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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7화 (7/468)

7화. 전무후무한 획득 (2)

[당신의 심장에 새겨져 있었지만 허약한 체질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황가 직계의 비전, 아스라한 심법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

눈앞에 서슴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라키엘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스라한 심법?’

……대박이다.

이 세계의 원작인 ‘마검의 황제’. 그 이야기 속 마젠타노의 황족들만이 사용하던 특수한 마나 심법이 바로 아스라한 심법이었다.

‘대략 300년 전에 창안된 심법이라고 했지.’

역사에 길이 남은 그랜드 마스터.

하비엘 아스라한이라 했던가.

그가 자신의 주인인 ‘로이드 프론테라’와 함께 공동으로 창안했다고 했다. 그 뒤로 마젠타노 황가의 심법이 되어 직계 후손에게만 전해졌다고도 하였더랬다.

‘그게 내게도 전해진 거야.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 몸, 라키엘의 몸에 심어져 있던 거겠지. 라키엘은 황태자니까. 황가를 이을 적통이니까.’

그러나 지금까지는?

‘심법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허약체질 때문에 전혀 사용하지 못하던 거였어.’

한데 이제는 달라졌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 아스라한 심법이 눈을 뜨고 있다고. 오롯한 네 것이 되었노라고.

딩동.

[아스라한 심법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명 : 아스라한 심법]

[단계 : 싱글 써클 Lv. 1]

[주위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흡수한 마나를 심장 둘레에 생성한 써클로 가공/증폭하여 운용합니다. 써클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증폭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 증폭률 : 120%]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1,000]

[현재 보유 중인 HP : 100]

키이이잉-!

‘오오옷.’

혹시 심장 둘레로 매끈한 도넛이 돌아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써클이 돌아가는 감각이 딱 그러했다.

‘이게 마나란 걸까.’

마나써클이 회전할 때마다.

그렇게 호흡을 할 때마다.

들이마신 공기에서 기이한 힘이 써클로 흡수되었다. 흡수되고, 증폭되며, 경혈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몸에 약간의 활력이 솟아났다. 약해빠진 라키엘의 육신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활력이었다.

‘잠 안 깨는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샷한 기분이네.’

심법에 의해 저절로 회전하는 마나써클. 그걸 조절하는 것도 약간은 가능했다. 마치 걸음마를 하듯이. 처음 자전거 타는 요령을 익힌 직후처럼. 라키엘은 마나써클의 회전수를 이리저리 조절해보았다.

어설펐지만, 조금씩 조절이 됐다.

‘연습이 좀 필요하겠어.’

라키엘은 신기한 기분으로 써클의 첫 감각을 즐겼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쿠우웅!

‘어?’

잘 돌아가던 써클이 주춤했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키아아아아-!

“……!”

한껏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의도한 바도, 원했던 바도 아니었다. 심장을 터뜨릴 듯이 옥죄는 격통이 쇄도해 왔다.

‘……컥!’

라키엘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숨도 쉴 수 없어서.

가슴을 움켜쥐지도 못하고 목에 핏대만 세웠다.

‘무슨?’

어째서 갑자기 이런 격통이 몰려오는 건지. 왜 심장이 뜯겨 나갈 것처럼 아픈 건지. 써클이 미친 듯이 날뛰는 이유는 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현상이었다.

‘뭐, 뭐야, 이거.’

써클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제멋대로 거칠게 회전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원래 써클은 심장을 넉넉하게 둘러싼 마나의 고리였다. 한데 지금 생겨난 써클은?

달랐다.

너무 작았다.

그 작은 써클에 심장이 끼어 있는 형국이었다. 아니, 끼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러다간…… 심장이 터지겠어.’

마치 제천대성의 머리를 죄는 긴고아처럼. 혹은 먹잇감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맹수처럼. 써클이 심장을 찢어발길 듯이 압박하고 있었다. 압박한 채로 회전하고 있었다.

‘크…… 그흡!’

그는 가까스로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돋아난 식은땀 속에서. 서슴없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이쪽을 향해 무어라 말하는 가르딘 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니, 소리치고 있는 건가.

왜 그러시느냐고.

괜찮으시냐고.

이쪽의 어깨를 잡고서. 이쪽의 상태를 살피려 애쓰고 있는 건가.

‘쯧.’

법석을 떠는 건 가르딘 경만이 아니었다.

딩동.

[마나써클이 심장을 과도하게 압박합니다.]

[마나써클과 심장의 발달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심장이 기절하기 직전입니다.]

심장을 비롯한 각종 장기들이 비명 섞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피었다가 명멸하는 메시지들. 어지러웠다. 하지만 덕분에 이 난데없는 사태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마나써클과 심장의 발달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그러고 보니 그 말대로였다.

조금 전에 눈을 뜬 아스라한 심법. 덕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회전을 시작한 마나써클.

한데 써클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작았다. 원래는 심장을 넉넉하게 둘러싸고 있어야 하는 도넛 모양의 써클이, 지금은 마치 한없이 작은 반지가 손가락을 압박하듯 심장을 짓눌러 오고 있었다.

‘발달 상태…… 균형…….’

잠깐.

서서히 떠올랐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었다.

‘발달 상태라면, 신체의 심장은 다 자랐는데…… 써클은 아니라는 건가.’

고통으로 혼미해지는 의식.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

확연해진 심장마비의 전조 속에서 생각을 이어갔다.

‘그래, 생각해보니 당연한 걸지도. 이 몸의 원래 주인, 라키엘은 황태자였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장자였으니까. 한데 아스라한 심법은 황가의 비전이자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비기라고 했지.’

분명, 소설 ‘마검황’에서 그렇게 나왔었다. 아까 처음 아스라한 심법을 얻었을 때 나왔던 메시지도 그랬다.

