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27화 (27/468)

27화. 참교육 (3)

퍼석!

입안에서 맹독 캡슐이 터졌다.

쿠스만의 눈이 경악으로 홉떠졌다.

‘……커헉!’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의 다급한 눈길이 위쪽을 향했다. 그곳에 라키엘의 얼굴이 있었다. 쿠스만의 눈동자가 물었다.

‘어떻게? 설마?’

진짜로 이쪽의 비장의 수단을 미리 간파한 걸까. 그래서 이쪽의 계획을 모두 알았다는 듯이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은 걸까.

“……쿠! 쿠흡!”

혓바닥이 얼얼해졌다. 불에 지진 듯이 화끈거렸다. 화끈거림은 이내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묵직한 통증으로 변했다.

혀가 굳어갔다. 입 안쪽의 감각이 사라졌다. 입술이 경직되고, 침이 뚝뚝 흘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안면 근육마저 경련했다.

‘젠장! 제기랄!’

소름이 오싹 돋았다.

맹독탄은 자신의 주특기였다. 그 누구보다도 맹독탄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다.

쿠스만은 상황을 인정했다.

그토록 끔찍한 맹독탄이 입안에서 터졌다. 이대로 손 놓고 멍하니 있다간? 3분 안에 정신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30분 안에 숨이 끊어지겠지. 즉,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3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에겐 다행스럽게도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는 맹독탄 해독제가 있었다.

‘빨리…… 빨리……!’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조끼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유일한 생명줄, 해독제를 꺼내려 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텁!

난데없는 손아귀가 뻗어왔다. 이쪽의 손목을 움켜쥐어 가로막았다.

‘……큭?’

해독제를 꺼내야 하는데!

쿠스만은 손아귀를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또 다른 손아귀가 뻗어왔다. 이번엔 자신의 조끼 안주머니로 쑥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본인 물건 챙겨가듯 해독제 병을 꺼내 갔다!

‘어?’

쿠스만의 가슴이 철렁.

그의 시선이 하염없이 해독제를 향했다. 해독제가 타인의 손아귀에 붙들려 이쪽에서 멀어졌다. 올라가고. 멀어지고. 대각선으로 쭈욱. 올라가다가.

누군가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라키엘의 얼굴이었다.

한데 라키엘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 어어?’

쿠스만이 어어 하는 사이.

라키엘이 벌린 입으로 해독제 병을 가져갔다. 이쪽의 눈을 빤히 똑바로 쳐다보며. 마치 보란 듯이.

뽕!

해독제 병을 따더니.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말려볼 틈도 없이 꿀꺽, 삼켜 버렸다!

‘안 돼애애애애애!’

쿠스만은 비명을 질렀다. 굳어 버린 입술로 버둥버둥 욕을 하려 애썼다.

‘이 개x끼! 악마 x끼야!’

유일한 희망이.

생명의 동아줄이.

저놈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더는 살아날 희망이 없다.

쿠스만은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다. 안면과 목이 마비되는 걸 느끼며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절망감 가득한 게거품을 물며 입만 간신히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라키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이거 엄청 쓰네.’

해독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정말 심각하게 썼다. 전직 한의사로서 어지간한 쓴맛은 다 느껴봤다고 자부하는 편인데도, 삼킨 직후부터 얼굴이 펴지지가 않았다. 이건 마치 혓바닥이 발바닥으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해독제를 뱉지는 않았다.

정신을 잃어가는 쿠스만을 더 농락하기 위해서? 혹은 쿠스만에게 더 큰 절망감을 심어주기 위해?

모두 아니었다.

그가 일부러 해독제를 빼앗아 먹은 데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병 주고 약 줘서 진료비 청구 스킬 써먹어야지.’

그래야 보너스 수명을 알뜰살뜰 획득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독제를 빼앗아 먹었다. 애초부터 쿠스만의 암습 방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쿠스만 이 작자, 소설에서도 서너 번 저 기술을 써먹었지.’

어금니처럼 입속에 끼우고 다니는 맹독탄. 그걸 기습적으로 뱉어서 터뜨리는 암습법.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쿠스만이 근위대원에게 덤벼들다가 일부러 맞고 쓰러졌다는 사실도. 그렇게 상대를 안심시키고는 맹독탄을 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덕분에 타이밍 좋게 놈의 입을 막았다. 입안에서 맹독탄이 터지게 했다.

‘그리고 해독제를 빼앗았고.’

쿠스만이 스스로 해독제를 먹게 두면 안 된다. 그러면 쿠스만이 셀프로 치료를 하게 된 셈이라, 이쪽이 진료비 청구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당연히 보너스 수명도 못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쿠스만에게서 해독제를 빼앗아 먹여준다면?

‘그것도 셈법이 애매해지지.’

