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4화 (24/468)

24화. 지지면 낫는 질환 (2)

쑥뜸.

뜸봉을 신체의 특정 부위에 올리고 태워서 온열 자극을 가하는 치료법.

뜸에는 여러 효과가 있다. 1차적으로는 체온을 상승시킨다.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뜸을 뜨는 부위에 대응하는 혈관, 기관, 내분비선을 자극하여 면역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또한 과민해진 신경을 누그러뜨려 통증, 마비, 경련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말하자면, 흔히 근육통이 오거나 할 때 즐기는 온열 찜질을 좁은 부위에 집중시킨, 몰빵 일점사의 개념이 바로 뜸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데미안이 겪는 후두신경통 같은 증상에는?

‘뜸이 직빵이지.’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자신이 오늘 쑥뜸봉을 준비해온 것. 그것은 비단 후두신경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낙인 속에 깃든 저주를 깨뜨려야 해.’

데미안의 등에 새겨진 낙인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마검황의 일러스트로 봤던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문득, 소설 속의 내용이 떠올랐다.

‘낙인은 검투사가 프로모터와 계약할 때 찍히지. 계약의 증표로. 특정 프로모터에 소속되어 있다는 표시로. 하지만 사실은 저게 바로 검투사를 속박하는 가장 악랄한 수단이었어.’

저 낙인은 그저 단순히 검투사의 소속을 알려주는 표식이 아니었다. 사실은 일종의 소형 마법진이었다.

마법진 속에 저주가 깃들어 있었다. 낙인이 새겨진 자의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면 1시간 후에 저주가 발동했다.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지독한 저주였다.

즉,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나면? 거의 반드시 극통에 시달리게 되는 셈이었다.

‘데미안뿐만이 아니었어. 다른 검투사들도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낙인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전투의 후유증 때문이리라고. 그렇게 여기며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속으며 살다가.

속으며 죽었다.

다들 그걸 까맣게 몰랐다.

애꿎은 돈만 진통제 구입비로 탕진했다. 아니, 프로모터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 심지어 그러는 과정에서 빚이 늘기까지 했다.

매일 싸우고 또 싸우는데.

돈을 벌긴 버는데.

수중에 남는 돈은커녕 빚만 쌓이는 셈이었다.

‘쓰읍. 생각해보니까 일하고 또 일해도 대출에 마이너스 통장만 쌓이던 거랑 똑같네.’

잠깐 치미는 대한민국 시절의 자괴감. 라키엘은 쑴펑쑴펑 치솟는 쓰라린 기억을 접어두고 소설의 설정을 더욱 상세히 되짚었다.

‘어쨌건, 저 낙인이 문제야.’

소설 내용에 따르자면 낙인에 상처를 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낙인이 새겨진 부위의 가죽을 벗겨 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던가.

‘그럴 법도 하지. 검투사들이니까. 몸에 상처를 입는 일이 다반사인 직업군이니까. 한데 칼에 긁히는 것만으로도 기능을 잃는 낙인이라면? 한 달도 못 써먹을걸.’

생각해볼수록 악랄했다.

그야말로 검투사가 죽을 때까지 뽕을 뽑겠다는 프로모터의 의지가 엿보이는 낙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거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열로 지지는 것.’

열로 새긴 낙인과 저주였다.

그렇기에 똑같이 열로 지져 버리면 없애는 것이 가능했다. 아니, 사실상 그게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데 자신은?

사람의 몸을 열로 지지는 데엔 익숙했다. 아니, 그냥 익숙한 정도가 아니었다.

‘매일 했던 짓이니까.’

그것이 바로 쑥뜸이었다.

“자아, 겁먹지 말고. 힘 빼시고오.”

엎드린 데미안의 등짝.

왼쪽 견갑 부위에 새겨진 낙인.

그 중앙에 쑥뜸봉을 올렸다. 무려 일반적인 사이즈를 가볍게 압도하는, 밑면이 둥근 원뿔 모양의 뜸봉이었다.

데미안이 등을 움찔했다.

“뭐지, 이건?”

“괜찮아. 안 죽어.”

“…….”

“혹시 무섭나?”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런 괴상한 치료가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드는군.”

“혹시 내가 야매나 돌팔이 같아서?”

“당연하지.”

데미안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내 등에 올려놓은 물건. 잘게 다져 말린 풀을 뭉쳐서 만든 것 같은데. 고작 이런 걸 등에 올린다고 해서 내 통증이 가라앉을지 의문이 드는데.”

“아. 예. 궁금증은 직접 몸으로 풀어보시구요.”

라키엘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의 양초를 들었다. 일렁이는 불길을 뜸봉 꼭대기에 갖다 댔다.

