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맹독도 때론 약이 된다 (2)
투구꽃.
아름다운 보랏빛 꽃을 지닌 관상용 화초. 그러나 실상은 뿌리에 맹독을 품은 독초. 덕분에 수많은 독약의 제조에 쓰인 바가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허가 없이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사형. 조선에서는 사약으로 널리 쓰였다. 심지어 그 독성은 현대에 와서도 제법 쓰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86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투구꽃 살인사건’ 정도가 있겠네.’
어쨌건, 투구꽃의 독성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두루두루 제대로 증명이 됐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 가르딘 경이 미친 또라이 보는 눈빛을 이쪽으로 던져대는 이유가 엄연히 있는 것이다.
“……전하?”
“어.”
“혹시 열이 나는지 좀 살펴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미열은 있는데 심하진 않아.”
“하지만 전하.”
“응.”
“아직, 희망의 끈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안 놨는데.”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전하.”
“나도 그건 아는데.”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요.”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전하, 행여나 그런 흉악한 독초를 드시겠다는 말씀을 다시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네?”
“싫은데. 먹을 건데.”
“즈어어언하아!”
“……어오, 씨. 깜짝이야.”
라키엘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가르딘 경.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그건 아닙니다, 전하. 하오나-”
“하오나?”
“이대로 전하께서 모든 걸 포기하시고 스스로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제 의무이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난 경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도록 도우려고 이러는 건데.”
“궤변이십니다, 전하. 바늘로 자해를 하다 못해, 급기야 이제는 음독자살을 시도하려 하심이라니요!”
“……후우. 자해 아니고. 음독자살 아니고. 치료의 과정이거든.”
“하오나 전하.”
“독성분을 약화시키고 다스려서 약으로 삼을 거거든.”
“예?”
“잔말 말고 가져와. 5분 준다.”
“……전하.”
“늦으면 진짜로 자해할 거야.”
“……!”
“하나, 둘…….”
“흐, 흐흑!”
버티고 버티던 가르딘 경이 결국, 울먹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모시던 황태자가 이상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젯밤에 혼절했다가 깨어난 뒤부터 진짜로 이상해졌다. 말투가 달라졌다. 눈빛도, 인상도 어딘가 모르게 바뀌었다.
‘전엔 까칠하긴 했어도…… 최소한 미친 짓은 안 하는 분이셨는데…… 흐흑.’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성격이 바뀐다던데 혹시 그건가.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너무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오밤중에 바늘을 왕창 가져오라고 하질 않나. 급기야 바늘을 촛불로 지져서 어깨며 팔뚝에 꽂지를 않나.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바늘로 찌르면서 뭔가(?) 느끼는 표정을 지으셨어!’
그렇다.
확실하다.
자해를 하며 즐기시는 거다. 어느새 고통이 주는 쾌락에 몸을 맡기신 거다. 그렇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리신 거다.
‘전하아……!’
가르딘 경은 진심으로 눈물을 삼켰다.
오랜 투병 생활이 저토록 사람을 망가뜨릴 줄은 몰랐는데. 자신이 부족했다고. 황태자를 더 잘 보살폈어야 했다고. 하염없이 통곡하는 심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제발, 한 번만 다시 생각을 바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 바꿔줄 생각 없어. 돌아가.”
“하오나 전하.”
“후우…….”
어느새 진짜로 눈물까지 글썽이는 가르딘 경. 그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마냥 강압적으로 시켜서는 목에 칼이 들어가도 말을 안 들을 기세다.
결국, 라키엘은 가르딘을 향해 약간의 지식을 풀어주었다.
“가르딘 경.”
“예에, 전하.”
“이제부터 잘 들어. 내가 투구꽃을 찾는 이유를 알려줄 테니.”
“예?”
“경도 알다시피 투구꽃은 뿌리에 맹독이 있지. 그 뿌리를 어느 이국에선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먹으려는 게 모근(母根)에서 뻗어나온 자근(子根), 즉, 부자(附子)라는 거야.”
