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아스라한 정밀 진단법 (1)
한의원.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은 있다. 하지만 가는 사람들만 찾아가는 그런 의료 시설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한의원의 현주소였다. 하지만 라키엘은, 과거의 이한은 그걸 바꿔보려 나름 노력을 했다.
‘당연하지. 그래야 안 망하니까!’
한의학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든가. 한의원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겠다든가. ……라는 등등의 숭고하고 거룩한 이상 따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한의원의 수익 보전을 위해서였다. 매달 찾아오는, 2회 군입대만큼이나 무서운 임대료와 대출 이자 납부를 무사히 치러내기 위해서였다.
항상 노력했다.
환자들에 대한 배려는 필수였다.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려고 애를 썼다. 말과 행동이 느린 어르신들이 오실 때면 언제나 귓구멍을 활짝 열었다. 단 한 번도 답답해하지 않고, 환자들의 말을 경청했다. 특히 어린이 환자가 올 때는 더욱 신경을 썼다.
한약은 쓰고 맛이 없는 것. 침을 맞는 건 아프고 무서운 것. 그러니까 한의원은 낯설고 두려운 장소. 그런 인식 때문인지 어린이 환자들은 잔뜩 긴장해 있기가 일쑤였다.
하여 친절하게. 친근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어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흥미를 끌어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긴장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 또한 그런 기술(?)에 능숙해졌다.
지금 또한 그러했다.
“아이들이 맨날 저 놀려요. 저 흉내 내고 그래요 막.”
“흉내까지 냈어? 너무했네.”
“그래서 어제도 싸웠어요.”
“에고. 많이 속상했구나?”
라키엘이 우쭈쭈를 시전했다. 어느새 긴장이 풀린 아이, 조르쥬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치만…… 졌어요. 또 막, 기분이 이상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캄캄해져? 기분이 이상해지고?”
“네.”
“아픈 거였어?”
“그건 아니고…….”
아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라키엘이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온기에 기운을 얻은 걸까. 아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냥,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질 때가 있어요. 몸이 오싹해져요. 그러다가 온몸이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 들다가…… 바닥으로 떨어져요. 그때부터 몸이 안 움직여요.”
“안 움직여?”
“네. 그냥, 그래요. 막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저릿저릿하고, 하늘이 막 멀어지고, 그리고 이상한 소리도 들려요. 막 소리 지르다가, 웃다가, 울다가, 그러다 보면 다시 정신이 들어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구요.”
“그거 무서웠겠네.”
“응, 맞아요.”
“그래도 그때마다 참아낸 거였구나? 우리 조르쥬, 용감하네?”
“용감하면 뭐해요. 악령 들려서 거품 물고 이상한 짓 했다면서 놀리고 때리는데.”
“악령 아니야, 그거.”
“……네?”
“진짜야. 형 말 믿어.”
라키엘은 조르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진짜 사실이고, 팩트였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은근슬쩍 잡은 아이의 손목. 그 손목을 통해 자연스럽고 은밀(?)하게 진맥 스킬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종합 소견 : 대체로 건강한 신체입니다. 다만, 불규칙한 뇌파에 의한 뇌전증(epilepsy)의 징후가 감지됩니다. 이는 심각한 수준의 전신강직대발작(tonic-clonic seizure)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뇌전증.’
흔히 ‘간질’이라고 말하는 질환.
평소에는 아무 이상 없이 생활을 하다가, 원인 모를 뇌파의 폭주 때문에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고는 하는 질환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증상이지. 사실은 뇌파의 이상 때문에 겪는 고통인데,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약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게다가 알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질환이기도 해.’
라키엘은 예전에 봤던 통계를 떠올렸다. 거의 100명당 1명꼴로 뇌전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던가.
‘심지어 유명인 중에도 뇌전증을 앓은 사람은 많았지. 소련을 건국한 레닌도,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뇌전증에 고통받았다고 했어.’
그걸 이 아이도 앓고 있는 거다.
‘많이 괴로웠겠네.’
아이를 보자니 절로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조차 뇌전증을 지닌 분들은 주위의 색안경 낀 편견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배려를 받아야 하는, 엄연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안타까운 경우까지 있었다. 아니, 수두룩했다.
현대 사회인 한국에서도 그럴 정도인데. 여기서는 얼마나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았을까.
