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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파는 황태자-66화 (66/468)

66화. 한밤의 로데오 (1)

딩동!

거침없이 귓가에 울리는 소리. 종합검진표가 시야 한쪽을 차지하며 떠올랐다. 이런 순간에 볼 거라는 생각도 못했던 결과물. 미노타우로스의 종합검진표였다.

‘이게 무슨.’

날뛰고 있는 미노타우로스가 응급 환자란다. 그 응급 바이탈 시그널에 이쪽의 진맥 스킬이 자동으로 반응했단다. 그래서 진맥 스킬이 발동한 거란다.

‘한데 이건…….’

라키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미노타우로스의 종합검진표를 빠르게 훑었다.

[초급 종합검진표]

[검진 대상 :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

[종족 : 미노타우로스]

[성별 : 남자]

[연령 : 48세]

[신장 : 7,120cm]

[체중 : 14,923kg]

[혈액형 : C2]

“…….”

딱 숫자로만 봐도 우량함(?)이 팍팍 느껴지는 신체 스펙. 한데 그 아래에 뜨는 각종 지표가 이상했다. 특히, 그중에서 심장에 적신호가 떠올라 있었다.

[심장기능 : F]

‘……어?’

다른 오장육부는 큰 이상까지는 없었다. 한데 심장이 ‘심각함’을 나타내는 최악의 F 등급이었다. 라키엘의 눈이 아래쪽의 종합 소견을 재빠르게 살폈다.

[종합 소견 : 오랜 감금 생활과 진정제 투여, 다량의 강제적인 곡물 섭취로 신체 밸런스가 흐트러져 있습니다. 복부 비만이 감지됩니다. 이상지혈증(hyperlipidamia)이 감지됩니다. 혈관 내 콜레스테롤 수치가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높은 염증 반응과 대사 기능 저하가 우려됩니다. 응급상태 리포트가 <1건> 있습니다.]

[응급상태 리포트를 펼치려면 이곳을 주시하십시오.]

종합 소견란의 마지막에 처음 보는 문구가 있었다.

‘응급상태 리포트?’

안내문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곧이어 심장의 빽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 : 야 비상! 응급환자 떴다!]

‘어?’

[심장 : 어, 는 무슨? 방금 진맥한 환자 있잖아? 쟤 심장 장난 아닌데?]

‘장난이 아니라니?’

[심장 : 협심증이야. 안정형 협심증(Stable Angina Pectoris) 흉통이 제대로 도졌다고. 관상동맥(coronaty artery)에 혈전 생겼고, 죽상경화증(atherosclerosis) 대환장 파티 상태임. 이거 계속 놔두면 빼박 심근경색 각인데?]

“…….”

라키엘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증상이다.

‘협심증이라면, 심장 혈관이 반쯤 막힌 거잖아.’

자칫 심근경색으로 진행될 수 있는 증상. 심한 경우엔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 상태. 말 그대로, 한국이었다면 당장 119를 부르고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 상황이었다. 비로소 라키엘은 미노타우로스가 날뛰는 원인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협심증의 흉통은 엄청나다지. 자동차가 가슴을 뭉개고 지나가는 것 같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이놈도 그런 거구나. 아파서 날뛰는 거였어.’

끔찍한 고통이 트리거가 되었을 것이다. 오랜 감금 생활 등의 스트레스가 더해져 폭발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절로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너도 사연이 있었겠다고.

정말로 안됐다고.

애석하다고.

‘쯧쯧…….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널 어떻게 치료해줄 상황은 아닌 거 같다? 왜냐면, 지금 당장은 너보단 내가 더 안타깝거드으으응으악-!’

부후우우우웅-!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가 왼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 팔뚝에 매달린 라키엘도 덩달아 힘차게 휘둘러졌다.

‘……그, 그와아아아악!’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온몸을 사로잡았다.

바이킹?

청룡열차?

그것들보다 몇 배는 더한 메슥거림이 위장을 콱, 쥐어짰다. 전신의 피가 발가락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떨어질 수는 없었다.

‘이렇게 휘둘러지는 와중에 이걸 놓치면…… 그래서 날려 가면…… 어디에 부딪히더라도 온몸이 박살 날 거니까!’

풀스윙으로 벽에 내던진 딸기 꼴이 날 것이다. 철퍼덕, 혹은, 와그작. 그런 식으로 죽기는 싫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냈다. 우루스의 팔뚝 털을 움켜쥐었다. 필사적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루스가 더욱 거칠게 움직였다. 손아귀에 힘이 점점 빠져갔다. 설상가상으로 우루스가 이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

“푸륵!”

이쪽이 아연실색 얼어붙는 순간. 놈이 거친 콧김을 내뿜는 순간. 우루스의 오른손이 치켜 들렸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세차게 떨어져 내려왔다.

콰아아-!

“……!”

사람 팔뚝에 달라붙어 있다가 손바닥 내려치기에 찍-하고 끔살당하는 모기 1인칭 시점이 이런 걸까. 이쪽의 키만큼 커다란 손바닥이 떨어져 내려왔다. 모든 시야를 뒤덮으며. 도망칠 생각조차 지워 버리며.

