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63화 (263/270)

제263화

아덴은 차근차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원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덕분에 제 가족들의 무덤을 집이 있던 고향 마을로 옮겨줄 수 있었고 마왕을 처치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협력자들을 만나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네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네.”

“물론 그대들이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 마왕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니 걱정을 안할수가 없었어.”

아덴과 서도화가 이쪽 세계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을 때 협력자였던 프리메튼 제국의 황태자와 귀족들이 두 사람을 찾아왔다.

그들은 갑자기 두 사람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걱정이 많았는지 마왕을 처치해 세상이 빠르게 복구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낯빛이 좋지 않았다.

아덴은 마른 천에 기름을 묻혀 검을 닦으며 심드렁하게 코웃음을 쳤다.

“다 죽어가는 놈이랑 같이 사라지는 게 뭐 대수라고.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닌데.”

모험을 하며 위험을 겪다 보면 종종 적의 함정에 빠져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는 경우가 꽤 있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건만 저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것처럼 굴곤 했다.

사실 아덴 일행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없어지면 세상이 뒤집히는 건 맞긴 했다. 그래도 그 걱정의 정도가 괴랄한 수준이긴 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태도가 심히 불량한 아덴 대신 서도화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새삼…….’

옛날 생각나네. 옛날에도 시비는 쟤가 걸고 수습은 내가 했는데.

눈앞의 상대는 황태자와 고위 귀족들이다. 물론 그들이 아덴 일행에게 몇 번이나 신세를 지며 이젠 거의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이긴 하지만 일단 아덴과 서도화보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많은데다 황태자쯤 되면 죽마고우라고 해도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그런 사람한테 따박따박 시비조로 말을 하고 있으니 황태자야 이젠 익숙해져 별 신경 안 쓴다고 하더라도 함께 온 귀족들의 시선은 솔직히 꽤나 따끔했다.

“그래, 어쨌든 건강한 모습으로 무사히 와줬으니 되었다. 하하, 보아하니 두 사람 다 잘 지낸 모양이구나? 뭔가 다섯 살은 어려보이는 것이.”

와, 눈썰미 좋네.

다섯 살 어려진 것 맞다. 서도화는 이곳에서 사용했던 몸이 아닌 원래의 몸으로 아덴은 로건 리의 몸으로 왔으니까.

“그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덴이 통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자 황태자와 귀족들은 아예 서도화에게 시선을 돌려버린 채 물었다.

“마왕은 어찌되었지? 당연히 자네들이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서도화는 웃는 낯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제 마왕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쪽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지만 뭐, 상관있어?

서도화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들은 확연히 밝아진 표정으로 서도화의 양손을 붙들었다.

“정말, 정말 고생 많았어! 이 세계는 자네들 덕분에 회생한 거나 다름없네!”

그들이 기뻐하는 건 그저 완벽한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두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 좋을까. 이 은혜를 우리는 평생을 바쳐도 갚을 수 없을 것이네.”

서도화가 싱긋 웃었다.

“아이 뭐, 저희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도화…….”

황태자가 감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입니다.”

“으응? 하, 하지만?”

서도화가 마치 현인과 같은 얼굴로 걱정 가득한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마족과의 결투가 무척 길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마족은 무척이나 강했습니다. 백성들을 지키며 그들과 싸우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죠.”

저거 뭐하냐? 아덴이 처음으로 검을 손질하던 손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린 채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남들이 보기엔 현자의 얼굴이겠지만 아덴이 보기엔 그저 속이 시커먼 사기꾼이었다.

서도화는 그 시선을 철저히 무시하고 할 말을 이어나갔다.

“동료들은 가진 걸 모두 내어놓고 그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하다못해 가진 돈과 집까지!”

“그래, 그건 알고 있네. 그대들이 모든 것을 바쳐 인류를 구했다는 걸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일이 끝난 지금은?”

“…….”

“그저 무식하게 싸움박질만 할 줄 아는 거렁뱅이들일 뿐이죠!”

“거, 거렁… 뱅이…….”