라키엘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 방법 또한 자신이 쿠스만에게 ‘진료행위’를 해준 걸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해독제를 만든 사람이 쿠스만이니까. 쿠스만이 만든 해독제를 내가 단순히 먹여주기만 하는 행위가 되는 거니까. 즉, 내가 해준 진료행위로 인정될 확률이 낮다는 거지.’

아마도 진료비 청구를 사용할 수 없을 거다.

보너스 수명도?

당연히 못 얻는다.

그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쿠스만의 해독제를 빼앗았고, 먹어 버렸다. 그리고 미리 비워두었던 써클 슬롯에 저장했다.

[1번 슬롯의 저장이 완료되었습니다.]

[1번 슬롯 현황]

[최대 용량 : 10 리터]

[현재 저장 용량 : 0.01 리터]

쓰디쓴 해독제가 알차게 담긴 써클 슬롯. 그걸 보자 절로 든든함이 느껴졌다.

‘자, 그럼 해보자.’

라키엘은 쓰러진 쿠스만을 살폈다. 게거품을 잔뜩 문데다 눈이 허옇게 뒤집어져 있었다. 아마 이대로 둔다면 반 시간도 못 버틸 것 같았다.

‘할 수 있어.’

밥상은 차려졌다. 이젠 이놈을 살려서 보너스 수명을 얻을 때다. 라키엘은 쓰러진 쿠스만의 몸을 딱지 뒤집듯 홱 뒤집었다.

그의 손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엎드린 놈의 등짝을 살폈다.

양쪽 견갑골 사이. 제5흉추극돌기(spinous process of the 5th thoracic vertebra) 아래. 척추 양쪽으로 1.5촌 지점을 짚었다.

심수혈(心兪穴)이 그곳에 있었다. 강하게, 온 힘을 실어서 엄지 끝으로 눌렀다.

“……뿌그아아아아아악!”

혼절해 있던 쿠스만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입안 가득 머금고 있던 게거품을 브레스처럼 푸확 뱉으며 웅장한 비명을 내질렀다.

라키엘은 흐뭇하게 웃었다.

‘제대로 짚었네.’

심수혈을 짚었더니 아주 제대로 난리가 났다. 즉, 심장으로부터 몰려온 사기(邪氣)가 심수혈에 뭉쳤다는 뜻이다.

‘소설 내용 그대로다. 쿠스만이 쓰는 독은 안면과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심장에 큰 타격을 준다고 했지. 심장박동이 점차 불규칙해지다가 멈추게 된다고 말이야.’

즉, 그의 맹독탄은 심장을 해하는 성분일 것이라 보았다. 하여 심장의 탁한 기운이 주로 쌓이는 심수혈을 짚었다.

진단은 성공적이었다.

‘그럼 이제 해독제 투입.’

[써클 슬롯에 저장된 물질이 방출됩니다.]

키이이이잉-!

써클이 힘찬 회전을 시작했다.

슬롯에 저장된 해독제를 압축했다. 증폭된 해독제 성분을 마나에 실었다. 심장으로부터 어깨로, 팔뚝으로, 손끝으로. 쿠스만의 심수혈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밀어 보냈다.

“……그! 뿌그흑!”

쿠스만이 온몸을 떨어댔다.

이쪽이 밀어 보낸 해독제 성분이 그의 심수혈로 착실하게 들어갔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은 해독제가 그의 몸속 어떤 경로로 퍼지는지, 아스라한 심법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해독제 성분이 심수혈을 우물로 삼아 뭉쳤다. 이내 이쪽의 강한 지압에 밀려 이동을 시작했다.

심수혈을 출발하여 몸통의 중심부로 번졌다. 그곳의 횡경막을 어루만지며 소장(小腸)으로. 다시 가지가 갈라지듯 위로 이어졌다. 목구멍과 양쪽 눈으로 스몄다. 나머지는 폐부(肺腑)를 지났다. 겨드랑이의 가장 우묵한 곳으로 흘러갔다.

그곳에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가장 윗혈이라 불리는 극천혈(極泉穴)이 있었다.

해독제가 극천혈에 스몄다.

수소음심경을 따라 번졌다.

팔꿈치의 소해혈(少海穴)을 지나. 손목의 음극혈(陰郄穴)과 신문혈(神門穴)을 거치더니. 손바닥 안쪽의 소부혈(少府穴)을 강하게 때렸다.

그 충격이 쿠스만의 몸속으로 널리 확장되었다. 메아리처럼. 소리치고 되돌아왔다. 마침내 심장에 깃들어 전신의 혈관을 따라 퍼져갔다.

동시에 쿠스만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얼굴이 지극히 평온해졌다.

‘죽은 건 아니지?’

재빨리 놈의 호흡을 체크했다. 다행히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대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딩동!

[당신은 적절한 해독제의 사용으로 환자 : 쿠스만을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중독 증상에서 벗어났으며, 적절한 안정을 취할시 별다른 후유증 없이 완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료비 청구 (Lv.1) 스킬이 발동됩니다.]

