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Show me the 간호 (1)
“자네, 들어봤나?”
“뭘 말입니까?”
“쇼 미 더 간호.”
“…….”
“이상한 거 아닐세.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나?”
“아니, 그냥 쳐다본 겁니다.”
“……험험! 어쨌건, 황태자 전하께서 전문 간호사 선발 대회를 여신다더구만.”
“간호사를요?”
“그래, 간호사.”
“대관절…… 웬 간호사랍니까?”
“그야 뭐, 황태자 전하께서 별궁에 한의원을 여셨으니까, 거기서 일할 조수를 뽑는 게 아닐까?”
“흠, 그렇겠군요. 한데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지?”
“나야 다 자네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지.”
“저를 생각하다니요?”
“자네, 벌써 5년째 집구석에서 방바닥만 긁고 있지 않나?”
“아니, 제가 취직이 안 되는 걸 왜 집주인 어르신께서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거 오지랖 아닙니까? 선 넘지 마시죠. 제가 언제 집세라도 한 번이나 밀렸습니까?”
“한 번은 아니고 두 번.”
“……죄송합니다.”
“아무튼, 흠, 간호사 선발 대회 말일세. 자네도 나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제가요?”
“으음.”
“저보고 간호사를 하란 겁니까?”
“으음. 보수가 두둑하더구만.”
“얼마나요?”
“한 달 봉급이 자네 2년 치 집세는 되겠던데?”
“……당장 하겠습니다!”
청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집주인 아저씨가 허허 웃었다.
“잘 생각했네. 그럼 프론테라 광장의 공회당으로 가보게나.”
“공회당에요?”
“으음. 거기서 미술 전시회를 하는데, 거기 메인으로 걸린 작품에 자세한 모집 요강이 적혀있더구만.”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취직 성공하면 제가 옷이라도 한 벌 맞춰드리겠습니다!”
“허허허, 일단 어서 가보게.”
봄날의 아침을 맞이한 황도 마젠타. 시가지 곳곳에서 두런두런 소식이 번져갔다. 소식을 들은 이들이 프론테라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한쪽에 세워진 공회당. 그곳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제 막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출내기 젊은 화가 딘라이어 영식의 습작들을 내걸어둔, 소소한 전시회였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했다. 딱히 주목받을 구석이 없는 일상적인 전시회에 불과했다. 한데, 공회당의 중앙에 걸린 그림 한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바로 전시회의 핵심이라는 ‘치유하는 황태자와 간호사들’이라는 작품이었다.
“저게…… 황태자 전하?”
“에이, 아니겠지. 실물보다 너무 훤칠하잖아.”
“그렇죠? 다리도 너무 길고.”
전시회장의 구조는 교묘했다.
어떤 관람객이라도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무조건 ‘치유하는 황태자와 간호사들’ 작품 앞을 한 번은 지나가게 동선이 짜여 있었다. 덕분에 전시회장을 찾는 모든 발길이 그 작품 앞에서 멎었다.
“그런데 그림에 써놓은 저 문구들은…… 대체 뭐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 위아래에 새겨진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타이포가 사람들의 시선을 확 붙잡았다.
<쇼 미 더 간호>
<당신도 될 수 있습니다, 백의의 천사>
<간호사가 되어 찾아내는 인생의 보람과 행복>
<황태자가 선사하는 빵빵한 봉급 돈팔매질 완전 보장!>
“…….”
꿀꺽.
무려 황태자가 주는 봉급이란다. 한데 그 액수를 보니 저절로 침이 고였다.
‘저거, 어지간한 번듯한 직업들 못지않잖아? 그런데 환자를 간호하기만 하면 저런 돈을 준다고?’
모두는 생각했다.
해볼 만하다고. 저거, 거저 주는 돈 아니겠느냐고. 게다가 고용주가 황태자니까 봉급 떼일 일도 없을 거라고.
“여보, 결심했어.”
“네?”
“사실 내 어릴 적부터의 꿈은 간호사였던 게 아닐까.”
“……네에?”
관람객 대부분의 마음이 바운스 바운스 흔들렸다. 집단으로 인지왜곡과 셀프 기억조작까지 감행하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장래희망을 수정했다.
