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55화 (55/468)

55화. 두 번째 환상종 선택 뽑기 (2)

“불꽃…… 개복치?”

라키엘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자신이 선택하여 탄생시킨 환상종. 그 모습이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복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뽀복!”

이쪽의 목소리에 즉시 반응하는 녀석. 손바닥 크기였다. 동그랗고 납작했다. 마치 씨앗 호떡을 펼친 것 같은…… 개복치였다.

한데 그냥 평범한 개복치가 아니었다. 따끈따끈한 불꽃 지느러미가 날개처럼 달려 있었다. 심지어 그걸 팔랑거리며 도동실 떠오르기까지 했다! 마치, 불꽃 날개를 펄럭이듯 말이다.

“…….”

난 대체 뭘 뽑은 걸까. 원하는 걸 제대로 뽑은 게 맞는 걸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이내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모른다. 확인부터 해보자.’

설마 개복치니까 쉽게 꽥 죽는 게 특기인 걸까. 과연 그걸로 어떤 역할을 해주는 걸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저기, 있잖아?”

“뽀?”

“혹시 너도 갖고 있어?”

“뽀복?”

“그거 있잖아. 쪽지. 사용 설명서.”

“뽀!”

녀석이 온몸을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러더니 게슴츠레한 눈빛을 했다.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뽀오…… 뽀오…… 오애애액-”

힘찬(?) 구역질과 함께 녀석이 작은 쪽지 하나를 게워냈다.

“…….”

아 씨. 드러.

라키엘은 자그마한 비애감을 느끼며 쪽지를 펼쳐 들었다.

[뽀복이 사용설명서]

[뽀복이는 귀엽고 예민한 불사조 개복치입니다. 사랑으로 보살펴 주세요.]

[뽀복이는 소환자인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칩니다. 환상종은 평생의 반려동물이자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함부로 유기하지 말아 주세요.]

[뽀복이는 다른 환상종과 달리, 해바라기씨를 사용하는 소형화 / 거대화 변환이 불가능합니다.]

[뽀복이의 거대화는 특수한 조건을 충족할 시에만 가능해집니다.]

<뽀복이 보유 스킬 목록>

[으앙 쥬금 ㅠㅠ (Lv. 1)]

[부활! (Lv. 1)]

[일기 쓰기 (Lv. 1)]

[뽀복이는 <으앙 쥬금 ㅠㅠ (Lv.1)> 스킬과 <부활! (Lv .1)> 스킬을 함께 사용하며 거대화 스택이 충전됩니다. 스택이 10회 쌓일 시, 자동으로 거대화가 발동됩니다.]

“…….”

나 진짜, 제대로 뽑은 거 맞나. 스킬 목록을 보자니 이 녀석, 뽀복이의 용도가 더욱 아리송해졌다. 한편으로는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스킬 목록을 봐도.

그 밖의 설명을 읽어도.

어느 곳에서도 약재나 독의 성분 분석을 해준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나, 꽝을 뽑은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영 아닌 녀석을 뽑아 버린 거라면? 이번 뽑기는 망한 거다. 라키엘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으음, 뽀복아?”

“뽀보!”

“너 가지고 있는 스킬 있잖아.”

“뽀!”

“으앙 쥬금, 이라는 거, 그건 어떤 거야?”

“뽀보복! 뽀복!”

“……응? 일단 먹을 거 아무거나 가져와 보라고?”

“뽀!”

“아무런 편견도, 편식도 없이 다 먹을 수 있다고?”

“뽀보!”

“…….”

온몸을 팡팡 끄덕이는 뽀복이. 어쩐지 그 모습이 자신만만해 보였다. 기왕(?) 태어난 거,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먹을 걸 달라니.’

라키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밤의 고요하고도 드넓은 침실. 딱히 먹을 것을 따로 두진 않았다.

‘주방에서 뭐라도 가져와야 하나. 그건 좀 귀찮은…… 아, 있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며칠 전이었던가. 요즘 계속 환자들을 돌보느라 강행군을 한 탓이었는지 유독 목이 칼칼했다. 아침부터 가래가 끼고, 침을 삼킬 때마다 아릿했다.

‘그래서 도라지를 좀 가져오게 했었지.’

자고로 가래가 끓을 때는 도라지가 최고인 법. 마침 갖추고 있는 약재 중엔 도라지도 있었다. 그걸 가져오게 했더랬다. 차로 우려내서 마시기 위해서였다.

‘한데 정작 마시진 못했지. 바빴거든. 아무튼 그거 이쪽 어딘가에 뒀었는데…… 그래. 찾았다.’

뒤적뒤적.

라키엘은 서랍 구석에 짱박아(?)두었던 도라지 뿌리를 찾아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뽀복이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을 수 있겠어?”

