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경매 x 같이 하네 (1)
“저, 사실 이런 풍경은 예상 못 했는데 말입니다.”
“어. 동감이야.”
조금은 떨떠름하게 들려오는 데미안의 목소리. 그걸 들으며 라키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몬스터 경매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경매장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떠들썩한 분위기? 활발하게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 경쟁적으로 목청 높여 호가를 부르는 구매자들?
그런 익숙한 풍경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 모두가 조용했다. 호가를 부르는 이들은 목청을 높이는 대신 각자가 지닌 A4용지 크기의 작은 칠판을 사용했다. 분필로 숫자를 샤샤샥 써서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렇게 호가를 제시했다.
그걸 본 경매사가 매물의 호가를 갱신했다. 그리고 ‘더 높은 가격 없습니까?’라는 눈빛을 말없이 사방으로 보냈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법한, 떠들썩한 평범한(?) 경매장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저거, 혹시 여기가 몬스터 경매장이라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떠들썩하면 우리 속의 몬스터가 자극을 받을 테니까.”
“쯧. 이미 마취약이나 진정제 따위로 푹 절인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경매 매물로 올라와 있는 몬스터는? 길바닥에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30분쯤 전의 일이 떠올랐다.
‘크레모 시장 어깨도 저렇게 축 늘어졌었는데.’
아까 도시 관문에 도착했던 때였던가. 이쪽 덕분에 관문에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난데없이, 황태자가 방문한 거니까.’
아무런 통보도, 예고도 없이 나타난 황태자 일행이었다. 관문을 지키던 병사나 장교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사태였을 것이다.
물론 크레모 시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들은 시장이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마치, 사단장의 기습 방문을 받은 대대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조금 미안해졌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따로 호위대라니요. 괜찮습니다. 그런 건 안 붙여줘도 됩니다, 시장님.’
‘하, 하지만 전하!’
‘이따 시장 관저에서 뵙겠습니다?’
……라며 시장의 호위 권유를 뿌리쳤다.
성대한 환영식?
극진한 대접?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담스러웠다.
황태자가 됐다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얼마 전의 일이니까.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이 평범한 동네 한의사 이한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며 잠이 깨곤 하니까.
그래서였다. 시장을 남겨둔 채 도주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행과 함께 곧바로 이곳, 크레모 몬스터 경매장으로 직행해 온 것이었다.
‘어휴, 미안해라.’
크레모 시장을 생각하니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이쪽의 방문 때문에 얼마나 놀랐을까. 괜한 민폐를 끼친 건 아닐까.
‘얼른 용건만 보고 황도로 돌아가야지.’
라키엘은 다짐하며 고개를 들었다. 여전한 침묵 속의 활발한 경매장을 살펴보았다. 그 사이에도 여러 경매가 계속 진행되었다. 갖가지 몬스터 매물이 올라왔다. 누군가에게 팔려갔다. 하지만 라키엘은 다른 경매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없나?’
이쪽의 목적은 오직 미노타우로스 하나뿐이다. 미노타우로스의 담석을 구해야 한다. 미노타우황청심환을 만들어서 시험해봐야 한다. 그게 성공한다면, 한의원을 운영할 훌륭하고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야 나도 보너스 수명 팍팍 얻지!’
새삼 다짐하며 눈을 번득였다. 미노타우로스가 매물로 올라올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마침내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느우워오오오!”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몬스터의 포효다운 포효가 경매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경매장의 모두가 움찔했다. 라키엘의 눈동자도 빛의 속도로 포효가 들려온 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헐.”
말 8마리가 이끌고 들어오는 거대한 수레. 그 위에 더욱 거대한 특수 우리가 실려 있었다.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0미터는 될 법한 초특급 사이즈 우리였다.
‘뭔 공룡이야?’
진짜로 공룡을 가둬둘 법한 크기의 우리. 그 안에 7미터 신장의 미노타우로스가 있었다. 실로 공룡을 연상시키는, 엄청나게 거대한 놈이었다.
‘크기가 무슨…….’
버팔로를 닮은 머리통이 사람만 했다. 저걸로 소머리 국밥을 끓이면 100인분은 거뜬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아래의 몸통은 더욱 과격, 무식했다.