‘됐다!’

라키엘은 환호했다.

계획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그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후속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환자 : 쿠스만은 당신의 해독 진료를 통해 21년 2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21년 2개월의 1/200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3.81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4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찰랑!

일순간, 뭔가 청량한 기분이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그 기분을 증명해주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예상 기대수명 : 118일]

“…….”

늘어났다.

정말로 기대수명이 4일이나 팍 늘어났다.

‘……이거지!’

남을 진료해준 대가로 보너스 수명을 획득했다. 게다가 나쁜 놈한테 병 주고 약 주며 얻어냈다. 이보다 바람직할 수가 없었다.

‘후환을 제대로 제거한 셈이기도 하고.’

소설 속 쿠스만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는 굉장히 집요한 자였다. 자신에게 해가 될 인물은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었다.

한데 만약 오늘 놈을 놓쳤다면?

두고두고 성가신 존재가 됐을 것이다.

“연행해.”

축 늘어진 쿠스만이 근위대원들에게 끌려갔다. 검투장으로 돌아와 보니, 그곳의 토벌작전도 대강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포박된 수많은 이들을 지나쳤다.

그때였다.

“저기, 전하?”

지금껏 묵묵히 뒤를 따르던 가르딘 경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제가 정말로 궁금해서 이러는 건데 말입니다.”

“응. 괜찮으니 물어봐.”

“예, 전하. 혹시…… 오늘 밤의 이 일들, 전부 계획하셨던 겁니까?”

“어.”

“…….”

“왜?”

“아, 아닙니다.”

가르딘 경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무의식중에 감탄사를 내뱉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전하가…… 이런 분이셨나.’

항상 병치레만 하던 분이셨다. 그래서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분이라고면 여겼더랬다. 한데 오늘 밤의 모습을 보니 아니었다.

‘레스토랑 지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아신 걸까.’

자신은 단골이면서도 몰랐다.

한데 황태자는 어떻게?

섣불리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다른 수단이 있으신 건가. 황족이니까.’

아마도 접하는 정보의 양과 깊이가 다르긴 할 터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 수긍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감탄도 들었다.

‘우리 전하께서…… 이런 면도 있으셨구나.’

어느 순간부터 강단이라는 것을 지니게 되셨다. 종종 사람을 깜짝깜짝 놀래주며 감탄하게 하신다. 게다가 오늘 밤에 벌인 일의 결과를 생각하면 더욱 감탄이 나왔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황도 한복판에서 이런 지하조직이 크고 있었던 거로구나. 치안을 해치고 황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종의 썩은 살이었던 거지. 한데 전하께서 그걸 일거에 잘라내신 셈이고.’

덕분에 황도의 안녕과 공공의 질서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정의로운 사회를 조금 더 이룩하게 됐다.

그걸 위해 전하께서 용략을 발휘하신 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벅찼다.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그렇듯 가르딘 경은 초롱초롱해진 눈망울로 라키엘의 뒤를 따랐다.

덕분에 라키엘은 뻘쭘(?)해졌다.

‘후우. 가르딘 경, 무슨 생각으로 나 쳐다보는지 대강 알겠네.’

눈치로 느껴졌다.

저 아재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 오늘 밤 내 의도를 굉장히 숭고하고 거룩한 뭔가로 여기고 있구나.

‘그런 거 아닌데.’

쓴웃음이 몰려왔다.

그는 검투사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앞은 어수선했다. 근위대원 서넛이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나머지 근위대원 수십 명이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데미안이 보였다.

데미안의 뒤편으로 검투사들도 보였다. 한 마디로, 근위대원들과 데미안이 대치하고 있었다.

“쯧.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고 그렇게 일렀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

그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데미안이 흠칫하는 게 보였다. 이내 녀석의 눈길이 이쪽을 향했다. 그 눈동자가 다시금 흠칫. 이내 경악으로 부릅뜨는 두 눈.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빙긋 나왔다.

“이제 믿겠어? 내가 황태자라고 밝혔던 거.”

“…….”

고개를 끄덕인 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근위대원들을 겨누고 있던 데미안의 검이 스르륵 내려갔다. 사납던 기세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다시금, 미소가 나왔다.

‘공공의 이익? 정의로운 사회?’

아마도 가르딘 경이 품고 있을 오해. 그걸 생각하니 조금은 민망해졌다. 사실 이쪽은 그런 숭고한 의도 같은 거, 전혀 없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 같은 것을 추구해본 적도 없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못 된다.

그럴 거라는 기대도 감히 하지 않는다.

‘난 그저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오늘 밤의 일을 추진했을 뿐이니까.’

소설 속 주인공인 데미안 카이엔.

그의 뒤로 늘어선 검투사들.

그들을 향해, 라키엘은 첫 환자를 맞이하는 영업력(?) 충만한 미소를 활짝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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