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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38화 (38/468)

38화. 미주신경 자극술 (1)

궁정마법사 자네티스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바운스 바운스 흔들렸다.

“……제가요?”

“응.”

“……왜요?”

자네티스는 당황스러웠다. 오밤중에 갑자기 황태자가 자신의 침소로 들이닥친 것도 황당했다. 한데 이렇듯 와서 하는 부탁이란 게…….

‘전격마법으로 등짝을 지져달라고?’

어째서?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까닭조차 짐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많은 의문부호만 머릿속에 쑴펑쑴펑 피어났다. 전날 낮에 황제와 나누었던 대화와 함께.

‘라키엘, 요즘 그 녀석이 지나치게 달라졌어. 어찌나 기이한 짓을 벌여대는지.’

투덜거리던 황제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황제는 덧붙여 이렇게도 말했던가.

‘참으로 별별 짓을 다 저지르고 있다지. 대관절 다음엔 또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벌일는지 말이야.’

말끝에 따라나오던 황제의 탄식도 떠올랐다. 분명, 그 말들은 불평이자 한탄이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듯 불평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어쩐지, 황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황제를 평생 모셨던 자네티스는 자신의 주군이 어떤 기분일 때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흡족해하고 계셨지. 투덜거리던 말씀과는 다르게.’

황태자를 대견해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아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군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며 동네방네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고 싶은 걸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제국의 지배자는.

‘그렇지요. 자식을 두면 다들 그렇게 팔불출이 되곤 하지요. 하지만 폐하. 황태자께서 달라졌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한데 그 달라졌다는 게…… 이런 거였습니까?’

자네티스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황태자 라키엘. 그 모습을 보자 울고 싶어졌다.

“제가 왜, 전하를 해하여드려야 하는 겁니까?”

“음?”

“혹시 제 목숨이 필요하여 이 밤중에 걸음하신 것입니까?”

“……어, 그건 아닌데.”

“하오면-”

“잠깐. 오해가 있었나 본데. 내 등짝에 전격마법을 쏴달라는 게 날 죽여달란 뜻은 아니다. 바삭하게 튀겨달란 뜻은 더더욱 아니고.”

“하면 대체?”

자네티스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어 왔다. 라키엘은 생긋 웃었다.

“이상한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경은 안심해도 좋아. 그러니까 내 말뜻은, 사람이 절대로 죽지 않을, 정전기만큼이나 약한 전기 자극을 완벽히 일정하게, 최소 3시간 정도 일정하게 쏴달라는 뜻이야.”

“……예에?”

“해낼 수 있겠어?”

“…….”

자네티스는 입을 다물었다.

본디 전격마법은 굉장히 파괴적인 공격 계열의 마법이었다. 시전하는 것은 어렵지만, 성공하면 주위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특히, 자신과 같은 고위 마법사가 시전하는 전격마법은 그 자체로 소규모의 재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걸, 고작 정전기 정도의 위력으로 축소해서 3시간이나 일정하게 유지해달라니.

“전하?”

“으음?”

“방금 전하께서 하신 말씀 말입니다. 그거, 엄청나게 어려운 부탁인 건 알고 계십니까?”

“어. 그러니까 경을 찾아온 거 아니겠어?”

라키엘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정말로 당연한 소리였다.

‘어렵지. 엄청 어렵지. 원래는 파괴적인 계열의 마법인 것을 약하게, 오래, 일정하게 유지하며 쏘는 게 진짜로 어려운 거거든.’

극도의 정밀한 마나 컨트롤이 필요한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런 거지. 섭씨 5천 도에 육박하는 헬파이어 마법. 그 헬파이어를 10연발로 발사하는 것과, 섭씨 40도로 따끈하게만 타오르는 불꽃으로 조절해서 1발을 쏘는 거. 둘 중에 어느 쪽이 어렵냐면 압도적으로 후자거든.’

일상생활로 비유하자면?

운전과 비슷할 수도 있으리라.