거기에 전시회장의 교묘한 구조가 또 한 번, 관람객들의 흔들리는 마음에 상큼한 막타를 때려 박았다. 전시회장을 떠나는 출구 한쪽에 아예 ‘쇼 미 더 간호’ 접수처를 대놓고 마련해둔 덕분이었다.
[간호사 선발 시험 접수처]
……라고 쓰인 테이블.
그 앞에 줄이 늘어섰다. 끝도 없이 늘어섰다. 새치기 실랑이마저 일어났다. 간호사 그거 어렵지도 않아 보이는데 봉급은 빵빵하고 안정적이니 해볼 만하겠다는 부푼 기대로. 혹은 이 기회에 팔자 좀 고쳐보겠다는 희망으로.
전시회장을 방문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줄을 섰다. 간호사 선발 시험에 이름을 등록했다. 모두가 라키엘이 의도했던 그대로의 결과였다.
“후후, 후후후.”
“…….”
“후흐흐, 흐흐흐흐.”
“…….”
“후흐흐흐흣, 흐흐흣.”
“……전하.”
“어, 왜.”
“뭐가 그리 기쁘십니까.”
“그럼 기쁘지, 안 기쁘겠어?”
라키엘은 방긋 웃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빌딩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간호사 선발 시험 응시자, 이렇게 많이 나왔잖아.”
그는 데미안을 향해 말했다.
“이 중에 쓸 만한 인재들이 있겠지. 그럼 더는 한의원의 간호 인력이 모자라는 일이 없겠지. 한의원이 쌩쌩 돌아가겠지. 더 많은 환자들이 원활하게 진료받고, 병상에서 회복될 수 있을 거야.”
그만큼 나는 보너스 수명을 팍팍 땡겨 받겠지. 그 수명으로 천년만년 떵떵거리며 살아줄 테다.
“그런데 안 기쁘겠냐?”
“그렇군요…….”
데미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자신이 모시는 이 황태자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이토록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니. 더 많은 간호사를 뽑는 이유가 더 많은 환자들의 치유와 행복을 위한 숭고한 목적이라니.
‘역시 훌륭하신 분.’
작은(?) 오해 속에서 끄덕거려지는 데미안의 고개. 그런 오해를 방치하며 더 흐뭇하게 웃는 라키엘. 둘의 엇갈린 미소 속에 날짜가 흘렀다. 닷새 동안의 전시회가 끝났다.
그리고 엿새째.
황태자가 직접 후원하고 주최하는 전문 간호사 선발 대회, ‘쇼 미 더 간호’가 별궁에서 진행되었다. 그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 주목! 응시번호 1번부터 50번까지 모여주세요!”
별궁 외부 출입문 광장. 그 앞에 모인 수백이 넘는 응시자들. 그중에 응시번호 1번부터 50번까지가 모였다. 그들을 향해 근위대원이 말했다.
“이제부터 간호사 선발시험의 첫 번째 과제를 시작합니다. 첫 과제는 ‘돌격, 면접시험장으로’입니다.”
“…….”
응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또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하지만 근위대원의 이어지는 설명에는 자비가 없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출발하여 정원의 정해진 코스를 거쳐 면접시험장이 있는 별궁 본채까지 이동하면 됩니다. 단, 여러분이 이동할 코스의 길이는 약 3킬로미터이며, 별궁 본채에 빠르게 도착한 10명의 사람까지만 선착순으로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예에?”
“뭐라고요?”
“잠깐만요, 그럼 나머지 40명은요?”
깜짝 놀란 응시자들이 물었다. 근위대원이 딱 자르듯 말했다.
“선착순 10명에 들지 못하는 나머지는 모두 탈락입니다.”
“…….”
무슨 이런. 우리는 간호사 시험을 보러 온 건데. 그런데 왜 이런 체력 시험을 치르는 걸까. 모두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출발신호가 다짜고짜 떨어졌다.
“출발!”
“……!”
그때부터였다.
50명이 죽어라 달렸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잠시 후, 10인의 승자가 가려졌다.
“……헉! 후악! 후욱!”
“쿨룩! 쿨럭!”
“게에에엑…….”
