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45화 (45/468)

45화. 비고를 털어라 (3)

“근위대장님, 원형탈모네요?”

“앗, 아아…….”

라키엘의 입에서 한 큐에 정답이 나왔다. 근엄하고 묵직하던 황제의 집무실이 삽시간에 숙연해졌다.

황제의 근위대장 로베르토 경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일 그가 초인적인 인내심과 자제력을 지닌 자가 아니었더라면? 신분과 직위, 모든 범인류적 편견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 즉시 라키엘의 안면부에 거대한 죽빵을 날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근위대장 로베르토 경은 초인적인 참을성을 발휘했다. 나날이 떠나가는 모발에 안녕을 고하는 서글픔. 그 비애를 묵묵히 곱씹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었다.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었다.

‘내가 왜 이런 걸로 이러는지. 아이유 참. 황태자 전하시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렇게 근위대장은 남몰래 사나이의 눈물을 훔쳐냈다. 반면, 황제는 내심 경악했다.

“지금, 근위대장이 원형 탈모를 지니고 있다 하였느냐?”

“예, 폐하.”

“하지만 보거라. 근위대장의 머리칼은 여전히 윤이 나고 풍성하다만.”

“가발이니까요.”

“…….”

저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진짜 제대로 진단한 것이 맞구나. 황제는 라키엘의 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근위대장 로베르토 경이 최근, 극심한 탈모에 시달리고 있노라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로베르토 경의 나날이 헐벗어 가는 정수리에 대한 사실은? 이 세상에서 오직 로베르토 경의 아내, 그리고 황제인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한데 그걸 어떻게 맞춘 걸까.’

라키엘을 보는 황제의 눈길에 커다란 의문이 떠올랐다. 신기하고 기이했다.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가 물었다.

“혹시 눈썰미를 발휘한 것이더냐.”

“아, 그건 아닙니다.”

라키엘이 냉큼 대답했다.

“로베르토 경의 가발은 완벽합니다. 육안으로는 아무리 살펴봐도 가발 같다는 티가 전혀 안 나니까요. 저는 그저 로베르토 경의 맥을 살폈을 뿐입니다.”

“맥을 살펴?”

“예, 폐하.”

라키엘의 말이 이어졌다.

“손목 안쪽을 만져보면 동맥을 지나는 혈류의 박동이 느껴질 겁니다. 저는 아스라한 심법으로 그 맥을 감지하고, 느끼고, 분석합니다.”

“흐음, 허황된 허풍 같은데 그럴듯하군.”

“그렇게라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 그 맥으로 로베르토 경의 무엇을 진단하였기에 탈모를 짚어낸 것이더냐.”

“간단합니다.”

라키엘의 대답이 술술술.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제가 진단하여 보니, 로베르토 경은 신체가 강건하고 내부의 마나가 매우 활발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심장과 소장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더군요.”

“심장과 소장?”

“예. 그곳에서 화기(火氣), 뜨거운 기운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기운이라.”

“그런 기운은 대체로 위를 향해 뻗치는 법이지요. 불꽃처럼 말입니다.”

“하면, 설마?”

“예, 폐하. 생각하신 그 설마가 맞습니다. 신체의 가장 위에 있는 부위는 정수리지요.”

“로베르토 경의 내부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불꽃 같은 기운이 신체의 가장 위쪽인 정수리로 뻗쳤다?”

“그렇습니다, 폐하.”

라키엘이 근위대장을 힐끗 돌아보았다.

“정수리에 화기가 몰렸습니다. 하여 머리카락의 뿌리가 되는 모근이 화기에 그대로 노출되었지요. 가뭄을 만나 말라비틀어지는 저 광활한 초원의 잔디처럼 말입니다.”

“……크흡.”

가만히 듣고 있던 근위대장 로베르토 경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황제가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혀를 찼다.

“쯧.”

그럴듯한 진단이다. 황제는 라키엘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저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로베르토 경의 가문은 대대로 근위기사를 배출한 걸출한 기사 가문이지. 물론 로베르토 경도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심법을 익혔고. 한데 그 심법, 심장에 축적하는 마나의 기운이 매우 강맹하여 은근히 뜨거웠단 말이야.’

