 인간이 살아갈 만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이 세계를 보며 어메스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곤 있을까?

그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절대로 고작 어메스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굳이 그쪽 세계로 돌아가는 일은 하지 않겠지.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무척 강한 녀석이니 어메스가 걱정되긴 하겠지만 아마 갑작스러운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도 미련 없이 보내줘야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냥 같은 한국 내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사람은 그룹 활동하겠다고 끌고 갈 수도 없으니.

‘그래도 기왕이면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미 서도화에게 아덴은 용사 그 이상이다. 그와 어메스로서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기뻐했던 추억이 점점 많아졌던 터라 되도록이면 그보다 많은 일들을 같은 그룹의 멤버로서 같이하고 싶었다.

“…….”

아덴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 보이는 서도화를 힐끔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 서도화와 아덴 사이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어색한 정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밥 먹겠다고 나와선 이게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근데 어디 가?”

서도화의 물음에 아덴이 피식 웃었다.

“일찍도 물어본다.”

얼마나 생각이 많았으면 산에 오른 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목적지를 물어보는지.

대충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겠지만.

아덴이 산의 중턱을 가리켰다.

“저기로 갈 거야.”

“저긴 세계수 뿌리 보관해둔 곳이잖아.”

이 세계에도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말하는 세계수라는 것이 존재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나무로 한때 신성시되어 보호를 받았지만 종말에 가까워진 세계에선 그마저도 무사하질 못했다.

세계수는 말라비틀어졌고 그 이후 세상의 멸망 속도가 훨씬 빨라지게 되었다. 결국 세계수를 보호하던 요정들이 이 사태가 진정되면 세계수가 부활시킬 수 있도록 아덴 일행이 그 뿌리를 거둬 보관하게 되었다.

세상을 부흥시킬 중요한 나무의 뿌리이니만큼 쉽사리 손이 닿지 않을 곳에 숨겨 봉인해두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산의 중턱에 있는 동굴이었다.

“잠깐…….”

목적지를 알게 된 서도화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아덴이 서도화를 돌아보았다.

“왜.”

“저길 걸어서 올라가겠다고? 진심이냐?”

“……너 뭔가 돌아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잔뜩 기가 죽어선 안타까울 정도로 눈치나 보고 있지 않았나?

절벽에 가까운 산에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우울한 표정은 어디로 가고 질색팔색하며 아덴을 흘겼다.

“미쳤어? 저길 내가 어떻게 올라가? 진짜 걸어서 올라가?”

“그럼 날아가리? 잔말 말고 따라와. 이런 절벽 한두 번 오르는 것도 아니고.”

“둔투프 불러 둔투프!”

“넌 예전부터 둔투프를 전용 이동 수단으로 여기는 거 그만둬야 해.”

둔투프는 거인족인 동료로 절벽을 오르거나 산을 넘을 때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서도화를 들쳐메고 이동시켜주던 이였다.

서도화가 이를 갈았다.

“네가 뭘 알아? 넌 평범한 사람의 심정을 몰라.”

“평범? 내려가서 하프라도 사 올래? 하프든 너는 평범하다곤 말 못 하는 놈이지.”

“아 싫어. 하프 지고 산 오르면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서도화는 툴툴거렸지만 결국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두 사람은 세계수 뿌리가 있는 동굴에 다다랐다.

“근데 여기는 왜?”

아덴은 동굴 입구의 봉인을 풀며 말했다.

“여기 내가 있대.”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자연스레 동굴 안으로 시선을 옮긴 서도화가 굳었다.

세계수의 뿌리 곁에 마치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덴이 있었다.

“너잖아…….”

“애들이 여기로 옮겨놨대. 세계수 옆에 있으면 관리가 쉽다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오히려 지금의 아덴보다 익숙한 생김새의 아덴이다.

지금 서도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덴은 정확히 말하자면 아덴의 도플갱어. 다른 세계의 아덴인 로건 리다.

