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1화 (41/468)

41화. 별궁 한의원 오픈 (1)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이곳은 황도 마젠타 시가지의 어느 평범한 가정집. 황태자가 기거하는 별궁의 시종이 기쁨의 미소를 머금고서 현관을 열었다. 그의 부름에 안쪽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중년의 여인이 화들짝 놀랐다.

“……아들? 어머나? 네가 오늘 어쩐 일이니?”

“어쩐 일이긴요. 휴가 나왔죠.”

“휴가?”

“네.”

“지난번에 보낸 편지에서 휴가는 다음 달이라고 하지 않았었니?”

“아, 그 휴가는 따로 있구요.”

“따로 있다고?”

“네. 황태자 전하께서 오늘 아침에 특별 휴가를 보내주셨거든요. 무려 닷새나!”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니. 전하께서도 참 관대하셔라.”

“그러게나 말이죠?”

시종이 씨익 웃었다.

이윽고 소리를 듣고 내려온 가족들이 그를 반겼다. 아침 식사 테이블 위로 이야기꽃이 가득 피었다.

“글쎄, 요즘 전하께서 별 이상한 일들을 자꾸 벌이신다니까요?”

“이상한 일이라니?”

“자꾸 사람들을 진료해주겠다고 하세요.”

“진료? 의사처럼 말이더냐?”

“네, 아버지.”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의사처럼 말이죠. 저도 진료해주셨어요. 저 예전에 손목을 심하게 삔 적이 있었잖아요.”

“그랬지. 한동안 고생했잖니.”

“사실 그 뒤로도 계속 뻐근했거든요. 조금만 무리하거나 피곤해도 손목 여기가 막 저리고. 그런데 전하께서 제 손목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보시더니?”

“셔츠를 벗고 침상에 누워보라 하시더라구요.”

“……뭐?”

“저도 이상했어요. 그래도 명을 따라야 하니 일단 누웠죠. 한데 전하께서…….”

“전하께서?”

“고슴도치 가시를 뽑더니 제 손목이랑 손등이랑 어깻죽지에 푹푹 꽂았다, 이 말이지요.”

“가시를? 안 아팠니?”

“네. 신기하게도요.”

시종의 말이 이어졌다.

“더 신기한 건, 그렇게 몇 분쯤 있다가 가시를 뽑고 났더니 손목 저림이 싹 사라졌다는 거죠.”

“그게 무슨……. 전하께선 마법이라도 부리신 거라니?”

“모르겠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또 있었어요. 사흘 전 밤에요.”

“사흘 전에?”

“네. 저번에 제가 말했던 시녀 기억나세요? 동생이 자꾸 악령에 씌어서 고생한다던 친구요.”

“기억나다마다. 이 아비가 그 아이 삼촌과 안면이 좀 있지. 한데 그 아이는 왜?”

“사흘 전 밤에 전하께서 그 친구 동생을 진료하셨어요. 완전 싹. 말끔히요.”

“허허?”

가족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들의 손목 저림을 가시로 치료했다는 말도 황당한데, 이번엔 악령이 들리던 아이를 치료했다니.

“혹시 악령을 내쫓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셨나?”

“아뇨. 궁정 마법사를 불러와서 자기 등에 전격마법을 쏘게 하셨어요.”

“…….”

“그 전격마법을 버티면서 아이 목에 가시를 찌르시더라구요. 푹 하고.”

“…….”

“그랬더니 또 악령에 씌려던 아이 눈이 똑바로 돌아오던 거 있죠.”

“……그게 진짜니?”

“예.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허허허.”

가족들이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전격마법으로 악령을 내쫓은 걸까. 한데 더 놀라운 말이 아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서 말씀인데, 저 이번에 휴가 끝나면 아버지도 별궁에 같이 가보시지 않으실래요?”

“나 말이더냐?”

“예. 허리 안 좋으시잖아요.”

“그런데 왜?”

“전하께서 진료해주신다더라고요. 공짜로. 악령에 씐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신분이나 재산도 상관없이 다 봐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진짜니?”

“예.”

“감히 내가 별궁 같은 데를 함부로 가도 되겠니?”

“괜찮아요. 전하께서 저한테 직접 신신당부하셨어요. 주위에 널리 알리라고 말이죠.”

“허허, 허허허.”

가족들의 당혹스러운 웃음이 테이블 위로 번졌다. 그것은 이 평범한 집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황도의 수많은 장소에서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여보! 나 특별 휴가 나왔소!”

“우리 딸! 엄마 왔다!”

“야, 넌 형이 휴가 나왔는데 퍼질러 자고 있냐? 어?”

……라는 식이었다.