‘미친.’

눈이라도 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스칵-!

새하얀 섬광이 번득였다. 우루스의 뿔을 거칠게 때렸다.

카가각-!

뿔에서 튀는 맹렬한 불꽃.

너무나 쏜살같이 뻗어온 검격이었다. 불시의 검격에 이쪽을 내리치려던 우루스가 멈칫했다. 검격이 날아온 곳을 향해 충혈된 시선을 던졌다. 이윽고 미노타우로스의 왕은 발견할 수 있었다.

“쯧!”

내뻗었던 검을 회수하는 데미안. 그가 아쉬움에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원래는 뿔이 아니라 눈을 노렸던 건데. 황태자를 구하려 급히 검기를 뻗느라 자세가 흐트러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단은 미노타우로스의 손을 멈추게 했으니까.

그러니까…….

“전하, 조금만 버티십시오. 구해드릴 테니!”

재빠르게 외쳤다. 더욱 빠르게 미노타우로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데미안의 두 눈이 거칠게 번득였다.

‘옆구리, 그리고 겨드랑이.’

두 부위를 재빠르게 벤다. 깊게 베지 못해도 괜찮다. 놈이 주춤하기만 하면 된다. 그 틈에 놈의 팔뚝에 매달린 황태자를 구해낸다.

순식간에 전투 계획이 만들어졌다. 내딛는 걸음과 도약. 당기는 검의 호흡과 미노타우로스의 반응. 그 모든 요소를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으로 이용했다.

타탓! 스칵!

두 번의 검광이 번득였다. 우루스가 주춤하며 포효했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다. 단 하나.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황태자의 나약한 손아귀 힘만 제외한다면.

“……어크억! 사람, 살!”

부우웅-!

검격의 따끔함에 우루스가 두 팔을 휘두르는 순간. 이제껏 간신히 버티고 버티던 라키엘의 손아귀 힘이 한계에 달했다.

더는 원심력을 버텨낼 수 없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풀렸다. 움켜쥐고 있던 우루스의 털을 놓쳤다. 그대로 전신이 허공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후웅!

“……려어억!”

라키엘은 다급하게 외쳤다. 우루스의 팔뚝을 놓치는 순간. 온몸이 원심력에서 시원하게 해방되었다. 그리고 더욱 시원하게 침실 밖, 시장관저 정원을 향해 훨훨 날아가게 되었다.

‘허, 허억?’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현실감이 없었다. 온몸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밤하늘의 달이 보였다가. 정원 가득한 조경물이 보였다가. 다시 밤하늘의 달과 별이 반짝이며 인사하고. 다음엔 정원의 무성한 나무와 풀이 손짓했다.

즉, 지금 자신은? 15미터 높이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날아가는 중이었다!

‘미친!’

맹렬하게 날아가는 홈런 타구가 이런 기분인 걸까. 그럼 이 포물선의 끝은 어디가 되는 걸까. 오싹, 소름이 돋았다.

어지럽게 교차하는 시야 속 하늘과 땅. 그 와중에 땅이 점점 가까워졌다. 연못이나 분수대? 그따위 희망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맨땅이었다. 맨땅이 이쪽을 반기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졌다.

더욱 가까워졌다.

삽시간에 와락.

가까워졌다.

수십 미터의 자유낙하 비행. 그 끝에 이쪽을 으스러뜨릴 지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거친 충격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터걱-!

“……그억!”

숨이 턱 막히는 감각. 척추가 쌍쌍바처럼 두 줄로 재편성되는 기분. 한데 이상하게도, 그게 끝이었다.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면에 떨어졌다면 의식이고 나발이고 즉사 당첨이었을 텐데.

‘설마 나뭇가지에라도 걸렸나?’

생각하며 눈을 떴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크르릉, 헥헥헥!”

늑대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이쪽을 보자마자 혀를 내밀며 반갑게 헥헥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라키엘은 멍하니 물었다.

“……아니스?”

“헥헥!”

늑대인간 상태의 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라키엘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면에 추락하기 직전에…… 아니스가 달려와서 날 받아냈구나.’

과연 살펴보니 자신은 아니스의 두 팔에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려 있었다. 살았구나 싶었다. 뒤늦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근위기사와 특근대원들이 곁으로 달려왔다.

“전하! 무사하십니까!”

“이럴 때가 아니네. 어서 저쪽으로! 전하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달려!”

“크르릉! 헥헥헥!”

라키엘을 안은 아니스가 정원을 질주했다. 말에 탄 근위기사들과 특근대원들이 그 곁을 호위하듯 나란히 달렸다. 그렇게, 황태자 일행이 순식간에 정원 건너편으로 도주했다. 멀어졌다. 사라졌다.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의 망연자실한 시선을 받으며.

“……푸르륵!”