“부……자, 말입니까?”
“그래. 부자. 라틴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국의 생약명으로는 Aconiti Lateralis Radix Preparata. 아코니틴계 맹독 성분을 잔뜩 품고 있어. 그 성분이 뇌간과 말초신경 말단부를 흥분시키고 마비시켜. 부교감신경을 폭주시키고, 결국엔 심장을 멎게 하지.”
“…….”
꿀꺽.
가르딘의 목젖이 위아래로 떨렸다.
라키엘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 독성을 중화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는지는 묻지 마. 밝혀줄 생각 없으니까.”
“독성을…… 중화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과정을 이국의 말로는 법제(法製)라고 하지.”
“법제…….”
“그 과정을 거치면 부자의 독성을 내게 맞는 약으로 활용할 수 있어.”
“그게, 사실입니까?”
“아무렴. 내가 거짓말을 할까.”
라키엘은 피식 웃었다.
문득, 대한민국에서 한의원을 꾸리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간혹 부자를 약재로 처방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의 부자는 전문업체의 손길을 거친 것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법제 방법을 상세하게 알고 있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
“그래서 가져오라는 거야. 이제는 좀 수긍이 되나?”
“……전하.”
“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혀 수긍이 안 됩니다.“
“…….”
“처음 들어보는 지식입니다. 출처가 어디인지도,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전하의 말씀대로 그걸 약재로 쓰게 되면…… 전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확실합니까?”
“어떤 약을 써도 100퍼센트 확신을 할 수는 없겠지. 원래 약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적어도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이쯤이면 대답이 됐을 듯한데.”
“예, 전하.”
“그럼 경의 대답은?”
“……명하신 대로 투구꽃, 가져오겠습니다.”
가르딘 경은 결심했다.
사실 황태자의 최근 건강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어떤 약도 들지 않았다. 절망스럽던 요즘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기만 하다면.
지푸라기 잡듯 어떤 시도라도 다 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법제라. 한 번쯤 시도해볼 가치가…… 있을까.’
조금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최소한의 시도라도 해보고 싶어졌다.
‘대신 법제라는 과정이 끝나면, 전하보다 내가 먼저 그걸 먹어서 안전함을 확인해봐야겠지.’
그런 후에야 황태자에게 복용을 허락할 것이다. 결심한 그는 비장한 눈빛으로 침실을 나섰다. 그가 투구꽃 뿌리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온 것은 10분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하,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지 잘 모르겠기에 일단 다 가져왔습니다.”
“잘했어. 그럼 이제부터 커다란 대야 두 개와 그걸 가득 채울 맑은 물, 그리고 소금 한 포대도 가져와.”
“법제에 필요한 물품입니까?”
“당연하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준비가 착착 갖추어졌다. 침실 한가운데에 맑은 물로 가득 채운 커다란 대야 두 개가 놓였다.
그때부터였다.
“자, 그럼 물에 소금 풀고.”
“얼마나 풀면 됩니까?”
“왕창.”
“……왕창이라시면?”
“확 부어. 내가 중단하라고 할 때까지.”
“알겠습니다, 전하.”
솨아아아-!
포대의 소금을 왕창 부었다.
라키엘은 직접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먹으며 소금 농도를 확인했다.
“자, 그럼 이제 담그자. 전부.”
“예, 전하.”
참방참방!
가르딘 경이 충실하게 움직이며 투구꽃 뿌리, 부자를 소금물에 푹 담갔다.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키엘은 별궁의 시종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에게 종이를 하나씩 건넸다.
“이제부터 너희는 이 별궁의 정원을 샅샅이 뒤져야 할 것이다.”
“……예?”
시종들이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정원을 샅샅이 뒤지라니.
그 넓은 곳을?
