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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8화 (8/468)

8화. 전무후무한 획득 (3)

[당신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마나써클 슬롯’을 획득하였습니다.]

눈앞을 광명처럼 채워오는 메시지.

그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동시에, 그 결과로 뜻밖의 거대한 보상을 얻게 되었음을 전해주는 승전보였다.

‘마나써클 슬롯?’

대체 그건 뭘까.

라키엘은 뒤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를 주시했다.

[당신의 마나써클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찢기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빈 공간, 보이드(void)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보이드가 진화하여 물질과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저장공간, 슬롯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하나의 써클에 하나의 슬롯을 장착하게 됩니다.]

[슬롯의 저장공간은 써클의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확장됩니다.]

[슬롯은 입을 통하여 섭취하는 행위로 채울 수 있습니다.]

[‘1번 슬롯’이 개방되었습니다.]

[1번 슬롯이 비워져 있습니다.]

[1번 슬롯의 최대 용량 : 10리터]

[1번 슬롯의 현재 저장 용량 : 0 리터]

“…….”

메시지를 읽은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장공간?

슬롯?

그런데 용량이 10리터라고?

‘게임 인벤토리나 아이템 슬롯 같은 건가.’

간혹 즐기던 게임들이 떠올랐다. 그런 게임 속에서의 인벤토리 등을 생각하니 메시지의 뜻이 대강 짐작이 되었다.

‘말 그대로 내 써클에 인벤토리가 생긴 거네?’

정리해 보니 그랬다.

무언가를 먹어서 무려 10리터나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단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점점, 다양한 활용법들이 떠올랐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엄청난 가능성을 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이 마나써클의 슬롯 속에…….

그때였다.

“저기, 전하?”

떨리는 듯, 조심스럽게 귓가로 날아드는 목소리. 라키엘은 달팽이관의 이끌림에 따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가르딘 경이 있었다. 가르딘 경은 거의 울먹이는 중이었다.

행여나 이쪽이 괜찮은 건지.

어디 잘못되진 않았는지.

마치 오늘 사서 개통한 휴대폰을 타일 바닥에 투쾅 떨어뜨린 사람 같은 표정과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휴대폰이 무사(?)함을 알려줘야겠지. 라키엘은 짐짓 빙긋 웃었다.

“어. 왜.”

“저기, 괜찮으신 겁니까?”

“보다시피?”

“저기, 아까는 엄청나게 괴로워하셨는데.”

“잠깐 목이 막히더라고.”

“목이…… 말입니까?”

“어.”

대수롭지 않게.

걱정 끼치지 않게.

“탕약을 너무 성급하게 마셔서. 사레가 콱 들려 버렸거든.”

“사레가 들리셨다고요?”

“어. 그렇게 안 보였어?”

“예. 그렇게 안 보였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저기, 하지만 전하.”

“자꾸 왜.”

“분명히 굉장히 위급한 모습이셨는데.”

“괜찮아. 지금 보고 있잖아? 내가 멀쩡한 거.”

“하지만…….”

끝내 말끝을 흐리는 가르딘 경. 그런 경의 눈빛은 빈 잔을 향해 있었다. 마황부자세신탕을 담았던 잔이었다.

혹시 그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걸까. 이쪽보다 먼저 저걸 마셨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후우, 괜히 또.’

라키엘은 짐짓 피식 웃었다.

“됐고. 좋은 거니까 내가 먼저 마셨지. 약간이라도 이상한 거였어봐. 내가 냉큼 마셨겠어? 그러니까 안심해. 진짜 위험하다 싶은 건 경이 거부해도 마구 먹여 버릴 거니까.”

“……예?”

“거부해도 소용없어. 강제로 입 벌리고 깔때기 꽂아서 확 부어 버릴 거거든.”

“……예에?”

“그때도 부디 지금처럼 충직한 모습이길 바란다.”

“…….”

“알았으면 여기 정리해줘. 난 먼저 침실에 올라가서 좀 쉴게. 아, 그리고-”

“예?”

“고맙다.”

“예에에?”

“못 알아들었으면 됐고.”

……괜히 말했나.

라키엘은 황급히 주방을 떠났다.

침실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오늘 얻어낸 마나써클 슬롯.

그걸 활용할 방법과 가능성에 골몰했다.

‘저장 용량이 10리터라고 했어. 그 용량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는 물질을 마나와 뒤섞어서 보관할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 그걸 채우는 방법은?

