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꼬리를 마비시키는 법 (2)
‘바로 이거다.’
라키엘의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의 샘물이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유전 터지듯 쑴펑쑴펑 솟구쳤다.
그 핵심에 보톡스가 있었다.
보톡스(Botox).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 언제까지고 탱글탱글할 줄 알았던 얼굴에서 눈꼬리 주름을 발견한 순간. 촉촉팽팽하던 입가에서 팔자주름이 땅따먹기를 시작한 것을 깨달은 순간, 보통 한 번쯤은 고민해보게 된다는 그 주사.
‘보톡스 주사. 그걸 응용할 수 있겠어.’
라키엘의 머릿속 생각의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일반적으로 보톡스를 근육에 주사하면? 근육이 이완된다. 주름살이 펴진다.
혹은 종아리 알통이 너무 커서 보기 싫을 때? 근육 일부를 주사로 마비시켜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마치 다리 깁스를 두세 달 했다가 풀고 나면 근육이 줄어들어 있듯이. 비슷한 원리를 이용해 날씬한 각선미의 완성을 도와주기도 한다. 때로는 사각턱의 근육을 줄여 V라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한데 그 비결은?
강력한 독성에 있었다.
‘사실 보톡스는 어마어마한 마비독이지.’
보톡스.
진짜 본명인 풀네임은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 그건 그냥저냥한 독성물질이 아니었다. 가히,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하고 개발한 모든 독소 가운데 단연 원탑으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었다.
코브라나 블랙맘바의 독? 보툴리눔 톡신 앞에선 핵불닭 앞의 크림스프에 불과하다. 극독으로 유명한 청산가리? 마이크 타이슨에게 덤비는 동네 복싱 체육관 1개월 차 복린이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하지. 청산가리라고 해봤자 보툴리눔 톡신에 비하면 최소 1만 배쯤 약하니까.’
보툴리눔 톡신의 반수치사량(LD50)은? 흡입하는 경우엔 킬로그램당 10나노그램 남짓이다. 그러니까 60킬로그램의 성인이 있다면? 겨우 600나노그램. 0.6마이크로그램. 즉, 0.0006그램만 흡입시키면 염라대왕 진로상담교실에 예약을 성공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그것도 좀 넉넉하게 계산한 거고. 실제 점막으로 흡입하면…… 성인 남성 하나 죽이는 데에 필요한 질량이 0.0000005그램 정도니까.’
그건 엄청난 수치였다.
‘청산가리는 0.15그램이 있어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지. 그 유명하고 지독한 방사능 홍차? 그것도 사람 잡으려면 0.01그램은 필요하거든.’
그러니까 단순계산상 대략 400그램의 순수하게 농축된 보툴리눔 톡신이 있다면? 전 인류를 몰살할 수 있다. 그만큼 보툴리눔 톡신은 어이가 없을 만큼 강력한 독성 물질이었다.
‘한데 사람은 그걸 주름 개선 등등의 미용 목적으로 잘도 쓴단 말이야. 인류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생각해보자니 대략 조금은 멍해졌다. 라키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건, 지금은 그 보톡스 주사의 원리를 이용해볼 때야. 할 수 있어. 보톡스만큼 강력하진 않더라도, 비슷한 기전의 근육 마비 효과를 일으키는 물질을 이용하면? 그걸 약침 시술에 접목시키면?’
가능하리라.
제멋대로 움직여서 문제라는 웨어울프의 지방자치 꼬리. 그 꼬리의 근육에 국소마비의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아니스의 요구를 100% 만족시키는 셈이다.
‘마침 거기에 써먹을 독도 있어.’
라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가르딘 경을 향해 말했다.
“내가 잠깐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인데. 경이 뭘 좀 가져와야겠어.”
“예?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쿠스만의 맹독 캡슐.”
“……아, 지난번에 지하 검투장을 토벌할 때에 체포했던 그 프로모터, 말씀이십니까?”
“으음. 그때 그자를 체포하면서 확보했던 맹독 캡슐. 비고에 잘 보관해뒀지?”
“예. 물론입니다, 전하.”
가르딘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럼 가져와. 당장.”
“예? 실례지만 그런 위험한 캡슐을 어디에 쓰시려고…….”
