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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61화 (61/468)

61화. 돈 worry, 非 happy (3)

“미노타우황청심원.”

“…….”

“어때? 좋지?”

“…….”

좋기는 개뿔. 데미안은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미친 거 아냐?’

미노타우황청심원이 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뭔가 굉장하고 거창한 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미노타우로스의 담석을 약으로 만들어서 사람에게 먹이겠다는 겁니까?”

“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자. 그에게 거듭 물었다.

“그걸 과연, 사람들이 먹을까요?”

“물론이지.”

라키엘의 고갯짓에 자신감이 배어났다.

“먹어. 무조건.”

“어째서 말입니까?”

“희귀하다고 생각할 거니까.”

“…….”

“원래 사람 심리가 그렇거든.”

정말이다. 한국에서 비슷한 예를 얼마나 숱하게 보았던가. 누에고치가 건강에 좋다더라. 웅담이 그렇게 끝내준다더라. 땡땡이를 먹으면 혈압이 내려간다더라. 기타 등등, 등등.

오늘날에도 정체불명의 다양한 약재와, 약재인지 뭔지도 모를 것들이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 때문에 수없이 팔려나가는 곳. 그곳이 대한민국이었다.

아니, 사실 그건 세계 어딜 가든 비슷한 현상이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거기서 거기니까. 이곳이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노타우황청심원의 베이스가 되는 우황청심원이 원래부터 약효가 입증된 녀석이라서.”

“약효가…… 입증됐단 말입니까?”

“어.”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우황청심원. 많은 사람들이 우황청심‘환’이라고 부르는 환약. 사실 우황청심‘환’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정식 이름은 우황청심‘원’이다.

‘그게 엄연히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사용하는 우리 명칭이니까.’

어쨌건, 우황청심원은 뇌질환, 가슴 두근거림을 동반하는 심장성 질환, 고혈압, 급성과 만성 경풍, 정신 불안, 신경성 질환 및 자율신경실조증의 초기 증상을 치료하고 다스리는 훌륭한 구급약이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강력한 신경안정제지.’

현대에 와서는 그냥 그런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만 과거에는? 중국 청나라 관리들이 찾는 가장 핫한, 워너비 잇템이었다. 그만큼 조선산 우황청심원의 약효가 자타공인으로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핵심 약재인 우황, 특히 제주도 소에게서 나온 담석의 효과가 끝내줬다지. 실제로 실험용 마우스에게 우황을 4~8일간 투여한 결과 경련 예방, 진정 작용이 있다는 게 증명됐고. 고혈압 증상을 보이는 쥐에게 투여했을 때 혈압강하효과도 입증됐지.’

그 밖에도 우황에 함유된 타우린(taurine) 성분도 혈압강하효과를 보인다. 심지어 간 기능 보호와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어쨌건, 그런 우황보다 더욱 강력한 미노타우로스 담석을 쓸 거야. 그 정도면 약효와 상징성 모두 충분할 거고.”

“충분하다고 하심은?”

“상품성이 된다는 뜻이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신에게도 미노타우로스의 강력한 힘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정도면 어떨까?”

“…….”

“어쨌건 팔릴 거라니깐, 흠흠.”

“한데 황태자 전하.”

“음?”

“우황청심원이라든가, 그 약효라든가……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들인데 말입니다.”

“그래?”

“예.”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들어봅니다. 그래서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뭐가?”

“그만큼 효과가 입증된 훌륭한 약이라면 분명 유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들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예.”

“그거야 간단해.”

라키엘은 싱긋 웃었다. 새빨간 거짓말을 혓바닥에 촵촵 장전했다. 안면 가득 철판을 깔고 조정간 단발로 발사했다.

“옛날에 망한 고대의 왕국에서 유명했던 약재거든.”

“망한…… 고대의 왕국 말입니까?”

“응.”

“어떤 왕국이었습니까?”

“있어. 조선이라고.”

“처음 들어봅니다.”

“그렇지? 나도 꿈에서 처음 들었어.”

“…….”

“몰랐나? 내가 쓰는 침술, 탕약 조제, 전부 꿈에서 배우고 있는 건데.”

