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39화 (39/468)

39화. 미주신경 자극술 (2)

파츳!

등줄기가 따끔해졌다.

고도로 제어되고 약화된 전격마법이 등을 지지는 감각. 어깨가 절로 움찔거렸다. 라키엘은 이를 악물었다.

‘참자. 아까처럼.’

자네티스를 찾아가 실험을 해봤던 새벽처럼. 지금도 참아내고, 받아들이고, 흡수하자. 다짐하며 써클을 회전시켰다.

키이이…….

심장을 둘러싼 써클의 회전이 거세졌다. 주위의 마나를 흡수하려는 성질이 활성화되었다. 라키엘은 그 흡수력을 모두 등으로 돌렸다.

키이이잉-!

등을 자극하던 전격 마법의 마나가 모조리 써클의 흡인력에 걸려들었다. 그대로 흡수했다. 압축했다. 가공했다. 완두콩 크기의 마나 덩어리로 빚어냈다. 그 안에 전격마법의 힘을 꼭꼭 채워넣기 시작했다.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이건 꼭 변압기 된 기분인데.’

혹은 충전기가 더 정확할까.

묘한 기분이 들어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궁정마법사 자네티스가 쏴주는 전력(?)을 자신이 받아들이고 전압을 조절해서 마나 덩어리에 꼭꼭 충전하고 있으니, 정말로 충전기가 된 기분이었다.

‘어쨌건 순조롭구나.’

아까 연습한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30분? 그 정도만 꾸준히 충전을 한다면, 충분한 전력이 모일 것 같았다.

‘한 번의 전기 자극만으로는 미주신경 자극술의 의미가 없으니까. 한 번 시술해서 평생 써야 하는 거야. 이 아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꾸준하게 전기 자극을 주면서 뇌전증 유발을 막아낼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평생, 능히 수십 년쯤 사용될 전기 에너지를 담아놓아야 한다.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 수 있어.’

이대로 계속 순조롭게만 가자. 라키엘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마나 덩어리에 전격마법을 충전했다.

그 사이, 시간이 착착 흘렀다.

5분, 10분, 그리고 20분.

아이의 누이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데미안과 가르딘 경. 특근대 검투사들. 근위대원들과 몇몇 시종 시녀들. 모두가 두런두런 멀찍이 모였다.

그들이 감히 수군거리지도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이쪽의 시술을 구경하는 게 보였다. 다행히(?) ‘궁정마법사가 황태자 전하를 전격마법으로 튀기고 있다!’라며 호들갑을 떠는 이는 없었다.

‘뭘 하는 건지 궁금하겠지.’

저들의 눈에는 신기하긴 할 터다. 궁정마법사가 전격마법을 이쪽에게 쏘고 있다. 이쪽은 전격마법을 맞으며 아이의 목덜미에 가시를 찔러넣었다. 어느 모로 봐도 기이한 광경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라키엘은?

만족했다.

‘이래야지. 더 구경거리가 되어야지.’

이런 신기하고 신선하고 신박한 방법으로 아이가 치료된다면? 그래서 뇌전증 발작에서 해방된다면?

여기 있는 구경꾼들이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황태자 전하께서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아이를 치료해주었노라고, 평생 술안줏거리로 삼을 것이다. 그렇게 사방팔방 사돈에 팔촌이며 이웃을 만날 때마다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게 입소문이 되어주리라.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이 따로 있겠어?’

히죽, 라키엘은 흐뭇하게 웃었다.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

그 결과로 홍보 대박.

수많은 환자들이 별궁 한의원에 몰려들게 될 광경이 눈에 선했다. 그들을 착착 진료하고 보너스 수명을 왕창 챙겨댈 자신의 모습 또한 절로 상상되었다.

‘아, 흐뭇하다.’

상상만 해도 배부른 이 기분. 순조로운 배터리(?) 충전을 하며, 라키엘은 입꼬리를 연신 말아 올렸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파즛……!

‘……음?’

돌연, 기이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처음엔 자신이 마나 덩어리에 전기를 충전하다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그래서 잠깐 전압이 튄 건가 싶었다.

한데 아니었다.

기이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진 곳. 그곳은 자신의 몸속이 아니었다. 아이, 조르쥬의 목덜미였다.

파즛…… 파즈즛……!

“…….”

잠깐만.

설마 이거.

‘쌔한데.’

라키엘은 얼른 정신을 집중했다. 아이의 몸속 마나 흐름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깨닫고 말았다. 아이의 목덜미를 지나는 미주신경, 그곳에서 불길하고도 불안정한 마나의 꿈틀거림이 포착되었다.

그걸 포착한 순간.

라키엘의 미간이 콱 찡그려졌다.

‘와 씨.’

ㅈ됐다.

아이의 미주신경.

그곳에서 불안정한 신경 신호가 생겨나고 있었다. 한데 그 신경 신호의 패턴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목격했던 신경 신호다.

바로…….

