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0화 (30/468)

30화. 환상종 선택 뽑기 (1)

‘……뭐?’

라키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뜻밖이었다.

라운드 니들을 구할 방법 때문에 고민하던 차였다. 한데 모아둔 HP를 사용하면 그 고민이 해결될 거라니.

‘좋은 방법이라니, 그게 대체 뭐길래?’

속으로 되물었다.

곧 대답이 돌아왔다.

[심장 : 기억 안 나나? HP를 어디에 사용할 수 있는지 안내문 받은 적 있잖아.]

[허파 : 후우…… 기억의 책을 펴보자…… 푸후우…… 어지럽자너…… 니들은 이런 거 피지 마라…….]

[대장 : 3초 안에 기억 못하면 괄약근 활짝 오픈해드리지 말입니다ㅋ]

‘……스킬, 아니면 환상종?’

오장육부가 떠드는 말을 듣다 보니 떠올랐다. 처음 이 세계에서 눈을 뜬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귓가에 울리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시엔 워낙 잠이 덜 깨었고 얼떨떨했던 터라 그냥 넘어갔었는데, 역시나 그게 HP의 사용처를 안내하는 메시지였던 듯했다.

라키엘은 당시의 메시지 내용을 되짚었다.

‘획득한 HP를 투자해서 각종 스킬을 개발하거나 환상종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였던가?’

[심장 : 정답ㅋ]

[허파 : 짝짝짝.]

[대장 : ……아깝다.]

“…….”

오장육부의 메시지는 거기까지였다. 그걸로 전할 말이 끝났는지, 말을 걸어봐도 더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라키엘은 시스템 창을 열어보았다.

‘어디 보자. 스킬 개발 아니면 환상종 뽑기에 답이 있다는 소리인데. 혹시 침술 스킬을 개발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비 청구도 그랬으니까.’

스킬은 예상보다 위대(?)했다. 사실은 엄청난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 단순히 진료비를 돈으로만 받는 게 아니었다.

‘덕분에 보너스 수명을 받을 수 있게 됐지. 어쩌면 침술도 그럴 거야. 지금 내가 짐작도 못하는 강력한 기능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지도.’

그는 스킬 목록을 검색했다.

딩동!

<개방 가능한 스킬 목록>

[1. 침술]

[2. 부항]

[3. 뜸]

[4. 탕약 조제]

[5. 약재 감별]

[6. 약초 탐색]

[7. 약술 주조]

이미 개방된 진맥, 진료비 청구, 아스라한 심법은 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침술 스킬.’

딩동!

[목록 1번. 침술을 선택하셨습니다.]

[스킬 개방 (2회차) 비용 : 1,500 HP]

[현재 보유 중인 HP : 500]

[당신은 스킬 개방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보유 중인 HP가 모자랍니다.]

“…….”

요청이 단호박으로 잘렸다.

라키엘은 흔들리려는 멘탈을 부여잡았다. 대뇌피질을 더욱 채찍질하며 돌파구를 궁리했다.

‘HP, 그동안 나름 모았다고 모았는데 턱도 없네. 그럼 어떡하지?’

어떤 스킬이건 개방에 1,500 HP가 들어가는 상황. 그렇다고 지금 당장 HP를 퍼받을 획기적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혹시, 환상종 선택 뽑기는 답이 될 수 있을까.’

혹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킬창 옆에 놓인 ‘환상종’ 항목으로 눈길을 던졌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딩동!

[당신은 환상종 선택 뽑기 항목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소정의 HP를 투자하여 환상종을 뽑을 수 있습니다.]

[강력하고 개성 넘치는 환상종은 자신을 소환한 주인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며, 다양한 능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선택 뽑기 (1회차) 비용 = 300 HP]

[현재 보유 중인 HP : 500]

[환상종 선택 뽑기를 실행하시겠습니까?]

[YES / NO]

‘흐음.’

라키엘은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비용이 저렴하다.

1회차 뽑기라서 그런 걸까. 고작 300 HP로 강력한 환상종을 뽑아서 소유할 수 있다고 하니 구미가 당겼다.

