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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70화 (270/270)

제270화

“제길! 저 놈들이 갑자기 왜 이곳에…….”

동굴 같은 케이클랍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돌기둥. 마족들은 기둥 뒤에 숨은 채로 용사 일행을 노려보았다.

“분명 용사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하지 않았더냐!”

“네, 네!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용사뿐만 아니고 음유시인 또한 실종되어 한동안 이곳엔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럼 저건 무엇이냐!”

2년간 케이클랍스에 얼씬도 하지 않던 인간들이 케이클랍스에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저기 앞장선 붉은 검기의 남자는 틀림없이 그자, 인간들의 영웅 아덴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마족 중 하나가 저릿한 손끝을 느끼며 꽉 주먹을 쥐었다.

‘이 느낌은…….’

돌아온 건 아덴뿐이 아니다. 너무나 정순해 그 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족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자. 음유시인 또한 돌아와 버린 모양이었다.

“제길…….”

용사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음유시인까지! 이건 정말 위험하다.

차라리 용사만 돌아온 것이었으면 그럭저럭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매우 어렵긴 하지만 용사의 공격은 잘하면 피할 수라도 있으니까.

그러나 음유시인의 공격은 피할 수도 없다. 귓구멍을 막아도 파고들어 오는 하프의 선율, 노랫소리. 듣기만 해도 역겨운 인간의 소리들이 마족들의 심장을 쥐어짜듯 고통스럽게 했다.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명상은 주지 못하지만 음유시인의 선율에 멈칫하는 순간 용사와 그들 일행의 공격이 제 몸에 틀어박힌다.

번거롭기 그지없는 능력이 광범위하기까지 하니 어느 의미로는 가장 경계해야 하며 빨리 죽여야 하는 인물이 저 파티의 음유시인인 것이다.

그런 인간이 마왕을 처치하고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힘을 길러 머지않은 시기에 복수할 수 있겠구나, 적어도 이 케이클랍스 정도는 지키겠구나 했는데.

저것들이 설마 2년도 채 안 되어 돌아올 줄이야.

“어쩝니까? 저들의 기세가 상당합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저들이 이곳에 온 이상 피할 방도가 없다. 싸워야지. 다행히도 그리 인원이 많아 보이진…….”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마족이 문득 말을 멈추고 빤히 용사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인가?”

“예?”

마족이 용사 일행 중 누군가를 가리켰다.

“넌 저자가 어떻게 보이느냐?”

“저자? 어… 보지 못했던 자로군요. 전쟁도 끝난 마당에 새 동료를 데려온 걸까…… 어?”

그의 부하인 마족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가리킨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저 남자는…….

기세는 분명 많이 죽었지만, 아니, 죽었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미미하지만 어쨌든 그가 내뿜는 은은한 기운과 저 생김새.

저건 틀림없이…….

“마왕님?”

“……네 눈에도 그리 보이느냐?”

“예에, 하지만 마왕님, 아니 전 마왕은 죽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저리 흉하게 볼품없어진 모습으로 용사의 편에.”

“아니다. 멍청아. 마왕은 죽지 않았다.”

이전 차원을 넘어 다녀온 마족에게서 그곳에 그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러나 마왕이 어련히 계획이 있겠거니 하기도 했고 마왕의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마족들이 흥분해 인간의 구역으로 넘어가 되도 않은 보복을 할 가능성이 있어 고위 마족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한 채 다른 세계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으셨다고 했는데……?

이 세계는 글렀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땅 자체가 피폐해지기도 했고 용사 일행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 세상을 정복하는 목표 또한 쉽사리 이루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마왕은 조금 더 정복하기 쉬운 세상으로 넘어가 새로운 케이클랍스를 만들 장소를 찾고 계시는 거라고 그런 보고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제 눈앞에 보이는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누가 봐도 용사의 편에 서서 케이클랍스를 부수고 있는 저것은?

‘……누가 봐도 마왕이 틀림없거늘.’

그쪽 세계에서 힘을 기르고 상황을 살피고 있어야 할 마왕이 어째서 용사의 편에 서서 제 손으로 만든 이 공간을 없애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저렇게나 약해빠진 모습으로!

그때 마족은 문득 마왕을 직접 만나고 온 마족의 보고를 떠올렸다.

‘약해빠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거긴 인간밖엔 없더이다. 마왕께서는 힘을 숨기고 인간의 모습을 한 채 그들과 섞여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시려 하는 거겠죠.’

약해빠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도 했지.

그런데 만약 그게 힘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계획에 의해 인간의 모습을 한 게 아니라면?