‘뇌전증 발작을 유발하던, 바로 그 기폭 신호잖아.’

그런데 지금 그 신호가 느껴진다는 것은 곧?

‘조만간 터진다. 발작이 시작될 거야.’

라키엘은 재빨리 아이의 상세를 살폈다. 호흡과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나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해요?”

이쪽의 불안감을 느낀 걸까. 혹은 스스로도 뭔가 이상한 예감을 느낀 걸까. 아이가 눈치를 보며 물어왔다. 라키엘은 짐짓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조금만 더. 이제 다 돼가니까 조금만 참자. 괜찮지?”

“네.”

아니, 안 괜찮다. 아이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곧, 뇌전증 발작이 시작될 거다.

‘길어봐야 3분 이내.’

아이의 미주신경이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었다. 불안정한 신경 신호도 차츰 강해지고 있었다. 그 진행 상태로 보아, 최대 3분 안에는 발작이 시작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최악의 경우엔 1분.’

그 전에 마나 덩어리 내부의 충전을 마쳐야 한다. 충전이 완료된 마나 덩어리를 아이의 미주신경에 삽입해야 한다.

한데 그러자니?

‘시간이 모자라.’

충전이 끝나려면 아직 10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뇌전증 발작이 시작될 거다. 발작이 시작되면? 시술이고 전극 설치고 전부 불가능해진다.

‘그럼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하나?’

라키엘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지금, 빠른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 중단하면 죽도 밥도 안 돼.’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시술을 받으며 아이가 느끼는 긴장과 불안감. 그 심리 상태가 미주신경을 자극하며 불안정한 신경 반응을 유발하고 있었다.

그 뜻은 명확했다.

‘설령 지금 시술을 중단하더라도, 다음에 시술을 하려면 결국 또 비슷한 상황이 될 거야. 똑같이 발작의 전조를 보이겠지.’

하면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천천히 시간을 주면서 익숙하게 한다면? 그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자신의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나한텐 시간이 없어.’

현재 자신의 예상 기대수명은 158일이 남아 있었다. 한데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시키고, 시술을 성공하고, 입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고, 그 끝에야 비로소 별궁에 환자들이 몰려들 텐데.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 돼.’

어쩌면 자신의 기대수명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수명이 다해서 죽을 테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지금 승부를 봐야 해.’

결론이 나왔다.

하면 방법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라키엘은 각오를 다졌다. 궁정마법사 자네티스를 돌아보았다.

“자네티스 경, 내가 이런 부탁을 하게 돼서 미안한데.”

“……예?”

“전격 마법, 지금보다 세 배만 강하게 해줘.”

“전하?”

“어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하오나 전하.”

“그 정도로 죽진 않잖아. 경도 알 텐데.”

“……많이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상관없어.”

“…….”

자네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전하…….’

그는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라키엘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황태자인 분이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있어서? 그런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숭고한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바라보자니 절로 콧등이 시큰해져서?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어휴, 까라면 까야지. 황족인데.’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행여나 황태자가 잘못되어서 독박이라도 쓰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을이니까. 자고로 남의 돈 벌어먹는 일이 쉬울 수가 없으니까. 심지어 명령하는 사람이 그냥 갑도 아닌, 이 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가는 갑이니까.

갑이 시키면 그저 네, 하고 따라야 하는 이 서러움! 새벽부터 끌려와 악덕업주의 시간 외 노동 강요에 고통받는 피고용인의 애환!

‘어차피 전하의 명으로 시작한 거니까, 보는 눈도 많으니까, 별일 없겠지.’

없어야 한다.

자네티스는 모든 신경을 기울여 마력을 조절했다. 황태자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출력을 끌어올렸다.

파츠즈즛!

세 배로 강해진 전격마법이 라키엘의 등을 때렸다.

“……그읍!”

테이저건을 맞으면 이런 기분이 되는 걸까. 절로 온몸이 경련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야 가득 스파크가 파직 튀었다.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스파크가 튀었다. 몇 번이고, 몇 차례고, 반복되었다.

기절할 것 같았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콱 깨물었다. 병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긍휼한 마음? 일개 평민 아이일지라도 살리겠다는 숭고한 다짐?

그런 건 없었다.

라키엘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비장한 각오는…….

‘……그, 그아악! 시술! 성공한다! 반드시! 꼭! 성공해서 입소문! 바이럴! 마케……팅! 한의원 대박! 보너스 수명 노다지! 무병장수 황족 라이프으으!’

반드시 성공하리라. 보란 듯이 아이를 완치시키리라. 그래서 이득이란 이득은 다 챙기리라.

‘……부귀영화! 돈지랄! 플렉스으으-!’

소망을 담아 외쳤다.

스스로에게 무한 이기주의적 모티베이션을 한껏 불어넣었다. 펌프질했다. 용기를 끌어냈다. 부귀영화 돈지랄 플렉스를 향한 굳건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버텨냈다.