‘게다가 아까 오장육부, 심장이 그랬지. HP를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데 스킬 개방은 보유한 HP가 모자라서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아마도 녀석들이 내게 추천한 해법은 바로 환상종 뽑기가 아니었을까.’

자연스레 그런 추론이 가능했다.

라키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르딘 경, 잠들었겠지?’

아까 낮에 세르지오에게 침을 놓아주다가 목을 졸렸던 소동 이후, 온종일 고민에 휩싸여 오후와 저녁을 보낸 터였다.

그 사이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가르딘 경은 일찌감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근처에 깨어 있는 이는 침실 문 앞을 지키는 근위대원 정도가 다일 것이다.

‘큰 소리만 안 내면 괜찮겠지.’

라키엘은 메시지창을 쳐다보았다.

결심하듯 ‘YES’를 선택했다.

[환상종 선택 뽑기를 실행합니다.]

안내문과 함께 300 HP가 소모되었다. 동시에 허공에 홀로그램 같은 안내문이 떠올랐다.

파아앗……!

[선택 뽑기에 앞서, 당신이 환상종에게 원하는 기능을 밝혀주세요.]

[선택 뽑기에서 제시되는 환상종 후보군은 당신이 원하는 기능에 맞추어 세팅될 것입니다.]

‘기능?’

그건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많은 수량의 라운드 니들을 안정적으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급해줄 수 있는 환상종.’

그 생각을 떠올린 직후.

[당신의 요구 사항이 등록되었습니다.]

-화아악!

안내문이 광채에 휩싸였다. 광채가 세 갈래 카드로 변했다. 좌측, 중앙, 우측에 차례대로 놓였다. 이내 각각의 카드에 짤막한 문구가 떠올랐다.

<후보 1 : 꿀꿀한 게 행복한 아이>

<후보 2 : 강철끙까 방출기>

<후보 3 : 똥 싸는 선인장>

“…….”

뭘까 저건.

각각의 카드에 쓰인 글귀를 보며 라키엘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수수께끼 같은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환상종 선택 뽑기 시스템으로부터 3마리의 후보를 제시받았습니다.]

[세 후보는 당신의 요구 사항을 각각 100%, 50%, 0% 반영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한번 선택한 환상종은 교환, 반품, 환불이 불가능하니 신중하게 선택해주세요.]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그 뜻은 명확했다.

‘후우. 셋 중의 하나는 대박, 하나는 중박, 나머지 하나는 쪽박이란 소리구나.’

한데 그 선택을 무를 수가 없단다.

자칫 운이 나쁘면? 그래서 쪽박을 뽑으면? 이쪽의 요구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생뚱맞은 환상종만 떠맡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리라.

“…….”

그럼 뭘 선택해야 할까. 라키엘은 팔짱을 끼고서 세 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꿀꿀한 게 행복한 아이, 강철끙까 방출기, 똥 싸는 선인장…… 이라.’

대체 뭘까.

저 문구들이 뜻하는 환상종이 어떤 걸까.

추론하고, 짐작하고, 알아내려 애썼다. 단 한 번만 가능한 선택. 그 선택을 최선으로 해내기 위하여 최대한 침착하고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덕분에 서서히 아이디어의 문이 열렸다. 조금씩, 저 수수께끼 같은 글귀의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제일 먼저 짐작이 되는 건, 꿀꿀한 게 행복한 아이. 저건 둘 중의 하나일 거야. 꿀을 좋아하는 꿀벌, 아니면 돼지.’

만약 꿀벌이라면?

독침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걸 침술에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봉침(蜂針)을 놓는다면 더없이 좋겠지.’

하지만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꿀벌이면 곤란해. 아무리 벌침을 제공해준다 해도 그럴 거야. 꿀벌이 쏘는 침은 1회용이니까. 게다가 독침이면 아플 거잖아.’

한데 자신은 일정한 규격을 지닌, 덜 아픈, 많은 수의 라운드 니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탈락. 만약 저게 꿀벌이 아니라 돼지라 해도 더 탈락.’

라키엘은 첫 번째 후보인 ‘꿀꿀한 게 행복한 아이’ 카드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눈길이 두 번째 후보, ‘강철끙까 방출기’로 향했다.