무엇을 위해서?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말이 정원이지, 이곳 별궁의 정원은 엄청나게 광활했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어지간한 동 하나쯤 면적? 혹은 예전에 썸녀와 가본 적 있는 경기도 가평의 아침북적 수목원? 아마 그 정도는 충분히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황족의 여흥을 위한 사냥터로도 이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라키엘은 시종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각자 받은 종이가 있지? 그림이 그려져 있을 거야. 그림과 똑같이 생긴 식물을 가져오면 돼.”
그는 시종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쪽 그룹은 정원 서쪽으로 보냈다. 마법에 의해 건조한 지대가 구현된 구역이었다.
“너희는 그림과 똑같이 생긴 관목이 있거든 통째로 뽑아오도록 해.”
반면, 다른 그룹은 동쪽으로 보냈다. 마법에 의해 사시사철 봄이 유지되는, 산자락과 이어진 숲이었다.
“너희는 그림과 같은 풀을 가져오면 된다.”
그는 두 그룹의 시종들을 보내며 야물딱진 당부를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칠이 걸려도 좋다. 다만, 각각의 그룹에서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는 이에겐 황태자의 이름으로 황금 한 덩이를 상으로 주겠다. 하니 다들 분발하도록.”
“……!”
시종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흡족한 결과가 반나절 만에 나왔다.
그날 저녁, 라키엘은 시종들이 가져온 약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마황, 족두리풀…….”
마황(麻黃)은 중국 북부, 내몽골 등의 건조지역에서 자생하는 떨기나무다. 족두리풀은 산지의 나무그늘 우묵한 곳에 하트 모양의 잎사귀를 펼치는 풀이다.
‘설마 이것들이 정말로 정원에 있을 줄은 몰랐네.’
그저 혹시나 해서.
만약에 있다면 정말 좋을 듯해서.
로또 긁는 기분으로 시종들을 보냈던 거였다. 한데 이렇듯 뜻밖의 성과가 나왔다.
‘잘됐다. 진짜 잘됐어.’
마황과 족두리풀.
둘 모두 한국에서 제법 써본 한약재였다. 부자와 상성이 기막히게 좋은 약재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더욱 분발하며 가르딘 경을 부려먹었다.
“흠, 부자가 소금물에 푹 절여졌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
“모르긴 무슨. 그냥 내가 시키는 걸 하면 되지.”
“하오시면?”
“부자 꺼내서 창가에 널자. 햇볕 잘 드는 자리에.”
“예, 전하.”
촥촥촥!
가르딘 경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부자를 널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저녁이 오면?
“부자가 햇볕에 잘 말랐네. 그럼 이제는?”
“전하께서 시키는 걸 하면 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부자 담가.”
“……예?”
“다시 담그라고. 소금물에. 풍덩.”
참방참방!
가르딘 경이 기껏 말린 부자를 다시 소금물에 담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가르딘 경, 부자 꺼내서 널어줘.”
“예, 전하.”
촵촵촵!
밤이 오면.
“부자 담가줘.”
“넵, 전하.”
첨벙첨벙!
아침이 오면.
“널어.”
“옙!”
촵촵!
또 밤이 오면.
“담가.”
“예!”
참방!
라키엘의 부지런한 손짓.
가르딘 경의 헌신적인 노가다.
둘이 쳇바퀴처럼 열심히 돌아갔다.
부자를 소금물에 담그고 말리기를 반복한 지 닷새째. 마침내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좋구나.’
라키엘은 햇볕에 말린 부자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새 부자 겉면 가득 소금 결정이 생겨나 있었다. 부자 자체도 전보다 제법 단단해져 있었다.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다 됐다.’
법제가 완료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탕약, 만들 수 있겠어.’
부자의 독성을 제거하고.
마황과 세신의 약효를 끌어내어.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킬 탕약 조제를 시작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라키엘은 몰랐다.
자신이 조제하는 마황부자세신탕(麻黃附子細辛湯). 이 탕약이 어떤 뜻밖의 효능을 드러낼지를. 그리하여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마젠타노 황가 비전의 비기를 얻게 되리란 사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