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Show me the 간호 (2)
“……어?”
라키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관문 앞에서 근위병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여자. 그 모습이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사람인데?’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야. 평범하잖아. 딱 그냥 20대 중반 여잔데?’
그럼 설마 엘프인 걸까. 하지만 귀가 뾰족하지 않았다.
‘그럼 엘프도 아니고.’
설마 드워프? 신체 비율상 그건 더 아니고.
‘대체 뭐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때였다. 곁의 데미안이 불쑥 말했다.
“저 여자, 웨어울프로군요.”
“웨어울프?”
“예, 전하.”
“어째서?”
라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설 마검황에도 웨어울프 종족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모습일 때도 길고 풍성한 털로 덮인 꼬리가 달려 있다고 했는데?’
저 여자에게선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데미안이 여자의 하의를 가리켰다.
“저런 모양의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
과연 보니까 그랬다.
여자가 입고 있는 바지의 모양이 좀 많이 특이했다. 극단적인 배기핏? 아니, 엉덩이부터 허벅다리까지만 항아리처럼 심하게 펑퍼짐했다. 그런데 무릎부터 종아리, 발목까지는 또 타이트했다. 굉장히 독특한 핏이었다.
그 사이, 데미안의 설명이 들려왔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웨어울프들은 자신의 꼬리를 내보이는 걸 극도로 꺼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꼬리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저런 형태의 바지를 만들어 입는다고 하지요.”
“그런…… 거였어?”
“예. 언젠가부터 웨어울프들이 저런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웨어울프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저 형식의 바지 착용을 피하게 됐지요.”
“해서 자연히 저런 형식의 바지가 웨어울프 특유의 복장으로 굳어진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으음.”
……오.
이건 마검황에서도 나온 적 없는 디테일한 정보였다. 소설에서는 웨어울프라면 그저 변신 능력이 있고, 강력한 체력을 지녔고, 후각이 개코라는 정도만 언급되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잠깐.’
라키엘은 흠칫했다. 방금 자신이 무의식중에 떠올리던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잠깐만. 이거. 체력 빵빵한 개코? 그거 완전 한의원 간호사로 일하기에 딱 좋은 조건인데?’
좌라라락.
머릿속 뇌주름이 풀악셀을 밟았다. 뇌주름 속 뉴런이 급진적인 추론을 시작했다.
‘체력이 뛰어나? 그런 간호를 할 때 좀처럼 지치지 않을 거란 뜻이지. 간호는 힘드니까. 정말로 끔찍하게 고된 일이니까. 간호를 한다고 해서 환자 한 사람만 돌보는 게 아니니까.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삼자면…… 평균적으로 간호사 한 사람이 담당하는 환자가 적게는 15명, 많게는 20명까지 되니까.’
쉴 틈 없이 돌아다니며 환자를 체크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들이 모두 얌전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거기에 환자 가족까지 신경 써야 한다. 그런 업무를 거의 매일, 3교대로 치러야 한다.
D 타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E 타임은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N 타임은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30분까지.
말로는 8시간 근무지만, 실제로는 앞뒤로 1~2시간의 인수인계 시간이 더 붙는다. 가히 살인적인 업무 내용과 스케줄인 셈이다.
‘그러니까 간호사가 없으면 병원이 아예 안 돌아가는 거지. 간호사야말로 병원의 진정한 기둥이자 숨어 있는 1등공신이니까.’
그만큼 고되고 힘든 직업이 간호사다.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이유였다. 한데 웨어울프라면? 어지간한 프로 운동선수마저 찜쪄먹는 체력의 보유자가 아니겠는가.
‘그럼 체력으로는 무조건 합격. 게다가 후각까지 뛰어나지.’
말 그대로 개코를 지녔다.
탕약에 들어갈 약재의 상태. 뜸봉으로 쓰이는 쑥의 상태. 그걸 킁킁 한 번으로 간단하게 체크할 수 있다. 게다가 탕약을 달이면서도 후각을 이용해서 가장 적절한 순간에 불 조절 타이밍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환자를 간호하면서도 후각으로 느껴지는 환자의 체취를 통해 컨디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엄청났다. 고려하면 할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그럼 인성은 어떨까.’
