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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59화 (59/468)

59화. 돈 worry, 非 happy (1)

‘라키엘,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거냐?’

라키엘, 아니, 이한은 이를 갈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종장이 들려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고하여드리는 것이 매우 송구하오나…… 분명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전하께서 직접 폐하께 고하시길…… 내년, 그러니까 올해의 별궁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달라고…….”

“라키엘 그놈…… 아니, 내가 그렇게 고했다고? 황제 폐하께?”

“예, 전하.”

“어째서?”

“…….”

“흠흠, 혹시 경은 그때 내가 그랬던 이유를 짐작했었나?”

“솔직히 고하여드려도 되겠습니까?”

“부디 그래 줘.”

“예, 전하의 뜻이시라면. 하오니 감히 고하옵자면, 저는 당시의 전하께서 스스로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여기시는 것이라……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여기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거라고?”

“예, 전하.”

“그렇게 심각했어?”

“열흘에 이틀만 겨우 움직일 수 있으실 정도였습니다. 하여 재작년 연말에 편성 받았던 작년 별궁 운영 예산이 크게 남아돌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운영 예산 삭감을 요청했던 거라고?”

“예, 전하.”

“이런 똥멍청이 x끼!”

“……예에?”

“아니 아니, 경한테 화낸 건 아니고. 나도 모르게 잠깐 발끈해서. 미안.”

“…….”

“어쨌건,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작년 가을 무렵의 내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건강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고서 올해의 예산 삭감을 요청했던 거라고?”

“예, 전하.”

“하아. 그럼 이거, 결국엔 라키…… 아니, 내가 뿌린 업보라는 거구만.”

“송구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지금의 전하께서는 작년과 달리 이토록 건강해지셨지 않습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응, 아니야. 안 기뻐.”

“…….”

“돈이 없는데 기쁘긴 개뿔.”

“…….”

“어오. 이놈의 돈, 돈, 돈. 진짜.”

“…….”

라키엘은 이를 갈았다. 상황을 알고 나니 한숨이 푹 나왔다.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너 진짜 이러기냐? 응?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작년의 그놈이 희망을 포기했었단다. 올해 예산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황제에게 예산 삭감 요청을 했단다.

‘그래놓고 자기는 잘했다고 내심 뿌듯해했겠지. 분명 그랬을 거야. 제국 백성들에게 거둔 세금으로 마련한 귀중한 돈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게 됐다고 막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겠지. 으이그, 멍청한 놈! 모지리 같은 놈!’

생각할수록 욕이 한 바가지로 나왔다.

물론 당시 라키엘의 기분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별궁에 예산이 남아돌았을 것이다. 라키엘은 돈 쓸 일이 없었을 터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병상에 누워 지내던 놈이었다. 다른 황족이나 귀족들처럼 활동하지를 못했다.

사냥이나 말타기 같은 취미? 혹은 밤을 지새우며 즐기는 연회? 녀석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꿈 같은 일이었다.

‘외출할 일도 거의 없었을 테니까 옷이나 장신구, 사치품을 사들이는 규모도 다른 황족보다 훨씬 적었을 거고. 실제로 돈 나갈 곳이라곤 의사 월급이랑 약값밖에 없었겠네.’

그렇게 펑펑 남아도는 예산. 어쩌면 녀석은 그게 국가적인 낭비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물론 나쁜 생각은 아니다. 나름 상황에 맞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놈이 괜한 짓으로 태클을 걸어둔 걸로만 느껴졌다.

‘어오, 진짜.’

라키엘은 투덜거림을 되삼켰다. 지금은 투덜댄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는 시종장을 향해 물었다.

“하면 하나 좀 묻지. 올해의 별궁 운영 예산 말이야.”

“예, 전하.”

“그거, 다시 추가로 요청하면 되지 않나?”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 희망을 걸어보았다. 한데 돌아오는 시종장의 대답은 칼 같았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전하.”

“어째서?”

“절차상 제국 황실의 법을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

“황실의 법으로 정해진 바에 따르자면, 황실의 모든 부처와 기관은 한 해의 예산을 오직 한 번, 전년도 연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전하.”

“전년도 연말에? 오직 한 번만?”

“예, 전하. 그 외에 예산 추가 편성이 가능한 방법이 딱 한 가지 있긴 하온데…….”

“뭔데?”

“전쟁, 천재지변, 그 외 국가의 존망에 영향이 가는 중대사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특별 편성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하.”

“지금이 바로 그거야! 국가의 존망에 영향이 가는 중대사!”

“…….”

“진짠데. 돈 없으면 별궁 한의원 문 닫아야 하는데.”

“…….”

“그럼 내가 죽는다고.”

“…….”

“그거, 국가 존망이 걸린 중대사 아닌가?”

“전하, 대체 어찌하면 한의원이 문을 닫는 것과 전하께서…… 돌아가시는 것이 연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잘…….”

“…….”

그래, 이해가 안 되겠지. 이쪽도 이해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보너스 수명 시스템 창을 떡하니 보여주고 싶었다.

한데 그걸 보여줄 방법도, 이해시킬 방법 또한 없다는 게 문제였다. 라키엘은 아쉬움 가득한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래도, 으음, 내가 황족이고 황태자인데. 예산 정도는 추가로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을까?”

나름의 희망을 품어보았다. 하지만 시종장은 여전히 단호박 같았다.

“그것도 불가능하십니다, 전하.”

“설마 그것도 황실의 법을 어기는 거라서?”

“물론입니다, 전하.”

“…….”

“제국에서 법에 제한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지니신 분은 오직 황제 폐하만이 유일하십니다, 전하.”