별궁에서 근무하는 시종, 시녀, 근위대원까지. 수많은 이들이 ‘특별 휴가’라는 이름으로 가정의 품에 돌아갔다. 오랜만에 해후한 가족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황태자 라키엘이 최근 보인 기행을 널리 전파했다.

황태자가 의사처럼 굴기 시작했다고. 한데 진짜로 병을 치료할 줄 안다고. 별궁에서 환자를 받을 거라고. 아픈 이라면 다 받는다고. 신분도, 재산도 상관없을 거라고.

그 소식이 입소문을 타고 점점, 황도 구석구석까지 번져갔다. 차츰 과장되기 시작했다.

“자네, 들었나? 황태자 전하께서 다 죽어가던 아이를 살리셨다는데?”

“황태자 전하께서요? 어떻게 말입니까?”

“글쎄, 궁정마법사가 전력으로 내쏘는 전격마법을 자청해서 맞으셨다더구만.”

“아니 어째서 말입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쨌건 대단하지 않나?”

“확실히 그렇습니다. 엄청나네요.”

“그렇지? 역시 황태자 패왕설이 거짓이 아니었단 거지.”

“궁정마법사의 전격 마법을 맞고도 멀쩡한 분이라니……. 후우, 끌린다…….”

수많은 일터, 상점, 공사판, 식탁, 거리에서 갖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일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황태자. 평민 아이를 위해 전격마법을 맞은 황태자. 입소문이 입소문을 낳고. 더 커진 소문이 더욱 널리 번졌다.

그 모두가 라키엘이 의도했던 대로였다.

‘후후, 후후후. 바로 이거지!’

별궁 서재에서 라키엘은 음흉하게 웃었다.

뇌전증 치료를 위한 미주신경 자극 시술. 그걸 목격한 별궁 식구들을 휴가라는 핑계로 황도 곳곳에 방생(?)했다.

과연 효과는 대단했다.

날로 입소문이 쭉쭉 퍼졌다. 바이럴 마케팅이 제대로 되고 있었다. 하니 이제는? 본격적인 개업을 준비해야 할 터다.

“그러니까 내가 일러둔 것들은? 잘되고 있나?”

“예, 전하.”

황도의 소식을 가져온 가르딘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약재들을 전부 사들이고 있습니다.”

“감초(甘草)도?”

“그건 특히 신경 써서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게 될 거니까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사재기를 해서라도 가득 비축해야 해.”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데…….”

“음?”

“저기, 이런 물음이 외람된 건 알지만…… 으음, 전하께서는 이런 것들을 대체 어떻게 익히신 건지…….”

“이런 것들이라니?”

되물었더니 가르딘 경이 쭈뼛쭈뼛, 그러나 정말로 궁금해 죽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가시로 찔러서 아픈 관절을 낫게 하시던 거라든가, 아니면 생소한 레시피로 물약을 조제하신다든가…… 그, 며칠 전에 전격마법으로 아이를 치료하신 거라든가…… 전부 궁금해서 말입니다.”

“의사로서?”

“예, 의사로서, 정말로 궁금합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르딘 경. 그의 눈동자 한구석에 숨기지 못한 순수한 열망이 엇비쳐 보이는 건, 이쪽의 기분 탓일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요즘 잠을 잘 못 이룹니다. 전하께서 갑자기 펼치기 시작하신 의술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원리인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조금은…… 속상하기도 합니다.”

“…….”

속이 상한다라.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명색이 자신도 의사인데. 심지어 황태자의 주치의인데. 자신의 환자인 황태자가 연일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진료해오던 요즘이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을 진료하겠다며 소매를 걷고 나서기까지 했다.

한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게 느껴졌을까. 이쪽이 펼치는 의술의 원리를 짐작도 못하는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그런 가르딘 경의 기분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 같아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

같은 의료인이니까.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였다.

“사실 내가 다른 세상 사람이거든.”

“……예?”

“그곳 세상에서 쓰던 내 이름은 ‘이한’이야. 동네에서 작은 한의원을 꾸리던 한의사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의원이 망해서 여기로 왔어. 요즘 내가 펼치는 의술도 그때 익히고 써먹던 한의술을 응용한 거고.”

“……전하?”

“어.”

“저는 모처럼 진지하게 고민을 말씀드린 건데 말입니다.”

“응. 그래서 나도 모처럼 사실 그대로를 말해준 건데 말이지.”

“이러시면 저, 서운해질 거 같은데 말입니다.”

“경이 날 안 믿어주면 나도 마음 아플 거 같은데 말이지.”

“……즈어어언하아-!”

“어오 씨. 진짜. 놀래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어?”

“그냥 솔직하게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알려줬잖아?”

“놀리지 마시고 말입니다.”

“안 놀려. 근데 알아서 뭐 하려고.”

“그야 당연히…… 더 나은 의사가 되고 싶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 전하도 더 잘 보살펴드리고…… 그리고 또…….”