곁에 앉아있던 동료가 당혹스러움에 입을 뗐지만 하이넬이 그 입을 막아버렸다.

“내비둬. 우린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먹고살았던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겠죠? 서도화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황태자가 부담스러운 얼굴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대들이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싸워줬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 안그래도 섭섭치 않게 보상해줄 생각이었네.”

“역시! 이래서 제가 프리메튼 제국을 좋아한다니까요! 제2의 내 고향! 목숨 바쳐 지켜낼 만했다! 혹시, 저희 마련했던 집들도 싹 다 무너졌는데 그 부분은…….”

“다, 당연히 다시 세워줘야지! 뭘 못 해주겠는가! 우리들의 은인에게 줄 선물이라 하면 모두가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네!”

“하하하!”

신나선 황태자에게 돈을 갈취하는 서도화를 보며 아덴이 혀를 찼다.

쟤도 대단하다. 저래봐야 원래 세계로 돌아갈 테니 쓰지도 못할 텐데 황태자만 보면 습관적으로 돈 이야기부터 꺼내네.

서도화는 아덴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그저 기분 좋게 깔깔 웃었다.

아덴에게 이곳에서의 할 일이란 가족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그간의 일들을 보고받고 복구를 돕는 것이지만 서도화의 할 일은 바로 이것.

저 순진한 동료들의 생활비를 마련해주고 병자들의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두 사람의 방에 머무르던 황태자와 귀족들이 돌아갔다.

“내일쯤이면 너희 다시 저쪽으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하이넬이 품에 한가득 마석을 안아 들곤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귀족들이 하이넬에게 선물이랍시고 귀한 마석을 잔뜩 안겨주고 간 모양이다.

“이것 봐라! 이 정도면 내 마나를 쓰지 않고도 차원이동 시킬 수 있겠어!”

“으흐흐, 역시 우리 도화 형님! 프리메튼 황태자는 올 때마다 형님한테 털려버린다니깐요!”

“봤냐? 이젠 귀족들이 도화 형님 앞에선 말 안 해도 돈주머니부터 꺼내 들고 기다리잖아! 이게 전에 말했던 그거야 그거! 반복된 학습효과!”

쯧, 저 순진한 것들.

서도화는 마석과 돈주머니를 들고 행복해하는 동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저게 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읍소인 줄도 모르고 좋댄다.

저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서도화가 한숨을 쉬며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손질한 검을 내려놓은 아덴에게 다가갔다.

“아덴 지금부터 뭐 할 거 있어?”

“전혀. 이제 할 건 다 했어. 아, 최근에 독기 때문에 사라졌던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더라. 그거나 잡으러 갈까? 같이 갈래?”

그의 물음에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난 안 갈래.”

“그럼 넌 뭐 할 건데?”

“연습.”

서도화의 말에 아덴이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연습할 거라고. 오랜만에 고향 와서 좋은 건 알겠는데 너 다시 그쪽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면 여유 부릴 땐 아니지 않니?”

“뭐…….”

“우리 콘서트 해야 하잖아.”

아 맞다. 아덴이 꽉 눈을 감았다.

굳이 콘서트가 아니라도 이들은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가 돋치는 사람처럼 연습하지 않았던가.

그쪽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이곳에 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건 없었다.

연습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해야지… 그래, 연습. 근데 여기서?”

“장소가 뭐가-”

장소가 뭐 중요하냐고 말하려던 서도화가 문득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밥 뭐 준답니까? 황태자 왔다 갔는데 진귀한 술도 당연히 가져왔겠죠?”

“술도 술이고 식재료도 한가득 가져오셨다. 오늘 기대해라 얘들아!”

길가다 돌 뿌리에 걸려 엎어지기만 해도 바닥을 구르며 웃어젖혀서 쪽팔리게 만들 놈들이 한가득 모여있다.

여기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면? 아마 한 3개월은 흉내를 내며 놀려댈 것이다.

아, 이 세계엔 잘 안 올 테니 3개월이 아니고 3년은 놀려댈지도 모른다.

서도화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자. 저 미친놈들 들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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