‘섭취. 즉, 먹어서 채울 수 있다고 했고.’

아까 떠올랐던 메시지에선 분명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 진짜로 되는 건지 실험부터 해보자.’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무언가를 먹어보면 알 것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라키엘은 침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마침 시험 삼아 먹어보기에 적당한 게 보였다. 그것은 커다란 크리스털 병에 담긴 물이었다.

‘이런 실험엔 물이 딱이겠지.’

흔하게 구할 수 있고. 먹기에 역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반수치사량이 높아서 많은 양을 먹어도 안전한 게 물이었다.

‘반수치사량, 그거 중요하지. 특히 많은 양을 먹어보는 실험을 해야 하는 지금 같은 순간이라면 더더욱.’

반수치사량(LD50).

그것은 어떤 물질의 독성을 실험할 때, 실험에 참가한 인원의 절반(50%)이 사망하게 되는 물질의 섭취량을 뜻하는 말이었다.

‘완전치사량(LD100)의 개념도 있지만, 그건 오히려 부정확하지. 예를 들어 똑같은 독을 먹어도 사람마다 체질이 조금씩 달라서 죽게 되는 양이 차이가 날 테니까.’

그렇기에 물질을 완전치사량으로만 다루게 되면? 1리터를 먹으면 죽는다고 해서 800밀리리터만 안심하고 먹었는데, 체질에 따라서 꽥 하고 죽어 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사용하는 개념이 반수치사량이었다.

‘대강 이쯤 먹으면 뒈질 확률이 50%쯤 되는 거고, 안 죽어도 최소한 개고생을 하거나 식물인간, 혹은 반병신이 될 수 있으니까 알아서 사려라, 라는 수치랄까.’

즉, 먹었다가 운이 좋으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행. 운이 나쁘면? 영안실로 당일 배송돼서 염라대왕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양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모든 물질은 반수치사량을 지니고 있었다.

맹물도 마찬가지였다.

체중 60킬로그램인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면? 맹물의 반수치사량은 약 5.4리터였다. 체중 1킬로그램당 90g의 물인 셈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체중으로 물의 반수치사량을 계산하면 대략…… 3.9리터쯤 되겠네.’

라키엘은 크리스털 물병의 용량을 눈대중으로 재보았다.

대강 가늠해보자니…….

‘2리터 페트병 크기구만. 딱 좋아. 됐어.’

혹시나 이걸 다 마셔도 몸에 이상이 생기진 않을 듯했다. 안심한 라키엘은 물병을 들었다.

후들거리는 팔뚝을 느끼며.

입가로 가져왔다.

천천히 기울였다.

‘고작 이거 들었다고 팔뚝 후달리면서 떨리는 거 보소. 어오 이 저질체력 몸뚱이.’

투덜거리면서도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벌컥, 벌컥!

시원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순간, 라키엘은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시켰다. 마나써클을 향해 명령하듯 되뇌었다.

‘지금 마시는 물을 슬롯에 저장하고 싶다.’

그러자 써클이 곧바로 반응했다.

키이이잉-!

경쾌하게 회전을 시작한 써클. 회전하는 힘에 흡인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식도를 통해 위장으로 내려가던 물을 죄다 빨아들였다.

‘오? 오오?’

그것은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 물을 병째로 왕창 들이마시고 있는데. 숨도 안 쉬고 머슴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데. 그래서 식도가 꿀렁꿀렁 물을 내려보내고 있는데. 위장에 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물이 전부 써클에 흡수되고 있어. 진짜다. 메시지 내용이 사실이야.’

터엉.

어느새 비어 버린 물병을 내려놓았다. 2리터 정도쯤 되는 물을 원샷해 버린 것이었다. 한데 물배가 차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신기했다.

물 먹는 하마가 된 기분이었다.

더 해보고 싶었다.

입맛을 다신 라키엘은 침실을 나섰다. 침실과 이어진 복도의 다른 방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응접실로 보이는 방에서 또 다른 물병을 찾아냈다.

마침 딱 4개.

‘잘됐네. 남은 8리터도 마저 채워보자.’

기왕 시작한 실험이니 끝까지.

결심한 라키엘은 물병을 들었다. 거침없이 벌컥벌컥 비우기 시작했다.

2리터 받고 2리터 추가로.

비우고, 또 비우고.