우루스의 콧김이 거칠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경매장에서 자신을 사들이려 했던 인간 놈. 저놈을 보란 듯이 패대기쳐서 죽이려 했다. 한데 이렇듯 황당하게 놓칠 줄은 몰랐다. 어이가 없어서 더욱 화가 났다. 눈이 뒤집혔다.

“누오오오오! 푸르륵! 푸륵!”

한층 충혈된 우루스의 눈길이 광포하게 움직였다. 목표를 어이없게 놓친 분노. 그 분노를 풀 새로운 대상을 물색했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앞에 있는 인간이 보였다.

검은 머리칼. 감히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놈. 아까부터 이쪽을 끈질기게 방해했던 놈.

“……이거, 위험수당 꼭 받아야겠는데.”

우루스의 거친 시선을 받은 데미안이 쓴웃음을 흘렸다. 어쨌거나 황태자를 무사히 피신시켰다. 그러니 이제는 이쪽이 빠져나갈 차례다.

‘잘 될까.’

침실의 유일한 탈출구를 미노타우로스가 막고 있는 상황. 즉, 여길 빠져나가려면 놈을 뚫어야 한다.

‘해보자.’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오늘치 위험수당을 받아내려면 어쨌건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 순간이었다.

“누오오오-!”

콰아아아-!

미노타우로스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왔다. 데미안의 눈에 섬광이 떠올랐다.

타닷!

옆으로 재빨리 스텝을 옮겼다. 뻗어오는 주먹의 경로에서 반걸음 비켜섰다. 그대로 검을 옆으로 눕혔다. 내밀었다. 놈의 손목부터 팔뚝까지 일자로 그어 버리려는 동작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츠팟!

뻗어오는 듯하던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이 멈칫했다. 순식간에 물러났다.

‘페이크?’

데미안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미노타우로스의 거대한 머리가 휘둘러졌다.

카아앙-!

“……!”

간신히 뿔을 쳐냈다. 전신이 들썩이며 뒤로 밀려났다. 진짜 주먹이 그제야 날아왔다.

콰아아-!

“……크읏!”

그때부터였다.

데미안의 검이 사납게 공간을 저며냈다. 우루스의 주먹과 팔뚝, 뿔이 공간을 파괴했다. 각자의 검과 뿔이 얽혔다.

서로를 치고, 밀어냈다. 찍고, 찌르고, 베었다. 저며내고, 후려쳤다. 검이 백 번 번득이고. 뿔이 열 번 날뛰었다.

카카카카카카캉-!

숨 쉴 틈도 없는 연격! 미노타우로스의 왕과 데미안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 둘의 승부를 가른 것은 사소한 차이였다.

쩌저적……!

둘의 맹렬한 연속 격돌. 충격파를 버티지 못한 침실 천장에 금이 갔다. 금이 급격하게 벌어졌다. 확장되었다.

콰드득!

천장이 무너졌다. 목재와 돌 더미가 떨어졌다. 우루스와 데미안을 덮쳤다.

“푸륵!”

우루스는 돌 더미를 머리와 어깨로 받아냈다. 제법 큰 충격이 가해졌지만, 돌 더미라 봤자 우루스의 체중에 비하면 그리 심하게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반면에 평범한(?) 인간인 데미안에겐 달랐다.

“……크읏?”

황급히 뒤로 뛰었다. 그러나 눈앞의 우루스와의 격돌에만 집중하던 와중에 천장 전체가 무너져 버리니, 피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위로 검격을 날릴 여유도 없었다. 결국, 천장 구조물이 그대로 데미안을 덮쳤다.

“……!”

콰그자작-!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었다. 그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데미안은 돌 더미에 깔린 자신의 한쪽 다리를 목격해야 했다.

“……크읍.”

부러진 걸까. 아니면 접질린 걸까. 커다란 해머로 정강이를 내려친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돌 더미에 낀 다리가 빠지질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미노타우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놈이 머리와 어깨에 얹어진 돌 더미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

나,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데미안은 검을 움켜쥐었다. 설령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싸우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느워오오오오-!”

미노타우로스가 포효하며 두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이쪽을 내리찍으려는 걸까. 두 주먹이 만든 그림자가 이쪽의 얼굴을 뒤덮어 왔다. 이윽고 공성추 같은 주먹이 떨어져 내려왔다.

콰우우우우-!

“……!”

검을 치켜들었다.

막아내리라. 어떻게든 싸워보리라. 가슴 가득 드리우는 위기감. 그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주먹이 전신을 뒤덮으며 쇄도해 왔다. 심장 속에서 미증유의 기묘한 두근거림이 날뛰려 했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꼬슴아! 몸통박치기!”

괴상한 외침이 들려왔다. 지금 들려올 거라곤 생각한 적 없던, 황태자의 외침이었다. 그와 동시에 뭔가 거대한 물체가 맹렬히 날아왔다.

“꼬슴-!”

그 순간.

데미안은 뜻밖의 광경을 직관해야 했다. 그것은 5미터 크기로 거대해진 환상종, 꼬슴이가 미노타우로스의 등짝에 몸통박치기 밤송이 어택을 작렬시키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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