“……가르딘 경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설마 그게 진짜로 하는 소리인 줄은 몰랐지?”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근데 어떡하나. 진짠데.”

“…….”

“진짜가 아니면 내가 배운 적도 없는 의술을 하루아침에 뜬금없이 펼치고 사람들을 진료하는 게 가능했겠어?”

“…….”

그런가. 데미안은 그림처럼 수려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들어보자니 계속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좀 억지스러운 둘러대기 같았다.

‘가르딘 경이야 순진한 데다 황태자를 무조건 추종하는 자라서, 저 말을 어느 정도 수긍했겠지만.’

자신은 아니다. 들어보니 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딱히 그걸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니까.’

황태자가 저런 지식과 의술을 어디서 익혔든 관심 없다. 그걸로 사람들을 해치는 것만 아니라면 된다. 자신은 봉급만 따박따박 받으면 된다. 그러니 더는 별소리 하지 말자.

‘그래도 좀, 미친 인간 같은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데미안은 쓴웃음을 애써 삼켰다.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은 하는데도, 결국엔 입 밖으로 톡 쏘는 한마디가 나왔다.

“흐음. 그래서 무면허로 당당하게 사람들을 진료하시는 거였군요.”

“…….”

“왜 그러십니까?”

“면허가…… 필요한 거였냐?”

“…….”

“그런 거였어?”

“예. 당연히.”

“…….”

“제가 알기로는 의사 면허 시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르딘 경도 물론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일 테고 말입니다.”

“…….”

“모르셨습니까?”

“어.”

“…….”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

“뭐, 일단은…….”

라키엘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의사 면허 시험이라니. 그게 있는 줄은 몰랐다. 소설에서도 그런 디테일한 사회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니까.

‘쯧.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만일의 상황에 대비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한의원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황태자의 소꿉놀이 정도로 여기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나중에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걸고넘어진다면…….

‘분명 골치 아파지겠지.’

그러니 조금씩 대비를 해두자. 라키엘은 계획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 어쨌건 지금은 더 시급한 문제부터.’

일단은 자금난 해결이 우선이다. 미노타우황청심원의 샘플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미노타우로스 담석부터 구해야겠지?”

“황도 약재상으로 사람을 보내실 겁니까?”

“아니.”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약재상 사재기를 할 때 보니까 미노타우로스의 담석 같은 건 아예 없었어. 아니, 우황도 없더라고. 아마 여기선 우황이라는 것 자체를 약재로 쓰질 않나 봐.”

“그럼 어떻게…….”

“살아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직접 사와야지.”

“…….”

“크레모 시에 갈 거야. 거기 항구가 제국 동북부 물류의 중심이라던데. 제국에서 손꼽히는 몬스터 경매장도 있고.”

“직접 가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직접 가서 미노타우로스 상태를 봐야 해. 담석 상태도 확인해봐야 하고.”

정말로 당연한 소리다. 앞으로 한의원의 존망을 건 제품을 만들 재료다. 그걸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라키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일단, 짐부터 싸자.”

“…….”

“가즈아아.”

“…….”

진짜 이 인간, 어딘가가 좀 미쳐 있는 건 아닐까.

소설 마검황의 진정한 주인공. 그러나 그런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데미안. 그는 자신의 호위 대상인 황태자의 정신 건강 상태가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출발 준비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딱히 거창할 준비랄 것도 없었다. 황태자의 장거리 여행 전용 마차, 그랜드 투어러에 짐이 촥촥 실렸다.

수행원단의 구성도 심플했다. 데미안과 특근대 전원. 별궁 근위기사 20인. 그리고 아니스. 그게 전부였다. 더 많은 인원은 라키엘이 바라지 않았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짐이 많아지고, 그만큼 여정이 느려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시간을 아껴야지. 나한텐 시간이 금보다 귀하니까.’

아직 이쪽은 시한부 인생이다. 그날그날 보너스 수명을 조금씩 받아서 목숨을 연장하는, 노가다 인생과 다름없는 신세다.

그러니 이동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아끼고 싶었다. 덕분에 출발 준비는 반나절 만에 끝났다. 물론 이 전격적인 출발과 인원 구성에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즈어어어언하아아-!”

“…….”

