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0화 (40/468)

40화. 미주신경 자극술 (3)

[아스라한 심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새로운 메시지.

아직껏 전신에 남은 저릿함.

라키엘은 통증을 가라앉히며 숨을 몰아쉬었다. 메시지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킬명 : 아스라한 심법]

[단계 : 싱글 써클 Lv. 2]

[주위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흡수한 마나를 심장 둘레에 써클로 가공/증폭하여 운용합니다. 써클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증폭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 증폭률 : 130%]

[다음 레벨업에 필요한 HP : 1,200]

[현재 보유 중인 HP : 200]

심법 레벨이 오르고 증폭률이 10% 상승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딩동!

‘설마 보상이? 또 있어?’

그 설마가 맞았다.

[당신은 단시간 내에 가해진 강력한 전기자극을 훌륭히 버텨냈습니다.]

[이 자극에 의해 폐와 대장의 금(金)기운이 활성화되어 목(木)을 극(剋)하였습니다.]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의하여, 목의 성질을 지닌 오장육부의 장기, 간장(肝臟)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

[당신의 간장이 깨어났습니다.]

[간장 : 신병 받아라!]

[심장 : 뭐여? 뉴비여?]

[허파 : 허…… 파학…… 파하학…….]

[대장 : 나 이제 막내 아닌 거? 형님들 저 융털 떨리지 말입니다ㅋㅋ]

[간장이 당신에게 3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허파와 심장, 대장이 뉴비 영입을 기뻐하며 500 HP를 후원하였습니다.]

[당신의 내부에서 간장의 생일 파티가 개최되었습니다. 이에 300 HP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현재 보유 중인 HP : 1,300]

“…….”

졸지에 덜컥, 오장육부의 새 멤버를 얻게 됐다. 라키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굿. 진심으로 굿!’

HP를 왕창 후원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을 생성하거나 환상종을 뽑을 수 있게 해주는 귀한 자원인 HP. 그 HP를 후원해주는 소중한 존재가 바로 오장육부였다.

한데 그런 오장육부의 뉴페이스 멤버가 태어났다. 덕분에 앞으로 더 많은 HP를 후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노다지 수확이었다.

그때였다.

딩동!

‘음?’

끝일 거라 생각했던 메시지가 또 이어졌다.

[당신은 과격하지만 과감하고 공격적인 치료법으로 환자 : 조르쥬를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앞으로 그는 상습적인 뇌전증 발작에서 해방될 것이며, 보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원래의 미래에서 그는 뇌전증 발작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에 의지하며 지내다가 간질환을 얻고 56세에 사망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시술 덕분에 미래가 바뀌어, 비교적 건강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진료비 청구 (Lv. 2) 스킬이 발동됩니다.]

‘오옷?’

[환자 : 조르쥬는 당신만의 독창적인 미주신경 자극술 시술을 통해 14년 7개월의 기대수명 연장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신은 14년 7개월의 1/1950에 해당하는 보너스 수명을 정산받습니다.]

[2.69일의 보너스 수명이 계산되었습니다.]

[정산되는 수명의 최소 단위는 1일입니다.]

[정산되는 보너스 수명이 반올림 처리됩니다.]

[총 3일의 보너스 수명이 정산됩니다.]

[당신의 예상 기대수명 : 161일]

“…….”

이번엔 보너스 수명까지 퍼받았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메시지에서 눈길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아이, 조르쥬의 얼굴이었다.

“……어? 어어?”

조르쥬는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저기, 나, 이상해요.”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라키엘은 아이의 인영혈에서 능숙하게 가시를 뽑았다. 아이를 바라보자니 절로 빙긋,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상하지?”

이상할 거다. 뇌전증 발작이 오려다가 사라졌을 테니까. 과연 아이는 자신의 온몸을 주무르며 황당해했다.

“이런 거…… 처음이라서요. 원래 소름 오소소 돋고 기분 이상해지면…… 그때부터 막 눈에 불똥 튀고 식은땀 나다가…… 마음대로 안 움직여지고, 막 그러는데.”

“이번엔 안 그랬지?”

“네.”

“앞으로 안 그럴 거야.”

“네에?”

“이젠 그렇게 아플 일, 없을 거라고.”

“……네에에?”

점점 똥그래지는 아이의 눈망울.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믿을 수 없는 말이라는 듯. 귀로 받아들인 말을 믿질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럴 법도 할 거다. 평생을 뇌전증에 고통받아왔으니까. 그 고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선뜻 믿을까.

라키엘은 아이를 천천히 일으켜주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렇게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찬찬히 말해주었다.

