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전무후무한 획득 (1)
“전하,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별궁 주방이 비워졌다.
비워진 주방에서 가르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물음에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흐음, 아직도 안심이 안 돼?”
“그야…….”
“그래. 안심이 안 되겠지. 이거, 엄연히 독약에 쓰이는 거니까. 안 그래?”
“…….”
라키엘이 집어든 부자.
전과 달리 겉면에 굳은 소금 결정이 가득 생겨나 있었다. 지난 며칠 내내 열심히 소금물에 절이고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가르딘은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불안해서 지난 며칠 내내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잠을 설쳐야 했더랬다.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건 아니겠지?’
시시때때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우리 전하께서 저 뿌리에 대해 해박하신 것 같아도. 우리 전하께서 신기한 용어들을 설명해주셨어도. 우리 전하께서 저 독초 뿌리를 꿀꺽…….
‘……안 돼!’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 뒤의 참극이 눈에 그려지듯 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우리 전하께서 독약 한 사발을 시원히 들이켜시고. 우리 전하께서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시다가. 우리 전하께서 피를 왈칵 토해내시며…….
“즈어어언하-!”
“아 씨. 깜짝이야. 또 뭐. 이번엔 뭔데.”
“이 마당까지 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긴 송구하오나, 한 번만 다시 생각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생각? 무슨 생각?”
“그 뿌리 말입니다.”
“응, 이거. 왜?”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아. 안 죽어.”
“즈어어언하아!”
“어오. 귀청 떨어져서 죽겠네.”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법제를 마치고 손질까지 된 부자로 탕약을 달이려는 참이다. 한데 지금껏 잘 협력했던 가르딘 경이 이제 와서 난리다. 물론 왜 이러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불안한 거겠지.’
무리도 아니었다. 부자는 엄연히 독약의 재료다. 가르딘 경의 입장에선 엄청나게 불안할 터다.
라키엘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가르딘 경.”
“예, 전하.”
“실은 말이야, 경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고 어젯밤 내가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
“방법이라니요? 무엇입니까?”
“만약에 내가 이 독초로 약을 만들면, 경이 나보다 먼저 이걸 먹어봐 줄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
“전하?”
“어.”
“왜 그런 눈빛으로 절 보시는지…….”
“아, 좀 놀라서.”
솔직히 놀랐다.
저렇게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줄도 몰랐다.
사실은 그냥 물어본 말이었다. 나보다 먼저 탕약을 마셔보겠느냐고. 독성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가르딘 경도 안심하지 않을까. 탕약 제조를 순순히 돕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물은 것이었다.
‘뭐, 겸사겸사 가르딘 경의 반응도 확인해보는 거고.’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한지.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인지.
짚어보고 싶었다.
앞으로 가르딘 경에게 의지할 일이 많을 테니까.
‘그런데 저렇듯 아무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줄은 진짜로 몰랐어.’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가르딘 경에게 물었다.
“정말로? 나 대신 탕약을 먼저 마셔서 독성 유무를 확인하겠다고?”
“예, 전하.”
“진심이야?”
“물론입니다.”
“…….”
저 진지한 눈빛. 진짜다.
‘후우.’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라키엘은 그런 마음을 짐짓 감추었다.
“좋아. 그럼 이제 조금 안심이 되겠군. 안 그래?”
“예,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비로소 가르딘 경이 살짝 웃었다.
정말로 마음이 놓였다.
설령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독 때문에 고생할 사람은 황태자가 아닌 자신이 될 테니까.
“그래. 좋아. 하면 이제부터는 내가 하는 걸 지켜만 보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가르딘 경이 한발 물러났다.
라키엘은 그런 경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놀랍고, 고마웠다. 물론 그런 고마움과는 별개로, 가르딘 경에게 탕약을 먼저 먹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좋은 걸 왜 먹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내가 싹싹 다 핥아 먹어야지, 내가.’
그런 양보(?)는 사양이다.
탕약을 다 달이고 나면? 가르딘 경이 나서기도 전에 재빨리 후루룩 원샷을 해 버릴 거다. 애초부터 그게 계획이기도 했다.
‘뭐, 일단 가르딘 경이 속았으니까 성공이네.’
경이 기겁하며 말리지 않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계획한 일을 할 때다.
‘어디 보자.’
라키엘은 주방을 둘러보았다. 주방엔 탕약 조제를 위한 대부분의 물건이 그럭저럭 갖추어져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유리그릇.
법제를 마친 부자.
손질된 마황.
족두리풀 뿌리를 말린 세신(細辛).
흐르는 샘물에서 갓 떠온 청천수(淸泉水)까지.
‘그리고 마지막 준비물은 나.’
라키엘은 숨을 평온하게 골랐다.
옛 문헌에서 이르길, 자고로 한약재를 다루는 데에는 세 가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처방하고 약을 지어주는 의원의 정성. 약을 잘 달여주는 보호자의 정성. 때를 거르지 않고 믿는 마음으로 약을 먹는 환자의 정성.
그러한 정성들이 모이고 제 역할을 하여야 비로소 탕약이 제 몫을 해낼 수 있다고 하였더랬다.
‘지금은 내가 일인삼역을 해야 할 때네.’
스스로 처방하고, 달이고, 셀프 원샷까지.
‘해보자.’
마음을 다진 라키엘은 탕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유리그릇에 청천수와 약재를 넣었다. 처음에는 강한 불(武火)로 한 차례 화끈하게 끓였다. 다음엔 약한 불(文火)로 약액의 넘침을 막았다.
그리고 서서히 달였다.
처음 부은 물이 절반 이하가 남을 때까지.
최대한 천천히.
가능한 한 꾸준히.
달이고. 곁을 지키고.
힘겨울 때는 앉아서 숨을 고르며.