‘저건 뭔지 모르겠다, 진짜.’

끙까 대신 강철을 생산한다는 걸까. 만약 저 강철이 엄청나게 가느다랗다면? 그 강철이 일정한 굵기로 유지되며 뽑혀 나온다면? 그렇다면 라운드 니들을 왕창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가 않아. 저걸 뽑는 건 도박이야.’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세 번째 카드로 향했다.

‘똥 싸는 선인장.’

혹시 식물인 걸까. 글귀 그대로 선인장인데 똥을 싼다는 걸까. 혹은 선인장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이라는 걸까.

‘어쨌건, 두 경우 모두 내가 원하는 조건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인장은 가시가 많다. 그걸 활용하면 라운드 니들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선인장을 연상케 하는 동물이라도 비슷하리라.

‘좋아.’

라키엘은 마음을 굳혔다.

세 번째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선택은 이것.’

딩동!

[당신은 후보 3 : <똥 싸는 선인장>을 선택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시에 세 번째 카드가 광채로 물들었다.

화아악-!

나머지 두 카드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세 번째 카드의 광채가 더욱 찬란해졌다. 마침내 카드가 뒤집혔다. 그 뒷면에 검은 실루엣이 새겨져 있었다.

온통 동글동글한 덩어리 같은 형상이었다. 자세히 보니 바늘 같은 가시가 수도 없이 삐죽삐죽 돋아나 있었다. 한데 아래쪽엔 자그마한 다리 넷이 보였다. 이윽고 카드의 광채가 실루엣으로 번졌다.

파지직! 파짓!

카드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실루엣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진이 발동하듯. 혹은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알리듯. 마침내, 무언가가 카드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파칫!

강렬한 충격파.

이쪽의 품으로 날아오는 덩어리.

“꼬슴!”

“……엇?”

테니스공보다 조금 큰 크기의 덩어리였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그 덩어리를 얼결에 두 손으로 받았다.

그 순간, 라키엘은 기겁했다.

“앗뜨!”

두 손바닥이 따끔했다. 마치, 수십 개의 바늘에 콕콕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덩어리를 놓치지 않았다. 더욱 꼭 움켜쥐었다.

‘환상종일 거니까!’

무려 300 HP를 투자해서 뽑아낸 놈이었다. 한데 녀석을 제대로 받아내지 않고 내동댕이친다면? 녀석의 입장에서 그리 유쾌하지 못한 첫 만남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럼 곤란하지! 앞으로 주구장창 부려먹어야 할 놈인데!’

첫인상은 중요하다. 시작부터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부려먹기가 편해진다.

라키엘은 인생의 진리(?)를 떠올리며 두 손을 움츠렸다. 뜨거운 군고구마 잡듯이 손바닥을 조심스레 놀리며 덩어리의 모습을 확인했다.

밤송이처럼 뾰족뾰족한 가시.

짧은 팔다리의 2등신 몸매.

뽕실 빵빵한 궁둥이.

그러니까 이건…….

“고슴도치?”

“꼬슴!”

이쪽의 중얼거림에 녀석이 까만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제 뽕뽕한 뱃살 주름을 뒤적거렸다. 이내 녀석이 뱃살 주름에서 꺼낸 것은 우표보다 자그마한 쪽지였다.

“꼬슴! 꼬스슴!”

“……이거, 나 주는 거야?”

“꼬슴!”

녀석이 자그마한 머리를 끄덕였다.

쪽지를 받아 펼쳐보았다.

일렁이는 촛불 아래.

쪽지에 새겨진 깨알 같은 글씨가 보였다.

‘이거, 너무 작아서 읽을 수가…….’

눈가를 찡그리는 순간이었다.

딩동!

쪽지에 쓰인 내용이 메시지가 되어 눈앞에 떠올랐다. 그것은 방금 뽑은 환상종의 상세한 스펙과 스킬이 쓰여 있는 안내서였다. 그 내용을 보면서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쁨 가득한 확신이 들었다.

오늘 자신이 내린 선택.

그렇게 뽑은 환상종.

이건, 대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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