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특제 아이스 갈근탕 (1)
‘대박.’
미쳤다. 이건 진심으로 미쳤다. 라키엘은 마른침을 꿀떡 삼키며 메시지창을 쳐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조제하는 탕약의 약효가 10퍼센트나 증가한다고? 10퍼센트?’
누군가는 딸랑 10퍼센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정도면 약효가 살짝 오르는 거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단언컨대 절대로 아니다.
현대의 수많은 제약사들이 약효를 1퍼센트라도 올려보려고 얼마나 많은 투자와 연구를 쏟아붓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10퍼센트의 약효 증가가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충분히 절감하리라.
게다가 더 대단한 건 따로 있었다.
‘탕약 성분이 어떤 약효를 주는지, 부작용과 독성까지…… 전부 알 수 있을 거라니.’
깜짝 선물처럼 얻게 된 탕약조제 스킬. 그 스킬의 가장 핵심 알짜배기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사실 나도 갈근탕에 냉기 결정을 넣은 거…… 어떤 약효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였거든.’
그래서 이걸 만든 후에는?
실험하려 했다. 자신이 직접 마셔보려 했다. 써클 슬롯에 아이스 갈근탕을 담아두려 했다. 그런 상태에서 신체에 부담이 없을 정도의 극미량을 조금씩 몸에 풀어보려 했다.
그러면 아이스 갈근탕의 효과와 부작용, 주의점을 셀프 몸빵(?)을 통해 알아갈 수 있으리라고 여겼더랬다.
‘하지만…… 아마 그렇게 했더라도 효과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을 거야. 딘라이어 부인에게는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따라서 약효를 시험해볼 시간도 길어봐야 며칠 정도가 다였을 테니까.’
새로운 약 하나를 개발할 때. 연구와 투자에도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약 개발 이후의 임상시험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사람이 먹는 약이니까. 혹시나 악영향을 끼치면 절대로 안 되니까.’
탕약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의외로 갖가지 탕약들도 수많은 임상시험과 성분 분석을 거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려 했다. 자신의 몸으로 때워서라도 알아보려 했다. 한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탕약 조제 스킬 덕분이었다.
하지만 라키엘은 들뜨려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직은 마냥 기쁨에 겨워할 때가 아니다. 쉽사리 안심할 때도 물론 아니다.
‘일단 테스트해보자.’
한데 어떻게 해야 성분 테스트가 되는 걸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스 갈근탕이 담긴 용기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니 저절로 반응이 왔다.
딩동!
[당신이 직접 조제한 탕약을 감지하였습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하시겠습니까?]
[YES / NO]
당연히 답은 예스였다.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분 분석 옵션이 발동되었다.
[탕약조제 스킬 옵션 : 성분 분석을 발동합니다.]
[스캔 중]
[3…… 2…… 1…….]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딩동!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그 직후, 아이스 갈근탕에 대한 내용이 주르륵 떠올랐다.
[아이스 갈근탕]
[유효 성분 : 수기 농축 마나, 이소플라보노이드, 글리시리진, 이소글리시리진산, 사포닌, 쿠마린, 기타등등…… 파이토스테롤, 베투릭산,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등등]
[성상 : 흑갈색의 액상]
[효능과 효과 : 오행 중 수기(水氣)의 회복, 해열, 뇌혈관 혈류 증가, 관상동맥 확장, 면역력 증진]
[용법, 용량 : 1회 200ml, 1일 3회 식후에 복용]
[사용상의 주의사항 : 다음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말 것 - 신장 및 비뇨기 질환이 있는 환자]
[부작용 : 본 탕약은 신체의 수기를 북돋으므로, 그 영향에 따라 드물게 신장과 방광의 기능이 지나치게 활성화될 수 있음. 복용 중 방광의 통증, 혈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투여를 즉각 중지하여야 함]
[저장 방법 : 1~10℃의 서늘한 환경에서 보관]
[사용 기간 : 제조일로부터 3일]
[제조자 :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
좋다.
정말로 좋다.
‘이 스킬, 진짜야.’
아이스 갈근탕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렇듯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니. 거의 약국에서 파는 타x레놀이나 게x린 등등에 동봉된 설명서의 간략 버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꼼꼼했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특히, ‘효능과 효과’ 항목에 제일 먼저 쓰인 ‘수기(水氣)’의 회복이라는 언급이 제일 기뻤다. 자신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던 약효였기 때문이었다.
‘살릴 수 있겠어, 음기.’
딘라이어 부인. 그녀는 신체의 음기가 특히나 쇠하여 있었다. 한데 만약 수기를 북돋아 준다면?
‘수기의 영향을 받는 신장과 방광이 회복되고, 수생목((水生木)의 원리에 따라 목의 기운이 함께 살아나지. 그렇게 목기가 힘을 찾으면? 간과 담이 기력을 얻을 거야.’
모름지기 모든 신체의 기관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 간과 담이 살아나면 심장과 소장도 활력을 얻을 것이다. 뒤이어 비장과 위가 활발해질 것이고. 마침내 폐와 대장도 제 기능을 하리라.
그렇게 면역력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비로소 병마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된다. 해볼 만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럼 가자.”
방금 완성한 아이스 갈근탕을 야물딱지게 챙겼다. 데미안이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냥 만들자마자 먹이는 겁니까?”
“어.”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어.”
“…….”
데미안은 입을 다물었다. 황태자를 따라 아침 햇살이 비치는 복도로 나서면서, 딘라이어 부인이 있을 입원실을 향해 걷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대체 뭘까.’