‘악령에 씌어서 그렇다’라며 얼마나 많은 배척과 따돌림, 시달림을 받았을까.
“아무튼, 악령 아니야. 네가 이상한 것도 아니야.”
“……정말요?”
“그래. 형이 황태자잖아. 내 말이 맞아.”
“어떻게요?”
“내 말에 토 달고 싶은 놈 있으면 별궁으로 오라 그래.”
“그럼 황태…… 형이 혼내주는 거예요?”
“황태 형이 뭐냐. 그냥 형.”
“…….”
“아무튼, 이상한 소리 하면서 놀리고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내가 혼내줄게.”
“그럼 나 이제 안 아파도 되는 거예요?”
“…….”
아이가 물어왔다.
가족 외의 사람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 걸까. 은근한 기대감마저 보이는 그 물음에 라키엘은 입을 다물었다.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감히 확답할 수 없는 물음이기 때문이었다. 라키엘은 희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뇌전증을 밝혀낸 건 좋아. 다행이야. 나도 치료해주고 싶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이의 질환이 뇌전증인 게 문제였다. 뇌전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한의원을 꾸리며 갈고 닦은 진맥? 그걸론 턱도 없었다. 혹은 이곳에서 얻은 진맥 스킬? 스킬로도 뇌전증의 원인까지는 밝혀낼 수가 없었다.
‘진맥 스킬 레벨이 너무 낮아.’
이미 몇 번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아까 보았던 [종합 소견] 항목이 전부였다. 그 이상의 정밀한 진단을 보려면 스킬 레벨을 한참은 더 올려야 할 것 같았다.
‘뇌전증은 발생 원인이 매우 다양한 편이지. 그걸 제대로 밝혀내려면? 안타깝지만 한의학으론 안 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해. CT, 뇌파 검사는 물론이고 혈액검사에 간수치, 콩팥기능검사, 소변검사에 요추천자(lumbar puncture)에 혈액배양도 해봐야 해. 그리고 뇌자기 공명영상(MRI) 촬영에 뇌파검사(EEG),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도 시행해야 하고.’
그걸 전부 시행하고, 전문의의 검사결과 판독을 거쳐야 비로소 제대로 짚어낼 수 있는 게 뇌전증의 발생 원인이었다.
한데 여기서는?
‘어림도 없어.’
한국에서도 뇌전증 환자가 한의원에 찾아오면?
여기선 안 된다고. 한의원은 면역력 증진, 체질개선과 건강 유지를 위해 주로 찾는 곳이라고. 그러니 이럴 때는 한의원이 아니라 큰 병원, 종합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어설프게 한의원만 전전하다가는 오히려 치료 시기를 놓치신다고. 양심적으로 말하며 환자를 돌려보내곤 했던 그였다.
솔직히, 조금 막막해졌다.
‘검사 장비마저 없는데.’
어떻게 발생 원인을 찾을까. 발생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없음도 물론일 것이다.
‘후우.’
생각하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 티를 아이 앞에서 내지 않으려니 더욱 막막해졌다.
한데 그때였다.
“……저기, 형?”
아이가 이쪽을 불렀다. 상념에서 깨어나 보니, 아이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나, 이상해요…….”
“어?”
어느새 이쪽의 소매를 꼭 쥐고 있는 아이. 아이의 입술 끄트머리가 움찔, 움찔, 떨리는 게 보였다.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눈꺼풀도 불규칙하게, 잘게 떨리고 있었다.
“추……워요.”
뭔가에 잔뜩 질린 얼굴.
마치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처럼. 혹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악몽에 빠져드는 것처럼. 아이의 전신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련을 시작했다.
‘설마?’
라키엘이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순간.
“……으, 으으윽…….”
아이의 표정이 무너졌다.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목이 뒤로 젖혀지고, 어깨가 오므라들었다. 온몸이 전류에 감전된 듯 덜덜 떨리며 굳어갔다. 뇌전증으로 유발되는 전신강직대발작이었다.
‘이런.’
라키엘은 다급히 손을 뻗었다. 쓰러지려는 아이를 받아 안았다.
‘하필이면 지금 발작이라니.’
당황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아마 갑자기 별궁으로 불려 오며 긴장한 탓이겠지.’