진짜는 저 반송장이 된 채 누워있는 쪽이다.

“와, 나 정말 죽은 것 같네.”

아덴은 감회가 새로운듯 멍하니 자신의 육체를 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주변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뭐해?”

여전히 아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서도화가 묻자 아덴이 씨익 웃으며 가까운 곳에 있던 자신의 검을 주워들었다.

“이거 가져가려고. 그리웠다 진짜.”

“아.”

그러고보니 아덴은 한시도 제 검을 놓지 않으려 했었다. 소드마스터에게 검보다 소중한 건 없는 만큼 검을 친구로 부르며 소중히 여겼었다.

“한동안 관리를 안 해서 분명 무뎌졌을 거야. 내려가서 대장장이한테 맡겨야겠어. 내가 이래서 얼른 돌아오고 싶어 했지.”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도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무기 손질이었다.

“돌아왔으니 하나하나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그래.”

서도화의 표정이 다시 씁쓸해졌다. 그래, 이곳에서 할 일이 많았을 테지. 오히려 갑작스레 저쪽 세계로 넘어갔으면서 어떻게 조바심 내지 않고 잘 버텼나 대단할 정도다.

무기 손질은 물론이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집수리와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 또한 모든 일이 끝난 후 아덴이 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표정 봐라.”

아덴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서도화의 모습을 재밌게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적 앞에서는 전혀 안 그러면서 동료 앞에선 허술하리만치 얼굴에 생각이 보이는 편이다.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서. 그동안 티 안 내고 활동 열심히 해줘서 고마웠어. 진심이야.”

지금까지 아덴은 열심히 해주었다. 더 욕심내진 말자. 비록 어메스에게는… 큰 타격이 있겠지만……. 그보다 동료의 행복이 우선이지……. 서도화가 우중충하게 말하자 아덴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뭔 소리 하는 거야?”

“이제 돌아왔으니까…….”

“나 아이돌 계속할 건데?”

“……뭐?”

아덴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인 줄 아냐? 콘서트 준비도 해야 하고. 활동 계속해야지.”

“그래도 돼?”

“날 뭐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 그게 가능해?”

아덴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서도화는 자신이 이곳으로 돌아오면 바로 어메스에게서 손을 떼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이넬이 이곳으로 자신을 불러들이기 전까진 이 세계로 다시 돌아오면 다시는 어메스를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러기 싫어도 어메스 일은 어쩔 수 없이 못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았다.

“하이넬에게 못 들었어? 하이넬이 마나를 회복하고 마석만 구하면 언제든지 오갈 수 있다잖아.”

“아.”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참. 서도화가 머쓱하게 웃었다.

물론 하이넬이 마나를 완전히 회복하는 건 며칠의 시간이 걸리고 대량의 마석은 구하기 무척 힘들지만 어쨌든 차원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마석은 마왕이 사라진 케이클랍스를 털어보며 삼백 년치는 나올 거니까 뭐.”

아덴이 싱글벙글 웃었다.

“콘서트 준비하러가면 되겠네.”

물론 하이넬의 마나가 회복될 며칠 간의 공백에 대해 케이가 잘 얼버무리며 버텨줄 수 있을까가 걱정되긴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 새끼도 바보는 아니니까.’

“……와 씨 다행이다.”

아덴은 이제야 안도하는 서도화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동안 어메스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그걸 귓등으로 듣고 전혀 믿지 않았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사실 아덴도 돌아오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하이넬에게 돌아갈 방법을 천천히 찾으라 말했던 것이니까.

하지만 아덴은 이곳으로 돌아온 직후 깨닫게 되었다.

설령 하이넬이 왕복이 아닌 오로지 한 길만 열리는 텔레포트만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덴은 어떻게든 그쪽 세계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았을 거다.

하이넬에 의해 텔레포트가 되고 자신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큼 분노가 치밀었고 또 슬펐다. 하이넬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부터 물었었다.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어느샌가 어메스로서의 생활에 진심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아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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