문득, 로베르토 경과 때때로 대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을 부딪칠 때마다 검신을 통해 몰려오던 근대위장의 마나. 매우 거칠고, 난폭하고, 뜨거운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마나를 심장에 잔뜩 머금고 있다는 뜻이고, 그 기운이 정수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로군.’

생각해보니 로베르토 경의 가문에는 유독 머리가 벗겨진 사내들이 많았다. 그저 혈통의 우연한 특성인 것인지. 혹은 심법의 부작용인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비결이야 어찌 되었건, 정말로 짐이 내린 문제를 맞추었구나.’

황제의 눈길이 라키엘을 향했다.

저 아이가 무슨 수로 저런 의술과 식견을 지니게 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알겠다.”

일단은 네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너의 주장이 마냥 거짓만은 아니라는 것도. 네가 하려는 일이 무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짐은 오늘 밤에 한하여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의 황궁 비고 열람을 허가하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단, 하급 구역의 열람과 한 가지 물건의 취득만을 허가하도록 하마.”

“예?”

“못 들었느냐?”

“분명 들었습니다?”

“한데 뭐가 또 불만이더냐?”

“딱히 불만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진 않았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그리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까딱까딱 기울인다더냐?”

“말귀는 알아들었습니다. 다만-”

“다만?”

“이해가 조금 아니 되어서 말이지요?”

“뭐가 이해가 아니 된다는 것이더냐.”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문제를 냈다.

녀석이 문제를 맞추었다.

하여 그걸 인정해주고 황궁 비고 열람을 허락하였다. 한데 뭐가 또 저리도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인지.

‘이 녀석이 원래 이랬던가.’

전에는 이렇게까지 뻔뻔하지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자신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어 눈도 못 마주쳤던 녀석일진대. 대관절 최근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불어서 이 녀석이 이토록 뻔뻔해진 것인지.

황제는 그러한 라키엘의 변화가 괘씸하면서도 반가웠다. 녀석이 어떻게 대꾸할지 기대하고, 기다렸다.

라키엘이 말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제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제가 폐하께서 내리신 어려운 문제를 열심히 노력하고 맞추어서 시험을 통과하지 않았습니까?”

“딱히 열심히 노력한 티는 안 났다만.”

“어쨌건 맞추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한데 어째서 황궁 비고의 하급 구역만 열람을 허락해주시는 것이신지……?”

“고작 그 정도 문제를 맞춘 것으로 중급, 상급, 특급 구역까지 넘보았던 것이었더냐?”

“예.”

“…….”

“딱히 하급만 열람하게 해줄 거란 말씀은 없으셨는데…….”

“…….”

“시험 낼 때는 분명 그냥 ‘황궁 비고’라고만 말씀하셨는데…….”

“…….”

“한데 통과하고 나니까 말씀이 미묘하게 바뀌시니 이거 참…….”

“커흠!”

“…….”

“하면, 너는 지금 황궁 비고의 모든 구역을 열람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더냐, 감히?”

“요청까지는 아니고 말입니다.”

“그럼?”

“떼를 쓰는 정도로만 봐주시면…….”

“…….”

“죄송합니다.”

안 통하는구나.

황제의 완고한 단호박 기운을 느낀 라키엘은 잽싸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턱도 없겠다.

이럴 때 괜히 더 고집부리다간? 하급 구역 열람권마저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황제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쯤에서 만족하자.

‘하여간 저 아저씨 깐깐해가지고. 중급, 상급, 특급 구역은 다음에 넘봐야겠구나.’

라키엘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예를 표했다. 황제의 말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라키엘이 떠난 이후. 잠시 왁자지껄했던 집무실이 다시 잠잠해졌다. 돌아온 차분한 공기 속에서 황제는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졌다.

‘허허. 참.’

방금까지 라키엘이 있던 자리. 그곳으로 눈길을 던지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흐뭇했다.

‘병상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거늘. 참으로 뻔뻔해졌구나. 감히 짐에게 떼를 쓰고 매달릴 정도로 말이로다.’

언제 죽을지 몰라 수많은 주치의마저 포기했던 아들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저렇듯 사람 구실을 하는 모습이 즐거웠다.

자꾸만 뭔가를 해보겠다고 설치는 모습도. 감히 자신을 찾아와 협상을 제안하던 행동거지도. 심지어 후안무치하게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던 행태까지도. 모두가 흐뭇하고 대견했다.

