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66화 (266/270)

제266화

케이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오히려 화면을 통해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이 조바심이 날 정도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던 케이가 잠시 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

-그래, 그럴 거다. 그런 마굴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너 같은 마왕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완전히 사라질텐데, 뭐 챙겨야 할 건 있어?

케이는 또다시 말이 없어졌다.

역시 아쉬운 걸까? 미련이 남는 걸까? 두 사람은 무표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미련이 남는다고 할지언정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케이는 꽤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챙겨야 할 게 있다.”

-뭔데?

“하지만 너희들은 찾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곳에 그것을 숨겨두었다. 그러니 너희에게 부탁하겠다.”

-부탁?

“그래, 부탁.”

케이는 무척이나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직접 케이클랍스를 없애도록 하겠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는가?”

서도화와 아덴이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케이에게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직접 없애겠다고?

“그래.”

-직접?

“몇 번 말하게 하는 것이냐.”

-그러니까.

아덴이 황당하다는 얼굴과 말투로 물었다.

-네가, 여기 와서, 직접 없애겠다고? 케이클랍스를?

“그래.”

-저거 미친 놈 아니야!

-어어이고! 야, 야! 진정해!

아덴이 흥분해서 날뛰는 것을 서도화가 겨우 붙들어 진정시켰다.

-저게 돌 맞아 죽고 싶어 환장했나! 지가 뭔데 이리 넘어오겠대?

-아 좀! 설치지 말라니까!

-멤버들한테 말 좀 잘해두라고 연락했더니 뭔 개소리를! 뻔뻔한 것도!

-아 이유나 좀 들어보자고.

“그곳엔 아직 많은 마족들이 살고 있다. 아덴.”

케이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아덴은 여전히 씩씩거리긴 했지만 서도화에 의해 그럭저럭 케이의 말을 들을 만큼은 진정되었다.

“적지 않은 수가 숨어있지.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래 알지. 케이클랍스에서 마족의 기척을 느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그래, 그곳은 여전히 마기가 가득하다. 마기는 마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분명 너희들이 불리한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예전이었으면 옳다구나 했을 것이다.

이전 케이클랍스에 저들이 쳐들어올 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군단과 마법, 그리고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까지 합쳐져 마족으로선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인원에게 급습을 당했었다.

반대로 말하면 케이클랍스는 그 정도 준비는 하고 들어가야 겨우 뚫어낼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마왕이 사라지고 마족들이 죄다 갈린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곳을 저리 가볍게 간다?

불가능하다. 케이클랍스가 뚫기 힘든 건 마족의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둑한 공간, 시야 확보가 어려워 기척에만 의지해야 하는 곳에서 사방이 마기로 둘러싸여 마기와 마족의 기운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도 있다.

케이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내고 설계한 공간이니 오죽하겠는가.

매우 위험하다. 더군다나 한동안 검을 잡지 않았던 아덴에겐 더더욱.

지금까지 케이의 행동을 감시하고 경계, 견제했던 아덴과 서도화가 사라지면 케이는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이젠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쓸데없는 경계를 받을 필요도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어메스 생활을 하고 싶으면 하다가, 마나를 모아 원래의 세계로 가고 싶으면 그리할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눈칫밥을 먹는 편이 낫고 감시를 빙자한 장난에 당하는 것이 배로 좋다.

그러기에 이제 와서 새삼스레 지키고 싶은 것이다.

‘나의 멤버다.’

이미 마음을 정한 듯한 케이를 보며 아덴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괜찮겠어? 네가 쌓은 모든 것을 네 스스로 무너트리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괜찮다.”

오로지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 평생에 걸쳐 쌓아 올렸다. 흙을 퍼내고 땅을 다지고 성을 짓고 모든 것에 케이의 손길이 닿았다.

그러는 사이 케이클랍스는 고향이 없는 그에게 고향이, 가족이 없는 그에게 가족이 되어준 소중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것을 제 손을 파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것인 케이클랍스를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그 세계엔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고 죽음으로밖에 갚지 못할 죄를 그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서도화가 슬쩍 현실적인 말을 꺼냈다.

-직접 와서 케이클랍스를 없애버리겠다는 네 각오는 좋은데……. 그럼 어메스는?

-어?

아덴이 잊고 있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곤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쟤가 오는데 며칠 걸릴 거고 우리가 다시 돌아가는데 또 며칠 걸릴 거고. 연습이야 여기서 한다 쳐도 그 정도면 휴가도 좀 아슬아슬하지 않나?