“어디에 쓰긴. 좋은 데 쓰려는 거지.”
이쪽을 걱정해주는 가르딘 경. 혹시나 이쪽이 맹독 때문에 위험을 겪는 건 아닐까. 심히 우려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짓으로 콕콕 눈치를 줬다. 결국, 가르딘 경이 못 이긴 척 걸음을 옮겼다. 총 30알의 맹독 캡슐을 야물딱지게 챙겨서 돌아왔다. 그동안 라키엘은 계획을 정리했다.
‘일단 아이디어는 나왔어. 마비성 맹독을 지닌 쿠스만의 캡슐. 그 성분을 약침 시술에 접목시켜서 근육에 국소마비 효과를 일으키는 거. 하지만 그러자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시술 부위.’
아무 데나 침을 찌를 수는 없다.
어디에 시침을 하여야 마비독이 원하는 효과를 불러올지. 혹여나 있을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지. 충분한 검토를 해야 할 터였다. 하여 라키엘은 아니스를 불렀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시죠?”
방문자용 숙소에서 쉬다가 불려온 아니스. 그녀가 살짝 긴장한 어조로 물어왔다. 라키엘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까 그쪽이 요구했던 조건. 해결할 방법을 찾은 듯하거든. 그래서 시술 부위를 조사해야 할 듯해서.”
“……네?”
“돌아앉아서 가만히 있어봐.”
“…….”
그녀를 돌려 앉혔다. 등에 손바닥을 댔다. 순간 그녀의 어깨가 흠칫.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아스라한 심법을 발동했다.
‘뇌전증 치료를 하던 그때처럼.’
키이이잉-!
심법을 최대로 발동했다. 심장을 둘러싼 마나써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신체의 감각이 극도로 민감해졌다. 마나를 느끼는 감도가 더욱 정밀해졌다.
그 감각을 손으로 짚고 있는 아니스의 등으로 집중시켰다. 등을 통해 느껴지는 신체의 온기. 옷깃 아래 피부와 근육의 긴장감. 그 사이를 흐르는 혈액의 흐름까지. 그 모든 것이 서서히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히 MRI에 비견될 수 있을 그만의 아스라한 정밀 진단법이 시전되었다.
‘옳지. 보인다.’
아스라한 심법은 마나를 흡수, 가공하는 데에 특화된 심법이었다. 그만큼 마나를 감지하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한데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속에는? 당연히 마나가 깃들어 있었다.
피부와 근육.
혈관과 신경.
근막과 뼈대.
가장 깊은 곳의 골수에까지.
어느 곳 하나 마나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라키엘은 아니스의 전신에서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보인다, 보여.’
눈을 감으니 펼쳐진 새카만 세상. 그 속을 흐르는 빛무리. 마치 남산 꼭대기에서 한밤의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도로를 따라 흐르듯 움직이는 수많은 빛의 물결이 보였다. 도로가 혈맥이고, 빛을 뿌리며 달리는 교통의 흐름이 마나였다.
특히, 라키엘은 그중에서도 아니스의 허리와 둔부, 다리, 꼬리 일대의 흐름에 주목했다.
‘역시 이쪽의 흐름이 인간과 조금 다르구나.’
꼬리는 인간에게 흔적만 남은 기관이었다. 반면 아니스 같은 웨어울프에게는? 사람의 팔다리처럼 엄연히 기능을 하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꼬리와 그 주위의 혈맥 구성이 인간과 다를 거라 예상했다. 과연 살펴보니 그 예상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심하게 다르진 않네?’
인간에게도 꼬리가 흔적 기관으로나마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대부분의 혈맥 구성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나마 독맥(督脈)의 위치가 좀 다르긴 하구나. 특히 둔부의 장강혈(長强穴)과 요수혈(腰兪穴)이 인간보다 위아래로 간격이 벌어져 있고. 그 사이에서…… 인간에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길의 혈맥이 꼬리를 향해 뻗어 있어.’
사람에게는 사라진 꼬리. 뿌리에서부터 끝까지. 처음 보는 혈맥이 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구조는 단순하네.’
계속 관찰해보니 어느 자리에 시침을 해야 할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변신해볼래?”
“네?”