‘그래. 더욱 그렇게 해보거라. 짐을 더욱 들이받아보거라. 그럴 때마다 얼마든지 짐은 너를 시험해주도록 하마.’

마음껏 들이받혀 줄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들이받으며 자라는 법이니까.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가고, 넓혀갈 수 있는 법이니까. 훗날 세상을 들이받을 자식의 예행연습을 안전하게 치러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일 터이니까.

‘허허. 허허허.’

속으로 연신 웃음을 삼켰다. 겉으로는 여전히 근엄하게 찡그린 얼굴로 수염만 매만졌다. 한데 그러다가 문득, 황제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근위대장의 모습이었다.

“로베르토 경? 그대는 어찌하여 울고 있는가.”

“……폐하.”

의아하여 물었다.

근위대장이 울먹이며 답하였다.

“아까 황태자 전하가 말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정확하게 제 증상……을 맞추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한데 조금 전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전하가 물러나기 전에 제 탈모 치료법을 따로 물어보아 주지 않으셨는지…….”

“허?”

“크흑.”

“…….”

아뿔싸.

“거, 나중에 별궁에 가서 따로 진료라도 받도록 하게. 휴가도 내어줄 터이니.”

“크흐흑.”

“…….”

황제는 말없이 근위대장의 등을 토닥토닥 해줄 수밖에 없었다.

“후우. 다리 풀린다, 풀려.”

“괜찮습니까.”

“아니.”

“등이라도 토닥여 드릴까요.”

“그 정도까진 아니고.”

진지한 얼굴로 이쪽의 안위를 물어오는 데미안. 녀석의 태도에 라키엘은 피식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참 신기하다, 신기해.’

오늘 밤 호위로 데려온 데미안도. 방금까지 신경전을 벌였던 황제도. 모두 소설을 읽으며 일러스트와 활자로 접했던 가상의 캐릭터들이었다. 상상 속에서 그들이 말하고, 사건을 겪고, 때로는 죽는 걸 보았다.

한데 지금은?

자신 앞에 이렇게나 생생한 현실이 되어 있다니. 이따금씩, 확 실감이 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황제 그 아저씨, 진짜 포스가 장난이 아니야. 가급적 필요할 때가 아니면 찾아가지 말아야겠다.’

황제와 마주하고 있노라면? 건물주 만날 때만큼이나 기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라키엘은 고개를 흔들어 PTSD를 몰아냈다. 그리고 궁내부원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곳입니다.”

20분쯤 걸었을까.

수없이 많은 복도와 통로, 계단과 모퉁이를 지났다. 연약한 다리가 후들거릴 때쯤, 마침내 황궁 깊숙한 곳의 어느 지하에 다다랐다. 그곳에 반투명한 문이 있었다. 몇 겹이나 되는 마법의 문으로 보호되는 보물창고. 황궁 비고의 입구였다.

궁내부원이 목걸이 2개를 건네어 왔다.

“전하, 이걸 받으십시오.”

“이건?”

“비고의 출입증입니다.”

이어지는 궁내부원의 설명은 간단했다.

“이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만 비고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비고 내부에 설치된 공격마법이 모조리 발동될 것입니다.”

“…….”

“또한, 이 목걸이는 열람 시간을 그때그때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열람 허가 시간을 넘기면…….”

“넘기면?”

“역시 비고 내부에 설치된 공격마법이 모조리 발동될 것입니다.”

“…….”

“참고로 황태자 전하께서 받으신 목걸이에 입력된 열람 허가 시간은 동이 틀 때까지입니다.”

“잠깐. 그럼 몇 시간 안 남았잖아?”

“그러니 서두르셔야겠지요.”

궁내부원이 빙긋 웃었다. 라키엘은 얼른 목걸이를 착용하고 데미안을 돌아보았다.

“들어가자.”

“예.”

우윳빛으로 일렁이는 반투명한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의 마법진을 통과하는 순간 온몸이 출렁. 속이 살짝 메스꺼워졌다.

‘우욱.’

아스라한 심법이 마법진의 마나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입구를 통과하니 안쪽에 널따란 공간이 펼쳐졌다.

“오…….”