온통 검은 털로 뒤덮인 인간형의 신체를 보자니? 동네 헬스장에 던져 놓으면 3대 30톤은 거뜬히 칠 것 같았다. 그런 미노타우로스가 철창 밖을 향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니, 포효했다.
“누오오오오오-!”
2000년대 중반의 박호신, MSG워너비도 울고 갈 엄청난 성량의 소몰이 포효가 경매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실로 압도적인 포스였다.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저건 질러야 해!’
그러는 사이, 경매사가 커다란 칠판을 들어 올렸다. 칠판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금일 자 메인 매물]
[품종 : 미노타우로스]
[사이즈 : 특대]
[상태 : 최상]
[성격 : 매우 사나움]
[특이사항 : 동부산맥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몬스터 사냥꾼 그룹 7개 팀이 연합하여 3개월의 추적과 유인 끝에 간신히 생포한 최고의 매물입니다. 특수 목적의 사육 및 관상용으로 적극 추천]
“느우워어오오!”
미노타우로스가 또다시 포효했다. 분명 마취제와 각종 진정제에 푹 절어 있을 텐데도 저렇게 포효할 수 있다니. 엄청난 놈이라는 느낌이 딱 왔다.
저놈의 담석은 얼마나 더 엄청날까. 그걸로 우황청심환을 만들면 약효는 또 얼마나 끝내줄까. 생각할수록 탐이 났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잡는다. 지른다. 저건 무조건 손에 넣는다.’
한데 그때였다. 경매사가 칠판에 또 뭔가를 슥슥 썼다. 들어 올렸다. 그 내용을 본 순간. 라키엘은 자신의 시력을 진지하게 의심해야 했다.
[경매 시작가 : 50,000 마젠]
“…….”
말문이 턱 막혔다.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옆의 데미안을 툭툭 쳤다.
“이봐, 있잖아.”
“예, 전하.”
“저기 경매사가 써놓은 시작 가격, 저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예?”
“아까 다른 몬스터들은 최종 낙찰 가격이 5천 마젠, 6천 마젠, 이랬잖아?”
“예, 그랬지요.”
“그런데 쟤는 시작 가격 상태가 왜 저러냐?”
“그걸 저한테 따지시면…….”
“아니, 억울해서 그러지.”
“그래도 저 정도면 준비해온 자금이 모자라진 않을 텐데요.”
“그렇겠지. 적어도 지금은.”
라키엘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렇다. 적어도 ‘지금은’ 괜찮다. 5만 마젠? 감당할 수 있다. 이쪽은 10만 마젠을 가져왔으니까.
‘그런데 저거, 분명 가격이 뛸 텐데.’
경매니까 그럴 거다. 분명 가격 경쟁이 붙게 될 거다. 특히 저런 포스 터지는 매물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아, 쓰읍. 진짜 놓치기 싫은데.’
라키엘은 입맛이 쓰려지는 걸 느꼈다. 반드시, 무조건 손에 넣고 싶었다. 한데 그게 어려울 것 같았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며 예감할 수 있었다.
‘다들 눈빛이 장난이 아니거든.’
아닌 게 아니라,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하자마자 경매장 내의 공기가 달라진 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몬스터 전문 도매상으로 보이는 사내도. 상단의 경영자로 보이는 신사도. 돈이 많아 보이는 뚱뚱한 수집가도. 죄다, 다들, 눈빛이 아주 그냥 지구 최강 아이돌 방탄조끼단 콘서트에 간 소녀팬들처럼 반짝거리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자 서글픈 각이 딱 보였다. 불길한 확신이 쑴펑쑴펑 피어났다.
‘이대로는 저거, 절대로 못 사.’
머릿속으로 계산이 팍팍 섰다. 이쪽이 준비해 온 총알(?)은 10만 마젠.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금액을 한국의 물가와 비교한다면? 당장 서울 강남에서 고오급 브랜드 아파트 몇 채를 취향껏 사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런데도 턱도 없을 거야. 시작가가 이미 5만 마젠이야. 거기에 경쟁까지 붙을 걸 생각하면…… 저거 그냥 두면 최종 낙찰가격이 무조건, 백 퍼센트 10만 마젠을 넘겠지.’