“……이제 안 놀라십니까?”

“어. 내성이 생겨서.”

“고막이 나가신 건 아니고요?”

“어. 다행히?”

“귓구멍에 피 나시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우리 가르딘 경, 농담이 많이 늘었네. 나랑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하나 봐?”

“소, 송구합니다.”

“송구는 개뿔. 어쨌건 뭔데. 왜 또 비장하게 날 부르는 건데.”

“저기, 그게…….”

“그게?”

“어째서 저는 똑 떼어놓고 가시려는 것입니까, 전하아!”

“……그게 이유였어?”

“예, 전하.”

“그러니까, 나랑 떨어지기 싫다고?”

“예, 전하.”

“으, 징그러.”

“…….”

“이유가 뭔데.”

“제가 전하의 주치의이기 때문입니다!”

묻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하는 가르딘 경. 그의 꽃중년 얼굴에 비장한 기색이 서렸다.

“전하의 건강을 보살펴드리는 것, 그러기 위해 항상 전하의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전하.”

“어, 그랬어?”

“예, 전하!”

“으음, 그런데 말이야. 경마저 날 따라 크레모로 가 버리면, 여기 한의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누가 보살펴?”

“……예?”

“누가 보살피냐고.”

“그야 웨어울프 간호사들이…….”

“그래도 믿을 만한 의사가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지?”

“저, 전하?”

“그렇잖아. 게다가 입원한 환자들은 전부 제국의 백성들이다? 맞지?”

“그렇…… 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경이 여기 남아야지.”

“…….”

가르딘 경의 말문이 막혔다. 라키엘의 혓바닥이 능수능란한 풀악셀을 밟았다.

“가르딘 경, 생각해 봐. 제국의 백성들이야. 그런데 우리 마젠타노 황가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 뭐였지?”

“백성의 안위가 곧 황실의 안위…….”

“그렇지. 바로 그거지. 그러니까 입원한 백성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곧 황실을 보살피는 거고, 날 보살피는 것과 같다는 의미지. 안 그래?”

“안 그렇…….”

“에이. 그렇잖아.”

“…….”

“안 그래애?”

“……크흐흡! 흐흑!”

그건 진짜 아닌데. 완전 정말로 아닌 거 같은데. 암만 들어봐도 턱도 없는 억지 같은데. 그런데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치사했다. 억울했다. 결국, 가르딘 경은 질끈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아, 그럼 우린 다녀올게.”

“……전하아!”

“기념품 사올게.”

“크흐흑!”

가르딘 경의 흩뿌려지는 눈물방울 사이로 마차가 움직였다. 그렇게 황도를 출발했다.

동쪽으로.

북쪽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서리치는 바람이 부는 북해를 향해. 도시와 성곽을 지나쳤다. 들판과 평원을 주파했다. 숲 언저리를 우회하고, 협곡을 건넜다. 강줄기를 따라 달리며 산맥을 스쳐 갔다.

그동안 라키엘은 처음으로 보는 이국적인 풍광 구경에 푹 빠졌다. 마치 르네상스 버전 스위스 관광을 즐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편 데미안은 그런 라키엘을 묘한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가끔, 아니, 종종. 황태자는 이상했다. 그냥 정신이 좀 나간 것 같은 미치광이?

‘아니, 묘한 의미에서 세상을 통달한 것 같은…….’

황태자를 보고 있으면 그런 기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마치, 신의 눈을 빌려 이 세상을 한 번 훑어본 사람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서.’

곁에서 보면 볼수록 더욱 신기한 인간이다. 데미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묵묵히 라키엘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하루, 이틀, 닷새, 여드레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전하, 언덕 너머에 항구가 보입니다. 크레모 항입니다.”

척후로 나갔던 근위기사가 돌아와 보고했다.

그렇게 황도 마젠타를 출발한 지 8일째. 일행은 목적지인 크레모 시에 도착했다. 물론 이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앞으로 며칠 뒤부터, 이 유서 깊은 항구도시에, 영원불멸의 업적이 황태자의 이름으로 길이길이 새겨지리라는 사실을.

크레모의 시민들도.

일행의 구성원들도.

라키엘 본인조차도.

그 누구도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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