동네 홈x러스, 혹은 이x트가 떠올랐다. 창고 내부는 어지간한 대형 마트 매장보다도 더 넓었다. 그토록 넓은 공간 전체에 수없이 많은 선반이 놓여 있었다. 선반마다 갖가지 물품이 가득했다.

‘바쁜 밤이 되겠네.’

이걸 언제 다 살피나. 눈앞이 살짝 캄캄해졌다. 하지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았다.

“데미안.”

“예, 전하.”

“이제부터 우리는 여기서 필요한 물건을 찾을 거야.”

“어떤 걸 찾으면 됩니까.”

“차가운 거.”

“예?”

“빙결 계열, 혹은 그에 준하는 성격의 물품, 시약, 마법 구슬 등등이면 전부 체크해. 자, 여기 메모지와 숯펜.”

“…….”

“구역을 딱 절반씩 나누자고. 넌 여기부터 저쪽까지. 내가 말한 성격의 물품들을 체크하고 위치를 적어둬. 내가 내 구역을 탐색한 뒤에 그쪽 체크한 물건들만 바로 추려서 살펴볼 수 있게.”

“알겠습니다.”

더 설명할 것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다. 곧바로 움직였다. 데미안을 비고 오른쪽 구역으로 보냈다. 라키엘은 왼쪽 구역의 모든 물품을 이 잡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발 나와라. 적당한 물건아 눈에 띄어라.’

음기를 북돋아 줄 시약이나 아티팩트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발진 티푸스에 시달리는 환자의 기운을 되살릴 수 있다. 다짐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눈동자는 더 열심히 굴렸다. 야식 당기는 한밤중에 냉장고 살피듯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왼쪽 구역 전체를 탐색해도 적당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특별한 기운을 품은 물품이 거의 없었다. 그저 명장이 만든 명검이나 갑옷 등의 명품, 혹은 아름다운 공예품이 대부분이었다.

‘하급 비고라서 이런 건가. 설마 오른쪽 구역도 이런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초조한 기분을 삼켰다. 데미안이 있을 오른쪽 구역으로 갔다. 마침 탐색을 마친 녀석과 마주쳤다.

“시킨 대로 잘 적었어?”

“예, 여기.”

“……이게 뭐냐.”

“시키신 대로 냉기와 관련된 물품의 위치를 적었습니다.”

“알아볼 수 있게 적어야지?”

“나름 열심히 쓴 겁니다.”

“너, 악필이구나?”

“…….”

데미안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일로 아웅다웅할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사실은…….

“위치를 적은 게 하나밖에 없네?”

“예. 냉기와 관련된 물품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긴. 내가 살펴본 쪽도 그랬어.”

라키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왼쪽엔 냉기와 관련된 물품이 아예 없었다. 데미안이 살펴본 오른쪽에 겨우 하나가 있단다. 그러니까 즉…….

‘여기 적힌 물품 하나. 이게 최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거네.’

조마조마해졌다. 물품의 위치가 적힌 선반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방패가 하나 놓여 있었다.

“만년설?”

라키엘의 시선이 선반 위를 향했다. ‘만년설’이라는 이름의 방패가 보였다. 한데 그 모습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방패라고?’

초라했다.

방패라 하기엔 너무나 작았다. 잘 쳐줘야 손바닥 한 뼘 정도. 거의 휴대폰, 혹은 카페 호출벨 정도 크기의 납작한 원형 덩어리에 손잡이만 달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섣불리 실망하지 않았다.

‘아래쪽의 설명을 보자.’

비고의 모든 선반에는 전시된 물품의 기원과 용도가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라키엘의 눈이 바쁘게 안내문을 훑었다.

[이름 : 만년설]

[분류 : 방패]

[입수처 : 불명]

[분류 등급 : 하급]

[용도 : 사용자가 마나를 주입할 시, 중앙부의 코어가 마나를 변환하여 냉기의 방패를 생성, 전개합니다. 냉기의 방패는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받을 시에 깨어집니다.]

[사용 시 주의사항 : 충격을 받을 때 파손되어 떨어져 나오는 냉기의 조각은 순수한 마나의 결정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흩어지니, 함부로 만지거나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대박.”

이거다.

안내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라키엘. 그의 눈동자가 심봉사 라식 수술하듯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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