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 파는 황태자-67화 (67/468)

67화. 한밤의 로데오 (2)

“꼬슴-!”

야물딱진 외침이 울렸다. 동시에 5미터 크기의 물체가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날았다. 포심 패스트볼의 궤적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의 튼실한 등짝에 충돌했다.

아니, 꽂혔다.

뾱!

“……누오!”

밤하늘 가득 울려 퍼지는 미노타우로스의 외침. 그걸 듣는 순간, 데미안은 깨달아야 했다.

‘꼬슴 경?’

미노타우로스의 등짝에 날아와 꽂힌 덩어리. 그건 분명 환상종 꼬슴 경이었다. 밤송이처럼 동글동글 삐죽삐죽.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단지 크기만 5미터에 육박하도록 거대해졌을 뿐.

‘꼬슴 경에게…… 저런 능력이 있었나?’

그저 찔림 방지용 가죽 주머니에 담겨 다니는 환상종인 줄 알았는데. 황태자의 침술에 가시를 제공해주는, 그게 다인 녀석인 줄 알았는데.

‘한데 꼬슴 경이 왜 여기에? 그럼, 전하는?’

순간 떠오른 의문.

설마 하는 생각.

데미안의 눈길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너진 외벽 너머를 향했다. 관저 정원을 신속히 훑었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뭔가를 던진 자세를 하고 있는 황태자 라키엘의 모습이었다.

‘저 인간이 왜 저기에 있어?’

순간 울컥,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탈출시켜줬더니.’

그랬으면 멀리 도망가기나 할 것이지. 뭘 어쩌자고 여기까지 돌아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동시에, 데미안과 눈이 마주친 라키엘도 주먹을 꽉 쥐었다.

‘나이스! 명중!’

혹시나 했다.

잘 될까 싶었다.

환상종을 소환하며 받은 빨간 해바라기씨. 먹이면 환상종의 덩치가 비약적으로 거대해진다고 했다. 꼬슴이가 직접 보증했다. 믿고 꼬슴이에게 먹였다. 먹이자마자 전력으로 던졌다. 마치, 안전핀을 뽑자마자 수류탄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날아가며 꼬슴이가 거대해졌다. 미노타우로스의 왕, 우루스의 등에 제대로 명중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문득,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니스에게 안겨 도망치던 중이었다. 침실에 남겨진 데미안 생각이 계속해서 났다.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됐다.

‘데미안이 강하긴 하지만…… 미노타우로스, 그것도 보통의 미노타우로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될 놈에게 가로막혀 고립되었으니까.’

아무리 데미안이라도 그건 못 이길 듯했다. 그래서였다.

‘이대로 녀석을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녀석이 소설의 주인공이라서? 그새 인간적인 정이 들어서? 모두 아니었다. 녀석은 여기서 잃기엔 너무나 유능한 호위였다. 녀석을 얻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을 생각하면 두고 가기 싫었다.

‘녀석이 안전하게 살아남아야 내 안락한 노후와 미래도 지켜질 거니까!’

삼국지의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가 있듯이. 바르셀로나 FC에 리오넬 메시가 있(었)듯이. 전성기 시카고 불스에 마이클 조던이 건재했듯이. 월드컵 경기 시청에 치킨이 필요하고, 소개팅 날에 잘생김과 예쁨을 챙겨야 하듯이.

자신에게도 반드시 데미안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꼬슴이 가시 잡아! 얼른!”

외쳤다.

외침이 닿았다.

데미안의 손이 검을 쥐었다.

내리쳤다.

콰작!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바위가 반쯤 쪼개졌다. 다시 내리쳤다. 또 내리쳤다. 콱, 콰작, 바위와 목재 더미가 갈라지고, 부서지고, 흩어졌다. 마침내 끼어 있던 다리에 해방감이 찾아왔다. 고통과 함께였다.

“으윽.”

접질린 걸까.

아니면 부러진 걸까.

종아리와 발목이 말을 듣질 알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통증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었다. 바로 위에선 미노타우로스가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누오오오오오오-!”

허리를 활짝 펼친 미노타우로스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등 뒤에 박힌 꼬슴이를 붙잡았다. 등에서 뽑아냈다.

뽁-!