그런 심리 상태가 발작의 유발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짐작하며 아이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그동안 주위에선 난리가 났다.
“아, 아이가!”
“정말로 악령이다. 악령이 들렸어!”
“황태자 전하, 물러나십시오!”
특근대와 근위대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가르딘 경이 기겁하며 물러나라고 외쳤다. 데미안은 말없이 검 자루를 쥐며 눈을 번득였다. 아이의 누이, 시녀가 울먹이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위험합니다, 전하!”
“아이에게서 떨어지십시오!”
근위대원들이 달려왔다. 당장에라도 아이를 빼앗아 집어던질 기세였다. 마치, 이쪽에게서 불길한 존재를 떼어놓으려는 것 같았다.
“그만!”
절로 호통이 나왔다.
모두가 움찔.
딱 굳어 버린 주위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악령이 아니다. 질환이고, 아픈 거야.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하고.”
“…….”
“지금 가장 괴롭고 아픈 건 이 아이야. 환자는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거고.”
“…….”
“누가 가서 베개부터 하나 가져와.”
“아, 알겠습니다.”
근위대원 하나가 뛰어갔다. 그동안 가르딘 경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전하, 아이가…… 많이 괴로워 보입니다.”
“그렇겠지. 이렇게 떨고 있으니.”
아닌 게 아니라 바닥에 누운 조르쥬는 전신을 불규칙하게 떨고 있었다.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가,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하고 있기도 했다. 가르딘 경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거품을 물고 있는데, 손수건으로라도 닦아줘야 할까요?”
“아니, 절대로.”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뇌전증 발작 중에 수건 등을 입가에 놓으면 오히려 큰일이 난다. 전신의 근육, 턱 근육마저도 제멋대로 수축을 하는 중이다. 자칫 수건을 깨물고 삼켜서 기도가 막힐 수도 있다.
“그러니 이대로 둬. 거품이 기도로 안 넘어가도록 고개는 옆으로 돌려놨으니까.”
“하면 좀…… 팔다리라도 주무를까요?”
“아니, 그것도 안 돼.”
전신의 신경이 제멋대로 폭주하는 상황이다. 어설프게 마사지를 시도하다간? 환자가 반사적으로 근육에 과도한 힘을 줄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근육이 파열될 정도로 힘을 주게 된다.
“그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지켜봐 주고, 발작이 끝나면 기절한 듯이 축 늘어질 테니까 그때부터 보살펴주는 수밖에.”
말해놓고 보니 안타까웠다.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음 또한 착잡했다. 라키엘은 발작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아이의 셔츠 단추를 풀어주었다. 벨트도 느슨하게 해주었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점차.
서서히.
아이에게서 뭔가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음?’
그것은 마나의 흐름이었다. 아이의 몸속을 흘러다니는 마나의 움직임이었다. 제멋대로 날뛰며 폭주하는 마나의 흐름과 경로가, 조금씩 느껴졌다. 마치 물속에 퍼져 가는 잉크의 움직임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게 왜 느껴지는 거지?’
처음엔 잠깐 의아했다.
하지만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아스라한 심법.’
자신이 보유하게 된 황가의 비전 심법. 마나의 흡수, 가공, 증폭, 발출에 특화된 심법.
‘부가적으로는 마나의 흐름을 매우 민감하게 포착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고 했지.’
소설 마검황에서 자세히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걸 떠올리자 이내.
‘잠깐만.’
깨달음이 찾아왔다.
라키엘은 눈을 부릅떴다.
마나는 곧 기의 순환이다. 한데 지금 자신은? 아스라한 심법을 통해 아이의 몸속을 흐르는 마나를 느끼고 있다. 그 말은 즉, 아이의 전신에 흐르는 기의 순환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거…… 뇌전증의 발생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지닌 혈맥에 대한 지식. 그리고 아스라한 심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의 순환. 둘을 결합한다면?
‘어쩌면, MRI만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할지도 몰라.’
그렇게 진단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뇌전증을 치료할 수도 있겠다.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엿보였다.
‘해보자.’
각오를 다지는 순간.
라키엘은 아이의 어깨를 살며시 짚었다. 심장을 둘러싼 써클을 최대의 출력으로 회전시켰다. 아스라한 심법을 결합한, 그만의 독보적인, 아스라한 정밀 진단법이 최초로 시도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