10인의 승자들이 화려한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비틀비틀 면접시험장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라키엘과 가르딘 경이 맞이했다. 가르딘 경이 응시자들에게 말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그럼 곧바로 다음 과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응시자들에겐 숨 돌릴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가르딘 경이 널따란 면접장에 마련된 10개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여섯 가지 종류의 약재가 놓여 있습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가르딘 경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섯 가지 약재 중에 하나는 잘못된 보관방법으로 상태가 변질된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각자의 시각과 후각, 촉각을 이용해서 변질된 약재를 골라내십시오. 그것이 두 번째 과제입니다.”
“후, 후윽, 아, 알겠습니다…….”
아직 숨도 고르지 못한 응시자들이었다. 시뻘게진 얼굴로 더운 땀을 뻘뻘 흘리며 각자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든 변질된 약재를 골라내려고 애를 썼다.
한데 그러던 도중이었다.
“……후, 후욱…… 허으…… 윽…….”
선착순 달리기를 하느라 너무 무리를 한 까닭일까. 응시자 중에 건장한 사내 한 명이 비틀거리며 테이블을 짚었다. 그러더니 누가 붙잡아줄 틈도 없이 혼절했다. 허물어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콰당탕!
테이블이 엎어졌다. 약재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 서슬에 나머지 9명의 응시자들이 움찔했다. 모두의 시선이 쓰러진 사내를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응시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저 사람, 쓰러졌는데 괜찮나……?’
‘뭐야. 왜 아무도 저 사람 안 챙겨주지?’
‘근위대원이나 별궁 사람들이 업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주최측은 뭐 하는 거지?’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들. 더욱 바쁘게 흔들리는 마음들. 하지만 이내 응시자들은 깨달았다. 가만히 보니, 자신들 외에 쓰러진 사내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
모두는 침묵했다. 그 속에서 암묵적인 눈치가 오갔다. 어차피 경쟁인 마당이다. 쓰러진 사람은 안타깝지만 이 또한 경쟁의 일부인 셈이다.
그때부터였다.
9명의 응시자들이 쓰러진 사내에게 신경을 껐다. 각자 자신의 앞에 놓인 약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라키엘은 빙긋 웃었다. 가르딘 경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 됐습니다. 거기까지.”
“……예?”
가르딘 경의 말에 움찔하는 응시자들. 아직 상한 약재를 감별하지도 않았는데? 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어 왔다. 하지만 라키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볼 것은 다 보았으니까.
가르딘 경의 사무적인 선언이 이어졌다.
“여러분이 약재를 감별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잘 보았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합격 여부는 추후에 통보하겠으니, 이만 돌아가주시고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
9명의 응시자들이 얼떨떨한 기색으로 물러났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합격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는 얼굴도 보였다.
그렇게 응시자들이 면접장을 빠져나간 후. 앞서 혼절하여 쓰러졌던 사내가 멀쩡한 기색으로 벌떡 일어났다. 데미안이었다.
“후우, 다행히 다들 잘 속았군요.”
“그러게. 쓰러질 때 좀 오버스러워서 걱정했는데.”
“……그랬습니까?”
“어. 살짝 어색하더라.”
“…….”
“연기력 좀 갈고 닦자.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
“어쨌건, 다들 속아 넘어간 덕분에 평가는 확실하게 되는구만.”
“그럼 방금 들어왔던 아홉 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부 탈락이야.”
라키엘이 선을 긋듯 딱 잘라 말했다.
“일단 기본적인 체력 시험은 통과했어. 환자를 보살피는 데에는 상상 외로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니까.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럿을 돌볼 때는 더더욱.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 과제였지.”
“아무도 절 신경 쓰지 않더군요.”
“어. 처음엔 눈치를 보더니 이내 신경을 껐지. 바로 곁에 쓰러진 사람이 생겼는데 말이야. 그래선 안 돼. 약초 감별이나 다른 지식은 교육으로 갖출 수 있지만…….”
“이미 지니고 있을 성품이 중요하다는 겁니까.”
“어. 정확해.”