“뽀!”

녀석이 냉큼 입을 벌렸다. 자그마한 도라지 뿌리 조각을 넣어주었다.

“뽀보복! 뽀보! 우물우물!”

녀석이 도라지 뿌리를 야물딱지게 씹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꿀꺼덕 삼켰다. 그리고 꼴까닥 죽었다.

“……뽀보!”

딩동!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으앙 쥬금 ㅠㅠ (Lv. 1)>을 시전합니다.]

털푸덕……!

“…….”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가슴을 부여잡고 테이블로 추락한 녀석. 진짜로 죽었는지 지느러미의 불꽃이 꺼졌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고 있자니 당혹스러웠다.

“어이? 야?”

콕콕 찔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눈까지 하얗게 뒤집으며 혀를 봬엙 내밀었다.

“…….”

야이 씨.

이거 뽑기 실패인가.

진짜 불량품 뽑은 건가.

오만가지 욕이 나오려는 순간.

“……뽀?”

녀석이 눈을 반짝 떴다.

딩동!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부활! (Lv. 1)>을 시전합니다.]

[불사복치 뽀복이의 거대화 1 스택이 적립되었습니다.]

힘찬 메시지와 함께 녀석이 발딱 일어났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치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지느러미 한 장을 뚝 떼냈다. 자그마한 송곳니 하나도 쏙 뽑아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떼낸 지느러미를 공책처럼 바닥에 깔았다. 뽑은 송곳니를 연필처럼 야물딱지게 쥐었다.

딩동!

[불사복치 뽀복이가 스킬 <일기 쓰기 (Lv. 1)>를 시전합니다.]

“…….”

일기 쓰기?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걸까. 라키엘은 녀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사이, 뽀복이가 지느러미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써댔다.

“뽀보보! 뽀복! 뽀!”

뭐가 저리도 불만인 걸까. 괜히 궁금해졌다. 녀석의 어깨너머로 일기 내용을 훔쳐보았다.

그 내용은…….

[오늘의 일기]

[새 주인을 만났다. 기분이가 좋았다. 새 주인이 도라지 뿌리 줬다. 기분이가 좋았다. 그런데 도라지 뿌리 맛없어. 플라티코디제닌(platycodigenin)은 너무 짰다. 폴리갈라시드산(polygalacid acid)은 시고 썼다. 플라티코제닉산(platycogenic acid) A랑 사포닌 플라티코딘(saponin platycodin) C42H68O17에다가 이눌린(inulin)이랑 피토스테롤(phytosterol)은 너무 떫게 아주 범벅이었다. 진짜로 맛없었다. 맛없어서 뽀복이 꽥 죽었다. 그래서 뽀복이는…… 어쩌고저쩌고…… 그랬더니…… 이러쿵저러쿵…… 블라블라…….]

“…….”

라키엘은 할 말을 잃었다. 녀석이 쓰고 있는 일기의 내용 때문이었다.

‘플라디코제닌? 폴리갈라시드산? 저거…… 도라지 성분인데?’

일기를 훔쳐보는 그의 눈길이 바빠졌다. 점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방금 자기가 먹었던 성분을 모조리 쓰고 있어. 그것뿐만이 아니다. 반수치사량 등등의 성분특성까지 전부 고자질을 빙자해서 기록하고 있잖아?’

놀라웠다.

아니, 이건 놀라운 정도가 아니다.

‘……대박.’

비로소 라키엘은 깨달을 수 있었다. 불사조와 개복치가 혼합된 이 기묘한 환상종이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지, 직접 보니 알 것 같았다.

‘그거네. 이놈 이거, 아무거나 먹으면 무조건 죽어. 일단 죽어. 그건 개복치 특성이고. 그 후에는 불사조 특성으로 부활하지. 그리고 자신을 죽게 했던 물질의 특성을 일기로 기록해서 남기는 거야, 이 녀석은.’

사실 개복치는 쉽게 죽는 연약한 동물이 아니긴 하다. 실제로는 엄청나게 강인한 생물이다. 하지만 뽀복이 녀석은 인터넷 밈으로 떠도는 쉽게 죽는 개복치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듯했다.

‘어쨌건. 이거, 미친. 대박이잖아.’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뭐든지 먹고 성분 분석을 할 수 있는 환상종. 그 실험이 주특기인 모르모트 환상종. 그걸 정말로 손에 넣게 되었다.

그 말은 곧?

‘쿠스만에게서 압수한 근육 마비 맹독. 그것도 분석할 수 있겠어.’

설마 가능할까 싶었는데. 제발 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로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뽀복이의 일기장 쓰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뽀보복! 뽀보! 뽀!”