냅다 풀악셀을 밟는 건 쉽다. 하지만 악셀을 10단계, 20단계로 세심하게 나누며 RPM을 의도대로 유지하는 운전은 풀악셀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 오늘 자신이 궁정마법사 자네티스를 찾아온 이유가 같은 원리 때문이었다.

“경은 이 제국에서 공인된 최고의 마법사지. 그러니 내가 경을 찾아온 거야. 그런 세심한 마나 컨트롤을 안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이는 흔하지 않으니까. 경 정도나 되어야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이니까.”

“…….”

“어때? 이젠 두려움이 좀 가시나?”

“크흠, 예, 전하. 한데 대관절 어찌하여 제게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것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

“나쁜 일 하려는 건 아니야. 사람 살리려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할 거야, 말 거야?”

라키엘이 물었다. 자네티스가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새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크흐흠! 크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전 의식이 생겨나는 건 사실입니다, 전하. 하오나-”

“하오나?”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내가 잘못되면 어떡하느냐고?”

“예, 전하.”

자네티스가 불안감을 내비쳤다.

라키엘은 피식 웃었다.

“괜찮아. 책임 안 물을게.”

“……예?”

“내가 다치거나 해도 경에게 문책이 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야. 아, 내가 이렇게 말해도 미덥지 않다면 여기, 근위기사들을 증인으로 삼도록 하지.”

“……!”

근위기사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제가요?’

라키엘의 알밤 같은 뒤통수를 쳐다보며 물음을 떠올렸다.

‘왜요?’

하지만 그건 꺼낼 수 없는 반문이었다. 그 사이, 궁정마법사 자네티스가 고개를 끄덕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으음,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 잘 생각했어.”

“하면, 말씀하신 일은 언제 하면 될는지.”

“지금.”

“예?”

“미룰 필요 없잖아. 게다가 지금이 차라리 나아. 해 뜨면 참견할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

사실이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위력을 낮추니 어쩌니 하지만, 결국엔 궁정마법사가 황태자를 전격마법으로 튀기는(?) 일이다. 매달리며 뜯어말릴 사람이 새벽 수산시장에 팔려나온 오징어보다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서.”

“……아, 알겠습니다.”

자네티스가 심호흡을 했다. 라키엘도 각오를 다지며 바닥에 앉았다.

‘일단은 시험해보는 거야.’

어쨌거나 전기 자극을 직접 받는 일이었다. 그 자극을 가공해서 아이의 미주신경에 전달하는 일이었다.

하니 무턱대고 시도해볼 수는 없다. 일단 시험을 해봐야 한다. 최소한의 안정성은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잡았다. 아스라한 심법을 천천히 일깨웠다.

키이이잉…….

써클이 서서히 회전했다. 외부의 마나와 자극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자네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준비되셨습니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티스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하오면 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자네티스가 두 손을 가슴 앞에 교차했다. 한 쌍의 손바닥과 열 가닥의 손가락이 얽혔다가 풀어졌다. 복잡한 수인이 맺히고, 마나의 흐름이 재배열되었다. 묶이고, 매듭이 생기고, 하나의 규칙을 이루었다.

이윽고.

……파칫!

작은 스파크가 허공에 탄생했다. 그리고 반응할 틈도 없이 이쪽을 향해 쏘아졌다.

파츠즛!

‘……뜨그이읍!’

절로 어깨가 움찔.

따끔했다.

한겨울철 섬유유연제의 축복(?)을 받지 못한 스웨터로 생성된 풀파워 정전기의 다섯 배쯤 되는 따끔함이었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좋아. 딱 좋아.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자네티스 경은 제국의 궁정마법사다. 궁정마법사는 고스톱 쳐서 따는 자리가 아니다. 이 나라의 공식적인 최강의 마법사라는 증명이다.

‘그 정도면 이런 부탁, 손쉽게 해낼 줄 알았지.’

소설 마검황에서도 자네티스 경의 마나 컨트롤 능력이 마스터급에 달해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 내용을 믿고 실험을 강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

자네티스 경이 기대에 부응을 해주었으니, 이제는 이쪽이 분발할 차례였다. 라키엘은 마나써클의 흡수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키이이이잉-!