마왕이 원래 인간이었음을 모르는 마족은 없다. 또한 그가 최후에 용사에게 어떻게 처치당했는지 확실히 아는 마족은 없지만 아마 용사라면 그를 제압하자마자 핵부터 제거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은.’

혹시 더는 마족을 이끌 힘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을 마친 그가 쯧 혀를 찼다.

부하가 아닌 내가 갔으면 마왕의 상태가 어떠한지 금방 알 수 있었을 터인데.

하필 운 좋게 차원 이동에 휩쓸려간 놈들이 감히 마왕 앞에 얼굴도 못들 놈들이기에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저건 이제 마왕도 멋도 아닌 쓸모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걸.

“아무래도 핵을 파괴당하고 붙잡힌 모양이군. 하지만 겁먹을 것 없다. 어차피 저놈은 이제 우리에게 대항할 힘도 없는 인간일 뿐.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 건 용사 일행이겠지.”

콰앙! 콰드득!

용사와 그의 일행들이 눈에 보이고 손이 닿는 그 모든 곳을 파괴하고 있었다.

곧 저들의 공격은 마족들이 숨어있는 이 기둥에도 쏟아질 것이다. 그 전에 움직여야 한다.

“가자.”

“네!”

마족들이 일제히 발톱을 세우고 뛰어들었다.

“일단 저 배신자 놈부터 처리한다!”

* * *

케이클랍스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굳게 솟아있는 기둥도 틈 없이 꽉 들어찬 마기들도. 서도화가 밭은 숨을 내쉬며 달렸다.

얼마나 기력을 소모했는지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렇게 집중했던 게 얼마 만인지.

하지만 달리면서도 땀을 흘리면서도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방심하면 모두의 피부로 독기가 스며들 것이다. 다른 일행들이야 거의 독 속에 살다시피 했으니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 그럭저럭 괜찮다 하더라도 아덴과 케이는 아니다.

아덴은 로건 리의 몸으로 이곳에서 싸우고 있고 로건 리는 아마도 살며 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테니 당연히 내성도 없을 터. 이곳에선 남의 몸을 빌려 생활했던 서도화도 마찬가지다.

케이는… 그냥 애 자체가 약해 빠져서 독이고 정화고 뭣 하나 악영향을 안 끼치는 게 없다.

하이고. 내 팔자는 왜.

서도화는 갈수록 눈 밑이 퀭해지는 걸 느끼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검귀와 둔투프가 슬그머니 다가와 서도화를 비호했다.

꽤 익숙한 광경, 한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운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걸 또 할 줄이야.

‘빨리 돌아가서 콘서트 연습하고 싶다.’

서도화가 위기감이라곤 없이 달리며 하프를 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가려지더니 커다란 덩치의 마족이 서도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어?”

아차하는 찰나, 둔투프가 순식간에 서도화의 앞을 막아섰고 검귀가 단숨에 마족을 베어 넘겼다.

“도화,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 하프 무기로 휘두를 생각 없는지.”

“시끄러. 이거 비싼 거야.”

검귀가 비아냥거리듯 농담을 하곤 그에게서 떨어져 앞으로 나아갔다. 서도화가 정면을 보았다. 슬슬 마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으로 앞에서는 이곳보다 더 큰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좋을 건 없어.’

서도화의 능력 특성상 가장 먼저 노려지기 십상인데 저들과 너무 멀어지면 서도화는 지킴 받지 못한다.

서도화가 둔투프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둔투프는 말안해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크게 발을 굴러 싸움이 시작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크윽!”

케이는 뒤로 튕겨 나가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케이클랍스의 중앙에 다다르자마자 전투가 벌어졌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핵의 조각은 티끌만 했지만 마족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힘을 주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마족 대부분이 오로지 케이를 노리며 공격해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이 생겼어도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상대하기엔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이 배신자!”

“역시 인간 따위는 핵이 없으면 상대도 되지 않는군!”

한때 자신을 존경한다며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이 지금은 살기를 띠며 날을 바짝 세운 손톱을 휘둘러댔다. 케이는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이죽였다.

“단체로 덤벼들어 겨우 버티는 주제에 말이 많군.”

“……이 하찮은.”

우두머리 격 마족이 광폭한 기세로 손을 들어올렸을 때.

카앙!

옆에서 날아들어온 붉은 검과 붉은 남자가 마족의 팔에 섬광처럼 달라붙었다.

“……아덴?”

케이가 깜짝 놀라 멈칫하는 사이, 부드러운 하프 선율이 들려와 그들 모두를 감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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