“응?”

-우리가 돌아가는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일지 몰라도 너까지 오면 원래 예정에서 플러스 열흘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건데, 휴가야 아슬하게 맞춘다 쳐도 그동안 셋 다 연락 안 되고 어떻게 버틸 건데. 우리 어메스야 이 새끼들아.

-아…….

“아…….”

-그리고 뭣보다 너 어떻게 올 건데?

“응?”

서도화가 단호하고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너 다시 여기로 돌아올 방법 알고 있냐? 모르지? 모르니까 지금까지 거기 있는 거겠지.

“그, 그건…….”

-설마 우리가 너 텔레포트 시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

그러고 보니……. 사색이 된 케이에게 아덴의 한 마디가 쐐기를 박았다.

-에이 설마. 이제 인간인데 양심은 챙기겠지. 마왕이 건방지게 우리가 모은 마석에 우리 하이넬 마력까지 죄다 소모시키며 텔레포트 이용할 생각을 했을 리 없잖아.

“…….”

-그렇지? 애가 바보가 아닌 이상…….

“…….”

-핵 하나 없어졌다고 얼빠진 생각을 할 리가…….

나 쟤네 싫어.

케이가 원망스레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하여튼 둘이 뭉쳐서 케이 하나 묻는 건 밥 먹는 것보다 잘하는 놈들이다.

케이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마음대로 해라. 죽든지 말든지.”

그때 아덴과 서도화의 옆에서 쌀쌀맞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데려오자. 데려오는 거 그거 뭐 어렵다고.

-하이넬, 진심이냐?

-진심이지 그럼.

하이넬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케이를 노려보았다.

-어이 마왕, 세뇌 마법 써서 그쪽 일행들에게 공백이 들키지 않도록 손부터 써놔.

“뭐?”

-설마 이 핵 없는 새끼가 핵없다고 세뇌 마법조차 못쓰는 건 아니지? 네 주특기잖아. 남들 조종해서 쓰고 버리는 거.

“……하, 할 수는 있다. 알겠다.”

케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넬이 한숨을 쉬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돌려보내려고 모아뒀던 마석으로 쟤 데려올 수 있어. 대신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에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쟤 핵은 없어졌어도 어쨌든 마왕이었거든? 겨우 이 세계에서 사라진 놈을 다시 데려오는 건 좀 위험하지 않겠어?

동료들의 말에 하이넬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아 생각을 해봐. 핵 빠진 새끼 데려와서 고기 방패 겸 마기 탐지기로 쓰는 게 위험하겠냐 우리끼리 무작정 쳐들어가서 어디 숨어서 기습할지 모르는 마족 상대하는 게 위험하겠냐? 머리가 안 돌아가?

-도, 돌아가…….

-일만 처리하면 아덴, 도화가 확실히 붙잡고 저쪽 세계로 돌아가 주겠지. 만약 뭔 일 있으면 그냥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쟤 이제 마왕 아니고 인간이잖아. 마법 좀 쓰는 수준의.

케이가 팍 고개를 숙였다.

그래 기억난다. 대마도사 하이넬. 상당한 지능을 가진 귀족 출신 여자인데 하도 세상이 험하다 보니 입도 함께 험해지다 못해 비틀어진 자다.

‘그냥 이제라도 안 간다고 할까.’

아마 저쪽 세계로 돌아가면 케이클랍스가 파괴되어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저 동료들의 험한 말을 귀에 피나도록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저들은 하이넬의 설득에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그럼, 뭐, 데려오든가.

화면에 비치지 않는 누군가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누, 누님 잠시 기다리쇼! 내가 밧줄이라도 가져올테니까. 저거 오자마자 이때다 하고 튀면 누가 잡아요?

-내가 잡아. 새끼야. 걱정 마.

스릉- 누군가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케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이건 업보다 업보. 그러니까 응당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아덴과 도화를 죽일 수는 없지 않는가!

케이가 울먹이며 획 고개를 들었다.

“결정했으면 완벽히 준비해두어라! 나는 얼른 돌아가 세뇌 마법을 걸고 다시 연락하마!”

-이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케이는 하이넬의 쌀쌀맞은 말을 끝으로 겨우 그들과의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통화일 뿐이건만 그것만으로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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