“……그래?”

“예, 전하.”

“그럼 잘됐네.”

“예?”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움직여야겠네. 오늘 한의원 진료는 여기까지. 마침 진료 마감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휴진 팻말 걸어둬.”

“……예에?”

“황궁에 가야겠어.”

“전하? 황궁에는 무슨 용건으로…….”

“또 써야지, 아빠 찬스.”

라키엘은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황제가 초법적 권한을 지니고 있다면? 그 권한, 좀 휘둘러달라고 부탁하면 될 것 아닌가.

……는 실패했다. 그냥, 말 그대로, 보기 좋게 실패했다.

‘후우. 황제 그 양반 진짜.’

황제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오는 길. 복도를 걸으며 라키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 그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시종장이 알려온 자금난. 그 대책을 마련하고자 황제를 찾아왔다.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달라고 부탁했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보았다. 황제는 초법적인 권한을 지녔으니까. 제국은 탄탄하고 재정은 넉넉하니까. 그깟 예산 몇 푼(?)쯤은 충분히 허락해줄 거라고 여겼다.

한데 아니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황제 그 양반, 아예 날 여러모로 시험하려고 작정을 했어.’

알현을 하면서 이쪽의 용건을 밝힌 직후였던가. 별궁 예산이 부족하다고. 사정이 이러이러하여 한의원 운영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고. 하니 특별히 추가 예산을 편성해주면 고맙겠다고. 정중히 부탁하였더랬다.

한데 그 부탁을 들은 황제는? 이쪽을 지그시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 눈빛은 마치…….

‘고등학교 때 야자 째고 튀다가 딱 마주친 학주쌤 눈빛이랑 똑같더라고.’

당시 학주, 그러니까 학생주임 선생님이 그러셨던가. 여기서 너희가 야자를 튀는 합당한 이유를 50가지만 말할 수 있으면 봐주겠다고.

물론 당연히 실패했다.

무슨 고3들의 50가지 그림자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이유를 50가지나 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심지어 당시는 학교에 체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궁둥짝에 빠따 불꽃이 쑴펑쑴펑 피어났다. 체벌 세트메뉴로 토끼뜀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아야 했더랬다.

한데 아까 황제의 눈빛이? 딱 그때 50가지 이유를 묻던 학주쌤과 눈빛이 똑같았다. 심지어 반응도 비슷했다.

‘추가 예산을 요청하는 이유를…… 50가지만 대보라고? 미친 거 아냐?’

그래서 이쪽은?

정말로 50가지 이유를 말했다. 환자들을 보살펴야 하고. 그들 모두가 황실의 백성이고. 민심이 어쩌고저쩌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기타등등, 블라블라, 어쩌고저쩌고. 있는 이유, 없는 이유까지 임기응변으로 다 끌어냈다.

한데 그걸 다 들은 황제는?

한층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황태자의 요청을 거절한다, 라고.

‘……그럴 거면 애초에 이유를 묻질 말든가!’

마치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새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황제 그 양반, 소설에서도 계속 그런 식이었지. 라키엘에게, 라키엘이 죽은 후엔 2황자에게도. 계속해서 후계자를 곤경에 몰아넣고는 그 곤경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시험하려 들었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후계자에게 그토록 혹독한 이였다. 아마 오늘의 거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별궁 운영 예산이 바닥난 상황……. 이 자금난을 내가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구경하고 평가하겠다는 거구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절 멘트를 날리며 이쪽을 보던 황제의 눈빛이 딱 그랬다.

‘아빠 찬스는 실패구나.’

이미 거절당한 마당이다. 황제에게 더 기대할 구석은 없다. 절로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하아. 그래도 여기선 돈에 시달릴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의 마지막 몇 개월이 떠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한의원이 파리만 날리던 시절. 중심 상가에 자리 잡은 덕분에 살인적인 임대료가 나가던 시기였다.

값비싼 임대료를 내기 위해 전셋집마저 정리했더랬다. 집을 월세 원룸으로 옮기고, 전세 보증금을 빼서 임대료를 때웠다. 그래도 결국엔 못 버텼다.

‘그놈의 돈.’

생각하자니 이가 갈렸다. 한데 황태자가 된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뭔가 모를 묘한 오기가 가슴속에 피어났다.

‘이번에도 돈 때문에 한의원 문을 닫을 수는 없잖아.’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아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설령 야바위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돈에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하자. 생각해. 라키엘. 이한. 네가 가진 것들. 할 수 있는 것들. 다 떠올리고 조합해보는 거야.’

본궁 건물을 빠져나오며. 정원을 걷고 지나치며. 마차에 몸을 싣고서. 별궁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궁리하고, 고민하고, 분석하고, 조립했다. 이쪽이 지닌 자원들. 이쪽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들. 가진 것들과 가능성을 지닌 것들. 자신이 소설 마검황에서 보았던 스토리 속 여러 요소들. 그중에서 유용하게 써먹고 응용할 수 있을 법한 것들까지.

모든 것을 조합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러자 조금씩 떠올랐다. 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여 별궁에 도착했을 때, 마차에서 내리는 라키엘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그는 곧바로 시종장을 불렀다. 일말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명했다.

“파바르 경? 혹시 별궁의 재산과 집기들이 정리된 목록이 있나?”

“……예?”

“그런 목록 있느냐고. 특히 귀중품, 사치품, 미술품들.”

“물론…… 있습니다?”

“다행이네. 가져와.”

“예?”

“전부 팔아야지.”

“……예에?”

별궁의 충실하며 알뜰한 살림꾼, 시종장의 가녀린 심장이 멸망의 칠성장어 승천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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