“형이 알려줄게. 너, 이젠 다 나았어. 안 아플 거야.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정신을 잃는 일도, 난데없이 넘어져서 온몸을 떠는 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놀리거나 널 피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거란 소리야.”

“……정말요?”

“그럼.”

“진짜로?”

“정말로 진짜로.”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형 말이 거짓말이면 네가 내일부터 황태자 하는 거야.”

“엣헴. 다들 명을 받들라.”

“……어쭈.”

조르쥬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온통 헝클어지는 아이의 머리칼. 그 아래로 꺄르륵 번지는 웃음.

라키엘의 입가에도 덩달아 웃음이 맺혔다. 어쩐지 그는, 지금 조르쥬의 기분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어릴 때 저런 적 있었으니까.’

문득, 9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던 도중이었던가. 오른 발목을 심하게 접질린 적이 있었다. 발목이 온통 퉁퉁 부었다.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했다. 엄마한테 업혀서 동네 한의원으로 갔더랬다.

정식 한의원인지, 침술원인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곰보 아저씨가 계셨다. 앞을 못 보는 분이셨다. 그분이 발목이며 여러 곳에 침을 놓아주셨다. 처음엔 무섭고, 불안하고, 미덥지 않았더랬다.

한데 침을 다 맞고 나니?

그렇게도 아팠던 발목이 멀쩡해졌다! 갈 때는 엄마한테 업혀서 갔었는데, 집에 올 때는 와다다 뛰어서 왔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기억 때문에 자신이 한의사로 진로를 정한 것일지도 모를 정도로.

‘그때 거기, 그대로 남아 있으려나.’

한때 살았던 동네의 이름 모를 침술원. 부산 유엔묘지 근처 석포 초등학교 앞 육교 아래.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그분에게 지금 자신의 침술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혹은 그분께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기도 했다.

‘어쨌건, 그때 내 기분도 이랬는데.’

침을 다 맞고 집으로 뛰어오는 내내 얼마나 신기했던지. 조르쥬의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니 그때의 기분이 어렴풋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게다가 기쁜 일은 더 있었다.

‘그리고…… 성공적이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궁정마법사 자네티스. 가르딘 경과 데미안. 특근대의 검투사들. 별궁의 근위대원들과 시종, 시녀들까지.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쪽과 조르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조르쥬!”

어느 시녀가 사람들의 틈에서 뛰어나오며 외쳤다. 아이가 시녀를 보자마자 화답했다.

“누나아!”

남매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아이는 방긋 웃었고, 시녀는 기쁨의 울음을 터뜨렸다. 라키엘도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보았다.

‘아, 이로써 한 발짝 가까워졌다. 부귀영화 돈지랄의 꿈.’

마침내 아이의 뇌전증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그 과정을 별궁 식구 모두가 구경했다. 이쪽이 전격마법을 맞으며 버티는 모습도. 시작되려던 아이의 발작이 진정되는 모습도. 모두가 주먹을 꼭 쥐고서 응원하며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앞으로 평생 안줏거리로 삼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입에 담을 것이다. 이 미담(?)이 소문으로 널리 번질 것이다.

‘그럼 되는 거야. 별궁이라서, 황태자가 머무는 궁전이라서 사람들이 느낄 부담감을 지워줄 수 있게 되는 거지. 어이, 당신 그 소문 못 들었나? 별궁에 가면 아픈 거 나을 수 있대! 라고 말이야.’

그럼 그들을 치료해주고 보너스 수명을 펑펑 받으리라. 앞으로 펼쳐질 아름다운 무병장수의 미래. 그 행복한 예감에 라키엘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렸다.

털썩.

“……어?”

시술을 하는 내내 긴장했던 탓일까. 전격마법을 악으로 깡으로 버틴 까닭일까. 궁정마법사를 데려오느라 날밤을 꼬박 지새웠기 때문일까. 혹은, 그 모든 이유가 다 버무려진 결과인 걸까.

‘힘이…….’

전신에서 썰물처럼 쑥 빠져나갔다. 언제 자신이 주저앉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왜들 저리 놀라며 달려오는 건지도 궁금했다.

‘설마 나, 기절하는 거야?’

정답.

오장육부가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급속도로 멀어졌다. 깊은 잠에 빠지듯. 그제야 깨달음이 몰려왔다.

……깜빡하고 있었네. 나, 허약체질 환자였지.

쓴웃음 서린 깨달음의 끝자락.

세상이 깜깜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이 깊어 있었다. 잠깐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온종일 잔 건가.’

그럴 법도 하다.

여러 방면으로 무리를 했으니까. 이쪽도 아직 허약체질의, 시한부 인생 환자인 신세니까.

“……전하?”

이쪽을 부르는 목소리. 반가움에 잠겨 있는 가르딘 경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드십니까?”