그럼에도 두 눈 부릅뜨고서.
불가를 지켰다.
끝끝내 세 시간이 넘도록.
다행히 혼절하지 않고서.
“……해냈다.”
라키엘은 현기증을 참아내며 웃었다.
약액이 제대로 달여졌다. 마황부자세신탕(麻黃附子細辛湯)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유리그릇 속 달여진 약액의 찌꺼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주걱으로 위쪽의 맑은 약액만 떠서 잔에 담았다.
물론 바로 마시지는 않았다.
그는 바닥에 정좌하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옆에서 이쪽의 눈치를 보며 꼼지락대는 가르딘 경의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가르딘 경. 할 말이 있으면 해. 옆에서 눈만 끔벅거리지 말고.”
“저기, 전하?”
“어.”
“제가 감히 이런 질문을 드려도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응.”
“저기, 약을 다 끓이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응. 그래서?”
“이제 제가 마시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직 안 돼.”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가르딘 경의 표정에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전하, 혹시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아까는 분명 제게 먼저 먹여서 독성을 시험할 거라 말씀하셨는데…….”
가르딘 경의 얼굴이 나름의 비장함으로 물들었다. 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아까 했던 말들이 진심이 맞았나 보다.
“허. 참.”
라키엘은 그만 웃어 버렸다.
여전히 굳은 결의가 담긴 눈길을 내비치는 가르딘 경. 그 눈빛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라키엘은 든든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쯧쯧. 이러니까 원작에서 속절없이 죽었지, 이 사람아.’
원작 마검황에서 끝까지 황태자 라키엘의 곁에 남았던 주치의, 가르딘.
원래 그는 주치의가 아니었다.
진짜 주치의의 조수였다.
한데도 끝까지 남았다.
그리고 처형당했다.
모시던 황태자의 죽음.
그 죽음의 책임을 추궁받은 결과였다.
우직하고 충직하고, 듬직하고 충실하다. 요령도 없고, 그저 순진하고, 충성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 아무래도 그게 가르딘이라는 자의 본질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잘돼야 하는 건데.’
원작에서 가르딘 경이 맞이했던 허망한 최후를 떠올리며 라키엘은 입맛이 씁쓸해지는 걸 느꼈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성실하게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거, 너무 꿈같은 이야기지. 아주 가끔만 있는, 그래서 동화 속 이야기처럼만 느껴지도록 희귀한. 사실은 요령 좋은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그게 현실이었다.
성실하게 묵묵히.
그렇게 책임만 다하며 살다간?
묵묵하게 말없이 잘려나가는 꼬리가 될 뿐이니까. 원작 속 가르딘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뿐이니까.
라키엘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후. 됐고.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야, 사람이?”
“……예?”
“위험한 거라면서 본인이 직접 시험하고 그러지 좀 말자고. 정말 위험할 거 같으면 다른 방법 많잖아.”
“다른 방법이라시면…….”
“하다못해 개구리나 쥐한테 먹여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
“그렇지?”
“그럼 당장 쥐를 잡아올까요?”
“……조금 있다가. 이 탕약, 원래 식혀서 마시는 거야.”
“예에?”
“원래 식혀서 마시는 거라고. 부자가 들어간 탕약은.”
“원래…… 말입니까?”
“어. 그래서 충분히 식기를 기다리는 중인 거고.”
“…….”
“왜 또. 이번엔 뭐가 궁금한데.”
“방금 원래, 라고 말씀하셨…….”
“…….”
아뿔싸.
라키엘은 재빠르게 말했다.
“꿈에서 봤어. 요즘 들어 매일 밤, 대현자의 기운을 풍기는 마법사가 내 꿈에 찾아와서 약재를 다루는 방법과 침으로 건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거든. 됐나?”
“꿈에서…… 말입니까?”
“믿기지 않겠지. 하지만 경이라면 믿어줄 거라고 보는데. 그래서 경에게만 말해주는 거고. 미리 일러두는 거지만, 경만 알고 있어야 해.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전하.”
짐짓 엄격한 투로 말했다.
가르딘 경이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둘러댄 게 먹혔나.
‘조심해야겠어.’
아마도 가르딘의 충성심은 이쪽이 아닌, ‘황태자 라키엘’을 향한 것일 터다. 그러니 이쪽은 어디까지나 황태자 라키엘이어야 한다.
한데 방금은 경솔했다.
원래 한의학이 이런 거다, 라는 투로 말했다니. 다음부턴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라키엘은 탕약을 살폈다. 마침 그 사이 잔이 충분히 식어 있었다.
‘좋아.’
제발 약효가 있기를.
그래서 지금의 삶을 연장할 수 있기를.
라키엘은 바라고 바라며 손을 뻗었다.
가르딘 경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서.
적당히 식은 잔을 재빠르게 들었다.
입가로 가져왔다.
기울였다.
꿀꺽!
“……어어!”
가르딘 경의 기겁하는 소리.
개의치 않고 단숨에 마셨다.
식도를 알싸하게 찌르는 자극.
그 순간이었다.
딩동!
청량한 알림음이 울렸다.
그리고…….
[당신은 정확한 방법으로 조제된 마황부자세신탕을 섭취하였습니다.]
[마황과 세신이 기관지를 안정시킵니다. 인후통 증상을 가라앉힙니다. 해열 작용과 진해, 거담 작용을 돕습니다.]
[부자가 냉증과 통증을 제거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돕습니다.]
[부자의 적절한 강심작용이 심장의 혈행을 원활하게 합니다.]
[원활해진 자극에 의해 오장육부의 왕, 심장이 깨어납니다.]
[당신의 심장에 새겨져 있었지만 허약한 체질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황가 직계의 비전, 아스라한 심법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