총알이 모자라서 기권해야 하리라. 한데 놓치긴 싫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생각해. 머리를 굴려. 힘내라 대뇌피질!’
열심히 번민하고, 고민했다. 맹렬히 궁리하고, 쥐어짰다. 그리고 마침내, 반짝이는 꼼수 하나를 떠올렸다.
“……데미안.”
“예, 전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데미안 녀석을 끌어당겼다. 녀석의 귓가에 은밀히 지시했다.
“속닥속닥…… 해서…… 이러쿵저러쿵…… 한 거니까…… 재잘재잘…… 하면서…… 블라블라…… 하도록 해. 알겠지?”
“…….”
지시를 들은 데미안은 할 말을 잃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으로 황태자를 보았다.
“그걸, 정말로 하실 겁니까?”
“당연하지.”
“진심이신 겁니까?”
“물론.”
“…….”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다시금 어이가 사라졌다. 참다못한 데미안은 결국,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전하. 감히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하께서 내리신 지시는 진짜로…….”
“음?”
“치사한 작전이십니다.”
“으음, 그리고?”
“야비한 작전입니다.”
“으으음, 그래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데미안이 자리를 떴다.
그동안 라키엘은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미노타우로스 경매가 시작되었다. 고요하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호가를 제시하는 칠판이 쑥쑥 들렸다.
호가가 연이어 올라갔다.
50,100 마젠.
50,500 마젠.
53,000 마젠.
55,000 마젠.
하지만 그동안 라키엘은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눈빛만 번득였다.
출근 시간 빽빽한 2호선 전철에서 빈자리가 생길 곳을 예측하며 포지션을 사수하듯. 친구들과 피자를 먹으려 박스를 열 때, 어느 조각이 가장 크고 토핑이 빵빵한지를 순식간에 파악하려 눈동자를 굴리듯.
그는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데미안에게 내린 지시, 자신의 꼼수가 실현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황태자 전하아! 이렇듯 제 청을 들어주셔서 실로, 정말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아!”
고요한 경매장을 느닷없이 뒤흔드는 요란한 목소리. 난데없는 목청에 모두의 눈길이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 헐레벌떡 달려온 크레모 시장이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황태자의 눈에 들어서 점수를 따겠노라고. 어쩌면 오늘이 자신의 정치적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날일 거라고. 두근거리는 마음과 콩닥콩닥 설레는 가슴으로 정성껏 야물딱지게 준비해 온 황태자 전하 특별 호위대 100명의 병사와 함께였다.
척척척척척!
극진한 표정의 크레모 시장. 근엄한 위세의 특별 호위대. 그들이 경매장으로 들어왔다. 누가 말릴 겨를도 없었다. 순식간에 들어와서 라키엘의 주위를 둘러쌌다.
마치 최후의 알을 품는 어미새처럼. 혹은 컵라면 속 가장 큰 건더기를 문화유산처럼 마지막까지 정성껏 보존하고 아껴두는 것처럼.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을 지키듯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러운 태도였다.
덕분에 경매장의 모두는 깨달았다. 크레모 시장이 ‘전하’라고 부르는 대상. 100명의 호위병이 둘러싸고 있는 중심. 바로 그곳에 있는 병약해 보이는 청년. 저 청년이 바로…….
‘……황태자가 왜 여기서 나와?’
모두가 거대한 의문과 심각한 충격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때를 노리던 라키엘이 마침내 칠판을 들어 올렸다.
[라키엘 아드리아 마젠타노 : 60,000마젠]
동시에 라키엘은 생각했다.
이제 이쪽의 정체를 알았으니, 다들 자진해서 기권하게 될 거라고. 감히 황태자의 권력 남용(?)에 맞설 이는 없을 거라고. 그러니 경매 레이스 자체가 여기서 끝날 거라고.
‘써먹을 수 있는 권력이 있으면 써먹어야지!’
좀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승리를 직감한 라키엘이 사악한 웃음꽃을 보람차게 머금었다.
동시에 경매장의 모두는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듣는 순간 자부심을 팍팍 느끼게 될, 경쟁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최상급의 극찬을 라키엘에게 퍼부었다.
……저 x끼 경매 ㅈ같이 하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