써클의 회전수가 올라갔다.

전격마법을 맞으며 느껴지는 찌릿찌릿함이 둔해졌다. 그만큼 더 많은 전류가 흡수되어 써클에 깃들었다.

‘흡수만 해선 안 돼. 그다음은 가공.’

써클 중심에 작은 마나의 덩어리를 생성했다. 처음에는 좁쌀 크기로. 그 안에 전격마법의 기운을 담아갔다.

그냥 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기 신호를 새겼다. 마치 패턴처럼. 그래프를 그리듯. 프로그램을 짜 넣듯. 좁쌀 같은 마나의 덩어리가 일정한 패턴의 전기 자극을 주위로 방출하도록.

모양을 가다듬고, 기능을 재단했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파츳, 파츠츳!

마치 심장이 뛰듯, 완성된 마나의 덩어리가 미약한 전기 신호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의 패턴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었다.

‘아스라한 심법 이거, 완전 사기네.’

라키엘은 스스로 해놓고도 놀랐다.

설마하니 한 방에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최소 며칠은 연습해야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쉬웠다.

이쯤이면 됐다.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찌릿찌릿 전격마법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신 상체를 움찔움찔 떨어대며 말했다.

“……그, 그르느끄…… 그, 그믄……!”

궁정마법사 자네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는지 못 알아들은 걸까.

재차 외쳤다.

“그믄쓰르그!”

“혹시, 그만…… 쏘라는 말씀이십니까?”

“등은흐즈! 므, 므믑!”

자네티스가 뒤늦게 화들짝 놀랐다. 마법 시전이 중단되었다. 성공적인 실험의 끝이었다.

이제는, 진짜 시술을 할 때가 왔다.

별궁에 돌아왔을 땐 어스름하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좀 따끔할 거야.”

“따끔이요?”

“응.”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별궁에서 자다 깬 탓일까. 조르쥬의 표정에 약간의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긴장하지 말라곤 안 할게. 원래 약은 쓰고, 시술은 따끔한 거니까. 안 속일게.”

“많이…… 따끔해요?”

“음, 아주 살짝?”

“얼만큼요?”

“장난으로 꼬집는 정도?”

“으, 꼬집는 거 싫은데.”

“많이 꼬집혀봤어?”

“릴리한테요.”

“친구?”

“아뇨.”

“그럼?”

“여자친구요.”

“…….”

갑자기 서러워졌다.

“후우. 배신감.”

“네?”

“어, 아니. 일단 누워볼까?”

아이를 눕혔다.

꼬슴이를 꺼냈다.

“꼬슴아, 아침부터 미안. 하얀 가시 하나만 줄래?”

“꼬슴!”

뾱!

새하얀 가시를 받아들었다. 가시를 본 아이, 조르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거…….”

“괜찮아. 겨우 이거 살짝 찔렸다고 울고 그럴 건 아니지?”

“아플 거 같은데…….”

“울면 릴리한테 이를 거야.”

“…….”

“뭐. 왜. 뭐.”

“…….”

“그리고 너 벌써 찔렸거든.”

“네?”

“방금 찔렀다고. 몰랐지?”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시가 이미 아이의 목덜미에 꽂혀 있었다. 방금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목덜미 옆쪽, 인영혈(人迎穴)에 시침을 한 덕분이었다.

“봐. 안 아프다고 했잖아.”

처음엔 당황하다가, 비로소 안심하는 아이. 그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궁정마법사 자네티스가 있었다.

‘지금. 시작하지.’

신호를 보냈다.

자네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준비하고 있던 전격마법이 이쪽으로 쏘아졌다.

파츳!

등줄기가 따끔해지는 감각.

동시에 아스라한 심법을 끌어올렸다.

물론 이때만 해도 라키엘은 까맣게 몰랐다. 오늘, 아이에게 시술해주는 미주신경 자극술. 이 시술의 결과로 자신이 어떤 뜻밖의 업적을 얻게 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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