라키엘은 걸음을 옮겼다. 관문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웨어울프 여인과 근위병의 실랑이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인간이 아닌 게 왜 그리 큰 문제죠? 똑같이 말할 수 있어요. 똑같이 걷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시험을 치르는 것조차 안 된다는 거죠?”
“여기, 모집 요강에 나와 있잖나. 제국 황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가능하다고.”
“저도 사람이에요.”
“아니. 웨어울프지.”
“제국의 법으로 보호받는 시민이라고요.”
“하지만 때때로 짐승 같은 형상으로 변하잖나.”
“변하는 건 겉모습뿐입니다.”
“이성을 잃어서 양계장에 들어가 닭을 물어 죽이거나 하지는 않고?”
“그건 편견이에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이성을 잃지 않아?”
“네. 지금과 똑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부릅뜬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걸?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살벌하게 말이야.”
“그건 당신이 지금…….”
“화나게 만들어서라고? 이성을 잃지 않는다며. 그럼 지금도 참아야지.”
“…….”
여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근위병의 입가에 거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더는 못 봐주겠다.
“그만. 거기까지.”
이쪽의 말에 움찔하는 여인과 근위병. 둘의 시선이 동시에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여인은 갸웃. 반면, 근위병은 휘둥그레.
“황태자…… 전하?”
근위병의 표정이 당혹으로 굳었다. 마치 졸지에 쓰리스타 군단장과 마주친 이등병 같은 얼굴이다. 방금까지 웨어울프 여인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이죽거리던 미소는 어디로 갔는지.
전형적인 강약약강.
그 모습에 눈살이 더 찌푸려졌다.
“그쪽, 관등성명이 뭐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근무 중 이상 무!”
“이상이 있는 거 같은데. 그리고 난 그쪽 관등성명을 물었어.”
“황궁 근위대 12연대 1대대 소속, 상등 보병 블린트입니다, 전하!”
“그래. 블린트 상등 보병, 그쪽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어?”
“…….”
근위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친구,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별궁에서 근무하는 식구이긴 한데. 그래도 원칙을 눈앞에서 어기는 건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나는 분명 간호사 선발 대회를 진행하며 모집 요강을 공표했지. 거기엔 제국 황도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어. 그런데 말이야. 웨어울프라고 해서 황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건…….”
“법적으로 웨어울프의 시민권도 보장이 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내가 아니라 이 여자에게 무례했던 걸 죄송해해야지.”
“…….”
근위병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라키엘은 그에게서 거둔 시선을 웨어울프 여인에게 돌렸다.
“오면서 자초지종은 들었어. 우리 병사가 저지른 무례는 내가 대신 사과하지.”
“하신토의 딸, 아니스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스스로를 아니스라고 밝힌 웨어울프 여인이 예를 올렸다. 하지만 아직 분이 덜 풀린 걸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 같아도 빡쳤을 테니까. 그럼 그 분풀이, 시험을 통해 마음껏 풀게 해주지.
“그래. 간호사 시험에 응시하고 싶다고?”
“예, 전하.”
“좋아. 그럼 당장 시험을 시작할까.”
“……예?”
설마 즉석에서 이럴 줄은 몰랐던 걸까. 아니스의 얼떨떨한 시선이 날아왔다. 그 모습에 싱긋 웃음이 나왔다.
“그쪽은 웨어울프이니 체력은 충분하겠지. 하지만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야. 게다가 다른 응시자들과 시험 내용이 공평해야 하기도 하고. 그러니 이쪽, 이 친구와 달리기 시합을 하도록 할까.”
‘이 친구’라고 말하며 손을 들었다. 방금까지 아니스와 실랑이를 벌였던 근위병을 가리켰다.
“……전하?”
근위병의 깜짝 놀라는 시선이 날아왔다. 아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쪽이 웨어울프라서 체력에 자신이 있겠지만, 우리 근위병도 제국에서 정예로 불리는 친구들이거든. 그러니 좋은 승부가 될 거야. 저기, 관문 안쪽 정원의 커다란 분수대가 보이지?”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아니스.
“저기까지 거리가 대략 400미터쯤 되겠네. 저길 찍고 돌아와. 우리 근위병보다 빨리 돌아오면 체력 시험을 통과한 걸로 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아니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근위병이 이쪽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뭐해. 출발선에 서지 않고.”