“자아,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어?”

치이이익-!

뜸봉 꼭대기에 불길이 옮겨붙었다. 이쪽을 보는 데미안의 눈길이 사나워졌다.

“이거, 무슨 짓이야.”

“원래 이러는 건데.”

“당장 치워.”

“그럼 치료가 안 되는데.”

“…….”

“힘 빼라고 했잖아. 고개 들지 말고. 징징거리지도 말고. 좀 편하게 뚝. 그래, 이렇게. 어깨에 힘 주지 말고.”

“이봐, 나는…….”

“일말의 인류애라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간다면 이럴 때는 사람 좀 믿읍시다, 어? 슬슬 뜨거워질 거야. 참어.”

“뭐?”

그때였다.

푸취이이익-!

뜸봉의 열기가 점점 아래로 번져갔다. 그 아래 데미안의 등짝에도 산불처럼 번졌다.

“……그읍?”

엎드린 채 이쪽을 보고 있던 데미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그그급.”

“엄청 뜨겁지?”

“……이, 이게 무슨.”

“괜찮아. 치료의 과정이야.”

“이따위 괴상한 짓이 무슨 치료라고…….”

“나 살던 곳에서는 어린애도 받는 건데?”

“……뭐?”

“쯧쯧. 지하 검투장의 절대강자니 뭐니 하더니만. 어린애도 꿋꿋하게 받는 치료를 못 참아서 이렇게 난리인 걸 사람들이 알까 모르겠네.”

“…….”

“괜찮아. 이제부터라도 잘 참으면 소문은 안 낼게.”

“…….”

이쪽을 노려보는 데미안의 눈초리가 살벌해졌다. 라키엘은 쓴웃음을 삼켰다. 사실 어린애도 참는다는 말,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쑥뜸 이거, 진짜로 많이 뜨거우니까. 게다가 그냥 다짜고짜 직접구 방식으로 지져 버려서 더 뜨겁겠지.’

사실 뜸을 뜨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간접구와 직접구 방식이었다.

간접구는 링이나 받침대 등등의 기구를 피부에 놓고, 그 위에 뜸봉을 올려서 태우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덜 아프다. 덜 뜨겁다. 뜸봉에서 나오는 살벌한 열기를 중간에 놓인 기구가 걸러주니까.

그래서 더 대중적이고, 접하기 쉬운 방식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초심자용 이지(easy) 모드랄까.’

반면 지금 데미안이 받고 있는 직접구 방식은?

중간에 놓는 기구 따위 없다.

대놓고 피부에 뜸봉을 바로 촵 올려놓고선 피부고 가죽이고 아주 그냥 생 열기로 지져 버리는, 상남자의 하드코어한 뜸이 직접구 방식이었다.

‘당연히 엄청 뜨겁지. 잠깐도 아니고 계속 타는 물건으로, 지속적으로 생살을 지지는 거니까.’

특히 데미안은?

더 뜨겁게 느낄 것이다.

사실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뜸을 받을 때 특별히 더 뜨겁게 느끼는 조건들을 데미안이 거의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신경질이 많은 사람이 더 뜨거워하는 편이지. 데미안? 매일 검투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피를 보고 살아왔잖아. 까보면 PTSD 환자일걸. 당연히 24시간 신경이 곤두서 있지. 그래서 엄청 뜨겁게 느낄 거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키엘은 약간의 동정심(?)을 담아 말을 걸었다.

“그래도 제법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긴 할 거야. 그런데 어쩌겠어. 원래 신체가 튼튼한 사람이 더 뜨거워하는 법이거든.”

“……그욱.”

“보통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뜨거워하는 편이고.”

“……후우.”

“게다가 젊을수록 더 뜨거워한다? 특히 스무 살 언저리. 이쪽 연령대가 제일 심해.”

“……후, 후욱.”

“그런데 그쪽, 조금 전에 검투를 치른 직후라서 살짝 피곤하지? 안타깝네. 일반적으로는 약간의 피로감이 있을 때 제일 많이 뜨거워하는 법이라서.”

“…….”

“게다가 날씨마저 그쪽을 돕질 않아. 구름 많이 낀 저기압인 날씨에 뜸이 제일 뜨겁게 느껴지곤 하거든. 딱 오늘처럼.”

“……젠장.”

“아, 참! 게다가 아침보다 오후가 뜨겁고, 오후보다 밤에 시술받을 때가 더 뜨거워. 그런데 어떡하나. 마침 지금이 한밤중이네?”

“……제발.”