전혀 배가 차지 않음을 느끼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 또한 실감하며. 무려 도합 8리터나 되는 물을 추가로 원샷했다.

“……꺼어억.”

솔직히, 조금 뿌듯해졌다. 인생 살면서 언제 10리터나 되는 물을 원샷해봤겠는가.

‘그랬으면 죽었겠지. 반수치사량이고 뭐고 배 터져서 죽었겠네.’

문득, 전경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이 있던 곳에선 진급 때마다 물을 먹이는 나름의 전통이 있었다. 3리터는 족히 넘는 주전자에 물을 떠 와서 그걸 원샷시키는 악습이었다.

물론 그걸 성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략 1리터쯤 마시다가 물비린내에 못 버티고 화장실로 달려가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물대포를 게워낼 뿐.

당시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그런데 지금은 다르네. 10리터를 마셨는데도 부담이 전혀 없잖아. 배가 부르지도 않고, 위장에 물이 차지도 않았고.’

방금 마신 10리터의 물은 고스란히 써클의 슬롯에 저장되었다.

‘그럼 실험의 다음 단계로 가보자.’

그는 침실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엔 온종일 물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대신 써클 슬롯의 활용법을 천천히 익혀나갔다.

‘목이 마르다고 느껴질 때면…… 이렇게.’

키이이잉…….

써클을 천천히 회전시켰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딩동!

[써클 슬롯에 저장된 물을 체내로 내보냅니다.]

[방출량을 설정해주십시오.]

‘0.1리터.’

[0.1 리터의 물을 체내로 방출합니다.]

[1번 슬롯 현재 저장 용량 : 9.9 리터)

키이잉-!

써클이 역방향으로 회전했다.

슬롯에 저장되었던 물이 마나에 담겨 체내로 방출되었다. 마나의 흐름을 따라 혈관을 돌아다니며 체세포에 다이렉트로 총알배송되었다.

그 즉시 목마르던 감각이 사라졌다.

‘오오. 낙타다, 낙타. 완전 인간낙타.’

혹에 물과 영양분을 저장해서 사막을 누비는 낙타가 이런 기분인 걸까.

그 뒤로도 수시로 목이 마를 때마다 써클 슬롯을 활용했다. 덕분에 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갈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써클 슬롯의 성질을 차츰 알아나갈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써클 슬롯에는 여러 음식이나 물질을 섞어서 저장할 수는 없었다.

‘물이면 물만, 밥이면 밥만 담아두는 게 가능하다는 식이구만. 이거 1인 1메뉴도 아니고 쯧. 그런데…… 흐음, 슬롯을 한꺼번에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느새 다시금 찾아온 자정.

한밤의 고요한 침실에서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슬롯을 채우는 법과 사용하는 법을 대강 알았으니 이젠 탕약을 슬롯에 넣어보고 싶은데. 그런데 이거, 슬롯을 어떻게 비워야 되지?’

남은 물을 한꺼번에 체내로 방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물의 양이 너무나 많았다.

‘아직 8.5리터나 남아 있어. 그걸 전부 몸 안에 풀었다간 즉사 당첨이야.’

그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소비하든가. 혹은 한꺼번에 몸 밖으로 빼내야 한다는 소리인데.

“…….”

문득,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소설 ‘마검황’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아스라한 심법의 특성에 대한 설정이었다.

‘마나의 흡수와 증폭, 발산에 특화된 심법이라고 했지.’

그게 아스라한 심법의 특징이었다.

그럼 지금은?

‘증폭과 발산. 그 특성을 사용하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래, 한번 해보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했다.

키이이잉…….

써클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 회전 방향을 역으로 돌렸다. 슬롯에 저장된 남은 물을 응집시켰다. 그걸 모조리 몸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순간.

키이이이잉-!

써클의 역회전이 거세졌다.

써클에 담긴 마나가 요동쳤다. 슬롯에 담긴 8.5리터의 물이 마나와 공명했다. 공명하며, 증폭되어 마나와 뒤섞였다.

[써클 슬롯에 저장된 물질이 증폭됩니다.]

[저장된 8.5리터의 물이 방출됩니다.]

증폭되며, 응축되었다.

응축되고, 써클의 질주를 따라, 심장을 박차고, 혈맥 속을 내달려.

퍼어엉-!

도합 8.5리터의 응축된 물의 구체가 폭발적으로 발사되었다. 손바닥이 가리키던 크리스털 병을 단숨에 박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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