아까 먹은 도라지가 그렇게나 억울했(?)던 걸까. 녀석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계속해서 새 지느러미를 떼어냈다. 연신 투덜거리며 마치 고자질하듯, 장문의 일기장을 쉼 없이 써내려갔다. 가히 도라지 뿌리 성분에 대한 수십 페이지짜리 논문이라도 쓸 기세였다.

“…….”

맹독 분석은 저거 다 쓰면 시키자. 결국, 라키엘은 녀석을 놔두고 잠을 청해야 했다.

아침이 밝았다.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뽀복이가 머리맡에 함께 잠들어 있었다. 선배(?) 환상종인 꼬슴이도 함께였다.

“……뽀보보. 쌔근쌔근.”

“꼬슴…… 드르렁!”

“…….”

녀석들, 그사이에 알아서 통성명도 하고 친해진 걸까. 아무래도 그런 듯싶었다. 잠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길지 못했다.

‘할 일이 산더미니까.’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한의원을 부흥시켜야 한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보너스 수명을 챙겨야 한다. 그러려면 우수한 간호사가 많이 필요하다. 간호사를 얻으려면 보톡스 침술로 아니스의 꼬리를 마비시켜야 한다!

“……뭔가 과정과 결론이 괴상하긴 한데, 어쨌건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뽀복아?”

“뽀?”

“이것도 먹어볼래?”

“뽀보?”

“맛있는 거야.”

“뽀보복? 뽀!”

‘맛있는 거’라는 말에 금방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는 뽀복이. 잠깐 양심이 콕콕 쑤셨다. 하지만 얼굴 가득 철판 미소를 깔았다. 뽀복이에게 쿠스만의 마비 맹독 샘플을 한 방울 먹였다.

그리고 역시나 뽀복이는 죽었다.

“……뽀!”

속았다!

라는 눈빛으로 이쪽을 원망스레 째려보며 숨을 거두는 뽀복이. 물론 잠시 후에 다시 부활했다. 이쪽을 향해 수십 번씩 투덜거리며 일기, 아니, 맹독 분석 리포트를 작성했다. 덕분에 반나절 후, 라키엘은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됐다. 바로 이거야.’

뽀복이가 작성한 일기를 살펴보았다. 쿠스만이 만든 마비성 맹독. 그 맹독의 거의 모든 특성과 스펙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이거, 설마 했는데 진짜로 보톡스를 약화시킨 마이너 버전의 극독이었네. 독소가 신경계 뉴런에 다이렉트로 결합되고……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 방출을 막아 버리네. 작용 기전이 보톡스와 거의 똑같잖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보툴리눔 톡신보다 독소가 훨씬 약하다는 점이었다.

‘보통 성형수술 쪽에서 쓰는 약화된 독소 A형보다도 더 약해. 이 정도면…… 그래. 딱 좋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꼬리를 마비시킬 수 있을 용량. 동시에 부작용을 예방할 사용량. 즉, 안전 사용량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라키엘은 시술을 위해 아니스를 부르기로 결심했다.

“가르딘 경?”

“예, 전…… 어어억?”

“뭔데. 왜 그렇게 놀라?”

“화, 환상종이 또!”

가르딘 경이 뽀복이를 보고는 자지러졌다. 라키엘은 일부러 무덤덤하게 굴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혹은, 뭐 이런 일로 호들갑이냐는 듯.

“어. 간밤에 갑자기 찾아왔어.”

“…….”

“이유는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몰라. 그냥 환상종들이 나한테 꼬이나 봐.”

“허, 허허.”

“왜 웃어?”

“아니, 그게, 으음, 역사책에서 봤던 어떤 위인이 문득 떠올라서 말입니다.”

“위인?”

“예, 전하. 로이드 프론테라라고…….”

“아, 이 제국이 왕국이었던 시절의 말기에 살았다는 영지 설계사?”

“예. 당시 국왕의 오른팔이 되어 수많은 공훈을 세웠다는 그 위인 말입니다. 그분도 다섯 환상종을 이끌고 다녔다는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그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실질적으로 제국의 기틀을 세운 분이니까요.”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사 속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예?”

“아니스를 불러와.”

“아니스 양을 말입니까?”

“그래. 시술, 시작할 거야.”

물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시술 과정에서 어떤 뜻밖의 난관과 만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쪽이 할 준비는 다 갖추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행동할 때다.

S급 간호사 영입을 위하여. 별궁 한의원의 번창을 위하여.  더 나아가 이 몸의 무병장수 부귀영화 황족 라이프를 위하여.

‘내 미래는 내가 집도한다.’

그렇게 마침내,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보톡스 침술을 베이스로 삼은 국소마비 시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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