이쪽의 심장에 ‘새겨져 있었지만’ 허약한 체질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황가 직계의 비전이 ‘눈을 뜨고 있’노라고.

‘그러니까 라키엘은 황태자로 태어났고, 태어난 직후에 황가의 비전인 아스라한 심법을 물려받은 거야.’

아마 황제가 직접 갓난아기였던 라키엘의 심장에 써클을 새겨주었을 것이다. 황가의 직계들이 대를 이어 치렀던 의식처럼. 태어나자마자 아스라한 심법을 얻었을 것이다.

한데 그다음이 문제였겠지.

‘라키엘은 선천적인 병약 체질이었어. 눈을 뜨기도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다고 했지.’

어린 시절부터 평생 병마에 시달렸다고 했다. 한데 그런 몸으로 아스라한 심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병마에 찌든 육체로는 심법의 사용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심법을 사용해야 발동되는 마나써클은?

‘한 번도 회전시켜본 적이 없었던 거겠지. 아니, 갓난아기 시절에 장착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일깨워본 적이 없었던 거야.’

말 그대로 이 써클은 평생 반강제적인 동면상태로 지내왔던 거다. 그래서 갓난아기 시절의 크기와 형태에서 조금도 자라나지 못했던 거다. 한데 그 사이, 라키엘의 신체가 자라며 심장만 커져 버린 거다.

‘그러니까 균형이 안 맞지.’

성인의 심장.

신생아의 써클.

말도 안 되는, 희귀하고도 아이러니한 조합이었다.

한데 저 조합이 지금 본인의 가슴속에서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으니, 실로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다.

원작의 라키엘은 써클을 아예 안 깨워서 그저 평화롭게 죽었지만, 지금 이쪽의 사정은 다르다.

일단 써클을 깨워 버렸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 심장과 써클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안 그러면 곧 심장마비 티켓을 끊고 염라대왕과 진로상담을 시작하게 될 거다.

‘생각해. 뭐든 좋으니 떠올려.’

집중하며 머리를 굴렸다.

방금 짐작해낸 원인.

문제를 해결할 해답.

필사적으로 헤집었다.

악착같이 움켜쥐었다.

마침내 결론을 얻어냈다.

둘의 균형을 맞추자면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심장을 줄일 수는 없으니…….

‘써클을 늘린다!’

답을 얻어낸 순간.

라키엘은 폭주하며 날뛰는 써클을 더는 진정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포한 회전을 더욱 부추겼다.

키아아아아-!

빠르게.

더 빠르게.

거칠고 숨가쁘게.

사납고 난폭하게.

써클의 회전수를 올렸다.

목적은 오직 하나. 원심력을 이용해서 써클을 강제로 늘려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카아아아아-악!

‘……크읏!’

심장이 써클에 갈렸다.

엄청난 격통이 몰려왔다.

진심으로 거의 까무러칠 뻔했다.

하지만 정신을 잃으면 끝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버텼다.

참아냈다.

그저 참을성이 많아서?

아니었다.

‘가슴…… 아파. 엄청나게 아프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한국에서 한의원 망해가던 때에 비교하면 가슴 아픈 것도 아니야!’

그는 최근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한의원이 망해가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확진자 두 명이 방문했다는 이유로…… 인터넷 카페랑…… 아파트 단톡방이랑…… 동네방네 소문 다 나고…… 환자 발길 뚝 끊기고…… 아무도 안 오는 진료실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없던 탈모까지 생기고……!’

아무리 아프다 한들.

그때만큼 아플까.

‘그런데도 임대료에 대출 이자는 잘도 빼 가더라. 아무나, 누구 하나 붙잡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더라. 전세방 빼고, 월세 원룸으로 옮기고, 그렇게라도 메꿔보려고 했는데…… x발, 내 전세.’

전세방에서 짐 정리하던 날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한데 지금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그때에 비하면 아픈 것도 아니야. 그때가 훨씬 가슴 찢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는 이를 갈았다.

이건 아픈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참아낼 수 있다. 이까짓 마나써클이 늘어나는 통증 따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마나써클? 네가 장사 망해가는 기분을 알아?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고통을 아냐고!’

써클을 향해 되뇌었다.

짓씹듯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버텨냈다.

억겁의 시간처럼 이어지던 고통도. 한계를 돌파한 마나써클의 회전도. 그렇게 원심력에 찢기고 늘어나는 써클의 격통도. 모두 버텨내고, 인내하고, 받아냈다.

이윽고 써클이 화답했다.

카아아아아-! 카드득!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써클이 늘어났다. 짓눌리던 심장에 해방감이 찾아왔다. 격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유리처럼 매끈해진 써클의 회전이 느껴졌다.

키이이이잉…….

마치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혹은 손질이 잘된 엔진처럼. 네가 원하면 언제든 최고의 힘을 뿜어주겠노라고 말하는 듯한 회전이었다.

라키엘이 그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딩동!

[당신은 심장과 마나써클의 발달 균형을 완벽하게 맞추었습니다.]

[당신의 마나써클은 오랜 동면 상태에서 수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활용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번득이는 직감과 대담한 실행력, 단호한 의지와 불굴의 인내력으로 마나써클을 강제로 찢고 늘리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당신의 마나하트는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찢기고 늘어나는, 매우 희귀한 성장 단계를 거쳤습니다.]

[이렇듯 독특하고 유니크한 성장 히스토리에 의해, 당신의 마나써클에 특수한 속성이 부여됩니다.]

[당신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마나써클 슬롯’을 획득하였습니다.]

눈앞을 채우는 광명 같은 메시지.

그걸 보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것은, 목숨을 걸었던 도박이 초대형 잭팟으로 돌아오는, 역사적인 성공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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