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64화 (264/270)

제264화

“와 진짜 이 동네 화장실은 왜 이따구냐? 개같이 더럽네 진짜.”

“…….”

“나 예전에 저딴 쓰레기오물밭을 어떻게 화장실이랍시고 썼지? 미쳤다 진짜.”

“…….”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 하나는 그쪽 세계가 확실히 나아. 확실해. 화장실 하나만 보고 거기서 사는 거 쌉가능이다.”

서도화는 아덴의 화장실 예찬을 들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 화장실이 굉장히 열악하기는 하지.

아무리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던 아덴이라도 이미 저쪽 세계의 청결한 화장실을 사용해본 이상 이곳의 화장실, 아니 쓰레기장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딱 서도화가 그랬다. 5년 내내 적응하지 못할 정도의 열악함이었으니까.

아덴은 산에 오르는 내내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만 해댔다.

놀랍게도 나무란 나무는 죄다 말라비틀어졌던 이 산에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 푸릇푸릇함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미 적응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저쪽 세계에 비해 이곳의 푸릇함은 아직 별 볼 일 없는 수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두 사람은 산의 정상에 가까워지고서야 겨우 아무도 없는 연습할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와…….”

서도화가 헛웃음을 흘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저기 밑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왔단 말이지?

어쩐지 오랜만에 죽도록 힘들더라.

문득 옛날 생각이 자주 나는 하루였다.

두 사람이 올라온 산은 들판이나 뒷산으로 말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료들에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만은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며 사람이 없는, 혹은 절대 오지 않을 곳을 찾다 보니 때아니게 이 험한 곳을 올랐다.

“허억…… 헉…….”

익숙한 힘듦이었지만 죽어도 적응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시발…. 나는 아무 데서나 해도 상관없었는데.

동료들 앞에서도 기꺼이 춤추고 노래 부를 수 있는데.

서도화는 괜한 억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문득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자는 건 자신의 제안이었음을 깨닫고 주저앉았다.

“야……. 야아, 난 바로는 못 해. 죽어도 못하니까 너 먼저 연습하던가 해. 쉬다가 할 거야. 나는.”

“한심하긴.”

“어떻게 너는 남의 몸을 가지고 아무렇지가 않냐고.”

아덴의 몸도 따지고 보면 아덴의 몸이 아닌 로건 리의 몸인데 힘들지도 않나. 어떻게 숨 한번 거칠어지지가 않지?

서도화가 기인을 보듯 그를 보자 아덴은 으쓱해져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 정신이 중요한 거야.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거고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생각하면 별 게 아닌 게 되는 거지.”

“궤변 늘어놓지 마. 죽여버린다. 진짜로.”

“…….”

와 그립다. 옛날 서도화를 보는 듯하군.

아덴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지금이야 왜인지 모르게 자상하고 열정적이고 욕도 잘 안 하는 서도화지만 옛날엔 딱 지금 같았다.

늘 무기력하고 예민했으며 상황이 뭣 같으면 욕도 잘했다.

“앞으로 이런데 올 거면 둔투프 불러! 아오씨!”

역시 힘드니까 본색이 나오는구나.

아덴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서도화와 거리를 벌리고 섰다.

“알았으니까 그럼 거기서 보고 나 있어. 넌 연습 안 해도 잘하지만 난 연습 안 하면 영 못 따라간다고. 노래나 불러줘.”

“헉……. 흐억……. 우욱…….”

“……아니 됐다. 노래도 내가 부를 테니까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아덴이 고개를 저으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덴의 자그마한 노래 소리를 들으며 서도화는 완전히 뒤로 드러누웠다.

와 이렇게 힘들었던 걸 잊고 고작 안무 연습 좀 빡세게 했다고 힘들어했다니.

이제 생각하면 참 배가 불렀었구나. 다시 돌아가면 앞으로 진짜 열심히 해야지. 어쩌면 이 세계로 넘어왔었던 것도 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일지도 몰라. 진짜 죽도록 열심히 사는 게 뭔 줄 몰랐던 거지.

서도화가 자아 성찰을 하는 동안 춤까지 추기 시작한 아덴이 불만스레 서도화를 보며 투덜거렸다.

“야, 연습 안 할 거면 하다못해 지켜보기라도 해.”

“어?”

“피드백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하루라도 제대로 연습 안 하면 우나나쌤이 바로 알아차린다고.”

“아, 보고 있을게. 계속해.”

서도화가 드러누운 상태로 고개만 슬쩍 돌려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보며 혀를 차더니 다시 흥얼거리며 춤추기 시작했다.