“거기에다가 미안하게도, 정확한 혈자리에 뜸을 두면 좀 덜 뜨겁거든. 그런데 오늘은 혈자리와 별로 상관없는 곳이라서 더 뜨거울 거야. 미안.”

“……제발 좀. 닥쳐, 이 미친놈아.”

“그래도 내가 말이라도 걸어주니까 좀 덜 아프지 않나?”

“……퍼, 퍽이나.”

“그래? 알았어, 그럼.”

“…….”

라키엘은 입을 닫아 버렸다.

그저 빙글빙글 웃으며 잘도 타는 뜸봉을 구경했다. 그동안 데미안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 말…… 정말로 아무 말도 안 하는 건가?”

“…….”

“이봐.”

“…….”

“어이?”

“…….”

“뭐라고 말이라도…….”

“해달라고? 거 봐. 입 닫고 있으니까 더 아프잖아.”

“……쯧.”

“고맙지?”

“……제기랄.”

“그래도 이건 알아주면 좋겠네. 그 뜸봉, 쉽게 만든 건 아니야.”

“뭐?”

“쑥으로 만들었지. 아무 쑥이나 쓴 것도 아니고. 바닷가에서 해풍을 맞으면서 자란 걸로만 구했어. 뭐, 원래는 3년 이상 묵힌 걸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까지는 없었고.”

“…….”

“절구로 엄청 찧었어. 체로 치면서 찌꺼기도 걸러냈고. 그걸 한 열 번쯤 반복했나. 흰 털만 남을 때까지 계속했거든. 덕분에 수분, 단백질 질소유기물, 섬유소, 지방, 회분, 거기에 플라보놀 화합물과 세스퀴테르펜, 알코올 등등이 황금비율로 버무려진 좋은 뜸봉이 나왔지.”

“무슨…….”

“그만큼 좋은 걸로 정성껏 만들어서 효과도 괜찮은 놈이라고, 지금 지지고 있는 거.”

“…….”

“다 됐다. 잠깐만 더 엎드려 있어.”

마침 뜸봉이 다 탔다.

라키엘은 재가 된 뜸봉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뜸봉이 놓였던 자리. 낙인 한가운데가 온통 붉게 익어 있었다.

뜸으로 만들어진 화상 자국이었다.

‘좋아. 제대로 지졌다.’

그의 입가에 일류 스테이크 요리사 같은 미소가 훈훈하게 걸렸다. 살갗이 아주 적절하게(?) 익어 있었다.

특별히 단단하게 뭉친 왕뜸을 썼다. 그만큼 일반 뜸보다 더 뜨겁게 오래 타는 물건이었다. 아마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 열기를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해낼 거라고 믿었다.

‘여윽시 소설 주인공.’

주인공다운 인내력과 남다른 의지. 그걸 믿고서 밀어붙였고, 데미안은 그 기대에 정확히 부응해주었다. 덕분에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

뜸자리를 정돈해준 라키엘이 말했다.

“끝났으니까 일어나 봐.”

“…….”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데미안.

다행히(?) 녀석은 이쪽의 죽빵을 갈기진 않았다. 대신 침상에 걸터앉은 채 미간을 크게 찡그렸다.

“으음?”

이내 이쪽을 쳐다보는 녀석의 눈빛.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놀람의 기색이 가득했다.

“……어떻게 한 거지? 뒷골이…… 머리가…….”

“안 아프지? 싹 맑아졌지?”

끄덕.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로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더는 뒷골이 당기지가 않았다. 관자놀이를 온통 저릿저릿하게 만들던 느낌도. 눈알이 빠져나올 것만 같던 끔찍한 고통도.

더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아무리 진통제를 먹어도 이렇게 상쾌한 적은 없었는데, 지난 몇 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데미안은 라키엘을 쳐다보았다.

그저 돌팔이인 줄로만 알았다.

엎드리라며, 이상한 풀을 뭉친 덩어리로 등을 지질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쪽은 뒷골과 머리, 얼굴이 아픈 건데, 어째서 상관도 없는 등을 지지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꿎은 생살만 지지는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 수없이 고민했더랬다.

‘그래도 쿠스만이 보낸 사람이니까, 결과만 확인해보자 싶었는데.’

치료 효과가 없으면 두 팔을 부러뜨려 버리리라고. 당분간 걷지도 못하는 꼴로 만들어주겠노라고.

이를 갈며 다짐했더랬다.

한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이럴 줄은 정말로 몰랐다.

더는 아프지 않았다.

솔직히, 경이로웠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소설 속의 어느 세계에서는 검 한 자루로 대륙을 평정한 마검황. 그러나 이곳에서는 쑥뜸의 신세계에 눈을 뜬 데미안.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처음으로, 존댓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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