두꺼운 소가죽 덕분일까. 피는 거의 나지 않았다. 꼬슴이를 붙든 우루스의 두 손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생각보다 따끔해서 제대로 붙잡을 수가 없었을 뿐.

“……느오오!”

분노에 휩싸여 너무 꽉 틀어쥔 까닭일까. 맨손으로 밤송이 짐볼을 꽉 안은 것처럼 손바닥과 팔뚝, 가슴이 온통 따끔 화끈거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움츠렸다. 덕분에 놓치고 말았다. 꼬슴이가 바닥으로 데구르르 떨어졌다.

“꼬슴! 꼬스슴!”

떨어지자마자 데미안을 향해 굴러가며 외쳤다. 그 의도를 알아챈 데미안이 손을 뻗었다. 꼬슴이의 가시 하나를 잡았다.

그 순간, 꼬슴이가 밤송이 모드(?)를 풀었다. 데미안을 등 가시 사이에 끼워 넣은 채, 네 다리를 드러내고서 도도도도 달렸다. 무너진 외벽 바깥으로 쏙 빠져나갔다. 보기보다 빠른 속도였다. 덕분에 우루스는 그 전격적인 도주에 미처 반응하지를 못했다.

“……누오?”

우루스의 수난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꼬슴이가 외벽 바깥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등에 탑승해 있던 데미안이 검을 당겼다. 뿌렸다. 혼신의 힘을 실었다. 강렬한 검기가 형성되었다. 뻗었다. 시장관저 3층 외벽을 후려쳤다.

투컥-!

미노타우로스의 난동에 의해 이미 반쯤 무너지고 있던 건물이었다. 거기에 혼신의 힘을 실은 검기가 작렬했다. 약해진 건물이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 결과는 본격적인 붕괴였다.

콰드득! 콰드드드-!

“……누으!”

5층 건물 한쪽이 통째로 무너지며 우루스를 덮쳤다. 제아무리 공룡 급의 신체 스펙을 지닌 우루스라도, 무너져 내려오는 수십 톤 이상의 무게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비명과 함께 깔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그 사이, 꼬슴이가 정원 지면에 착지했다. 그대로 달려 일행에게 합류했다. 라키엘이 꼬슴이와 데미안을 반겼다.

“잘했어, 꼬슴아.”

“꼬슴!”

“그리고 데미안, 넌 멀쩡하냐?”

“……물론입니다.”

“다리는 안 멀쩡한 거 같은데?”

“그래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그럼 됐어.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서 다리 봐줄 테니 도망치자. 미노타우로스 저거, 안 죽었을 거야.”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지금껏 날뛰던 모양새로 보아, 고작(?) 5층 건물에 깔렸다고 쉽게 죽을 놈은 아닐 듯했다.

‘뭐, 놔두면 협심증이 심해져서 죽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좀 아깝네. 우황은 산 채로 뱉어낸 생황이 최곤데. 쯧. 저 녀석 죽으면 아까운데. 진짜로 그러면 배라도 갈라서 꺼내야 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렇듯 엄청난 미노타우로스라면 품고 있는 우황도 최상품일 텐데. 그걸 생황으로 얻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아까운가.

‘하지만…… 무리하지 말자.’

라키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욕심을 낼 때가 아니다. 어설픈 영웅놀이를 할 때도 아니다. 까닥 잘못하다간 우황은커녕 이쪽이 삼도천 너머 염라대왕과 진로상담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니 오늘 분의 용기는 여기까지.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때부터였다. 시장 관저 정원을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시장 일행과 마주쳤다.

“전하아! 무사하십니까아!”

잠옷 바람에 머리가 산발이 된 크레모 시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이쪽의 안위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 도시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 전하.”

“가장 안전한 곳?”

“예, 전하. 바다이옵니다.”

“바다라면…….”

“제 배에 오르소서. 그리하여 배를 항구 앞바다에 띄우면 저 미노타우로스가 아무리 흉악하게 날뛴다 하더라도 전하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대피라. 들어보니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움직이지요.”

“예, 전하!”

시장 일행을 따라 움직였다. 관저를 완전히 벗어났다.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혼란에 빠진 시가지를 지나쳤다. 부두에 도착하니, 출항 준비를 서두르는 범선 한 척이 보였다.