이쪽의 채근을 듣고서야 황급히 검을 풀고 투구를 벗어놓는 근위병. 이내 아니스와 근위병이 나란히 관문에 섰다. 아니스는 시선을 옆으로 힐끗 돌렸다.
“…….”
아까 모욕감을 주었던 근위병. 찍소리도 못하게 눌러주리라. 다짐했다. 각오했다. 그 순간, 황태자의 신호가 떨어졌다.
“출발!”
투확-!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가속. 들판을 내달리던 조상의 숨결처럼. 언젠가 염화룡 칼리디스를 보좌하였다는 존경스러운 시조의 핏줄을 잇듯이, 질주했다.
주위의 풍경이 가느다랗게 늘어졌다. 스치는 바람이 귓가에서 울부짖었다. 목적지는 오로지 하나.
‘저 분수대!’
아니스의 시선이 분수대만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투파파파팟!
분수대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약했다.
타앗-!
온몸을 날렸다. 분수대 높다란 꼭대기를 짚었다. 붙잡았다. 온몸에 관성이 걸렸다.
후우웅-!
분수대 꼭대기를 붙잡은 손을 중심으로 몸이 커다란 원을 그렸다. 원심력이 전신을 휘감았다. 손을 놓았다. 온몸이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아까 날아왔던 것과 정반대로 바뀐 방향으로. 황태자가 기다리고 있는 관문을 향해서.
조금의 감속도 없이 180도 방향전환을 마쳤다. 착지했다. 다시 땅을 박찼다.
콰앙-!
전력을 기울인 재가속. 그 순간, 둔한 몸뚱이가 저 앞쪽에서 다가왔다.
“……후! 후욱! 훅!”
아직 분수대를 향해 뛰고 있는, 아까 자신을 비웃었던 근위병이었다. 나름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나마 인간 중에서는 제법 빠른 편이긴 한데.
‘한참 느려.’
저런 주제에 잘난 체를 했다니. 가소롭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겼어.’
아니스는 근위병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으엇?”
우연이었던 걸까. 아니면 이쪽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다급해진 탓이었을까.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근위병의 달음박질이 꼬였다. 제 다리에 발끝이 걸렸다. 비틀거렸다.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크으읏!”
쿠당탕!
근위병이 호되게 넘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아니스는 그를 스쳐 지나갔다.
“으읏……!”
원통하다는 듯 이쪽을 올려다보는 시선. 다시 일어나려고 비척거리는 몸짓. 한데 그 움직임이 좀 이상했다. 하지만 신경을 껐다. 아니스는 계속 달렸다. 자신을 비웃고 모욕한 인간 따위. 그냥 패배자로 찌그러져 있으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근위병을 뒤로 두고 뛰었다. 관문이 가까워졌다. 한데 그럴수록 기분이 더러워졌다. 아까 얼핏 보았던, 다시 일어나던 근위병의 이상하던 몸짓이 자꾸만 떠올랐다.
‘넘어지면서 어깨, 빠진 것 같던데.’
그걸 떠올릴수록 더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찜찜해졌다.
“……이런 x발.”
아니스는 욕설을 내뱉었다. 어쩐지 그냥 이대로 달리기에는 찜찜했다. 이렇게 승부를 끝내면? 분명 뒷말이 나올 것 같았다. 저 근위병이 빠진 어깨를 핑계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싫었다. 그 어떤 핑곗거리조차 없도록, 철저하게 실력으로 짓밟아주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콰가가가각!
질주를 멈추었다.
관문까지 불과 10미터만 남은 지점. 그곳에서 욕설을 잔뜩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근위병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소소한 복수(?)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녀는 근위병을 살벌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빌어먹을 나약한 인간 x끼 주제에 이겨보려고 발악은. 닥치고 가만히 있어봐.”
“……어?”
빠진 어깨 관절을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애쓰던 근위병.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그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아니스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의 어깨와 팔뚝을 붙잡았다.
뽀그닥?
“끄어아악!”
일부러 우악스럽게 맞춰준 관절. 근위병이 무지막지한 통증에 자지러졌다. 그 모습을 관문에서 바라보던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박.”
잠시 후, 아니스의 손에 쥐어진 합격 목걸이가 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