나보다 남을 우선시하는 성격.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마음가짐. 그것이 간호사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라키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 사람이 그래.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본성이 드러나거든. 이를테면 방금처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신체적 한계에 몰렸지. 그 상황에서 간호사 선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과 경쟁심이 걸렸어.”
“그러니 다들 본성이 나온 거로군요.”
“맞아. 쓰러진 사람을 보살펴야 할 대상이 아닌, 경쟁상대로 치부한 거지. 그래선 안 되는 거거든. 간호사가 될 사람이라면.”
사실 면접장에서의 진짜 과제는 인성과 자질 테스트였다. 각자의 테이블 위에 놓인 약재는? 전부 멀쩡한 것들이었다. 보관이 잘못되어 변질된 거? 실은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응시자들을 몰래카메라 찍듯 낚아서 인성을 테스트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특근대원 전원이 돌아가며 체력 훈련도 하고. 어때? 3킬로미터 뛰어보니까?”
“가뿐했습니다.”
“그렇겠지. 지금쯤이면 세르지오가 다음 응시자 50명 속에 섞여서 뛰어오고 있겠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다음 그룹에는 또 다른 특근대 검투사가. 또 다음 그룹에는 다음 순서의 검투사가 섞여서 달려올 것이다. 선착순 10인 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방금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쓰러지는 연기로 나머지 9명의 인성을 시험하게 되리라.
“그럼 계속 수고해. 변장 바꾸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데미안이 물러갔다. 라키엘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꽃이 피었다.
‘자, 다들 인성, 인성을 보자!’
그 뒤로 시험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뭐야, 이거.’
면접시험이 모두 끝난 후. 시험장에 남은 라키엘은 어처구니가 사라짐을 느꼈다. 쓰러진 특근대원에게 신경을 써준 응시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몇 명은 있지 않을까. 이 시대의 양심이 그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정말로, 진짜로, 믿어지지 않지만 경악스럽게도, 단 한 명도 쓰러진 사람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후우, 이거 실환가.’
라키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들 그만큼 쓰러진 사람보다 시험이 더 중요했다는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거, 좀 씁쓸한 결과인데?’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성악설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어떡하지. 그냥 응시자 중에 적당했던 사람만 몇 명쯤 추려내야 하나?’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아니다. 그럴 바엔 지금 땜빵으로 간호사 역할을 하고 있는 별궁 시종과 시녀들을 교육해서 쓰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를 뽑을 거라면 이런 선발대회, 하지도 않았어.’
그러기 위해 시작한 선발대회가 아니다. 기왕 뽑으려면 제대로 된 진짜를. 그게 라키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어떡하지. 황도에 살면서 간호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거의 다 왔다고 봐야 할 텐데.’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응시자가 없을까. 정말로 믿고 환자를 맡길 간호사 인재가 없을까. 고민이 뒷골을 두드렸다. 머리가 아팠다. 바람이나 쐬자 싶었다.
‘좀 걸을까.’
데미안을 대동하고 정원을 걸었다.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발길이 절로 별궁 외부 관문으로 향했다. ‘쇼 미 더 간호’ 응시자들이 모였던, 바로 그 장소였다. 한데 관문에 도착해보니,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들여보내 주세요. 네? 우리도 시험에 응시했다고요. 지원서를 냈다니까요?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죠?”
“거듭 말하지 않았나. 인간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도……!”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소리를 치려는가. 강제로 끌어내어져야 정신을 차릴 건가?”
“…….”
어쩐지 관문 바깥쪽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지?’
목소리로 보아선 젊은 여자, 그리고 남자다. 여자는 항의하고 있고, 남자는 훈계하고 있다. 내용으로 보아선?
‘여자는 응시자. 남자는 관문을 지키는 근위대원인 것 같은데.’
한데 지원서를 냈음에도 입장을 거부당했다니. 인간이 아니라서 시험을 못 치렀다니.
‘뭐야. 나 모르는 사이에 시험도 못 치고 입구컷을 당한 응시자가 있었어?’
빠직.
한 사람의 후보도 아쉬운 마당에 감히? 라키엘은 사골육수처럼 깊고 진한 빡침을 느끼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관문에 도착한 직후, ‘인간이 아니라서’ 커트 당한 응시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응시자를 본 라키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