자신이 모시는 황태자는 어떻게 된 사람인 걸까. 대관절 어떻게 저렇듯 확신을 보일 수 있는 걸까.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듣기로는 황태자는 의학을 배운 적이 없었노라 했다. 한데 저렇듯 너무나 능숙하게 환자를 진단하고, 약을 만든다. 자신과 검투사들을 치료할 때도 그랬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라키엘은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했다.
“똑똑? 들어갑니다?”
입원실로 들어갔다. 마침 꾸벅꾸벅 졸던 딘라이어 부인의 아들이 황급히 일어났다.
“저, 전하.”
“부인은 좀 어떠시지?”
“조금 전에 미음만 드시고는 잠드셨습니다.”
“열은, 으음. 여전하군.”
딘라이어 부인의 맥을 짚어보았다. 역시나 어젯밤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자면…….
‘더 나빠졌어.’
맥이 확연히 약해졌다. 신체가 병마와 싸울 기력을 잃어가는 게 느껴졌다.
‘제발 이 약이 효과를 발휘해야 할 텐데.’
부인을 살며시 깨웠다. 부축하며 상체를 일으켜주었다. 아이스 갈근탕을 스푼으로 떠서 차근차근,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조금 차가울 겁니다. 천천히. 자, 그렇게.”
“으으…… 맛이 너무 써요…….”
“사탕도 챙겨왔으니 안심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전하…….”
다행히 딘라이어 부인은 아이스 갈근탕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다 마셨다. 그렇게 다시 잠든 그녀를 보며 라키엘은 기원했다.
제발 약효가 있기를. 성분 분석에서 나왔던 효과가 100% 발휘되기를. 기원하고, 기다리고, 지켜보았다. 그때부터였다. 라키엘의 진득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1회당 200ml씩. 1일 3회 식후마다 복용할 것.’
용법과 용량을 정확히 지켰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아이스 갈근탕을 조제했다. 직접 만든 후엔 반드시 성분 분석을 했다. 검사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딘라이어 부인에게 탕약을 먹였다.
물론 그것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막 개업한 별궁 한의원도 있었다. 낮에는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해야 했다.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대강 살필 순 없었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아직 초 저질 체력인 몸뚱이였다. 그런 몸뚱이로 일반 환자들을 진료하고, 딘라이어 부인을 따로 살폈다. 온종일 강행군을 반복하니 체력이 금방 방전되었다. 진심 이대로 픽 쓰러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졸릴 때는 꼬슴이 갈색 가시로 허벅지를 찔렀다. 어지러울 때는 사탕으로 당분을 보충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의지를 다졌다.
‘언젠가는 내가…… 이 빡쎈 노력의 보상이고 뭐고 다 얻을 거야!’
반드시 제대로 즐기며 살아주리라. 플렉스로 점철된 평생을 보내리라. 다짐하고, 분투했다. 그런 덕분이었다. 그의 모습이 별궁 식구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황태자 전하께서…… 원래 저런 분이셨어?’
모두는 생각했다.
황태자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한창 병상에 누워 있던 때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아랫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한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검투사들을 데려오셨을 때도 그랬지만…… 발작 일으키던 아이를 보살피셨을 때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저렇게까지 헌신하는 그런 분은 절대로 아니셨는데.’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며 땀 흘리는 우리 황태자 전하. 피곤함과 고단함도 무릅쓰고 직접 탕약을 달이는 우리 황태자 전하. 심지어 밤을 지새워가며 환자의 곁을 지켜주시는 우리 황태자 전하.
“……즈어어언하아! 너무 무리하면 아니 되십니다아!”
보다 못한 가르딘 경이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황태자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그 대답이 전부였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묵묵히 환자를 돌보았다. 그 모습에 별궁 식구들은 더욱 감탄했다.
이쯤이면 진짜다.
진심이신 거다.
‘……존경스러워.’
별궁의 시종장도.
시종과 시녀들도.
근위대원들도.
말 못할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라키엘의 헌신에 갈채를 보냈다. 숭고한 행동에 찬사를 머금었다.
물론 그들은 몰랐다. 실제 라키엘의 마음속에 봉사와 헌신, 자애의 마음이 1그램도 없다는 것을. 오직, ‘부귀영화! 플렉스 황족 라이프!’라는 다짐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모두의 그런 사소한(?) 오해와 감탄 속에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이틀, 사흘, 닷새, 열흘……. 그리고 마침내, 결실이 드러났다.
딩동!
저물어가는 달빛이 창틀에 걸린 어느 새벽. 딘라이어 부인 곁에서 꾸벅꾸벅 졸던 와중이었던가. 비몽사몽하던 의식을 불현듯 일깨우는 알림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으음?’
라키엘은 선잠에서 벗어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은 아이스 갈근탕의 정확한 활용, 그리고 정성 가득한 간호로 발진 티푸스에 시달리던 환자 : 딘라이어 부인을 성공적으로 진료하였습니다. 그녀는 심각한 열병을 이겨냈으며, 적절한 안정을 취할시 무난하게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위하는 성실한 헌신, 봉사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이 당신을 향해 진심이 깃든 존경과 갈채,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진료 보상에 ‘찬사 보너스’ 효력이 추가됩니다.]
[진료비 청구 (Lv.2) 스킬의 효과가 1.5배로 적용됩니다.]
마침내, 결실의 꽃망울이 눈앞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