아스라한 심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키이이이이이잉-!

마나써클이 포효했다.

회전수가 한계를 돌파했다. 더욱 많은 마나를 거세게 끌어당겼다. 흡수하고, 압축하고, 증폭하고, 가공했다. 전격마법의 충전 속도가 극적으로 상승했다.

키아아아-! 파츠츳! 파즛!

완두콩만 한 마나의 덩어리가 백청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스파크를 사방으로 튀겨댔다.

충전이 완료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가장 어려운 단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키엘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고통으로 고통을 상쇄했다. 마지막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충전이 완료된 마나의 덩어리. 그 속의 전기 신호를 다시금 가공했다.

‘이게 아이의 몸속에서 아무렇게나 전기 자극을 가하면 안 돼.’

어디까지나 목적은 뇌전증 발작의 억제다. 그러자면 미주신경에서 시작되는 불안정한 신경 신호를 제어해야 한다.

‘그 불안정한 신경 신호. 그것도 생체적 전기 자극이니까. 그 신호와 완전히 대칭되는 반대 신호를 똑같은 강도와 타이밍으로…… 전기 자극으로 가할 수 있다면…….’

미주신경의 불안정한 신경 신호를 감쇄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다.’

스스로를 독려했다.

기억에 새긴 아이의 미주신경 신호 패턴을 떠올리며, 그것과 대칭되는 전기 자극 신호를 가공했다. 마나의 덩어리 속에 새겨넣었다.

‘됐다.’

고도로 설계된 마나 전극을 만들어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약 40초. 라키엘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나…… 기분이 이상해요.”

아이가 이쪽의 옷깃을 꼭 쥐었다.

어느새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라키엘은 직감했다.

‘발작 시작까지 30초도 안 남았다.’

어제도 이러다가 발작이 시작됐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손길이 바빠졌다.

‘어서.’

아이의 목덜미 인영혈에 꽂은 가시를 쥐었다. 충전된 마나 전극을 가시로 흘려보냈다.

파츠즛!

백청색으로 빛나는 작은 전극이 가시를 통해 아이의 목으로 들어갔다. 아스라한 심법으로 그 경로를 조절했다.

‘전극을 심을 자리는…… 경동맥.’

미주신경 바로 옆을 지나는 경동맥이 느껴졌다. 그 사이에도 미주신경의 불안정한 신호가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15초.’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15초 후면 발작이 터진다.

그의 손길이 더욱 빨라졌다.

마나 전극을 길게 폈다.

경동맥에 한 바퀴 감았다.

조심스럽게, 세심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마치, 시한폭탄을 해체하듯. 조금의 실수도 없이.

정밀하게. 옮기고, 늘리고, 감고, 조이고, 묶었다. 다듬고, 연결하고,

“나, 으, 으윽……. 으……?”

아이의 눈이, 서서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에 힘이 왈칵 들어갔다.

‘5초.’

파즈즈즛! 브즈즛!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미주신경. 그 옆에서 시술의 마무리에 스퍼트를 올렸다.

“……으으윽!”

아이의 등이 쭉 펴졌다.

경련이 시작되었다.

목덜미로 번져왔다.

피할 수 없는 지진처럼.

막을 수 없는 해일처럼.

그러나 라키엘은 피하지 않았다.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다짐으로 움직였다.

‘3초.’

전극 설치를 완료했다.

“……그으읍.”

아이의 입에 거품이 물리기 시작했다.

‘2초.’

경동맥에 커다란 맥박이 한 차례 쿵.

“……으으으.”

아이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1초.’

맥박이 뛰며 경동맥 벽면이 부풀었다. 그 움직임이 마나 전극을 자극했다. 자극을 받은 전극이 활성화되었다.

파츳!

첫 전기 신호가 발산되었다. 아이의 미주신경을 침공했다. 미주신경을 장악하고 있던 불안정한 신경 신호와 충돌했다.

라키엘은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았다.

파즈즈즛-!

신경 신호와 전기 자극.

두 힘이 충돌했다.

서로를 때리고.

후려치고.

뒤엎었다.

그리고 서로를 죽였다. 두 신호가 부딪치며 서로를 상쇄시켰다. 그렇게, 미주신경의 불안정하던 신경 신호가 말끔히 사라졌다.

‘0초.’

라키엘이 마음속 마지막 카운트를 세는 순간.

“으윽, 윽, 음…… 어어?”

왈칵 힘이 들어갔던 아이의 팔다리 긴장이 풀렸다. 뒤로 젖혀졌던 고개가 똑바로 들렸다. 뒤집혔던 눈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형?”

어느새 이쪽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 이윽고 피어나는, 믿기지 않는 듯한 미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의 눈매에 놀라움과 경악이 떠오르는 순간.

라키엘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딩동!

[당신은 신체에 가해진 강력한 자극에 저항하기 위하여, 아스라한 심법을 극한으로 운용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자신이 지닌 한계의 벽을 깨뜨리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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