가르딘 경의 옆에 있던 데미안도 벌떡 일어났다. 그 뒤로는 궁정마법사 자네티스의 모습도 보였다.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뭐야. 다들 모여서 남이 자는 모습이나 구경하고 있던 건가.”

너무 대놓고 그러면 민망하잖아.

투덜거리려던 순간이었다.

“그 구경이 너무 지겨워져서,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전하.”

가르딘 경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뭔데. 왜. 뭐.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크흡, 흑, 이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이틀이나 못 깨어나시다가 이제 겨우 눈을 뜨셨는데 말입니다.”

“……뭐?”

내가 잠든 지 이틀이나 지났다고?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눈물을 보이는 가르딘 경과,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데미안의 모습을 보자니 그게 농담이 아닌 듯 보였다.

궁정마법사 자네티스가 한마디를 보탰다.

“저는 이 사태를 폐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전하.”

“……쯧. 괜히 부담을 안겼네. 미안해.”

“아닙니다, 전하. 이렇게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네티스의 얼굴은 그새 반쪽이 되어 있었다. 이쪽이 잠든 내내 쉬지도 못하고 곁을 지킨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자신의 전격마법을 받아내다가 혼절한 황태자. 그런 황태자가 이틀이나 깨어나지 못하였으니까. 아마도 그냥 초조한 정도가 아니었겠지. 한데 그러다 보니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조르쥬는?”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 이틀 사이에 뇌전증 발작이 재발한 건 아닐까. 대답은 가르딘 경이나 데미안, 자네티스 대신 다른 이가 했다.

“나 말짱한데요?”

“어?”

가르딘 경과 데미안의 옆구리 사이에서 작달막한 얼굴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조르쥬였다. 그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야. 넌 또 왜 여기 있는 건데.”

“여기 이분께 졸랐는데요.”

조르쥬가 슬쩍 가르딘 경을 쳐다보았다. 가르딘 경이 괜한 헛기침을 했다.

아이가 말했다.

“깨어나면 이거…… 주고 싶어서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내미는 손길. 라키엘은 아이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보자마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뭐냐, 이건.”

아이가 내민 물건.

그건 목걸이였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노끈으로 엮은. 어떻게 깎았는지 모를, 비뚤비뚤한 하트가 새겨진, 나무토막을 엮어놓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한 목걸이였다.

화려함? 당연히 없었다. 진귀함? 찾아볼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라키엘은 나오려는 쓴웃음을 참아내며 물었다.

“설마 네가 만든 거야? 나 자는 동안?”

……끄덕끄덕.

부끄러운 걸까. 어둑한 촛불 빛 사이에서도 아이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라키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거 부담스러운데.’

솔직히 너무 조잡한 목걸이였다. 만드는 데 나름의 정성이야 쏟아부었겠지만, 그렇다고 목에 걸고 다니기엔 현실적으로 좀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냥 받지 마?’

안 걸고 다닐 바엔 안 받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잘 만들었네.”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걸이를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걸친 그 어떤 화려한 장신구보다도, 이게 더 멋지구나.”

“……정말요?”

아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하지만 내가 받은 최고의 보상은 네 건강해진 모습이란다.”

말하면서 슬쩍 주위를 살폈다.

“……흐흑!”

감동 받아서 코가 찡해진 듯한 가르딘 경. 데미안과 자네티스의 훈훈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멀찍이서 문가를 지키고 있던 근위대원 둘도 휴먼 드라마를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후우, 좋아. 방금 멘트 잘했어.’

오글거리는 걸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잘 해냈다.

자고로 모든 일은 마무리가 중요한 법. 아름다운 선행의 마무리는 오글거려도 감동적 연출로. 이래야 이번 진료 사례가 더욱 훈훈한 미담으로 퍼질 테니까. 더욱 파괴력 있는 입소문이 될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기쁘게 목걸이를 받았고, 나름 감동적인 멘트도 날렸다.

성공적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들 안심하도록. 한데 내가 좀 피곤해서, 좀 혼자 쉬고 싶은데.”

짐짓 지친 표정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모두를 침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제야 숨이 크게 흘러나왔다.

“……후우.”

마음에 없는 연기를 한 탓일까. 조금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누운 채 손을 들어 올렸다.

아이가 준 목걸이. 너무나 조잡한. 걸고 다니기에도 민망할. 그런 초라하고 볼품없는 목걸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딴 걸 누가 걸고 다니냐…….”

라키엘은 투덜거리며 돌아누웠다. 천천히 잠이 들었다. 그런 그의 목에는, 너무나 조잡한, 걸고 다니기에도 민망할, 그런 초라하고 볼품없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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