You said, you'll be unhappy I said, but it doesn't matter 떠나려고 하면 너도 아쉬워하며

돌아보잖아

“…….”

한야의 파트를 부르는 아덴을 보며 서도화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잠겼다.

‘저걸 다 외우고 있네.’

한때 아덴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밥 굶기 싫으면 제대로 하라는 서도화의 협박에 못 이겨 반강제로 마지못해 연습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랬던 아덴이 이젠 자신의 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의 파트도 곧잘 외웠다.

그것도 데뷔곡의 파트를.

아덴이 다른 멤버의 파트를 이렇게 정확히 외우고 있다는 말은 평소 일 때문이 아니고도 꾸준히 어메스의 노래를 들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서도화가 조금 더 고개를 빼 아덴과 산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한때 죽도록 수련하고 전투하던 곳에서 춤 연습을 하는 놈을 보니 참 많은 것이 변한 게 체감되었다.

그리고 이건 서도화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아덴, 네 파트 정도는 웅얼거리지 말고 제대로 부르는 게 좋겠다. 그리고 박자가 좀 느리지 않아? 혼자 부르는 거라고 해도 박자는 맞춰야 연습이 될 텐데. 춤 정확도 백날 연습해봐야 속도 못 따라가면 얼버무리게 되는 거 알지?”

“어. 박자 느린지 몰랐어.”

“으으…….”

겨우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킨 서도화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아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노래 부를 테니까. 다시 해봐. 너는 동작이 무거워서 속도 따라가는 걸 중점으로 연습해야 해.”

“근데 생각해보니까 힘들면 네가 노랠 불렀으면 됐잖아. 알아서 치유되는 거 아닌가?”

“아.”

맞네. 나 치유사였지 참.

서도화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다시 해.”

“어.”

아덴은 준비 자세를 잡다 피식 웃었다.

“야 새삼 생각하는데. 재밌다.”

“뭐가?”

“이러고 있는 거. 나는 솔직히 원래 세계로 돌아오면 춤, 노래 따위 쳐다도 안 볼 것 같았거든.”

애초에 열심히 했던 것도 서도화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위해서였고. 정말로 처음에는 자신이 춤추고 노래한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 만큼 보기 싫었다.

그런데 막상 이 세계에 돌아와 잠시 잊고 있던 안무 연습을 시작하니 묘한 그리움과 함께 즐거워졌다.

마치 저쪽 세계에서 아주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진짜 숲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재밌어.”

천성이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가? 음악에 취향이라는 게 생길 정도로 흥미를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도화, 그러니까 멤버와 이렇게 합을 맞춰보는 게 즐거운 걸까?

아무튼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나 아마 이거 계속할 거 같은데?”

정말로 하이넬이 편도가 아닌 왕복할 수 있는 텔레포트를 연구해주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갑작스레 돌아와 다시 저쪽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면 많이 아쉽고 심지어 미련까지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손바닥 뒤집듯 미련을 떨쳐버리기엔 너무나 즐거운 추억이긴 했다.

뭐, 저기서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서도화는 이 기분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 수 있을 때까진 집요하게 이 재미를 따라 어메스 활동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이 세계에 굳이 붙어있어야 한다는 미련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뭔 소리야. 계속한다고 저번에 말했었잖아.”

“아 됐어. 네가 내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리 없지. 그쯤 쉬었으면 이제 좀 일어나지?”

“하이고. 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이 절벽을 기어 올라와서 춤을 추네.”

이 세계만 오면 사람이 왜 이렇게 무기력해지나 했더니 그냥 산이고 물이고 공기고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서 힘드니 놔버리는 것이었구나.

서도화가 마지못해 일어나 터덜터덜 아덴의 곁으로 향하던 때,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덴! 도화!”

거인족 동료 둔투프의 목소리였다. 둔투프가 어느새 산을 올라 두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이넬이 얼른 내려오래! 급하대!”

아니, 나 이제야 겨우 숨 좀 돌렸는데…….

서도화가 울먹이더니 냉큼 달려 둔투프에게 매달렸다.

“둔투프…….”

“네가 그럼 그렇지. 업고 내려가줄 테니까 매달려 있어.”

“고맙다 진짜. 나 너 아니었으면 이 세계 살이가 한층 더 어려워졌을 거야.”

“체력을 기르라니까 참나.”

아덴은 아쉬운 듯 연습을 멈추고 둔투프를 따라 산 아래로 향했다.

* * *

한편 눈앞에서 두 명의 멤버가 사라진 장면을 목도한 케이는 서도화가 떨어트린 통신석을 집어 든 채 허망하게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만 두고…….’

그의 막막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