“늑대 모습으로 변신했을 때 혈맥의 위치가 바뀔 거니까. 그것까지 다 검사하고 파악해야지.”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의 진지한 태도 덕분이었을까. 아니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쿠드드득!
활짝 열린 창문으로 스며든 달빛 아래. 변신이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평범한 외모의 여인 아니스는 이제 없었다. 그녀가 있던 곳엔 인간의 옷을 걸친 갈색 털의 늑대인간이 두 발로 서 있을 뿐.
“후아. 딱히 덩치가 커지진 않네?”
“…….”
“근데 꼭 진돌이 같다.”
“끄응?”
“아, 전에 키웠던 멍멍이 이름.”
“으르르릉.”
“미안.”
“…….”
“구강 구조가 바뀌어서 말은 못 하는 거구나? 자, 그럼 손.”
착.
손바닥을 내밀자 아니스의 손, 아니, 앞발이 반사적으로 턱 올라왔다. 아니스도 그런 자신의 반응을 뒤늦게 깨달은 걸까.
“……크르르릉!”
이쪽을 노려보는 눈길이 사뭇 흉포해졌다. 라키엘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미안. 설마 진짜 될까 싶었거든.”
“크르릉!”
“진짜 미안. 그럼 다시 검사하자.”
“…….”
끄덕.
아니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 형태로 변한 그녀의 신체를 다시 조사했다. 덕분에 변신하며 변화한 혈맥의 구성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에 그녀를 돌려보냈다. 혼자 남은 침실. 그곳에서 라키엘은 아스라한 정밀 진단의 결과를 검토했다.
‘다행이다. 심한 차이는 없어. 신체 구조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것과 비슷한 덕분이겠지.’
그렇게 어느 부위에 보톡스 침술을 시침할지를 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첫 번째 과제인 시술 부위는 해결했고. 그런데 두 번째 과제가 좀 난감해.’
라키엘은 고민에 휩싸였다. 보톡스 침술을 위한 두 번째 과제. 그것은 바로 마비독의 사용량이었다.
‘이것도 시술 부위를 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해. 아니, 사실은 가장 중요하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약이 아닌 독을 쓰는 시술. 심지어 근육에 마비를 일으키는 강한 독을 주입하는 시술이다. 한데 그 용량을 주먹구구로 정한다면? 온갖 위험한 부작용 퍼레이드가 열릴 것이다.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쿠스만이 제조한 이 맹독의 성분이 어떻게 되는지, 부작용을 피하면서 국소마비 효과를 가져올 안전한 적정량이 어떻게 되는지, 그걸 전부 파악해야 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한데 그걸 어떻게 파악할지가 조금 막막했다.
‘이걸 제조한 쿠스만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한데.’
검투장의 프로모터 쿠스만. 그는 체포되어 황궁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니 찾아가서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라키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놈은 못 믿어.’
원래부터 좋은 놈이 아니다. 심지어 이쪽에게 악감정을 잔뜩 품고 있을 터다. 당연히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엔 어려울 터였다.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고. 그게 제일 위험하지.’
그러니까 쿠스만 질문 찬스는 기각. 라키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면 직접 먹어봐야 하나.’
먹어서 마나써클에 저장할까. 그래서 아주 극미량을 신체에 흘려보내며 성분을 실험해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요란한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딩동!
[오장육부가 당신의 위험한 발상에 기겁하고 있습니다.]
[심장 : 얘들아, 방금 들었냐? 쟤 독 먹어보겠다는데?]
[허파 : 허…… 파하하핰ㅋㅋ]
[대장 : 셀프 실험 실홥니까. 융털돌기가 웅장해지지 말입니다.]
[간장 : 야 그거 먹으면 내가 다 해독하고 처리해야 한다고 ㅜㅜ 차라리 환상종을 뽑아서 먹여보지 그러냐 이 미친놈아.]
박장대소하고 투덜거리며 일침을 놓는 오장육부. 라키엘은 가자미눈을 떴다. 제일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간장을 향해 대꾸했다.
‘환상종한테 독약을 먹이라니. 실험용 모르모트도 아니고. 그거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러자 곧바로 반박이 돌아왔다.
[간장 : 독약 먹는 성분실험이 주특기인 환상종도 있던데?]
‘……뭐?’
라키엘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그때부터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간장의 설명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