“저 배이옵니다, 전하!”

범선에 올랐다. 한데 어쩐 일인지 시장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왜일까.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부두에 남은 시장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

“어째서?”

“이곳은 제가 책임지는 도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번영과 안전이 제 어깨에 달려 있는 곳이지요. 한데 어찌, 오늘 같은 사태를 맞이하여 저만 홀로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 전하는 피신하십시오. 저는 여기에 남아 경비대를 지휘하겠습니다.”

여전히 잠옷 차림에 산발인 크레모 시장이었다. 통통한 몸매에 슬리퍼는 한 짝만 신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 사람이 잠깐 멋져 보인 건, 저 올곧은 생각과 행동 때문이겠지. 그리고 내가 잠깐 뜨끔함을 느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겠지.’

잠깐이지만 양심이 콕콕 찔려 왔다. 도시의 시장인 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겠다는데. 제국의 황태자인 나는 혼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 아닌가. 이거, 이래도 되는 걸까.

잠깐 말문이 막혔다. 부두에 남는 시장을 격려하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도 양심 없는 짓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데 그때였다.

“어서 출항해야 합니다, 전하.”

옆에서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데미안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을 가지실 일이 아닙니다, 전하.”

데미안이 이쪽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니까요.”

“…….”

그런 건가.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장에겐 이 도시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 데미안과 근위대, 특근대에겐 이쪽을 보호해야 하는 역할이.

그리고 내겐…….

‘살아남아 황가를 책임져야 할 역할이 있다는 거겠지.’

황태자. 그리고 황가. 어쩌다가 졸지에 떠맡아 버린 이 역할이 솔직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데미안의 말이 맞다.

“……그래, 알았다.”

데미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두의 시장을 향해 엄지를 들어주었다. 시장이 비장하고 뿌듯한 얼굴로 예를 표했다.

“닻줄 올려!”

어느 선원의 외침.

닻이 올려지고, 배를 부두에서 밀어냈다. 부두가 차근차근 멀어졌다. 처음에는 조금씩. 나중에는 확실하게. 그렇듯 어느새 작아지는 부두의 광경을 보자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살았구나.’

다리가 살짝 풀리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아까부터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부서진 침실 외벽. 이쪽을 덮치던 미노타우로스.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피해낸 순간들.

‘후우.’

이거 자칫 PTSD 생기는 건 아닐까. 셀프로 기혈치료라도 해야 하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떠올리던 무렵이었다.

“……어어?”

선원 중의 누군가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한데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저거, 뭐야?”

그 옆의 선원도.

심지어 근위기사도.

누군가는 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며, 멀어지는 부두를 쳐다보았다.

‘뭐지?’

다들 뭘 봤기에 저러는 걸까. 저도 모르게 사람들을 따라 부두로 시선을 던졌다. 덕분에 볼 수 있었다. 아니, 그 전에 들어야 했다.

“누오오오오!”

“……!”

익숙한 소리가 부두에서 들려왔다. 선명해져 왔다. 이윽고 더욱 익숙한 실루엣이 부두에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누오오-!”

투콰콰콰콰-!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익숙한 덩치. 공룡 급의 스펙을 자랑하는 저 엄청난 육체. 초대형 미노타우로스가 질주하고 있었다. 한데 질주의 방향이 이쪽이었다. 그러니까, 즉, 육지에서, 부두를 지나, 바다를 향해…….

“누오!”

콰아앙-!

도약했다. 밤하늘로 뛰어올랐다. 상식을 초월하는 속도와 높이로. 일순간 밤하늘의 달을 통째로 가리며.

솟구쳤다가.

내리꽂히듯.

투콰각-!

이쪽의 범선 갑판에 착지했다. 아니, 착함했다.

“……!”

크게 요동치는 범선. 무어라 외치는 선원들. 부서져 흩날리는 갑판 목재 파편들. 그 사이에서 거대한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드는 우루스. 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놈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한 놈만 팬다, 라고.

‘그러니까, 지금, 그 한 놈이 나라는 거지?’

어째서?

왜?

저놈이 저러는 이유까진 알 수 없었다. 대신, 오싹 돋는 소름과 함께 선명한 깨달음이 몰려왔다.

오늘 밤.

저놈과 나.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을 봐야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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