“또?”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보람이라니?”

“며칠 전에 조르쥬를 진료해주셨을 때의 전하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그 아이의 상세를 살피실 때마다 전하께서 미소 지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의사로서 그런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제가 보살피는 이가 건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 많이 웃어보고 싶습니다.”

가르딘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라키엘은 싱긋 웃었다.

“이미 그러고 있잖아?”

“예?”

“됐고. 일이나 하자, 일.”

……경이 아니었다면 나도 지금처럼 건강하진 못했을 거라고. 경이 항상 곁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그렇게 말해 주려다가 말았다.

‘어우. 오글거려서 죽을 뻔했네.’

라키엘은 오장육부에 돋아나려는 닭살을 얼른 털어냈다. 별궁 한의원 개업 준비를 서둘렀다.

가르딘 경을 시켜 각종 한약재를 확보했다.

다행히 세상은 다르지만 있을 약초는 다 있었다.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널리 활용되고 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감초, 계지(桂枝), 창출(蒼朮), 백출(白朮), 인삼(人蔘), 복령(茯苓), 당귀(當歸), 천궁(川芎), 생강(生薑), 진피(陳皮), 지실(枳實), 형개(荊芥), 황기(黃芪), 갈근(葛根), 작약(芍藥) 등등. 황도와 인근의 약재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그는 전단지 알바(?)도 돌렸다. 몸놀림이 빠릿한 시종들을 선발했다. 그들에게 전단지를 맡겼다.

[(경) O P E N ! (축)]

[별궁 한의원 개업 기념 : 무료 진료 행사]

[척 | 추 | 교 | 체]

[추 | 나 | 정 | 형]

[관 | 봉 | 치 | 비]

[절 | 침 | 료 | 만]

[어떤 질환이라도 고쳐드립니다.]

[환자의 건강을 위한 명확한 진단, 환자별 1:1 맞춤 진료]

[원장 :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전문의 : 황궁 주치의 피에로 가르딘]

[진료 시간 : 연중무휴]

……라는 수백, 수천 장의 전단지가 황도 곳곳에 뿌려지고, 수많은 벽면에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별궁 한의원 개업일 아침이 밝았다.

“후우. 긴장되네.”

라키엘은 아침 해가 뜨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사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잤다.

흥분되고.

기대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그렇게 열심히 홍보하고 준비했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아무래도 이곳이 별궁이라서. 무려 황태자가 기거하는 궁전이라서. 사람들이 부담감을 느껴서 아무도 안 온다면? 그렇게 개업일부터 환자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린다면?

‘으으, PTSD 올 거 같다.’

한국에서 부경 한의원이 망하던 때가 잠시 떠올랐다. 라키엘은 후다닥 소름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초조한 걸음을 옮겼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촤악-!

저 멀리, 드넓은 정원 너머 별궁 입구가 보였다.

‘제발. 제발.’

저곳에 소문을 듣거나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면 좋겠다. 그는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정원과 별궁 입구를 계속 살폈다.

10분, 20분, 30분.

그러나 드넓은 정원도.

그 너머의 별궁 입구도.

여전히 한산하기만 했다.

“…….”

평소처럼 순찰을 다니는 근위대원들. 그리고 정원 손질과 청소에 분주한 시종들만 오갈 뿐. 별궁을 방문하는 환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쯧.”

홍보 효과가 적었나. 사람들의 부담감을 떨칠 정도까진 아니었던 건가.

실망스러웠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러면 나가린데.’

차라리 황도 시가지에 진료소를 따로 차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감염의 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빈민가로 직접 가야 할까.

그는 깊어지는 고민을 안고서 창가에서 물러났다. 팔팔 끓인 에스프레소처럼 더욱 진해지는 고민을 안고서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나 식히자 싶었다.

‘산책이나 하자.’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실망하지 말고, 절망하지도 말고, 일단 걸으며 생각해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침실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계단 아래, 별궁 1층의 로비 홀. 그곳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뭐야 이거.’

처음엔 멍했다.

그러다가 알았다.

화려하지 않은, 별궁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들. 누군가는 어디가 아픈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고. 또 누군가는 자녀의 부축을 받고 있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로비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숫자만 줄잡아 2, 300명은 될 듯했다. 심지어 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종이 번호표를 쥐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내가 창밖을 살펴보기도 전에, 해가 뜨기도 전에, 유명 맛집 찾아와서 줄 서듯이, 새벽부터 미리 찾아와 기다리고 있던 거라고? 이 사람들이?’

나한테 진료를 받으러?

‘이 사람들이…… 전부 내 환자인 거야?’

뒤늦은 깨달음.

라키엘의 입가에 한의원 오픈 대박의 미소가 한껏 맺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